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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친구랑 카톡을 하다가 메시지가 들어가지 않아서 내 폰의 문제인가 했는데 티스토리도 안되고 먹통이 되었다. 알고 보니 카카오 쪽 화재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인명 피해가 없어 다행이다. 밤이 되었는데도 복구가 안 돼서 오늘의 메모는 따로 적는 중이다.

 

너무 피곤해서 완전히 뻗어서 잤다. 온갖 꿈에 시달렸고 막판에는 회사 업무와 사람들이 너무 생생하게 나와서 엄청 피곤했는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늦게 깨어났고 침실에서는 더욱 아주 늦게 나왔다. 전형적인 토요일 패턴, 즉 매우 늦잠, 청소, 목욕. 늦은 아점, 애프터눈 티, 독서와 글쓰기, 실내자전거(30분은 못 채웠다. 25분 ㅠㅠ), 그리고 다시 독서로 하루가 지나갔다. 이제 글을 좀 쓰려고 한다.

 

 

르 카레의 스파이의 유산을 끝으로 스마일리 시리즈를 다 읽었다. 재독한 책들 몇 권 + 이번에 새로 읽은 두 권(오너러블 스쿨보이, 스파이의 유산). 다시 읽는 과정이 재밌긴 했는데 확실히 이 작가는 작품마다 편차가 심하다. 오너러블 스쿨보이가 너무 헐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파이의 유산은 작가가 노년기에 쓴 소설이라 그런 것도 있고,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프리퀄/시퀄로 쓴 거라서 그런지 여기저기 덜컥거린다. 긴장감도 떨어지고 짜임새도 별로 없고 힘이 없다. 아마도 스마일리 시리즈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끝났으면 가장 깔끔했을 것 같다. 오너러블 스쿨보이와 스마일리의 사람들까지 카를라 3부작을 마무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쳐도, 스파이의 유산은 너무 사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인 피터 길럼이 전면에 등장하고 그의 회상과 현재가 어우러지지만 이것 또한 딱히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다. 뭐랄까, 자기 작품과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미련이 가득한 일종의 메타소설, 자기 소설에 대한 패러디이자 팬픽션(작가 자신이 쓴 소설이니 좀 어폐가 있지만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으로 느껴졌고 나 역시 그런 유혹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만 굳이 써야 했을까, 굳이 이렇게 사족을 남겨야 했을까 싶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도 그렇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그렇고 각 작품 자체로 충분히 완결성을 지녔고 상당히 잘 쓴 소설들인데 왜 이 소설이 따라붙어야 할지.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리셋되어 처음 읽는 기분이었던 스마일리의 사람들 뒤에는 작가의 서문이 붙어 있다. 근 십년 전 첨 읽었을땐 오너러블 스쿨보이를 읽기 전이라 그냥 넘어갔는데, 다시 읽어보니 대충 이런 말이 있었다. 스마일리와 카를라의 대결에 대한 소설들을 여럿 쓰고 싶기도 했지만 시대가 바뀌기도 했고, 또 작가 자신의 작법이 좀 바뀌어서 쉽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늙은 스파이를 위한 레퀴엠으로 기획했다는 메모이다. 거기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때까지는 실제 배경이 되는 도시들(프라하 등)에 전혀 가보지 않고 그냥 사무실에 틀어박혀 글을 썼는데 오너러블 스쿨보이 때부터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들에 직접 날아가고(홍콩, 캄보디아 등등) 실제 전쟁을 겪어보기도 하며 쓰다 보니 점차 집필 방식이 바뀌었고, 다 쓰고 났을 땐 차라리 스마일리가 나오지 않았다면 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스마일리의 사람들도 아마 여기저기 실제 답사를 다니며 쓴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글쓰기에 대한 나의 평소 마음가짐이나 감각과 연관된 느낌일 것이다. 나는 뭔가를 지나치게 꼼꼼하게 고증하고 답사하며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소설들을 읽으면 재미있기도 하고 때로 감탄하기도 한다. 정말 잘 쓰는 작가들은 그런 와중에도 자유로운 직관들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내겐 그런 느낌을 주는 작가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고증과 답사를 통해 꼼꼼하게 기획된 소설보다는 상상력을 발휘해 쓴 소설들을 더 좋아하며 거기서 비롯되는 일종의 오류와 비현실성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정치적, 가치적으로 엄청난 편협성과 왜곡이 일어나는 경우는 예외이지만) 소설에는 어떤 숨쉴 구멍, 여백, 상상력의 번뜩임이 필요한데 경험과 디테일, 실제 배경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그것을 잃을 위험성도 많다. 소설 속의 세계는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하되 새로운 세계라는 생각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물론 다른 여러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오너러블 스쿨보이를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이유는 읽는 내내 주인공이 아니라 작가가 봐라, 내가 이렇게 홍콩에 가서 겪어봤다, 봐라, 이게 캄보디아의 현실이다, 봐라 이게 크메르 루주다, 봐라 홍콩은 이랬다등 대놓고 묘사하고 소리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등장인물과 플롯에 매끄럽게 연결된다기보다는 과시적으로 느껴졌다.

 

 

뭐 그래도 거의 2주 넘게 르 카레의 스마일리 시리즈 다시 읽는 건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스파이의 유산까지 다 읽고 나서 결론 1. 스마일리는 역시 어딘가 위선적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2. 여성에 대한 묘사는 역시 별로다 3. 길럼에 대한 나의 사랑은 여전하지만 스파이의 유산은 안 나오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4. 나는 역시 스마일리보다는 카를라를 더 좋아했다.

 

 

이제 글을 좀 쓰다 자야겠다. 연습실에서 게냐와 갈런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갈런드는 재미있는 캐릭터인데 이 글에선 별로 할당된 분량이 많지 않아 좀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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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