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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프라하 여행을 가기 전에 코스챠와 알리사에 대한 이 글을 다 쓰고 싶었지만 과중한 업무와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 때문에 결국은 후반부의 정서적 클라이막스를 다 해소하지 못한 채 비행기를 타러 갔다. 돌아와서도 제대로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내내 더욱 과중해진 업무에 시달리느라 한 줄, 한 단어도 못 썼다. 오늘은 차를 마신 후 다시 써볼까 하고 파일을 열었는데 몇주 동안 내버려둔 탓에 처음부터 다시 쭉 읽고 머리와 손을 동시에 정돈해야 했다. 아마 오늘 밤부터는 좀더 이어서 쓸 수 있을 것 같다. 

 

 

발췌한 파트는 조금 앞부분, 알리사와 코스챠가 카페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코스챠는 알리사에게 프라하에는 출장을 온 거냐고 묻고, 이야기는 좀 다른 식으로 이어진다. 스베타, 타냐, 이고리, 갈랴, 료카, 트로이, 미샤 모두 이들의 문학 서클 멤버들이고 절친한 친구 사이다. 라주모프는 레닌그라드 출신의 유명한 영화감독(물론 허구의 인물이다)으로 오랫동안 미샤를 데리고 영화를 찍고 싶어했던 사람이다. 이 글에서는 코스챠가 이 사람 밑에서 영화 촬영을 돕고 있다.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은 1981년 가을이고, 코스챠의 회상은 그보다 조금 전인 여름 말미에 대한 것이다. 

 

 

이 글은 깃털처럼 가볍게 쓰고 싶었지만 막상 쓰기 시작하니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코스챠 혼자만 나오는 글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적 배경이 미샤가 파리에서 체포되었던 1981년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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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온 거야? ”

 

. 근데 오후에 떠나야 해. 렌필름에서 촬영 왔다는 얘기를 듣고 혹시 네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와봤어. 트로이가 말해줬거든, 너 이고리 마수에 걸렸다고. 프라하랑 부다페스트 갔다고. ”

 

, 그래... 그 녀석은 너랑 자주 통화하니까. ”

 

누구, 트로이? 전화는 무슨. 난 갈랴하고밖에 전화 안 해, 그나마도 두어 달에 한 번쯤. 전화번호가 자주 바뀌거든. 너하고도 안 하잖아. ”

 

 

 

어쩐지 코스챠는 기분이 나아졌다. 알리사가 갈랴하고만 전화를 해서. 트로이와도 통화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화번호가 왜 자주 바뀌는지 물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정도는 그도 알았다.

 

 

 

근데 어떻게 얘기를 들은 거야? 전화도 안 했다면서. ”

 

나 그저께 레닌그라드 갔었거든. 학교에 들렀었어. 서류 뗄 게 있어서. 거기서 트로이 잠깐 봤어. 걔 말고는 아무도 못 만났어, 출장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

 

그래도 내 얘기 물어봐 줬네. ”

 

그럼, 친구들 어떻게 지내는지는 꼭 물어보지. 스베타, 타냐, , 료카, 이고리... ”

 

 

 

알리사는 갑자기 뭔가가 목에 걸린 듯 입을 다물었다. 코스챠는 자기도 목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건 이름일 거야. 왕자님. 로미오. 그들에겐 언제나 귀여운 꼬맹이. 미샤가 파리에서 체포되고 조국과 당의 반역자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뜬 이래, 그 여름 내내 그들은 공포와 불안, 막막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고리는 영화계 인사들에게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오랫동안 미샤를 숭배해왔던 라주모프 외에는 모두가 모른 척했다. 하긴 키로프에서도 쉬쉬하며 납작 엎드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머지 친구들에게는 그런 인맥도 정보도 없었다. 그저 슬퍼하고 걱정하고 기도를 했을 뿐이었다. 신앙 따위 없었지만 모두가 신자가 되었다. 철저한 무신론자인 트로이만 빼놓고. 정작 가장 걱정하고 괴로워했던 것도 그 녀석이었지만. 여름 동안 트로이는 체중이 10킬로 가까이 빠졌고 폭음을 했다. 예전에는 코스챠가 취하면 트로이가 돌봐줬지만 이제는 정반대가 되었다. 찌는 듯 무더웠던 어느 날 밤 코스챠는 만취해서 모이카 운하에 무릎까지 빠져 있던 트로이를 간신히 끌어냈다. 백야가 거의 끝나서, 이제 밤이면 어둑어둑해져서 정말 다행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 덕에 운하에서 노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왜냐하면 트로이 그 멍청한 자식의 손에는 구겨진 르 피가로가 그대로 쥐어져 있었으니까. 그들의 꼬맹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로미오가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무슨 꼭두각시 인형처럼 온몸을 늘어뜨린 채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는 그 무서운 사진이 아주 정면으로 나와 있었으니까. 코스챠는 스베타에게서 연락을 받아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사진을 실제로 보니 온몸이 떨려왔다. 트로이가 어떻게 그 신문을 구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건 그날 아침에 나온 신문이었으니까. 아마 학교에서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 녀석은 외국어학부에 있으니까. 코스챠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신문을 꼬챙이처럼 기다랗게 돌돌 말아 운하 난간 아래 굴러다니던 술병 안으로 쑤셔 넣고는 병을 물속으로 던져버렸다. ‘이 미친놈, 잡혀가려고 아주 작정을 했네하며 트로이를 걷어차고 따귀를 철썩철썩 때려 깨웠다. 그때 코스챠는 트로이가 우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어릴 적 입학식에서 만난 이래 단 한 번도 그 꺽다리가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

 

 

 

 

 

 

 

 

사진 세 장은 모두 모이카 운하. 맨 위는 2017년 10월, 아래 이 두 장은 19년 7월 밤에 찍었다. 

 

 

로미오는 알리사와 코스챠를 비롯한 이 문학서클 친구들이 미샤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이들은 미샤를 10대 중후반이던 발레학교 시절부터 알았기 때문에 로미오, 왕자님, 귀염둥이 등 온갖 애칭으로 부르는데 특히 로미오라는 별명은 여러가지 이유로 알리사가 많이 쓴다. 

 

 

르 피가로에 실린 피 흘리는 무시무시한 사진은 미샤가 수용소에 끌려가 모종의 정신교화를 받다가 약물 쇼크를 일으켜 혼수상태에 빠진 후 모스크바 클리닉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찍힌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예전에 썼던 수용소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다. 시간적 배경은 이 단편과 동일하다. 그 이야기 후반부에도 미샤의 친구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건 모스크바의 무용계 동료인 스타니슬라프 일린이었고 코스챠나 알리사, 트로이 등 레닌그라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는 쓴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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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