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

« 2024/12 »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2024. 10. 21. 03:40

이딸랄라 호지차 2024 riga_vilnius2024. 10. 21. 03:40

 

 

 

점심을 먹은 후 원래는 엘스카에 가서 볕을 쬐며 차를 마실 생각이었다. 사실 이것저것 고려하여 동선을 짜서 오전 카페를 엘스카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필리모 거리 쪽에 있는 공부 카페로 잡았던 것이다. 점심도 공부 카페에서 걸어올라가면 나오는 중식당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점심을 다른 데서 먹었고, 그 점심을 먹고 나자 좀 짜서 그런지 너무너무 달콤한 디저트가 먹고팠다.

 

그리하여 나는 엘스카를 배신했다. 그 이유는 엘스카가 다 좋은데 디저트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무슨 치아푸딩 라이스푸딩 이런것, 그리고 비건 디저트 4종이 전부. 그 비건 디저트 중 땅콩, 망고, 라임크림케익(...이라 하지만 사실 크림 얹은 아주 작은 타르틀렛 같은 것)은 이미 먹어봤고 남은 건 비건 브라우니인데... 흑흑, 나는 맛있는 케익이 먹고팠다. 이런 경우 최고의 케익이 있는 슈가무어가 좋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는 또 내부가 별로 편안하지 않고 주문도 엄청 늦게 받는다. 그래서 환하고 따뜻하면서 디저트도 잘 구비하고 있는 이딸랄라에 가기로 했다. 엘스카보다는 멀었지만 그래도 내리막이라 걸어갈만 했다(점심 먹은 곳이 언덕 위에 있었음) 근데 오늘까지만 맑고 해 난댔는데 흑흑... 

 

오늘 볕이 나니까 이딸랄라는 분명 안에 자리가 있을 것 같았다. 생각대로 자리가 있었는데 그래도 일요일이라 맨 안쪽 창가 자리(전에 내가 잠깐 앉았던 곳)과 문 옆 창가의 그네 자리만 비어 있었다. 그 자리가 빛이 잘 들어서 앉아볼까 했지만 그네에 시험삼아 앉아보자 그네가 약한 느낌이고 너무 흔들려서 포기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자리는 힐끗 보면 좋아보이지만 사실은 좀 응달 쪽이라 손님들이 비워놓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여튼 거기 앉았다가 나중에 입구 근처의 빛 들어오는 쪽 테이블이 나서 또 옮겼다. 

 

 

 

 

야외 테이블들은 이미 이렇게 우글우글! '이게 10월의 마지막 햇볕이래, 아니 그럼 올해의 마지막 광합성 아닐까?' 하며 악착같이 밖에 앉은 빌니우스 사람들의 마음이 막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내가 나중에 옮긴 자리는 저 한 단 위에 있는 책상 같은 테이블 중 하나. 저게 엄청 불편해보이겠지만 사실 앉으면 편하고 책 읽기도 좋다. 실제로 불편한 자리는 저 복도에 놓여 있는 이케아 스타일 테이블들 자리... 

 

 

 

 

 

 

이딸랄라 전에도 두어번 따로 올렸는데 왜 오늘도 따로 올리느냐면, 오늘 내가 주문한 메뉴 때문이다. 

 

감기 기운이 있어 오늘 약을 먹고 나왔기 때문에 카페인이 너무 강한 건 마시고 싶지 않았다. 여기는 홍차도 잎으로 우려주긴 하는데 좀 진한 편이었다. 그런데 메뉴판에 말차와 호지차가 있었다. 라떼 표시는 되어 있지 않았다. 호지차가 있다니 하며 점원에게 '호지차 저거 우유 안 들어가는 스트레이트에요?' 하고 물어보았다. 친절한 남자점원은 '네, 워터 베이스에요. 우유 안 들어가요' 라고 대답하며 혹시 우유 들어가는 걸 달라는 걸까 하는 눈으로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나는 '오, 네, 좋아요. 그 호지차를 주세요' 라고 말했는데... 이 점원이 등록기에 타닥타닥 치는 걸 보니 '호지차 라떼'라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눈이 동그래져서 '엥, 우유 안 들어간다면서 왜 라떼에요?' 라고 묻자 점원이 '아니 뭐 이런것까지 주시하고 있는 거야?' 하고 좀 놀랐는지 본인도 당황하면서 '아니, 우유 안 들어가는 거 맞아요. 이거 기계라서 그래요' 라고 대답함. 보통 사람들은 라떼를 시킬 것 같긴 한데 또 모르지. 

 

하여튼 그래서 좀 기다린 후 나의 호지차가 나왔다. 오, 우유 안 들어갔어. 근데 왜 이렇게 양이 적지? 호지차 커피보다 비쌌는데! 카푸치노 잔에 나왔다. 그리고 호지차는 뜨거운 물에 빨리 우려야 구수하고 맛있는데 이건 분명 라떼를 만들기 위한 호지차 가루! 찻잔 바닥에 가루가 덜 녹아 뭉쳐져 있었다. 그리고 양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구수한 맛보다는 말차처럼 쓴맛이 압도함... 흐앙... 뭐 케익 곁들여 마시기에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분들에게 호지차에 대해 좀 알려드리고 싶구나 ㅎㅎㅎ

 

어쩌면 내 주문이 들어간 후 의연하던 그 남자점원은 카운터 뒤로 가서 선배 점원들과 급하게 얘기를 나눴을지도 몰라. '클났어요, '호이차' 우유 없이 주문하는 토끼가 나타났어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그냥 라떼라고 쓰자고 했잖아요 엉엉... 물만 넣고 어떻게 만들지? 그냥 우유에 넣는 것과 동량으로 가루를 타면 되겠죠? 근데 라떼 아니니까 컵은 라떼 컵 말고 작은 컵에...' 운운... (리투아니아어로 j는 i로 읽으니 호지차도 아마 호이차라고 할 것 같다고 영원한 휴가님이 알려주심. 잡채도 막 얍채, 옙채 그런다고) 이것은 키라스의 랍상소총 마스터 이후의 호이차 스트레이트 토끼 출몰 아닌가 하고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니 너무 우스웠다. (실제로는 뭐 원래 이렇게 만드는 거라 생각하며 만들어줬을 듯. 이 카페도 일본 쪽 영향을 받았는지 킨토 커피잔과 말차 다구도 판매하고 있음)

 

사진이 그 호지차. 흑흑 쓰고 양 적어... 가루 다 안 녹았어... 아무리 생각해도 라떼용 호지차 가루인 것 같음. 그냥 '호지차 라떼 주세요' 할 걸 그랬나 ㅎㅎㅎ

 

그런데 또 함께 시킨 베리 치즈케익이 맛있었다. 여기는 케익 가격이 비싼 게 흠이지만(슈가무어보다 1~2유로 비쌈) 맛있긴 하다. 맨첨 시켰던 미니 초코슈가 너무 작아서 빈정상했지만. 심지어 치즈케익 달라고 했더니 바스크냐 베리냐 물어본다. 여기도 바스크 치즈케익이 유행하나? 치즈케익이 예상외로 은근히 맛있었는데 호지차가 너무 적어서 케익 한 조각을 다 먹을 수 없었다 엉엉...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아쉬운 호지차. 근데 호지차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해서 시켰던 거라서 이 정도면 만족하자. 

 

 

 

 

 

호지차 구경 중인 쿠야. 이때는 아직 안쪽 창가 자리. 

 

 

 

 

 

진열장 안의 케익은 멀쩡했는데 갖다줄 때 보니 또 시럽같은 걸 왕창 뿌려놨길래 '어휴 여기도 러시아랑 비슷하구나... 저건 왜 뿌려서 케익 본연의 맛을 해치나' 했는데 저 딸기 소스가 또 맛있었다. 생각해보니 재작년에 필리에스 케피클렐레에서 딸기 블린 시켰을 때 딸기쭈쭈바 색깔 소스 부어줘서 그때도 '어휴 이거 왜 부어줘' 했는데 그게 맛있었음. 같은 소스인가? 하여튼 러시아 생각이 나며 좀 그리웠다. 거기도 케익 시키면 막 저렇게 뭔가 그렇게 예쁘진 않은 장식을 해서 가져다 줌.

 

 

 

 

 

간만에 맛있어보이는 디저트를 앞에 둔 쿠야. 

 

 

 

 

그러다 자리가 나서 옮김. 역광 때문에 이 구도는 좀 어둡게 나왔다만. 이 자리가 보기와는 달리 아까 그 창가 자리보다 더 좋다. 책 읽기도 편하다. 

 

 

 

 

 

이딸랄라 구경 중인 쿠야.

 

 

 

 

 

여기서 책을 여러 페이지 읽었다. 단어를 조금 찾아가면서... 근데 이때쯤 볕이 들어오고 감기 기운에 피곤했는지 너무 졸려서 의자에 기대어 하염없이 졸고 싶었다. 졸지는 않고 책을 더 읽고... 좀더 앉아 있고 싶었지만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고 이때는 엘스카에도 추가로 갈 마음이 있었기에 한시간 반쯤 있다가 일어섰다. 

 

이딸랄라는 처음 왔을 땐 사람도 너무 많고 자리도 저 중간의 복도쪽 자리였던데다 뭔가 여러가지 스타일이 뒤섞여 있고 점원들도 너무 바빠보이고 디저트도 작은데 비싸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볕이 잘 들어서 야외에 앉기가 좋고 또 자리가 날 때면 의외로 괜찮아서 점점 이미지 만회되어 지금은 볕이 좋으면 엘스카랑 이딸랄라!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근데 이제 날씨 안좋아지면 이 내부도 맨첨 왔을 때처럼 또 정신없어지려나 흐흑...

 

:
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