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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우리 아파트 창 밖 풍경.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시차 때문에 간밤 9시 반쯤 잠들어서 새벽 2시 좀 안되어 깼다가 다시 잤다가 또 깨기를 반복. 6시 즈음 일어났는데 뒷머리가 너무 아프고 무거웠다. 어제 맥주의 여파도 있었던 듯. 그리고 꿈도 너무 송신했다.

 

오늘은 낮부터 비가 오기 시작, 지금도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원래 오늘 비엔나에 가려고 했었는데 폰 때문에 취소했고, 그래서 내일 드레스덴행 버스 티켓을 예매했는데 내일도 비오고 천둥번개친다고 해서 다시 취소함. 으앙... 그런데 오늘은 내 폰이 어제보단 상태가 나아서 중간중간 켜서 사용을 하고 있음. 이럴줄 알았음 비엔나 가는 건데... 하긴 비엔나도 일기예보로는 내일 비가 온다고는 했었다.

 

7시 반쯤 엄마랑 조식을 먹으러 갔다. 엄마는 커피를 아주 연하게 드시기 때문에 카페라테를 한잔 받아와서 거기에 뜨거운 물을 절반 이상 부어서 드시도록 했다. 방에 돌아와서는 오늘 어디 갈지 궁리를 했다. 어제 이곳저곳 관광지들을 많이 다녔으나 엄마가 별로 감흥이 없는 것 같아서 걱정이 많이 되었고 약간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엄마가 친한 친구분과 아버지를 위해 벨트와 지갑 등속을 사고 싶어하셨고 여기 그런 게 딱히 멋진 게 있을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하벨 시장과 바츨라프 광장의 신시가지 쇼핑몰들에 가보자고 했다. 거기 갔다가 유대인 지구에 가기로 했다.

 

우리 숙소에서 하벨 시장에 가려면 구시가지 광장 쪽을 통과해야 한다. 어제는 카를교에서 카를로바 거리, 그리고 구시가지 광장으로 나왔고 틴광장을 지나서 리브나와 들로우하 쪽 동선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오늘은 첼레트나 거리를 통해서 엄마를 모시고 갔다. 첼레트나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저기 구경을 했다. 이쪽 길에서 하벨 시장은 오랜만에 가는데다 나는 사실 하벨 시장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혼자 오면 들르지 않기 때문에 길이 좀 헷갈려서 두어번 다른 길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폰이 다시 나가버릴까봐 걱정이 되어서 사용을 제대로 못하니 참 어렵다. 근데 예전엔 구글맵 사용할줄 몰라서 그냥 막 돌아다니며 찾아다녔는데... 역시 기술의 노예가 되었다.

 

엄마에게 하벨 시장은 엄마 생각같은 곳이 아니고 엄청 작아서 실망할수 있어요라고 미리 말씀드렸다. 엄마도 하벨 시장을 본 순간 웃어버리셨다. 좌판이 별로 없고 엄청 작기 때문이다. 한바퀴 돌며 구경은 했지만 물론 건진 것은 없었다. 그래서 곧장 바츨라프 광장으로 갔다. 쇼핑몰 몇 군데 들렀지만 딱히 괜찮은 것이 없었고 그때 나는 갑자기 너무 다리가 아프고 몸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바로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찻집이 있는데 잠깐만 앉았다 가면 좋겠는데 엄마가 차를 드시지 않으니 별로면 가지 말자고 했다. 엄마는 녹차를 마시겠다고 하셔서 들어갔다.

 

도브라 차요브나에서 나는 네팔 일람을 마시고(확실히 내가 우린 것보다 잘 우려줌) 엄마에겐 겐마이차를 시켜드림. 그리고 둘이니까 할바와 바클라바를 시켰는데 엄마 입맛에는 맞지 않아서 결국 그 아까운 것들을 좀 남김. 여기서 엄마와 이런저런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이 힘든 이야기, 예전에 마음이 힘들었던 때, 지금 회사에서 힘들게 하는 것들, 그리고 앞날에 대한 이야기 등등. 엄마도 집안 이야기를 하셨다. 얘기하다가 약간 눈물이 나왔는데 예전에 겪었던 회사에서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서였다. 하여튼 이야기를 나누고 차도 잘 마시고 나왔다.

 

그리고는 바로 근처의 막스 앤 스펜서 매장에 갔다가 엄마 마음에 쏙 드는 화려하고 예쁜 실크 혼방 블라우스를 발견했다. 약간 형광기 있는 핑크와 오렌지 나염이 섞였는데 엄마는 나보다도 피부가 더 하얗기 때문에 정말 잘 어울렸다(동양인에게 어울리기 쉽지 않은 화려한 색상) 그 매대 쪽 옷들은 브랜드가 달랐고 가격대가 꽤 있었다. 엄마가 가격이 좀 있는 건 금방 포기하고 거들떠도 안보시는데 그 블라우스는 무척 마음에 들어하셨고 내가 가격을 읽어드렸는데도 계속 보고 계셨다. 매대에는 사이즈가 큰 것만 한 장 남아 있었는데 마네킹에 입혀놓은 것이 딱 엄마 사이즈처럼 보인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점원에게 가서 블라우스 사이즈를 요청했고 마지막 남은 그 마네킹에 입힌 옷을 벗겨서 엄마가 시착할 수 있도록 해드렸다. 피팅룸에서 입어보니 정말 엄마에게 맞춤으로 잘 어울렸고 사이즈도 딱이었다. 엄마는 비싸서 좀 고민을 하셨지만 돌아가면 자꾸 생각날 거다, 자잘한거 여럿 사지 말고 이거 하나 사라고 내가 권해드렸고 엄마도 옷이 정말 맘에 드셨는지 결제를 하셨다. 내가 사드릴까 했지만 이미 현지 여행비용을 내가 다 치르고 있으니 옷은 엄마가 사겠다고 하셨다. 거기에 왕관 그림의 귀여운 티셔츠도 하나 사셨다.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엄마는 비엔나 슈니첼을 너무 궁금해하셨다. 그래서 볼트를 잡아서 카페 사보이에 가려 했는데 이 망할 볼트가 자기 편한 곳에 차를 세워서 결국 그 차를 찾지 못해 취소되었고 우리는 그냥 지하철과 트램을 타고 거기 갔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았고 미리 예약을 하지 않은 탓에 자리가 나지 않아 실패. 이때 비가 많이 와서 옆에 있는 콜코브나 올림피아에 갔다. 여기도 펍이라서 음식은 간이 세다. 나는 예전에 료샤랑 여기서 맥주와 굴라쉬, 브람보락(감자전), 버거를 먹어본 적이 있었다. 슈니첼은 없었다. 엄마에게는 연어와 야채구이를 주문해드리고 나는 레모네이드와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주문했다. 후자는, 연어가 비쌌고 나는 도브라 차요브나에서 할바, 바클라바를 먹어서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제일 간단한 걸 시킨건데 여기에는 베이컨과 치즈가 들어가 있었고 너무 짜고 느끼했다. 흑흑 알리오 올리오에 왜 이런 것을 넣는 것인가. 체코식인가... 연어도 엄청 짰다. 엄마는 여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짜게 먹느냐고 혀를 내두르셨고 그래도 여기선 맛집이에요라는 말에 슬퍼하셨다. 어쨌든 거기서 식사를 마친 후 트램 15번을 타고 집 근처에 내려서 들어왔다. 내 작은 우산 하나만 가지고 간데다 비가 많이 와서 유대인 지구는 실패, 집에 들어오니 4시가 좀 안되어 있었다.

 

비가 계속 내렸지만 이렇게 하루를 마치는 것은 너무 아쉬워서 좀 쉬다가 엄마에게 첫날 실패한 수퍼마켓 장보기를 하자고 꼬셔서 나메스티 레푸블리키 광장 안쪽의 빌라 수퍼에 갔다. 팔라디움의 알베르트는 첫날 매대에 물건이 없어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쪽 빌라에는 싱싱한 야채들이 많았고 엄마는 상추와 파프리카에 기분이 좋아지셨다. 상추, 파프리카, 내가 좋아하는 서양자두, 엄마를 위한 우유 등을 샀다. 그리고 후문으로 나왔더니 내가 여행서에서만 보고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한국식료품점이 나타나서 그곳 구경도 했다. 엄마는 양조간장과 보석바를 보고 좋아하셨다. 막상 살 건 없다면서도 그저 한국 식품을 보기만 해도 좋다고 하심. 거기서 엄마를 위해 나무젓가락 득템. (젓가락 안가져오셔서 불편해하셨음)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 엄마랑 같이 귀가했다.

 
 
 
 

 

 

내가 씻는 동안 엄마는 상추와 파프리카를 씻어두었다. 나는 햇반을 전자렌지에 돌렸고 엄마를 위해 조금 싸온 고추장도 곁들였다. 엄마는 내가 가져온 고추장이 너무 적다면서 쥐 씨알만큼 가져와서 누구 코에 붙이냐, 소꿉장난이냐고 하셨다. 나는 된장찌개 한번 끓일 정도로만 담은 건데... 엄마가 상추에 고추장을 잔뜩 찍어 드시는 것에 아 더 가져왔어야 했구나하고 깜짝 놀람. 파프리카가 매우 싱싱하고 달아서 엄마는 좋아하셨다. 늦은 점심인 콜코브나의 연어와 파스타가 너무 짰던 터라 엄마는 밥과 상추를 무척 좋아하셨다. 그래서 기념으로 저녁 밥상 사진 찍어둠. 여행 와서 이렇게 차려먹는 건 처음. 햇반 싸온 것도 밑반찬도 처음이다. 볶음김치, 멸치, 진미채는 엄마가 만들어오셨다.

 

밥먹은 후 쉬면서 내일 드레스덴에 갈지 말지 의논을 했고 비오고 천둥번개 친다는 예보에 일단 미루기로 했다. 내일도 비가 오면 박물관과 유대인 지구의 회당들에 가기로 했다. 엄마는 미술관보단 차라리 박물관이 낫다고 하심. 성당이나 시민회관, 극장 등에서 하는 연주회에 가는 건 어떠냐고 했지만 엄마는 클래식은 별로라고 하셨다. 내일 비가 안 오면 강변 산책을 하고 캄파에 가면 좋겠는데... 제발 비가 그치기를... 그런데 지금도 비가 주룩주룩 점점 더 많이 오고 있어서 기대가 되지 않는다. 수요일도 비온다는데 흐흑... 그래 도착한 날과 어제 날씨가 너무 좋았어. 그래도 어제 프라하 성과 카를 교, 천문시계 등 봐서 다행임. 하루에 다 주파한 게 차라리 다행인가보다.

 

엄마가 예쁜 블라우스를 득템하셔서 나도 기분이 좋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나은 마음으로 나도 좀있다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부디 내일 비가 빨리 그치게 해주세요.

 

.. 폰을 중간에 켰더니 업무카톡방에 수십개의 다급한 톡들이 올라와있었고 윗분이 고군분투하고 계셨다. 흑흑, 모른척하기로... 회사 메일 접속을 해보니 보안범위 제외 국가라고 접속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해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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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