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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5. 00:33

밤, 흉터와 얼룩 about writing2016. 12. 5. 00:33

(사진은 프라하, 아녜슈카 수도원)

 

 

 아래 글은 약 2년 전에 쓴 단편 Night의 중반부에서 발췌한 매우 짧은 에피소드와 그 소설에 대한 메모이다. 사실 이 메모는 전에도 한번 올린 적이 있다만... 이 단편은 가브릴로프 본편에 차후 삽입하기 위해 먼저 쓴 글이다. 가브릴로프 시립극장 오케스트라 단원 코즐로프와 새로 온 감독인 미샤의 관계를 다룬다.

 

..

 

Night에 대한 메모(되풀이)

(2016. 8월에 이 소설의 다른 부분 발췌하면서 덧붙였 메모를 다시 붙인다)


 

 약 2년쯤 전에 나는 가브릴로프 본편을 시작했다가 잘 풀리지 않아서 그 본편에 삽입될 에피소드 하나를 독립된 단편으로 먼저 썼다. 지방 소도시인 가브릴로프의 시립극장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나의 주인공 미샤가 그곳 오케스트라의 실력자이자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인 로만 코즐로프와 의견 충돌을 일으킨 후 하룻밤을 보내고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코즐로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코즐로프는 이 본편의 외전 격인 서무의 슬픔 시리즈 때문에 어린 애인에게 폭 빠진 다혈질의 흑염소 아저씨(ㅜㅜ)이자 바이올린 깡패로 등극하게 되었지만 원래 본편에선 그런 막가파 캐릭터는 아니었다(아무래도 서무 시리즈 때문에 코즐로프가 제일 웃기게 변한듯... 손해봤어 ㅠㅠ)



 하여튼 그 에피소드는 생각보다는 좀 길어서 실제 본편이 씌어졌을 때는 좀 손을 봐야 할테지만 지금으로선 그냥 독립적인 단편으로 존재하고 있다. 제목은 매우 단순하게도 '밤'(night) 이었는데 다른 제목을 굳이 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 밤을 보내고 사랑에 빠지는 무수한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니까. 우습지만 이 이야기를 처음 발췌했을 때 후반부에 둘이 사과파이 먹는 장면을 인용했기 때문에 종종 '사과파이 단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있다. (서무 시리즈에서 왕재수가 사과파이를 좋아하는 걸로 설정된 건 사실 이 단편 때문이다)



 이 단편은 전에 사과파이 에피소드나 미샤가 백조 솔로를 추는 씬, 그리고 전반부 1~2장 전체를 발췌한 적이 있다. 그냥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술을 못 마시는 미샤가 보드카를 실컷 퍼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코즐로프의 집에서 밤을 보내는 얘기다. 어떤 이야기들이든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간단해지는 법이다.

 

..

 

 

그리고 12월의 짧은 메모

 

아래 발췌한 내용은 Night의 중반부. 코즐로프와 미샤가 밤을 보내면서 일어나는 아주 짧은 이야기이다. 별 내용은 없는데... 하여튼 공개 블로그라 자기검열을 조금 하고... 표현이나 두어가지를 좀 손봤음. 19금은 아니고 15금..? 글쎄다, 14금 정도.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나는 미샤를 똑바로 뒤집었다. 환한 램프 불빛 아래로 그의 몸을 좀 더 끌어당겼다. 미샤는 이제 옆으로 돌아눕거나 버둥거리지 않았다. 머리를 베개에 기댄 채 가만히 있었다. 램프 스탠드 아래 하얗게 뻗어 있는 맨몸 위로 황금빛과 붉은빛 그림자가 부드럽게 번져왔다. 맨 처음 극장에서 마주친 순간부터 난 밝은 빛 아래에서 그 몸을 보고 싶었다. 화보로 본 적은 있었다. 극장 계집애들의 스크랩북에는 별의별 사진들이 다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츠를 입은 모습도, 상체를 드러낸 채 아랍 팬츠 차림으로 머리에 우스꽝스러운 깃털을 꽂고 아라베스크를 하는 모습도, 스파르타쿠스의 가죽 튜닉을 입고 몸 대부분을 노출한 채 도약하는 모습도 전부 봤다. 하지만 손바닥만 한 평면 화보와 진짜 육체 사이에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거리가 있었다. 아마도 그게 욕망의 깊이일지도 모른다.

 

 자식의 몸은 얼굴보다도 더 하얗고 미끈했다. 역겹도록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조각 같았다. 박물관이나 궁전에 세워놓는 종류의, 대리석을 새기고 깎아 만든 조각상. 그런데 그건 온전하지 않았다. 화보에서 봤을 때보다, 국영채널 필름에서 봤을 때보다 야위었고 근육도 훨씬 줄어들어 있었다. 어쩌면 카메라와 조명의 트릭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난 너무 근육질의 사내애보다는 낭창낭창하고 날씬한 애들이 더 좋으니까 상관없었다.

 

 그 애의 피부는 계집애처럼 하얗고 매끄러웠다. 아마 타고 났을 것이다. 황실 찻잔처럼 고왔다. 그러나 거기에 흠집이 있었다. 여기저기. 목덜미 아래, 가슴팍 언저리, 허리 부근, 늑골 뒤편, 등과 어깨. 거무스름하게 변색되고 희미해지고 있었지만 어쨌든 멍 자국들이 가득했다. 왼쪽 골반 위로 붉은색과 잿빛이 뒤섞인 상처가 작고 두툼한 뱀처럼 길게 돌출되어 있었다. 뾰족한 징이 가득 박힌 군화로 제대로 걷어 채였거나 나이프로 저민 흔적처럼 보였다. 끔찍한 상처였다. 아마 아직 다 아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온전하지 않은 몸이었다. 무너지고 짓밟히고 부서진 몸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 애가 왜 필사적으로 몸을 빼내려고 했는지, 왜 불을 끄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미샤는 내가 자기 몸을 샅샅이 살펴보고 만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골반의 상처에 입술을 대고 키스했을 때는 몸서리를 쳤다. 흥분해서가 아니었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으니까.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얼간이처럼 물었다.

 

 “ 아파? ”

 

 “ 어떨 것 같은데? ”

 

 “ 아플 수도 있겠네. 30바늘은 꿰맸겠는데. ”

 

 “ 음, 거긴 그냥 놔둬. ”

 

 “ 아파서? ”

 

 “ 아니. ”

 

 “ 나쁜 기억 때문에? ”

 

 

 내가 왜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난 그저 자식을 덮치고 싶을 뿐이었다. 단숨에 집어삼키고 싶을 뿐이었다. 고문을 당했던 아이를 위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내 입술은 다른 식으로 혼자 춤을 추고 있었다.

 

 

 “ 글쎄. 사실 기억나는 건 없어. ”

 

 “ 그럼 키스하게 놔둬. ”

 

 “ 왜? 난 별로야, 거기 손대는 거. ”

 

 “ 좋아질 테니까. ”

 

 “ 당신이? ”

 

 “ 네가. ”

 

 “ 이상한 논리잖아. ”

 

 “ 이 상황에서도 논리가 생각나나? ”

 

 

 나는 그 끔찍한 상처를 혀로 천천히 핥았다. 우툴두툴하게 부풀어 오른 그 흔적을 입술과 혀로 애무하자 마치 상처를 핥아주는 짐승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속해서 핥고 입 맞춘다면 정말 나아질지도 모른다. 상처가 아물고 흉터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좋아질 것이다.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거긴 그냥 놔둬. 별로야, 거기 손대는 건.

 

 그토록 완벽하고 근사한 육체를 가졌던 아이, 그토록 뜨겁게 달아오르고 그토록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기 몸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어쩐지 기분 나쁘고 화가 났다. 어디든 놔둘 수 없었다. 모든 곳을 손대고 모든 곳을 애무하고 싶었다. 어느 곳을 건드리든 좋아지기를,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라주기를 원했다. 그 예쁜 입에서 거긴 놔두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 놈들, 저 공작새 같은 애로 하여금 환한 불빛 아래 흉터와 얼룩이 드러날 게 두렵고 부끄러워서 램프를 끄고 싶게 만든 개자식들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분명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자기 몸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애였을 테니까.

 

 

...

 

 

(사진은 alex gouliaev, 발란신의 '돌아온 탕자'를 추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이 단편은 예전에 여러 부분을 발췌해 올린 적이 있다. 이야기의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물론 중후반부는 중간중간 빠져 있지만)

 

맨 앞 부분(Night : 코즐로프와 미샤의 이야기 중에서) : http://tveye.tistory.com/4118

숙취로 고생하는 미샤와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대화 : http://tveye.tistory.com/3253

아침, 여분의 수완, 바느질 : http://tveye.tistory.com/3465

다들 똑같아지면 재미없음, 싫지 않은 것과 보통과 별로 사이 : http://tveye.tistory.com/5087

백조 솔로를 추는 미샤 : http://tveye.tistory.com/3146 

사과파이를 먹는 코즐로프와 미샤 : http://tveye.tistory.com/3165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2016. 12. 4. 23:13

하얀 장화 문양 2016 praha2016. 12. 4. 23:13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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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2. 4. 00:39

들어와요, 문은 열려 있어요 2016 praha2016. 12. 4. 00:39

 

프라하 황금소로의 작은 카페.

이때 덥고 목마르고 배고파서 잠깐 여기 들어가서 시원한 에이드로 목을 축이고 파니니로 요기를 했다. 에이드는 좋았지만 파니니는... 내가 자신의 입맛을 간과하고 칠리쇠고기 파니니를 시켜서 맛이 매우 별로였음.

 

하지만 창 너머로 황금소로와 사람들이 보였다.

 

골든 레인이라는 종이쪽지는 점원이 와이파이 비번 적어준 거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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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프라하 숙소에선 와이파이가 잘 안 잡혔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 에벨과 카피치코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본의아니게 와이파이 거지가 되어 자주 드나들었던 나로드니 트르지다의 테스코 1층에 있는 코스타 커피. 일명 와이파이 천국이라 불렀음 :)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아늑한 카페와는 물론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와이파이 구걸하러 다니다 정 들어서 돌아오고 나도 좀 그립다. 대신 차나 에이드 시키긴 좀 돈 아까워서 탄산수나 병에 든 주스 등 맨날 싼거 사먹음. 미안해요 코스타 커피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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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3. 01:21

귀퉁이에 자리 좀 내줌 2016 praha2016. 12. 3. 01:21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하늘만 찍으려 했는데 첨탑이 자기 빼놓는다고 섭섭해 해서 귀퉁이만 좀 등장시켜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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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2. 1. 20:46

도넛 먹고 싶게 만들었음 2016 praha2016. 12. 1. 20:46

 

오늘의 프라하 낙서 시리즈는 도넛~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

 

저 거대한 도넛 낙서를 보니 갑자기 초콜릿 입힌 도넛이 먹고 싶어졌다. 원래 하라 도넛이나 미스터 도넛 아니면 느끼해서 잘 안 먹는 편인데... (크리스피 크림 못 먹는 1인)

 

저거 그린 사람도 어지간히 도넛 먹고 싶었나보다 :)

 

.. 앗, 근데 혹시 저거 도넛이 아니라 튜브인가?? 옆의 방울은 군침이 아니고 설마 물방울???? 그냥 도넛 해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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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늦은 새벽인데 잠이 오지 않아 깨어 있다. 기차에서 너무 곤하게 자서 그런가. 아니면 여기가 집2라서 그럴지도. 이 방에서는 잠들기가 항상 더 어려웠다.


사진은 프라하 루지네 공항. 돌아오던 날.


먹은게 좀 적은 하루여서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는 것 같기도 한데 몽창 짐싸고 버린 탓에 지금 이 집에는 물과 약밖에 없음 잉..




뜬새벽에 이런거 먹고 싶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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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2. 1. 01:16

카페 에벨 2016 praha2016. 12. 1. 01:16



마음의 위안을 위한 카페 에벨 사진 몇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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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2. 1. 00:58

하트와 눈동자 2016 praha2016. 12. 1. 00:58




오늘의 프라하 낙서는 이런 것들. 심장. 뼈. 콘. 남자 얼굴(눈동자). 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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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9. 22:54

이건 고양이 낙서인가... 2016 praha2016. 11. 29. 22:54

 

어제의 무시무시한 빨간 팬더 낙서(http://tveye.tistory.com/5598)에 이어... 오늘의 프라하 낙서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고양이로 추정되는 괴생물체.

옆에 meow라고 적혀 있는데 이게 고냥이 우는 소리 아닐까? 고로 이 xㅅx 녀석은 생기다 만 고양이??

근데 좀 유령 그려놓은 것 같기도.. 그옆의 글씨인지 그림인지도 어떻게 보면 유령 눈알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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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8. 22:48

곰 좀 귀엽게 그려주지 ㅠㅠ 2016 praha2016. 11. 28. 22:48

 

 

 

주의 : 안 귀여운 곰. 빨간 잉크로 그려진 곰. 쪼끔 무서운 곰이 싫으신 분은 주의하세요.

 

 

프라하 구시가지 어느 골목에서 발견한 팬더 낙서...

아... 곰 좀 귀엽게 그려주면 안됐을까? 흑... 빨간색으로 그려놔서 좀 오싹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곰이 '날 이렇게 안 귀엽게 그려놓다니!' 하고 경악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몸통 쪽은 시멘트 벗겨져서 곰 토막난거 같아 흑흑)

옆에 쿠마 스티커라도 붙여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ㅇㅅㅇ

 

... 원래 이 곰 낙서 사진만 올렸는데 메인 이미지로 이 시뻘건 곰이 뜨니까 좀 공포스러워서 그 위에 저 골목 사진 한장을 추가함... 내가 겁이 많아서 그런지 내가 올려놓고는 모바일로 블로그 보다 저 뻘건 곰 사진에 깜딱 놀랐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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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27. 20:44

거대한 노란 알! 2016 praha2016. 11. 27. 20:44

 

프라하 구시가지 틴 광장.

이 광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도자기 가게가 있는데 황금소로의 도자기 가게랑 같은 브랜드이다. 도자기 새, 달걀, 종지, 컵 등을 파는 곳이다.

 

거대한 노란 알!!!

 

가게 앞 나무에 장식용으로 도자기 계란이나 새, 종을 매달아놓는데 이 알이 사이즈가 좀 크긴 컸다 :) 그치만... 클로즈업해 찍어서 더 거대해진 것임. (갑자기 거울나라 앨리스의 험프티 덤프티가 좀 생각나... 험프티 덤프티는 징그러워서 안 좋아했지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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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26. 21:26

다채로운 프라하 카페 간판들 2016 praha2016. 11. 26. 21:26

 

오늘은 프라하 골목의 카페 간판들 시리즈.

 

프라하는 그야말로 카페의 도시이다. 어디를 가나 카페가 있다. 그랑 카페부터 조그맣고 아늑한 카페까지 다양하다. cafe라는 이름을 붙인 곳도 있고 kavarna란 이름을 붙인 곳도 있다(kava가 커피). 우리식으로 하면 카페와 커피숍? 그리고 차를 전문으로 하는 찻집은 보통 cajovna(차요브나)라고 한다. caj(차이)가 차. (체코어 표기대로 하면 c 위에 v가 붙어야 되는데 귀찮아서 그냥 c로 씀 ㅠㅠ 아래 간판 사진 보면 제대로 된 표기를 볼 수 있다~

 

사진들 중엔 내가 가본 곳도 있고 안가본 곳도 있다.

 

맨 위는 말라 스트라나에 있는 카페 라운지. 여기서는 아점을 먹었었다. 괜찮은 곳이다.

 

 

이건 릴리오바 거리에 있는 초코 카페. 여기는 내 추억의 장소 중 하나다. 3년 전 프라하에 두달 살았을때 숙소 바로 옆에 있던 카페였다. 동생이랑 쇼콜라 쇼 마시러 갔었고 종종 케익도 사러 갔었다. 여기 초콜릿 맛있다.

 

 

이건 카페 사보이. 전에 몇번 올린 적 있다. 아르누보식 아름다운 카페이고 케익이랑 프렌치토스트가 맛있다.

 

 

이건 흐라드차니에서 네루도바 거리 내려오다 발견한 카페 간판. 여긴 안 들어가봄.

 

 

여기는 미셴스카 골목에 있는 카페 입구. 예전 카피치코가 있던 곳 맞은편에 생긴 카페인데 저 박스 모양 간판이 귀여워서 한번 가보고팠는데 결국 못 가봄.

 

 

이건 우예즈드와 스미호프 중간 쯤의 어느 골목 산책하다 발견.

 

 

여기도 들어가보진 않았는데 스미호프 쪽에 있는 카페이다. 여기는 애묘카페였다. 고양이 사진들이 많았다.

 

 

그 스미호프 근방. 이쪽에 조그맣고 이색적인 카페 간판들이 많았다.

 

어머나 여기도 카피치코가 있네!

하지만 이건 내가 좋아했던 그 미셴스카의 카피치코가 아니고 역시 스미호프 쪽에서 발견한 카피치코. 잘보면 카피치코 33이라고 되어 있다. 아마 여기가 33번지인가보다. 여기도 한번 가볼까 하고 검색을 해봤는데 내부 공간이 별로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어서 가보진 않았다.

 

 

 

이게 진짜 카피치코~

미셴스카 골목 갔을때 없어져서 매우 슬퍼했지만... 말테세 광장 쪽으로 이전한 것을 발견!!

 

 

여기는 신시가지 바츨라프 광장 쪽에 있는 찻집 도브라 차요브나. 여기도 자주 갔다. 안뜰에 불상이 앉아 있는 찻집 :)

 

 

여기는 구시가지 골목 안쪽에 있는 찻집. 황금수탉건물의 찻집이라고 되어 있는데 간판은 그냥 차요브나라고만 되어 있음. 여기도 두어번 갔었는데 개인적으론 여기보단 위의 도브라 차요브나가 더 맘에 들었다.

 

... 아아 그리운 카페들이여 찻집들이여 ㅠㅠ

 

:
Posted by liontamer
2016. 11. 23. 22:54

카페 에벨 + ^ㅇㅅㅇ^ 2016 praha2016. 11. 23. 22:54

 

지난 9월의 어느날. 프라하.

이날도 나는 카페 에벨에 가 있었다. 이날은 혼자가 아니었다. 료샤와 함께였다. 나에게 에벨은 거의 항상 혼자 가는 곳, 글을 쓰러 가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친구와 같이 있는 것이 더 좋긴 했다.

 

이날 폰으로 찍은 에벨 사진 몇장. 그리고... 료샤가 몰래 도촬한 사진 한장.

 

 

 

 

 

언제 찍혔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료샤가 도촬해서 나에게 보내준 사진. 내가 '이게 뭐야! 뭔가 좀 이상해!' 라고 하자 그는 '토끼의 신비주의를 위해 코 아래부터 찍은 거야' 라고 말했다. 근데... 정말 나의 둔갑술이 탄로날까봐 이렇게 찍어준 건지, 아니면 이것이 그의 한계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음(원래 항상 사진 찍어줄때 보면 내 얼굴이나 머리나 손발을 다 잘라먹는다... ㅠㅠ 그리고 당사자는 카메라공포증이라 절대 사진을 못 찍게 한다 ㅋㅋ)

 

하여튼 위가 다 잘려서 토끼 본모습이 탄로나지 않을 정도이므로 올림 ㅋ (토끼입술이라 정체 탄로가 좀 불안하긴 한데 ㅋㅋ)

폰 뒤지다 이 사진 발견하니 갑자기 저날 에벨에서 수다떨고 차 마시던 게 그리워져서 카페 사진들이랑 같이 올려본다. 료샤랑 레냐도 보고프고.

:
Posted by liontamer




프라하. 9월. 골목들 산책하다 폰으로 찍은 사진들 그냥 맘대로 몇장.


이건 말라 스트라나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입구.









이건 무슨 동물의 두개골인가.. 모형인가??
프라하 창가엔 해골도 많고 이따금 이런 두개골도 눈에 띈다.




그리고 앞 사진들과는 뭔가 뜬금없이 롤러 스케이트 문양으로 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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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19. 23:04

몹시도 그리운 카피치코 2016 praha2016. 11. 19. 23:04

 

프라하에서 돌아온지도 한달 반이 훨씬 지났다.

 

몹시도 그리운 곳을 딱 두곳만 꼽으라면 역시 카페 에벨과 카피치코이다. 하나 더 꼽으라면 안젤라또(거기 스트라치아텔라 먹고 싶다) 카페와 아이스크림이라니... 역시 게으른 토끼가 아닐 수 없다.

 

몹시도 그리운 카피치코 사진 몇 장. 빛이 스며드는 아늑한 카페라 좋았다. 카피치코는 빛을 받으며 차를 마시고 주인 로만과 얘기하는 게 좋았고 카페 에벨은 여전히 내겐 글을 쓰는 곳이다.

 

카피치코, 다시 가고 싶어요.

 

요즘 계속 늦게 자고 잠을 좀 설쳐서 오늘은 꾹 참고 홍차를 안 마셨다. 그랬더니 이 한밤중에 너무너무 차 마시고프다. 그냥 카피치코 사진 보면서 달래자... (그리하여 오늘은 반드시 좀 일찍 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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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19. 22:51

수용소 면회실에서, 얼룩들, 왜냐하면 about writing2016. 11. 19. 22:51

 

 

 

 

아래 글은 3년 전 프라하에서 쓰기 시작해서 서울에서 마무리한 중편이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2부는 프라하에서 썼고 3부는 서울에 돌아와서 썼다. 여기서 나는 나의 주인공 미샤가 체포된 후 레닌그라드 정신교화 수용소와 모스크바 비밀 클리닉, 그리고 면회실에서 겪는 일들을 다뤘다.

 

사실 이 이야기는 원래 쓰고자 했던 가브릴로프 본편에서 간단한 회상 정도로만 처리하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프라하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그것은 나에게 옳았다. 그때는 2013년이었다. 지금의 정부가 들어선 해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고민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지금처럼 잠시 회사를 쉬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었다. 나는 글을 썼고 수면으로 올라왔고 회사로 돌아갔다.

 

그때 이 글을 썼던 것이 나에게 필요했듯, 지금도 아마 어떤 다른 종류의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가 됐든 결심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발췌한 내용은 소설의 3부이다. 주인공 미샤의 절친한 친구인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모스크바 KGB 비밀병원의 면회실에서 미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일어나는 일이다. 일린은 전에 발췌한 글들에서 여러번 등장한 적이 있다. 모스크바 토박이, 볼쇼이 극장 무용수 출신의 유능한 안무가이며 미샤의 얼마 안되는 진짜 친구이다. 이전에 일린과 그의 어린 딸 라라, 미샤가 등장하는 부활절 단편을 전문 게재한 적이 있다. 이 면회실에서의 일린과의 대화 역시 토막토막 발췌한 적이 있다.

 

 

내가 왜 지금 이 부분을 발췌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건 얼마 전 내가 소년 시절의 미샤와 심문관 그라도프의 이야기(http://tveye.tistory.com/5348 : 사제 없는 고해. 심문관의 독백, 혼자 다니는 사람, 집단주의) 를 올렸던 이유와 많이 겹치겠지. 그리고 지금이 바로, 여기가 바로 저곳이며 저때나 다름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중간에 언급되는 라라와 아냐는 일린의 두 딸이다.

 

벨스키는 미샤를 후원하는 공산당 고위 간부 중 하나이다. 전체 이름은 게오르기 벨스키. 정치적으로 온건파이며 미샤를 이후 수용소에서 빼내 소도시 가브릴로프로 유배시키도록 힘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전에 등장했던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나 드미트리 마로조프와는 달리 미샤와 사적인 관계로 얽혀 있지는 않다. 이 소설의 3부에서 일린을 클리닉에 보내 미샤를 면회할수 있도록 해준 것도 벨스키이다.

 

지나는 미샤의 키로프 발레단 시절 파트너 발레리나인 '지나이다'이다. 전에 지나에 대한 얘기도 두어번 발췌한 적이 있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이제 미샤는 왼쪽 어깨를 천천히 여러 번 돌리면서 깊고 불규칙한 호흡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프다고 하지는 않았다. 내 앞에서조차 그는 아픈 것을 제대로 인정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내 곁에 앉아 있는 그 야윈 몸으로부터 점점 열기가 퍼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창백한 얼굴에는 사람을 홀리던 아름다움이 여전히 반쯤은 남아 있었는데 어쩐지 그건 인위적이고 비정상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아마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눈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뺨과 이마 위로 물감을 끼얹은 듯 번지는 홍조 때문일지도.

 

 나는 그의 오른쪽 손등을 감싸 쥐었고 그 타는 듯한 열기에 놀랐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얼음장처럼 차갑던 손이었다.

 

 

 “ 너 괜찮아? ”

 

 “ 그럼. ”

 

 

 그는 내 앞에서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짧은 단어를 내뱉는데도 숨을 헐떡였다. 나는 그의 목을 칭칭 감고 있는 스카프를 풀어 주었다. 열이 올라 답답한 것 같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 조잡한 색깔의 천 조각을 더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스카프를 풀어서 소파 한켠에 내던져버렸을 때 미샤는 두어 번 기침을 하더니 한결 깊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진작 풀어버릴 걸 그랬다고 말해주려다 나는 잠시 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애의 턱 아래와 목덜미 전체에 멍이 가득했다. 짓밟힌 듯, 뭉개진 듯, 끔찍한 색깔과 이상한 모양의 일그러진 얼룩들이 눈 위의 발자국처럼 찍혀 있었다. 그건 심지어 붉은색도, 보라색도 아니었다. 엉망으로 더럽혀진 진흙탕 같았고 토사물 같았고 빛바랜 잉크, 지저분하게 번진 커피 얼룩 같았다.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쇄골 전체가 라라의 첫 유화 수업 팔레트처럼 우중충하게 뒤섞인 어둡고 음산한 얼룩들로 띠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미샤는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한동안 내가 자신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마침내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아직 초점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 시선을 본다기보다는 느낀 것 같았다.

 

 

 “ 왜? ”

 

 “ 다른 데도 그래? ”

 

 

 그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명민하던 애가, 내 표정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금세 눈치 채던 애가 이제는 순진한 어린애처럼 입술을 반쯤 벌린 채 내 질문이 무슨 뜻인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오른쪽 소매를 걷어보았다. 그것들이 팔에도 있었다. 목덜미보다 더 많아서 얼룩이 사슬처럼 서로 겹쳐져 있었다.

 

 

 “ 멍들었잖아. 다른 데도 다 이래? ”

 

 

 팔목을 그렇게 세게 쥔 것도 아니었는데 미샤가 낮게 소리를 질렀다. 아주 짧고 작은 비명이었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미샤가 왼손으로 내 손등을 잡아당겼다. 그건 라라보다도, 아니 이제 열 살 밖에 안된 내 조그만 아냐보다도 더 미약해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미샤의 팔목을 놔주었다. 이마로 열기가 치솟았다. 가능한 한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며 그 애를 향해 똑바로 물었다.

 

 

 “ 맞았어? 맞아서 생긴 멍이야? ”

 

 

 나는 수용소에서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나의 지식은 평범한 소련 시민이 솔제니친 류의 소설들, 그리고 각종 수기나 기사 따위를 읽고 주워 모을 수 있는 내용들로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30년대도, 50년대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육체적 폭력. 그게 죄수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심문 과정에 포함된 것이든, 혹은 양쪽 모두이든 상관없다. 그건 비단 수용소뿐만이 아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폐쇄된 공간에 남자들을 몰아넣었을 때, 그리고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이 결정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기 위해 굳이 보고서와 수기를 읽을 필요는 없었다. 발레학교 기숙사에서도, 그리고 우아하고 고상할 거라는 오해를 받는 극장의 연습실에서도 크고 작은 폭력 사건은 늘 있었다. 다시금 내 눈 앞에 그 사진이 어른거렸다. 하지만 그토록 빽빽한 얼룩들을 만들어놓으려면 대체 몇 명이 얼마나 집요하게 두들겨 패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그게 충격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미샤는 거의 달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맞아서 그런 거 아냐. 화내지 마. 때리지 않았어. ”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잠깐 한 손으로 가슴팍 쪽을 눌렀다. 그것도 무의식적인 행동 같았다.

 

 

 “ 맞은 게 아니면 뭔데... 너 많이 아팠잖아. 지금도 팔 건드리니까 아파했잖아. ”

 

 “ 없어지고 있어. 이제 괜찮아. ”

 

 

 그 순간 나는 이제껏 왜 그 애의 얼굴에서 인위적이고 기묘한 느낌이 배어나오고 있었는지 퍼뜩 깨달았다. 야위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창백하고 가면 같은 안색과 부드러운 핏기가 도는 뺨과 입술. 그 모든 것이 사기였다. 그 애는 분장을 하고 있었다. 무대에 올라갈 때처럼. 의상을 입고 춤췄을 때처럼. 손수건을 꺼내 광대뼈와 뺨을 문지르자 파우더와 화장품이 잔뜩 묻어났다. 입술도 마찬가지였다. 손수건이 지나간 자리에는 석고처럼 하얗고 완전히 핏기가 없는 피부가 새로운 얼룩처럼 드러났다. 입술조차 거의 아무런 색채가 없었다. 나는 그 애가 발레 무대에 올라가던 때에도 그렇게 화장품을 두텁게 겹쳐 바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미샤는 일반적인 동료 무용수들과는 반대로 피부색보다 짙은 파운데이션과 섀도를 사용한 적이 더 많았지만 결코 무대 메이크업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조금만 손을 대도 강렬하게 눈에 띄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애가 죽은 사람처럼 새하얀 얼굴을 예순 살 노부인들보다 더 두터운 파운데이션으로 빽빽하고 두텁게 칠한 채, 조금 창백하고 아주 조금 아파 보일 뿐 그저 야윈 것에 지나지 않는 척 하며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아니, 그 애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애는 화장품 팔레트와 붓조차 제대로 들 수 없는 상태였다. 그자들이 공금으로 그 끔찍한 옷을 입혔듯 그 애에게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다. 광대뼈와 콧등에 블러셔와 하이라이터를 문지르고 이마와 턱 가장자리에는 셰이드까지 칠해서 그 애를 무대도 없이 광대로 만들고 자본주의조차 없이 상업화보 모델로 만들었다.

 

 

 그러자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거의 고함을 지르기 직전이었다.

 

 

 

  아니, 괜찮지 않아. 전혀 괜찮지 않아. 그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더러운 놈들이 네게 무슨 짓을 한 거냐구!

 

 

 

 미샤가 발을 한 번 굴렀고 내 옷자락을 붙잡더니 아이처럼 흔들어댔다.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입술을 움직여 단어를 하나 만들어냈다. ‘도청’, 그 단어를 말도 없이 두 번, 세 번 되풀이했다. 그러더니 오른손을 뻗어 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내 얼굴 앞에서 두 손을 교차해 잠깐 십자 모양을 만든 후 다시 손가락을 내 관자놀이에 대고 가만히 있었다. 그건 우리가 청년 극장에서 발표했던 짧은 춤을 위해 발레 마임을 토대로 고안했던 동작들이었다.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도청당하고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마. 널 체포할지도 몰라. 위험해질지도 몰라.

 

 

 상관없어. 들으라고 해. 네가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입을 다물 수 있어. 얘기해봐, 미셴카. 그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런 짓 전부 불법이야. 넌 시민권을 박탈당한 것도 추방당한 것도 아냐. 정식 재판을 받은 것도 아니잖아. 네가 지금까지 연방을 위해 해준 일이 얼만데... 어떻게 너한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약이야? 그놈들이 마약으로 이렇게 만든 거야? 약물로 고문한 거냐고! 외국에서 떠드는 얘기가 정말인 거야?

 

 

 미샤는 이제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것도, 마임을 시도하는 것도 포기했다. 한 손을 뻗어 그대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화장이 반쯤 지워진 그 창백한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릴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애는 몸을 떨고 있었다. 왼쪽 팔과 다리에서 시작된 경련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는데 꼭 영하 30도의 날씨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얼음 구덩이에 던져진 사람처럼 떨었다. 너무 몸이 떨려서 내게까지 진동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래도 그는 완강하게 내 입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그 애의 손을 떼어내는 대신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정수리까지 치솟았던 열기와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폭발할 듯한 감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심장 한가운데 그대로 고여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껏 그런 분노와 증오를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미샤는 내가 잠잠해지자 한숨을 내쉬었고 손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여름이 아니었다면 벗어줄 재킷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꼴도 보기 싫은 스카프를 다시 주워 그 애의 목과 어깨에 둘러 줘야 했다. 마치 자주색의 죽은 뱀을 둘러주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미샤는 추워서 그런지 스카프를 감아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초점이 흐릿한 검은 눈만이 불안하게 문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감시자들이 들어와 나를 끌어내 체포할까봐 두려운 것 같았다. 그 애가, 나의 미셴카가,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 어떤 권위와 위협 앞에서도 굴복할 줄 모르던 미샤 야스민이 그런 시선으로 문을 바라보다니, 두려움으로 내 입을 막고 몸을 떨다니. 문득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아주 설득력이 있어서 난 거의 넘어갈 뻔 했다. 그 애의 몸에서 발산되는 불처럼 뜨거운 열기와 죽어 넘어진 페트루슈카를 연상시킬 정도로 심한 경련이 아니었다면 분명 난 꿈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쳤을 것이다.

 

 

 나는 한 팔을 미샤의 팔 아래로 넣어 그의 몸을 부드럽게 감아 안았다. 다른 팔을 뻗어 허리에 둘렀다. 그러자 경련이 조금 잦아들었다.

 

 

 “ 어깨에 기대. 그럼 좀 편해질 거야. ”

 

 “ 네 어깨는 작은데. ”

 

 “ 그래도 너 하나쯤은 기대게 해 줄 수 있어. 전에도 그랬잖아. ”

 

 “ 그랬지. ”

 

 

 미샤가 순순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짧은 머리칼이 얇은 셔츠를 파고들며 살갗을 찔렀다. 그 애의 이마와 뺨이 닿은 자리가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웠다.

 

 

 “ 걱정하지 마. 날 체포하지는 않을 테니까. 벨스키가 보냈다고 했잖아. ”

 

 “ 왜 흥분하는 거야? 제일 안전할 줄 알고 네 이름 댔는데. 좀 무서운걸. ”

 

 “ 난 약과야. 지나가 왔으면 더 소리 지르고 화냈을 걸. ”

 

 “ 지나가 그러는 건 무섭지 않아. 걘 조용한 게 무섭지. 넌 반대잖아. 내 앞에서 화낸 적 없었는데. ”

 

 “ 너한테 화내는 게 아냐. ”

 

 “ 음, 나한테 화를 내면 안되지. 그럼 라라에게 이를 거야. ”

 

 “ 지금 농담한 거야? ”

 

 “ 미안, 여전히 재미없어서. ”

 

 

...

 

 


이 소설 1부에 등장하는 심문관들의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4748 : 수용소, 심문자들, 유령들, 인체발화, 다시 세 개의 메모

 

역시 이 소설 3부에서 화자인 스타니슬라프 일린과 미샤가 면회하는 장면은 전에 서너번 토막토막 올린 적이 있다. 아래.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을때, 수용소 면회실에서의 조우 : http://tveye.tistory.com/4521

푸에테와 이반 왕자와 불새 : http://tveye.tistory.com/3613

농담에 약한 주인공, 타협,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 : http://tveye.tistory.com/4468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눈을 돌리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 : http://tveye.tistory.com/4341

 

 

일린과 그의 딸 라라, 미샤의 이야기(부활절 단편) Jewels 전문은 여기


1장 : http://tveye.tistory.com/3390
2장 : http://tveye.tistory.com/3391
3장 : http://tveye.tistory.com/3393 
4장 : http://tveye.tistory.com/3394
5장 : http://tveye.tistory.com/3395

 

 

..

 

 

 

 

 

 

맨 위 사진들과 아래 사진들은 모두 프라하 성 비투스 성당, 아녜슈카 성당, 성 이르지 성당에서 내가 찍은 것들.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2016. 11. 18. 23:32

프라하 골목, 수도원, 거리의 창문들 2016 praha2016. 11. 18. 23:32

 

취미대로. 오늘도 프라하 창문들 시리즈.

 

스트라호프 수도원을 비롯해 흐라드차니, 구시가지 등등의 수도원과 카페, 건물들 창문들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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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17. 22:11

빛과 그림자에 잠긴 프라하 성에서 2016 praha2016. 11. 17. 22:11

 

9월. 프라하 성.

거의 성 이르지 사원 근처에서 찍은 사진들. 빛과 그림자에 잠긴 모습들이 좋아서.

 

 

 

이건 이르지 성당 내부. 차가운 돌로 된 오래된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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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16. 22:06

백조 공주 의상 같아서 2016 praha2016. 11. 16. 22:06

프라하 구시가지. 시청 뒷길 걷다가 발견한 여성복 매장.

꼭 백조공주 의상 같아서 한컷 찍었다.

무대 의상 같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깃털 달린 의상이 조용히 반짝이고 있어 아름다웠다.

 

 

같은 매장의 다른 의상.

:
Posted by liontamer
2016. 11. 16. 01:01

프라하의 석양과 황혼 2016 praha2016. 11. 16. 01:01

 

지난 9월 하순. 프라하. 저녁.

석양 보러 블타바 강변에 갔었다. 해지는 것을 보고 어둑어둑해졌을때 거리와 골목을 따라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찍은 사진 몇장.

 

 

건너편에 조그맣고 하얗게 보이는 녀석들은 백조들.

저 백조들 보러 저쪽 강변의 캄파 쪽에 갔었는데 그건 나중에 따로 백조 스페셜로 올려보겠다.

 

 

 

 

 

 

이상하게 자기 혼자 건너편으로 헤엄쳐왔던 이 백조. 오리들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갔었다. 그때 오리 따라가던 이 녀석에 대한 포스팅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5249

 

 

 

 

 

 

해가 다 져서 컴컴해졌고 나는 카프로바 거리를 따라 숙소 쪽으로 걸어갔다. 가다가 배고파서 kfc에서 징거버거를 사먹었는데 맛있었다.

이 사진과 아래 사진은 폰으로 찍은 것.

 

 

구시가지 광장을 가로질러 갔다. 여기와 카를 교는 항상 관광객들로 붐벼서 평소엔 피하는 곳인데 그래도 가끔 가면 아름답긴 하다. (처음 프라하에 갔을땐 그저 감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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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14. 23:20

꿋꿋하게 빈병과 낙서와 새를 찍는다 2016 praha2016. 11. 14. 23:20

 

어제 제니트 낙서 포스팅(http://tveye.tistory.com/5523) 때도 얘기했지만 료샤는 내가 술병이나 빈병, 낙서 따위를 찍는 것을 볼때마다 쿠사리를 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함께 산책할때도 술병, 빈병, 창문, 낙서와 스티커, 짐승, 문양 따위가 나타나면 나는 꿋꿋하게 사진을 찍었으니..

 

제니트 스티커 발견했던 날, 그 스티커 나타나기 전에 프라하 구시가지 쪽 산책하며 내가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찍은 빈병과 낙서와 새 사진 몇장.

 

 

이건 좀 웃겼다. 생수병에 빨대 꽂혀 있는 거 첨봤음. 이거 버리고 간 사람은 빨대로 물 마셨나봄.

 

 

이건 초록색끼리 함께 있는게 예뻤다.

 

 

스티커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붙어 있는 길목을 지나고 있었다. 열심히 찍고 있는데 료샤가 신호등 바뀌었다면서 내 팔을 낚아채서 몇장은 흔들려서 버렸음 ㅠㅠ

 

 

마지막은 프라하의 꿋꿋한 비둘기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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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13. 22:56

료샤가 유일하게 찍어간 낙서 2016 praha2016. 11. 13. 22:56

 

사진 찍을 때 내 취미 중 하나가 길거리 낙서나 스티커 찍는 건데, 료샤는 매일 이것을 가지고 놀려댔다. 길거리에 널려있는 술병 찍는 것과 낙서 찍는 것이 특히 웃기다는 것이다. 창문이나 동물, 메뉴판도 웃기지만 그래도 그건 좀 이해가 되는데 도대체 낙서와 스티커와 술병은 왜 찍는 것인가, 악취미다 등등...

 

그러나 이런 그의 눈을 빛내게 하고 나한테 '야, 저거 찍어!'도 모자라 스스로 폰을 들이대고 찍은 낙서 스티커 사진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 산책하다가 전봇대에 붙어 있던 스티커 발견. 러시아어로 되어 있어서 가까이 다가갔는데 그때 료샤가 환호했다.

 

료샤 : 그렇지!! 이거야! 이거 찍어!

나 : 제니트...

료샤 : 제니트!! 만세!!!

 

... '우리의 이름은 제니트' 라고 씌어 있다...

제니트는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축구팀이다. 료샤는 페테르부르크 토박이 아니랄까봐 제니트에 껌벅 죽는다.

 

이 사진을 찍은 후...

 

나 : 너 앞으로 내가 낙서랑 스티커 찍는다고 놀리기만 해봐!

료샤 : 야! 이건 낙서도 스티커도 아니야! 이건, 이건 신성한 거야!

나 : 신성!!!!!!!!! 너무한거 아니냐!!!

료샤 : 제니트!!!!!

나 : 그래... 나도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름 스티커 붙어 있었음 그렇게 할게...

료샤 : 타이즈 입은 놈하고 축구하고 같냐!!

나 : 타이즈를 모독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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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12. 23:32

금토끼! 2016 praha2016. 11. 12. 23:32



프라하 산책하다 발견한 금토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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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11. 22:25

너도나도 서로 다른 파랑들, 프라하 2016 praha2016. 11. 11. 22:25

 

오늘은 프라하 골목의 파랑 시리즈 :)

파란색도 빨간색 못지 않게 엄청 많았다~ 그중 일부!!

 

 

 

 

 

 

 

 

 

 

마지막의 이 사진은 구시가지의 KFC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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