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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9시 조금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시차 때문에 새벽 1시 반에 깨었고 다시 잠들었다가 2시 반에 다시 깼다. 배도 너무 아팠다. 한시간쯤 못자고 괴로워하다 약을 반 알 더 먹고 다시 잠들어 6시 좀 넘어서 깼다. 아파트가 나쁘지는 않고 침실도 두 개인데, 도로변에 있는데다 중심가라 새벽까지 바깥에서 남자애들이 소리를 질러대며 시끄러웠고 트램 지나가는 소리, 차바퀴 소리 등 소음 때문에 더욱 잠에서 자주 깨게 되었다. 흑흑 엄마 때문에 아파트 빌린 건데. 하여튼 새벽부터는 귀마개까지 하고 잤지만 소음을 크게 막지는 못했다.

 

일어나니 너무 배가 고팠다. 세수만 하고 엄마와 함께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갔다. 호텔에서 운영하는 아파트라서 그 호텔에서 조식을 먹을 수 있다. 조식은 나쁘지 않았다. 엄마는 완전히 한식 입맛이라 걱정을 했지만 나보다 더 많이 드셨다. 배가 많이 고프셨기 때문이기도 했다만. 하지만 전반적으로 엄마는 이곳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셔서 저녁엔 집에서 싸오신 반찬과 누룽지를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내 폰은 아예 디스플레이가 되지 않았다. 아이패드로 열심히 프라하의 아이폰 수리 매장 검색을 해서 사설매장 두어군데를 찾아냈으나 리뷰가 너무 안좋아서 잘못했다가는 데이터 다 날릴까 두려워 그냥 꺼두고 집에 돌아가서 고치기로 했다. 조식 먹으러 가는 길에 폰 얘기를 했다. 엄마가 너무 걱정을 하셨기 때문이다. 나도 걱정이 되었지만 좀 자고 나니 불안감은 조금 가셨다. 엄마 폰 로밍부터 하고 아빠와 동생에게도 전화를 해두었다. 그리고 엄마 폰으로 연락이 되니 괜찮고 아이패드도 있으며 이 동네는 내가 대충 아니까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드렸다. 업무연락이 안되면 회사 때문에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셔서 뭐 내가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니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아예 여행 동안 일 연락 받지 말라고 폰 떨어뜨리게 하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나중에 윗분께 카톡으로 내 폰 고장났으니 급한 건 매일 밤 메일 한번씩 확인하겠다고 말씀드림)

 

방에 돌아와 엄마와 상의 끝에 비엔나 여행은 취소했다. 폰이 되지 않아서 엄마가 불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냥 가볼까 했다만. 그래서 버스는 취소했고 호텔 하룻밤은 기한 만료로 환불 불가라 그냥 날리게 되었다. 그리고는 꺼놓은 내 폰과 비상용 아이패드, 엄마 폰을 가지고 방을 나왔다. 어제도 오늘도 하늘이 새파랗고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좋았다. 그래서 날씨 좋을 때 미리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프라하 성에 가기로 했다.

 

자세히 적으려 했지만 어제 메모부터 쓰다 보니 갑자기 급 피곤해져서, 오늘 엄마와 나의 일정만 간단히 정리하면

 

숙소-나메스티 레푸블리키 지하철역 - 나로드니 트르지다-23번 트램 - 프라하성(성 이르지 성당, 황금소로, 비투스 성당 등) - 프라하성 스타벅스(전망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정말정말 맛없고 싱거운 망고 용과 아이스음료를 마심. 전망값이라 생각하며) - 네루도바 거리(중간에 트르델닉 한 개 사먹음-전에 쥬인과 같이 사먹었던 곳으로 기억됨) - 카를 교 - 카를로바 골목 - 구시가지 광장과 천문시계 - 틴광장 - 숙소 근처 Local (맥주 반잔씩) - 귀가

 

이게 사실 프라하에 하루나 이틀만 머무를 때 서둘러서 돌아보는 루트인데... 엄마는 성격이 급하시고 나처럼 골목골목 천천히 쏘다니다 카페에 앉아 쉬다가 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반나절만에 저곳을 모두 다 돌았다. 이틀로 쪼개서 볼 생각이었는데... 남은 날들이 좀 걱정이다. 엄마는 성당도 아름다운 건물도 잠깐 예쁘다고는 하셨지만 그렇게 흥미로워하지 않으셨다. 아름다운 풍경도 잠깐 보시고는 지나치셨다. 나는 엄마가 어떤 것들을 좋아하시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좀 걱정이 되었다. 남은 일정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카페도 음식도 딱히 당기지 않아 하시고. 크리스탈 가게에서 맘에 들어하신 그리 비싸지 않은 귀걸이가 있어서 그거 사드리려 했으나 비싸다고 안 하겠다고 하셨다. 스와로브스키보다 훨씬 저렴했는데... 보타니쿠스에도 갔지만 엄마는 딱히 끌려하지 않으셨다.

 

프라하 맥주가 유명하다고 동생네도 강조했고 나도 그렇게 말씀드렸다. 엄마와 나는 음주를 즐기지 않는데 그래도 엄마는 갈증나면 맥주 생각을 하신다고 하여 한잔 마셔보자 하셔서 숙소 근처의 로컬에 갔다. 이곳은 유명한 펍이다. 그런데 여기는 하필 필스너 우르켈이 메인인 곳이었고, 제대로 된 필스너는 쌉쌀하고 쓰고 좀 독한 맛이라, 엄마 입에는 너무 강해서 맞지 않아 반쯤 남기셨다. 나는 코젤 흑맥주를 시켰는데 이것은 무척 맛있었지만 엄마는 그것도 맛이 없고 쓰다고 하셨다. 애꿎은 나만 안 마시려던 맥주를 0.2정도나 마셨다. (0.3짜리 각 한 잔 시켰음)

 

4시 즈음 방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피곤하니 일찍 쉬자고 하셨다. 씻고서 엄마는 누룽지를 끓이고 직접 만들어 가져오신 멸치볶음, 진미채, 볶음김치를 곁들여 5시쯤 이른 저녁을 먹었다. 나는 일부러 주방이 있는 아파트를 골랐으므로 수퍼에서 이것저것 사서 뭔가 해드릴 생각이었는데. 뭐 남은 날들이 있으니까.

 

쉬면서 소파에 앉아 여행서를 함께 보면서 엄마와 어디 가고 싶은지 얘기를 좀 나눴고... 엄마는 호주가 좋았다, 모래사막에서 4륜구동도 타고 바다도 가고 볼게 많았다고 하셨다. 강에서 보트타자고 했는데 마차가 더 낫다고 하셔서 그럼 마차를 타자고 했으나, 그 마차가 구시가지 한바퀴 도는 정도라는 사실에 실망하시고는 돈 주고 그정도만 다니면 별로라고, 마차를 타고 초원이나 숲을 다니는 쪽이 더 좋다고 하셨다. 엄마는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뭔가 웅장한 것을 좋아하신다. 나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유럽 쪽이 지루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나다를까였다. 엄마에게 그래도 여기 와보셨으니 유럽 쪽보단 호주나 다른 쪽이 더 내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자나요, 한번쯤은 와볼만한 거지요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도 뭐 한번쯤은이라고는 하셨다만. 어쨌든 그리 만족해하진 않으셔서 나는 남은 날들 동안 어떻게 좀 더 재미있게 모시고 다닐지 심히 고민이 된다. 유럽은 자연경관이 특출나게 아름다운 곳들을 빼면 궁전, 성당, 건축, 미술관과 박물관, 카페, 골목들, 새로운 음식들, 소소한 구경들이 대부분인데... 비엔나를 취소해서 대신 화요일쯤 드레스덴에 갈거 같은데 사실은 그 동네도 여기보다 더 소소한 곳이라... 체스키 크룸로프에도 하루 가려는데 거기도 맘에 안 들어하시면...

 

엄마는 입에 발린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별로다, 안 좋다 하는 네거티브한 화법을 쓰시는 편이라 여행 모시고 다니는 입장에서는 기운이 난다기보다는 사실 걱정이 됨. 오늘 다녀보니 고풍스러운 특색이 있고 조용조용한 곳인 것 같다고 하셨지만 좋다는 말씀은 없음. 텔레비전도 이 아파트는 넷플릭스가 나오는 곳인데, 문제는 셋팅이 모두 독일어로 되어있고 매뉴얼이 없고... 나는 넷플릭스를 본적도 없어서 결국은 텔레비전 작동도 어제 오늘 모두 실패함. 흑흑 나는 엄마를 모시고 그냥 패키지 여행을 갔어야 했나봐. 그래도 기운을 내서... 내일은 엄마가 궁금해하시는 하벨 시장에 가고 신시가지 쪽을 가려고 한다. 하벨 시장 엄청 쪼끄만데 분명 실망하시겠지. 토요일에만 여는 벼룩시장이나 농산물시장에 모시고 가야겠다.

 

나는 오늘 내내 그날 때문에 아파서 진통제로 버티고 있음. 폰이 안돼서 엄마 폰 로밍에 약간 의지하고는 있다만 별 도움이 안된다. 나는 정말 스마트폰의 노예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중간중간 켜보니 아침처럼 전체를 뒤덮는 줄무늬는 나타나지 않고 어느정도 구동은 되고 있는데, 금방 다 날아갈까봐 무서워서 곧 꺼버리고 있다. 사진은, 내가 혹시나 해서 챙긴 십여년도 훨씬 넘은 니콘쿨픽스 디카로 찍은 로컬 펍의 그 맥주. 그러니까 폰이 이 모양이니 사진도 거의 못 찍음. 흑흑, 부디 내일은 엄마가 좀더 재미있게 다닐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폰이 더는 이상해지지 않게 해주세요... 너무 피곤하니 오늘도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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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