쓰는 중 - 풀코보 공항 2, 항상 없는 카트와 이따금 사라지는 가방 about writing2021. 8. 27. 20:39
조금씩 계속 쓰고 있다. 아직 주인공 게냐는 풀코보 공항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주차장까지는 나왔다 :) 지난번 발췌했던 풀코보 공항 씬(https://tveye.tistory.com/11065)에 이어, 게냐가 공항까지 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장면 몇 문단 발췌해 봄.
사진은 2010년 풀코보 공항 국제선 터미널. 역시 리노베이션 전의 옛 모습이다. 글에 등장하는 건 입국장, 사진은 출국장. 왜 이렇게 터미널이 썰렁하냐면 이때가 비수기인 2월 무렵이었음. (엄청 추웠음 ㅠㅠ) 그래도 이 사진들은 2010년이니까 공항이 나름대로 깔끔해보인다만 발췌한 단편은 9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공항은 당연히 더더욱 우중충했음.
발췌한 장면은 아래 접어둔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30여 분쯤 후 지나이다가 나왔다. 두 개의 커다란 여행 가방을 거의 온몸으로 밀면서, 거의 팔꿈치 언저리에 핸드백을 대롱대롱 달고 다른 한 손에는 쇼핑백까지 들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틀어 올린 붉은 머리는 반쯤 풀어져 마구 흘러내리고 있었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짐에 파묻힌데다 심지어 혼자인 자그마한 여자를 보고 신이 난 짐꾼들과 불법 택시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가기 직전에 게냐가 마중객들을 헤치고 앞으로 가서 그녀를 불렀다. 지나이다는 놀라서 펄쩍 뛰었다.
“ 어머, 겐카! 깜짝이야! ”
게냐는 옆으로 다가오던 호객꾼들을 고개를 저으며 쫓아버리고는 지나이다에게서 트렁크들을 빼앗고 생각보다 묵직한 면세 비닐백도 같이 몰아 쥐었다. 지나는 가쁜 숨을 헉헉 내쉬며 푸념했다.
“ 도대체 이 망할 놈의 공항엔 카트가 있을 때가 없어. 간신히 한 개 발견했는데 새파란 양아치 꼬마가 낚아채 갔어. ”
“ 카트라서 다행이죠. 전 지난번에 들어올 때 컨베이어벨트에서 가방도 날치기당했는데. ”
“ 맞아, 기억나. 그래도 가방 찾았잖아. ”
지나의 말대로 찾기는 찾았다. 가방만. 안은 몽땅 털렸다. 키라는 그래도 귀중품은 없었으니 망정이라며 상심한 게냐를 다독였고 동료들은 가방을 몽땅 털어간 그 망할 놈의 좀도둑들은 싸그리 대로변에서 총 맞아 죽을 거라고 욕을 해주었다. 미샤는 어차피 가방 안에는 선물용 초콜릿 상자 몇 개를 제외하면 꿰매야 하는 무용화 더미와 구겨진 의상들, 빨랫감들밖에 없으니 그걸 털어간 놈들도 실망했을 거라고 했다. 게냐가 ‘그러니까 기분 나쁘단 말이에요’ 라고 투덜대자 조금만 기다리면 잃어버린 타이츠랑 무용화가 발레광들의 경매 시장에 나타날 테니 갈런드를 시켜서 도로 구해오면 된다고 농담을 해서 결국 키라에게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야?’ 하고 한 대 쥐어박혔다.
..
맨 아래 문단에서 언급되는 갈런드라는 인물은 미샤의 발레단에서 운영국장을 맡고 있는 미국인임. 그 전에는 미샤의 해외 에이전트였다가 결국 발레단에 자리잡아버렸음.
2010년 풀코보 공항 사진 두 장 더. 사실 떠날 때는 짐 부치고 정신없이 수속 밟고 엄청 지친 상태가 되기 마련이므로 공항 사진 찍어놓은 건 거의 없다. 입국해서 짐 찾고 나올 때는 더더욱 정신없으므로 찍어둔 사진이 아예 없음. 근데 풀코보 공항이 14년에 리노베이션된 걸 생각하면 이 옛날 공항 사진들 좀 찍어둘 걸 하고 이제야 좀 아쉽다.
그리고 이제는 뻬쩨르의 풀코보 공항에서도 아주 쉽게 카트들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 주변에서 짐 잃어버리는 일은 종종 있었고... 나도 옛날에 모스크바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컨베이어 벨트에서 누군가가 내 짐을 가져가서 못 찾고 한시간 넘게 헤매다 간신히 다른 벨트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가방을 찾아냄. 그러나 게냐와는 달리 내 짐은 정말로 허름한 이민가방 스타일의 천가방이라 안도 무사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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