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 일요일 밤 : 침실의 도자기 달걀, 게으른 자의 집, 엽서들, 내내 검은 안개, 월요병 fragments2023. 11.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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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에는 화장대와 침대, 붙박이 옷장 외에는 아무 것도 두지 않았다. 방에 물건 잔뜩 쌓아두는 것도 싫어서 아마 가능하면 내내 이렇게 유지할 것 같다. 어차피 주말에 늦잠 잘때 외엔 주로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옛날에는 내집 마련을 하면 이렇게저렇게 예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여튼 뭔가 좀 꾸밀 줄 알았으나 선천적으로 게으른데다 물건 고르고 사는 것에 영 재주가 없는 타입이라 그런지 결국 이 집은 이사온지 몇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그냥 흰 벽지에 액자 하나 제대로 걸지 않았고 찻잔들도 그냥 오래된 수납장 안에 겹쳐 쌓아놓은 채 그대로... 늘어나는 건 책들 뿐... (생각하니 스트레스받음. 책을 좀 정리해야 하는데...) 하여튼 그래서 침실에 있는 장식품은 딱 두개. 프라하에서 사왔던 이 도자기 달걀, 그리고 사진엔 안 나왔지만 거울 다른 쪽 끝에 매달아둔 도자기 새. 이것들도 막 이사왔을때 거울을 고정하기 위해 아버지가 양쪽에 박아주신 못이 있어 거기 하나씩 달아둔 것이다. 달걀 뒤에는 에브로파 호텔에서 줬던 예쁜 태그. 이건 원래 여행가방용 태그인데 이뻐서 그냥 장식으로 달아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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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보면 엽서나 인형, 냉장고 자석 등 온갖 아기자기한 것들을 이것저것 늘어놓았던 건 지방 본사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2집 원룸에서 지낼 때였다. 화정에는 주말에나 올라올 수 있고 때로는 주말에도 못 오던 시기였고 당시 너무 힘이 들어서 억지로 방에 이런저런 여행의 기억들이라든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들을 늘어놓곤 했다. 지금 집에서 그런 시기의 기억과 겹치는 건 부엌 냉장고 측면에 붙여둔 이 엽서와 사진들 정도. 사실 페테르부르크 엽서는 이쁜 게 많은데 전부 상자 안에 들어가 있다. 작년에 빌니우스 엽서가, 그리고 이번 가을에 바르샤바 엽서가 추가되었다. 가장 아끼는 건 맨 위 오른편에 있는 페테르부르크 지도 엽서. 이건 가끔 글 쓸 때도 힐끗 보곤 한다. 나는 지리, 공간 감각이 별로 없는 터라 이렇게 네바 강을 가운데 두고 직관적으로 단순화해서 그려져 있는 지도를 보면 도움이 많이 된다. (사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오랫동안 살고 학교, 직장도 대부분 서울에서 다녔지만 서울 지리도 잘 모름. 방향 설정해보라 하면 멍해질 듯하다. 이런 말을 하면 주변 사람들은 '네가 운전을 안해서 그래'라고 얘기함. 뭐 그것도 맞는 것 같다만 애초에 방향감각도 없음)
오늘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두통도 심했다. 머리를 감고 차를 마신 후에야 두통이 좀 가셨다. 일요일까지는 충분하고 편안한 수면을 취해보고 싶건만. 어제보다 날은 좀 따스해졌지만 원체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여서 기분도 좀 가라앉는 편이었다. 일요일이라서 그랬을지도 ㅜㅜ 이번주도 많이 바쁠 것이다. 당장 내일도 해야 할 일들이 한가득. 화요일에는 저녁까지 큰 행사가 있고, 다음주에는 더 큰 행사가 있고... 게다가 조직개편도 다가오고 앞날은 여전히 검은 안개로 가득하다. 아아, 월요병 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 글을 좀 쓰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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