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토요일 밤 : 이것저것 fragments2023. 4. 1. 19:14
오후에 귀가하면서 동네에서 찍은 꽃들. 날씨는 여름처럼 더웠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가 너무 높아 숨이 턱 막히고 눈과 목이 아팠다. 개나리의 노란색이 정말 환했다. 어린시절 입었던 우비 생각이 났다.
동네 공원의 두어 그루 라일락 나무에 꽃망울이 올라왔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있는 두 그루는 꽃이 이미 좀 피었는데 가지가 높이 달려 있어 사진을 찍거나 향을 맡지는 못했다.
어제 너무 지치고 녹초가 되었다. 아마 어제도 <과포화> 상태였던 것 같다. 거의 자정이 되어 잠이 들었는데 다시 새벽 4시 무렵 깨어버렸고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몇시간 동안 다시 자보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온갖 생각만 들며 잠이 오지 않았다.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과 그것이 불안정한 마음에서 오는 충동이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이 지속되면서 내내 너무 힘들었다. 너무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들, 속을 썩이는 직원들과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위로부터의 압박이 한데 뭉쳐져서 그런 것 같다. 어제는 3개의 빡센 미팅을 오가는 내내, 그리고 심지어 회의 중에도 머리가 멍멍하고 너무나 힘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진료를 받으러 갔다. 웬만하면 토요일에는 이렇게 시내에 나가지 않는데 마음이 절박했다. 오후 1시 타임밖에 없어서 아주 애매한 시간이었지만 어쨌든 갔다. 워낙 멀어서 아침에 나갔다가 오후 늦게야 돌아왔다. 확실히 너무 힘든 모양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마치 처음 갔을 때처럼. 눈물도 나오고 조리있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이 선생님은 매우 현실적인 분으로, '네 마음이 원하는 것을 들어보렴' 이라는 식으로는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장기적으로는 항상 도움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그만둬도 된다' 라는 어떤 승인, 권위에 따른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될 것 같다는 무의식적인 소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물론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고(그러니까 그만두면 안된다는 얘기다), '임기가 있는 임원보다 네가 더 오래 남는다', '다 해낼 수 없으니 가장 눈에 띄는 것 두어개만, 보여줄 수 있을만큼만 하라'고 충고했다. 내가 언제나 무엇이든 다 해내려고 애쓰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힘이 들고 지치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고, 너무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제어가 안된다고 하자 그것은 무기력한 게 아니라 힘에 넘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와 있기 때문이라고 정정해주었다. 주어지는 과제들을 다 해내면 안된다고 했다. 들으면서는 섭섭하고 속상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사실 맞는 얘기다. 우리 회사에도 그런 분이 있고(사실 내가 굉장히 싫어하는 선배이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해가며 평판은 좋지 않지만 하여튼 행복하게 살아가고 계신다. 근데 그런것도 어느 정도는 성격을 타고나야 하는 것도 있다.
어쨌든 많이 울고 힘들어하며 나왔지만,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는 묘하게 마음이 약간 나아졌다. 사실 내가 너무 힘들고 괴로웠던 이유는 지금의 마음 상태가 예전에 정말 힘들었을때와 비슷한 패턴으로 가는 것 같아서 두려웠던 것도 있고, 하나하나 뜯어보면 '실제의' 공포와 불안 수준과는 좀 다른데 모든 것이 과장되고 크게만 느껴지는 상태, 어떤 실체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라 그런 것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는 정말 견딜 수 없다, 한달 이내에 그만둬야만 한다'라는 이상한 강박적 괴로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런데 따져보면 지금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닌 상황이다. 힘든 과제들이 너무나 많고 감당하고 싶지 않은 직원들이 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들에서 조금씩은 비껴간 것들도 있다. 너무 휴식이 모자라서 머리가 마비된 것도 있다.
입맛이 거의 없고 잘 먹지 못하는 상태라 음식 냄새를 맡으면 좀 울렁거린다. 어쨌든 조금씩 먹었고 차도 마셨다. 정작 마주해 하나씩 해나가면 되는 일들도 있고, 의사의 말대로 '너무 다 해내려고 하면 안되는' 일들도 있다. 지금 상황이 너무 벅차고 힘드니까 '그냥 한꺼번에 다 그만둬버려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또 거기서 오는 후폭풍을 감당할 생각에 괴로워하며 양가감정에 휩싸인 것이기도 하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사실 충분한 수면인 것 같다. 중간에 깨어나도 다시 잠들 수만 있으면 될 것 같다.
남은 주말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가급적 쉬어야겠다. 부디 자다가 깨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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