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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호텔의 내 방 창가.



...



어제 열시 반 즈음 곯아떨어졌지만 자정도 안 되어 깨고, 다시 잠들었으나 또 두시 반에 깼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것이다. 약을 더 먹고 싶지는 않았다. 뒤척거리며 괴로워하는데 갑자기 몸이 아프면서 붉은 군대가 도래했다... 난 장거리 비행 + 어제 너무 많이 걷고 강행군해서 다리와 온몸이 아픈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나쁜 놈이 나타난 거였다. 직전에는 너무 심한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상당히 늦어졌었는데 이번에는 도리어 일주일 가까이 빨리 나타남. 근데 이럴 거 같긴 했어. 혹시 욕조 없는 방 줬다고 너무 원망해서 ‘어차피 욕조 쓰기 어려웠을 거야’ 하고 토끼수호성인이 이렇게 만들어 준 건가 흐흑... 왜 토끼수호성인은 이렇게 아무짝에 쓸모없단 말인가.




한밤중 새벽이고 빈속이니 약을 먹을 수도 없고-타이레놀이라도 먹을 걸 그땐 또 생각을 못했네- 다시 눈을 붙여보려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간신히 한시간 가량 더 아주 얕게 꿈에 시달리며 잤다. 좀 무서운 꿈이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긴가민가. 아, 무서운 꿈은 밤에 꿨던 거였던 것같다. 아침엔 회사랑 관계된 꿈이었던 듯. 지금은 기억 안남.



매우 수면부족 상태로 일어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조식을 간단히 먹고 왔다. 그나마 약을 먹어야 하므로 먹은 조식이었다. 입맛도 별로 없고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음. 진통제를 먹은 후 약기운이 돌기 전에 토요일 오전에만 여는 나플라브카 강변의 시장에 갔다. 거기서 맛있는 치즈버거 사먹은 얘기는 따로 썼다.




시장에서 뭔가 이것저것 사보고팠지만, 재작년에 엄마랑 왔을 때 빵 한덩어리만 샀던 이유가 엄마랑 내 취향이 달랐기 때문이 아니라 막상 살 게 정말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을 깨달았다. 조식을 안 먹고 왔으면 이것저것 먹어볼만 했다만. (맛있는 게 많았다)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메도비나를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뜨거운 술을 마시면 끝장이므로 포기... 쥬인이 좋아하는 바구니 노점이 있어서 한참동안 조그만 바구니를 재보았지만 입체적인 바구니는 부피도 그렇고 트렁크에 꾸리기가 힘들어서 이것도 포기했다. 그래도 치즈버거는 참 맛있었다. 어제 테스코에서 사온 빨간 장미가 질이 별로였기 때문에 꽃을 좀 사갈까 했는데 맘에 드는 꽃들은 그렇게 싸지 않았고 생각보다는 싱싱하지 않아서 이것도 포기했다.




시장은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강둑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어서 가보았더니 백조가 세 마리 와 있었다. 요 몇 년 캄파에 가도 백조가 안 보여서 섭섭하던 차였는데 걔들이 이리로 옮겨왔나 궁금했다(흰색 두 마리 회색 한 마리인 것이 캄파에서 보던 놈들이랑 닮았다) 하여튼 반가웠다. 시장이라 먹을 게 많고... 관광객과 로컬들이 빵조각인지 햄인지 하여튼 이것저것 던져줘선지 백조들이 자꾸만 강가로 올라와 머리를 디밀고 계속 먹을 것을 요구하다가 한참 후에야 먹을 게 더이상 안 나오자 아쉬워하는 눈치를 보이며 물결을 따라 돌아서 가버렸다. (사진들은 메모 맨 아래 모아두었다)





일찍 나왔기 때문에 미팅까지 아직 시간이 있기도 하고 가는 길이라 치즈버거 입가심을 위해 헤드 샷 커피에 들렀다. 그 얘기도 따로 썼다.



헤드 샷에서 나와 잠깐 숙소에 들러 손을 깨끗하게 씻고(버거의 소스 냄새가 좀처럼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양치질도 다시 한 후 미팅에 갔다. (시장에서 잔뜩 살 걸 대비해서 쇼핑백도 가져갔었는데 뱃속에만 버거 하나 넣고 온 게 전부)




오늘 일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고 금방 마칠 수 있었다. 이건 다행이었지만 망할 넘의 붉은 군대 때문에 몸이 너무너무 힘들었다. 도브라 차요브나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실까 했지만 사실 그냥 방에서 쉬고만 싶었다. 게다가 지난번 방보다 더 비싼데 욕조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긴 했지만 창가의 기다란 소파가 의외로 편해서 찻집에 안 가고 그냥 방에서 차를 우려마시며 쉬기로 했다. 그래서 바츨라프 광장에 있는 폴(숙소에서 제일 가까움)에 들러 라즈베리 에클레어를 한 개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인터넷 면세에서 막판에 샀던 압끼빠상드의 다즐링과 아삼, 백차 티백 9개들이 세트를 뜯어서 그중 퍼스트 플러쉬 다즐링을 우려 마셨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마저 읽고 차를 마시고 라즈베리 에클레어를 먹었다. 크림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몸에는 안 좋을 것 같았지만 맛은 있었다. 이것도 ‘박력 있는 에클레어’ 친척 느낌이랄까... 나는 초콜릿 입힌 에클레어의 박력 있는 크림이 더 좋긴 하다만...



하여튼 창가의 긴 소파에 기대어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차를 마시고 책을 읽자(이때쯤 낮에 두 번째로 먹은 약기운이 돌고 있었다) 피로가 좀 가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어딜 가도 집토끼일 때가 제일 좋은가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3분의 2쯤 읽었다. 이 책을 고등학생 시절인가 대학 초년생 때 첨 읽었던 것 같은데(너무 오래되어 가물가물...) 그땐 참 감명 깊었던 기억도 난다. ‘아홉 가지 이야기’나 ‘시모어, 서문’은 아직도 좋아하고 몇 년마다 한 번씩 읽는다만 이 소설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오랜만에 다시 읽어서 그런가 뭔가 낯선 느낌도 좀 든다.



책을 읽다 보니 창가에 앉아서 그런가 추워지고 오한이 들어서 스카프를 펼쳐 숄처럼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몸이 아파서 대충 방에서 햇반으로 때울까 하다가 여기서 멀지 않은 한국식당-지난번에 왔을 때 김치찌개 먹고 맛있어서 놀랐던 곳-에 가기로 했다. 뜨거운 국물을 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식당 이름은 비원인데 I.P.파블로바 정류장 근방의 소콜스카 거리에 있다. 비노흐라디 쪽인데 호텔에선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트램을 타도 앞뒤로 많이 걸으니 비슷하다. 3~5시는 브레이크 타임이라 5시 맞춰서 가기로 하고 4시 반 좀 넘어서 숙소를 나섰는데 이미 황혼이 깔렸고 주변이 푸르스름했다. 4시 전후 해 지는 건 너무 싫다. 하긴 옛날에 뻬쩨르 살았을 땐 한겨울엔 두시만 돼도 컴컴해졌지... 그래서 북쪽 사람들이 여름만 되면 정신을 못차리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구글맵을 보며 걸어갔는데 골목들 여럿을 질러서 가야 했고 오르막들이었다. 황혼녘에 나왔지만 식당 앞에 가자 이미 캄캄해졌고 돌아갈 때는 트램을 타는게 낫겠다 싶었다(골목과 거리들이 관광지 쪽이 아니라서 좀 으슥한 느낌이라서)




오늘은 한국인 사장님이 나와 계셨다. 엄청 친절하셨다. 김치찌개 시켜서 먹었는데 흐흑, 역시 맛있어... 여기는 외국의 한식당 김치찌개가 아니라 그냥 우리 나라 김치찌개 맛이다... 계란말이만 추가로 더 팔면 딱 좋겠는데... 또다시 엄청 흡입하고 온몸이 후끈해지고 코까지 훌쩍이며 잘 먹고 나왔다. 돌아가기 전에 또 올 것 같다. 다른 것도 먹어봐야지.




역시나 나왔더니 너무 컴컴했다. 그런데 눈앞에서 내가 타야 하는 6번을 놓친고로... 17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대신 잠시 후 22번이 와서 그냥 그걸 탔는데... 6번을 기다릴 걸 그랬다. 22번은 숙소에서 젤 가까운 쪽이 슈테판스카로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데, 우리 숙소가 있는 거리라서 믿고 내렸으나 알고보니 정류장 이름만 슈테판스카일 뿐, 정작 두 블록이나 떨어져 있는 다른 거리에 있었다. 내려서 구글 맵을 보며 거슬러 올라가야 했는데 컴컴하고 인적이 별로 없어서(그래도 대로변이긴 하다만) 차량 불빛에 눈도 부시고 이래저래 좀 무서웠다. 그냥 나로드니 트르지다까지 가서 내렸으면 좀 돌아가더라도 훤하고 사람 많은 길이고 잘 아는 길이니 더 나았을 것 같다. 아니면 그냥 6번 올 때까지 기다릴걸(이 트램은 보디치코바에서 내릴 수 있으니 숙소에서 가까움) 역시 구글 맵 너무 믿으면 안돼.



방에 올라와서 너무 괴로웠지만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감았다. 머리 감고 말리는 거 너무 힘들지만 내일 아침은 최악으로 아프고 힘든 날일 테니 꾹 참고 오늘 저녁에 해치웠다. 그리고는 오늘 메모들을 정리했다. 별로 한 거 없는 거 같은데 정작 쓰면 많고...




내일은 종일 비가 온다고 한다. 그리고 내일이 올해 내 생일이다. 음력이라 매년 생일이 바뀜... 그래도 다행히 내일은 미팅이 없다. 생일 기념으로 슬라비아나 사보이에서 비엔나 슈니첼이나 먹을까 했지만 이미 내일은 예약이 다 차서 불가능 ㅠㅠ (그래서 속상해서 오늘 한국식당 간 것도 있음) 슈니첼은 월요일로 예약해서 가야지. 아무래도 생일이고 뭐고 내일도 에벨이나 도브라 차요브나 갔다 와서 방에서 뻗어 있을 것 같아, 비도 온다는데... 맛집 찾아 멀리 갈 기력도 없다.




오늘은 9,196보. 5.7킬로.



사진들은 아래. 티스토리 노트북 접속이 잘 안돼서 먼저 노트북에 메모를 정리하고 그걸 네이버 멜로 보낸 후 폰으로 여기 붙여넣고 있어서 중간중간 사진 넣어 편집하기 불편해서 걍 아래 왕창.







이게 강변 백조들. 먹을 것 내놓으라고 바짝 다가와 있음






이제 없다 싶어서 가버리는 두마리, 아직 미련이 남은 회색 녀석.







강변 풍경 하나 더. 이쪽은 시장 아니면 올 일이 없으니 기념으로 찍어둠. 저 다리는 팔라츠케호 다리라고 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공항에서 숙소 올 때 저 다리를 건너왔나, 아니면 그 바로 옆의 다리였을지도... 둘다 춤추는 건물 근처라...







방에서 집토끼 모드.






이 티백을 개봉해 우림. 너무 이상한 게 압끼빠상드 잎 티백들은 다 맛이 괜찮은데 왜 내가 저번에 산 그 프레지던트 다즐링 잎차는 싱거운 걸까ㅠㅠ







바르샤바 블리클에 이어 박력 있는 에클레어 2탄. 프라하 지점의 폴에서 왔음. 저 책 읽으려다 호밀밭 다 안 읽은 걸 깨닫고 다시 바꿔 읽음.








이 소파가 또 은근히 편한데 오래 앉아 있으면 창가라 그런지 좀 춥다.






감동의 김치찌개. 다시 먹어도 맛있었다.







숙소가 있는 거리를 지나 식당 가는 길 사진. 4시 40분 즈음. 이땐 그냥 황혼 타임이라 푸르스름해도 안 무서웠는데 6시 즈음엔 이미 그냥 밤중이고 또 골목들이 컴컴해서 앞으론 트램을 기다렸다 타기로 함. 관광지 쪽은 밝고 사람 많아서 괜찮은데... 하긴 내가 밤눈도 길눈도 어두워서 더 그렇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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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