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

« 2024/5 »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오늘은 엄마와 드레스덴에 다녀왔다. 정작 드레스덴 자체는 아주 평온하고 별거 없이 지나갔으나 오가는 길에 생각지 않은 고생을 했고 예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아무리 버스 2시간 거리, 왕복 4시간이지만 ‘외국’은 외국이라, 다녀오자 매우매우 피곤하다. 엄마도 버스 타니 너무 피곤하다고 하시며 금욜쯤 3시간 거리의 체스키 크룸로프에 가자는 나의 제안에 그냥 버스 안 타고 프라하에서만 살살 다니자고 하신다. 나야 프라하에만 있으면 좋긴 하다만.
 
오늘은 드레스덴 자체는 정말 별거 아니었지만 엄마와의 여행이 좀더 돈독해진 날 같다고 나 혼자 생각했다.
 
새벽에 깼다가 다시 잠들어 5시 약간 안되어 깼다. 역시 수면 부족 상태로 7시에 집을 나서서 호텔에 들러 조식을 먹음. 나메스티 레푸블리키에서 플로렌스 버스터미널역까지는 지하철 한정거장이고 여러번 가본 곳이라 나름대로 시간 계산을 했다. 8시에만 지하철을 타도 아주 시간이 남으므로 터미널 매점에서 물과 껌, 과자를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변수 : 플로렌스 지하철역과 버스 터미널 근방에 엄청 공사를 많이 하고 있었다! 내가 플로렌스에서 마지막으로 버스 탔던 게 17년에 역시 드레스덴 갈 때였는데... 지하철역 출입구가 하나 빼고 모조리 막힘! 내가 항상 이용하던 터미널로 곧장 통하는 출입구도 막힘! 그런데 구글맵엔 업뎃이 안되어 있어서 그 출입구만 나오고...
 
막상 역에 내려서 나와보니 생전 처음 보는 쪽 거리였다. 오랜만에 와서 내 기억이 흐려진 건가 하고 아무리 옆으로 앞으로 가봐도 모르는 거리. 하필 이때 내 폰은 데이터가 먹통이 됨. 엄마를 잘 안내해야 하는데... 엄마와 함께 헤매다가 지나가는 친절한 여인 2명에게 차례로 물어봐서 길을 돌고 돌아 터미널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수가 없었다(이때는 공사하는지도 몰랐음) 이미 이때는 출발 5분 전! 버스 놓칠까봐 너무 걱정이 되었다. 아아아악 엄마 모시고 이게 뭐야! 그때 어쩐지 터미널에서 일하는 느낌의 아저씨 한분이 버스들 사이로 걸어오고 계셔서 얼른 가서 내 모바일 티켓을 보여주면서 24번 플랫폼 어디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영어를 못해서 체코어로 말씀하셨는데 궁하면 통하는지 내가 그 말을 다 알아들음! 사실 노어랑 좀 비슷했다. 즉, 여기 아니야, 여기 주차장이야. 위쪽으로 가야 돼. 어딘지 보여줘. 아, 베를린 가나? (베를린까지 가는 버스 중간에서 내리는 거니까 맞음) 내가 데려다줄게.
 
으앙 천사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아저씨를 졸졸 따라갔다. 알고보니 그 아저씨는 우리가 타고 갈 버스 기사셨다! 마지막의 ‘내가 데려다줄게’는 버스까지 데려다줄게가 아니라 ‘베를린까지 데려다줄게’ 였다!!!!
 
하여튼 이렇게 하여 고생고생했지만 착한 사람들을 만나서 우리는 출발 직전 버스에 기사와 함께 탑승. 드레스덴으로 출발했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엄마는 길 찾아서 다 잘됐다고 하셨음. 지나고 나면 이런 기억이 재밌게 남긴 한다만 흐흑.
 
8시 반 플로렌스 버스터미널 출발 – 10:25 드레스덴 중앙역 정시 도착
 
드레스덴엔 6년 전 이맘때 영원한 휴가님 만나러 왔었는데 머릿속에서 시내 가는 방향이 싹 지워짐. 역을 통과해서 나가야 하는데 한동안 방심상태가 됐다가 일단 역을 따라 나간 후에야 기억이 났다. 비엔나 플라츠를 지나 프라거 거리로 나가는 거였다. 그러면 그 거리 따라 쭉 올라가면 성당이니 궁전이니 광장이니 엘베 강이니 줄줄이 나온다.
 
프라거 거리 진입. 6년 전엔 일요일이라 모두 문을 닫았던 쇼핑몰들이 다 영업을 하고 있었다. 엄마와 dm(영원한 휴가님과 만났던 이정표)에 들어가서 엄마가 잊고 온 빗을 하나 샀다. 엄마의 1차 득템.
 
엄마의 쇼크 : 독일은 화장실에서 돈을 받는구나! 나쁜 놈들!
프라하도 유료화장실이 많지만 여태 내가 어찌어찌 집, 호텔, 식당이나 카페 등 유료가 아닌 쪽만 잘 모시고 다녔음. 엄마는 여태 유료화장실이란 걸 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충격이었다. 쇼핑몰 화장실을 간신히 찾아내 0.7유로씩 내고 들어가자 엄마가 얼마냐고 물어보셔서 980원 정도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어이없어하셨고... 이후 돌아갈 때 중앙역 화장실은 인당 1유로로 더 비싸다는 사실에 또다시 쇼크받으심. 그래서 엄마에게는 독일넘들...이 되어버림. 다른 나라도 많이 이렇다고 하자 역시 우리나라가 제일이라고 하심.
 
보너스) 나의 쇼크 : 우와 이비스마저 배신을...
(6년 전 왔을 때 이 거리의 이비스에 들어가서 화장실에 갔었는데 이번에는 이비스 출입문부터 시작해 화장실까지 모두 키카드를 대지 않으면 안 열리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옛 기억을 되살려 호기있게 엄마를 인도하려던 내 계획은 물거품. 흑흑 다 나처럼 생각했나봐)
 
관광지 진입. 사원들과 광장, 군주의 행렬, 브륄의 테라스, 엘베 강.
 
프라하 첫날에도 그랬지만 오늘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엄마는 유적이나 관광지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으셨다. 성당이나 궁전 앞에서 사진만 찍으면 되고 굳이 안에 들어갈 마음은 들지 않으시는 타입이셨다. 그것보다는 쇼핑몰이나 가게에서 이것저것 구경하시는 걸 더 좋아하셨고 분수나 랜드마크 앞에서 사진찍는 것 정도였다. 그래서 사원 안에도 안 들어가고, 그나마도 다 가지도 않았고 츠빙거 궁전에도 가지 않았다. 성당 하나 들어가보자고 했더니 성에서 갔는데 뭘 또 가냐고 하셨다(첫날 프라하 성의 비투스 성당 얘기) 광장과 사원 쪽은 주마간산 훑었고 슐로스 광장 근방의 식당, 카페 골목으로 갔다. 오늘 보니 영원한 휴가님과 갔던 방향이 그쪽이었던 것 같다(그때도 암것도 모르고 와서 밥먹을 데가 안보인다고 헤매다가 성당 옆으로 빠지니 식당들이 나타나서 아무데나 가서 먹었었는데 그 아무데나가 먹자거리였음)
 
엄마는 양식이 모두 입에 맞지 않으셨고 프라거 거리 초입에 있던 스시집에나 가자고 하셔서 그러려던 중, 다리 아파서 쉬던 레스토랑 골목에서 태국식당을 발견해 거기 갔다. 엄마와 처음으로 노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다. 슬프게도 음식은 정말 맛이 별로였다. 쏨땀 샐러드, 엄마를 위해 새우 팟타이, 나는 두부 커리 볶음밥에 무알콜 레몬칵테일을 시켰는데 쏨땀은 밍밍했고 팟타이는 엄청나게 짰다. 내 볶음밥은 그저 그랬다. 엄마는 갈증에 시달렸고 내가 중앙역 매점에서 사다드린 파워에이드를 마시고서야 목마름이 가신다고 하심.
 
엄마의 득템 2) 관광지는 더 안보시겠다고 하여 다시 프라거 거리를 따라 올라오며 가게 구경을 하다가 어느 액세서리 가게에서 엄마와 나는 각각 취향 저격하는 스카프를 발견했다. 엄마는 금실로 짠 베이지색의 화려한 스카프, 나는 다홍과 분홍 꽃무늬의 마리메꼬풍 스카프였다. 가격도 저렴했다. 중국제도 아니었다. 독일 비싸다더니 스카프는 괜찮다며 엄마가 매우 좋아하심
 
엄마의 득템 3) dm이 예전에 갔던 곳들보다 컸으므로 혹시 건질게 있나 해서 내가 다시 들어갔다. 정작 나는 건진 게 없는데 엄마가 로레알에서 나온 뭔가 새로운 리프팅 마스카라를 발견하여 이것을 사고 좋아하심.
 
그리하여 엄마의 드레스덴은 빗, 스카프, 마스카라 득템 장소가 되었다 :) 드레스덴 도자기고 뭐고... 중간에 쇼콜라텐인가 이름이 가물거리는 유명한 초콜릿 가게에도 들렀으나 초콜릿 사는 대신 엄마는 바닐라아이스크림, 나는 다크초코 아이스크림 바를 먹은 것으로 끝.
 
dm에 있을 때 레지오젯에서 문자가 왔다. 버스가 25분 연착된다고 했다. 이미 예전에 영원한 휴가님과 만났을 때 50분 연착이 되었으므로 그러려니 했지만 엄마는 또다시 ‘독일넘들’에 대한 불신이... 베를린에서 오는 버스라 연착되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중앙역 내부 벤치에 엄마를 앉혀드린 후 갈증해소용 파워에이드와 물을 사고 화장실의 위치와 가격을 파악한 후 엄마를 그리로 모시고 갔고 이후 정류장에 가서 기다렸다.
 
여기서 다시 생각지 않은 짧은 위기.
 
1~2번 정류장이 외국 가는 버스가 서는 곳인데, 2번에 하얀 버스가 왔다. 우리가 타던 버스는 노란 더듬이 버스였는데 그건 흰색이었지만 앞에 프라하 딱지가 붙어 있었다. 긴가민가 하며 내가 엄마와 그리로 타러 가는데 내 옆의 아저씨가 ‘그거 다른 회사 버스야, 아니야’ 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안 그래도 생긴 게 달라서 혼란스럽던 차에 ‘아 그런가?’ 하고 놀란 나는 엄마에게 잠깐 그 자리 계시라고 한 후 급하게 버스로 달려가서 기사에게 내 티켓을 보여주며 확인을 했다. 맞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를 찾았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버스는 떠나기 직전. 너무 걱정되어 엄마를 크게 불렀다. 엄마는 1번 플랫폼의 의자에 앉아계셨다(그 버스 아니라 하니까 자리에라도 앉아서 기다리시려고) 서둘러서 엄마를 모시고 간신히 버스에 올랐다. 헉헉 잘 모르는 분의 친절에 버스 놓칠 뻔. 그리고 우리 자리에 다른 남자가 앉아 있어 순간 ‘아니 정말 이 버스가 아닌 건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으나 그 사람이 잘못 앉은 것이 판명되어 그제야 자리에 앉아서 한숨 돌림.
 
버스에서는 좀 졸면서 왔다. 드레스덴에선 다행히 비가 안왔고 중간엔 하늘이 맑았으나 우리가 버스를 타기 직전 굵은 빗방울 몇 개를 맞았고 날씨예보에서 ‘천둥번개 침’ 하고 경보가 왔다. 독일 국경 넘고서도 조금 더 비가 오다가 프라하 진입하자 날이 개었다.
 
내려서 또다른 위기)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침에 내가 원래의 지하철 출입구를 못 찾아서 고생한 거라 생각했다. 터미널 역사 내부 쪽에도 메트로 표시가 있었다. 전에 타던 그 방향이라 엄마 모시고 그리로 갔는데 커다랗게 X가 쳐져 있고 공사 중이니 다른 방향으로 가라고 한다. 역시 그랬던 거였어... 그런데 나는 원래부터 구글맵을 봐도 방향을 잘 못 찾는 인간인데다 동네가 생소했고(올때마다 지하철-터미널만 반복했던 곳), 그나마 찾아낸 지하철역 출입구들은 모두 엑스자로 막혀 있었다!!! 한군데 빼고 다 막혀 있었던 것이다!!! 한참 헤맸고 처음에 어디로 나와서 왔는지 나도 엄마도 헷갈렸다. 결국 친절한 여인에게 물어봐서 찾아냈다. 어쩌면 이렇게 모든 출입구를 다 막아놓을 수가... 그래서 엄청 고생해서 지하철을 탐. 이럴 줄 알았음 그냥 걸어갈걸. 플로렌스에서 나메스티 레푸블리키까지 한 정거장이고 맨첨엔 걸어간 적도 있는데 그 길이 우중충해서 싫었던 기억에...
 
마지막 위기)
 
엄마는 프라하 지하철역에서 너무 길고 높고 빠른 에스컬레이터에 놀라셨다. 엄마도 나도 고소공포증이 좀 있다. 그래도 나는 러시아에서 단련된터라 높고 빠른 에스컬레이터는 괜찮은데, 엄마는 내 생각보다도 그걸 더 무서워하셨다. 특히 내려가는 것을 무서워하셨다. 첫날부터 매일 지하철 한두번은 탔는데... 엄마가 무섭다 하셔서 내 뒤에 꼭 붙어있으라 했고 그렇게 해왔지만, 항상 엄마가 내 뒤에 곧장 타지 못하고 몇칸 떨어져 계셨다. 알고보니 너무 무서워서 계단에 발을 빨리 올리지 못하신 거였다... 오늘 나메스티 레푸블리키에서 올라올 때 엄마가 머뭇거리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난간을 쥔 두 손과 어깨, 팔, 그리고 다리가 풀릴까봐 다리에도 너무 힘을 주고 서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럴정도로 무서웠으면 왜 말씀을 하지 않으셨냐 조금 무서운 정도인줄 알았는데 그정도면 타면 안되는거 아니냐 하고 나는 너무 놀랐다. 간밤에도 주무시다 다리에 쥐가 났는데 그게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너무 긴장한 탓도 있는 것 같아 너무 가책이 되고 엄마에게 미안했다. 앞으론 지하철 타는 쪽 절대 안 가고, 도보나 택시,  트램만 이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진작 알았으면... 엄마는 그냥 말 안하셨다고 한다. 아아 너무 맘이 안좋았다. 나도 원체 겁이 많은 터라 공포증이 뭔지 어떤 느낌인지 너무 잘 아는데... 첫날부터 계속 하루에 최소 한두번은 지하철 타고 한두정거장씩 갔던 게 떠오르면서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오늘에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엄마는 나에게 너는 겁도 많은 애가 어떻게 이건 안 무섭냐고 하셨다...
 
귀가)
 
빌라 수퍼에서 로메인과 물 등을 사서 귀가. 집에 오니 7시가 되어 있었다. 엄마는 정말 피곤하셨는지 먼저 샤워를 하셨다. 그리고 햇반을 데워 로메인, 남은 상추, 엄마가 싸오신 고추장과 밑반찬 등으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엄마와 스카프를 둘러보며 좋아하고 오늘 찍은 사진을 구경했다. 내일은 피곤하니까 근처를 천천히 움직이며 사진이나 찍기로 함. 너무 피곤해서 엄마는 주무시러 들어갔다. 나도 곧 자야겠다. 별거 아닌 ‘외국’ 당일치기였지만 크고작은 위기와 쇼크들이 함께 한 하루였다. 그런데 며칠이 쌓이자 엄마와 너무 달랐던 취향이었지만 서로의 마음이 좀더 통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에게 독일은 어떻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드레스덴 프라거 거리에 나오셨을 때 쇼핑몰과 현대식 건물을 보고 좋아하시며 프라하보다 훨씬 현대적이라 하셨는데, 귀가할 무렵 프라하에 진입하자 ‘아유 그래도 여기가 더 좋네. 아유 여기가 훨씬 정이 가네’ 하신다 :) 엄마 나도 그래요. 비엔나 갔다가 돌아왔을 때도 그랬어요 라고 말씀드렸다 :)
 

 

 
 
 

 
 
 
풍경 사진은 이게 전부.이번 여행은 엄마모시고 다니느라 엄마 사진 몇장 찍어드린 것 외엔 전혀 없다.

:
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