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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에 적는 메모)

 

 

어제 공항에는 일찍 도착했고 동생네가 엄마를 태워다준데다 셀프백드랍으로 짐도 금방 부치고 출국수속을 했다. 엄마는 셀프백드랍, 전자여권 출국을 처음 해보게 되어 신기해하셨고 잘 해내셨다. 면세에서 이모들과 올케에게 줄 립스틱을 사고, 내가 신을 캠퍼 샌들을 한 켤레 샀다. 전자를 내가 계산했더니 후자는 엄마가 사주셨다.

 

 

 

12시간 남짓 비행 끝에 프라하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중간중간 기류 때문에 많이 흔들렸다. 예전 비행들보다 기류가 심해서 좀 힘들었다. 비행기 안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신비한 동물사전 덤블도어의 비밀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였다. 전자는 너무 혹평이 많아서 그것보단 나았고(기린 얘기가 너무 별로이긴 했다만), 후자는 너무 호평이었기 때문에 생각보단 그냥 그랬다. 그렇게 상을 휩쓸만큼인지는 모르겠다. 양자경과 키호이콴의 연기는 좋았지만 작품은 그냥저냥.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엄마와 택시를 타고 아파트 키를 받을 호텔로 왔다. (내가 빌린 아파트는 이 호텔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체크인 수속까지는 순조로웠으나 그 직후 문제가 발생했다. 아파트까지는 5~7분 가량 걸어가야 했는데, 내가 대충 아는 거리이기는 했지만 혹시나 하여 폰으로 구글맵을 켜면서 보고 가야했다. 그냥 나 자신을 믿고 폰을 보지 않았어야 했다. 레볼루츠니를 따라가다 들로우하 트르지다에서 꺾으면 되는데 짐 끌며 폰을 보다가 폰을 돌바닥에 왼쪽 모서리로 떨어뜨렸고 그 이후 갑자기 폰 액정 왼쪽에서 형광 초록줄이 길게 나타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 걱정을 안했다. 폰으로 맵을 보며 아파트는 쉽게 찾았으나 열쇠가 네 개나 달려 있어 문 여는 것이 힘들었고, 2층에 우리 방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2층에는 서지 않는 바람에 무거운 가방을 끌고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문을 여럿 여는 것도 고생이었다.

 

어쨌든 간신히 우리 아파트에 들어왔는데... 짐을 막 풀고 있는데 폰 액정이 번쩍거리며 연한 녹색 줄무늬가 계속 생기고 화면 3분의 2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ㅜㅜ 큰일이다. 이때는 이미 한국은 새벽 시간이라 너무 졸렸고 머리도 너무 아팠고 폰이 갑자기 안되니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혔다. 수리받으러 갈수도 없고, 데이터가 다 날아갈까봐 너무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구글맵부터 시작해 로밍, 인터넷 등 여행의 모든 것을 폰에 의존하고 있던 터라 이것은 충격이었다. 내가 멍해지자 엄마도 더럭 심란함과 불안함에 사로잡히셨다. 엄마는 나만 믿고 로밍도 안 해오셨기 때문이다.

 

 

일단은 집 근처 팔라디움의 알버트 수퍼로 물을 사러 나갔는데 어제는 어째선지 매대가 텅텅 비어 있었고 생수칸도 텅 비어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이런가 싶었다. 그래서 집 근처의 penny라는 수퍼에 가서 물 두 병과 쓰레기봉투를 사서 돌아왔다.

 

 

폰 때문에 너무 걱정이 되었다. 머리도 돌아가지 않았다. 엄마를 모시고 왔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너무 암담했다. 이때쯤 폰은 화면이 줄무늬로 가득해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번호나 앱 실행은 되는 걸 보니 디스플레이의 문제인 듯했다. 당장 월요일에 비엔나행 12일 여행을 예약해두었는데 이게 가능할지도 막막했다. 티켓부터 모든 게 폰에...

 

 

하여튼 이런저런 심란함에 휩싸인 채, 일단 너무 피곤하니까 잠자리에 들었다. 비행기에서 붉은 군대가 도래하셔서 몸도 너무너무 힘들었다. 이럴 수가, 여태 폰 떨어뜨려서 고장내 본 적 없는데 하필 여기서 이런 일이 ㅠㅠ 그리하여 엄마 모시고 온 여행은 이렇게 생각지 않은 고난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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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