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토요일 밤 : 커튼 우렁이도 필요한데, 자고 약 먹고 쉬고 뻗어서 보냄 fragments2022. 12. 3. 21:22
서재 방의 창문에 커튼을 달아야 할 텐데 하고 이따금 생각하다가 까먹곤 한다. 아마 이 방에서는 진득하게 시간을 보내는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질무렵 이 방으로 빛이 들어오는 게 좋아서 또 그냥 내버려둔다. 그런데 책이 상할 것을 생각하면 역시 커튼을 달아야 할 것 같다. 커튼 달아주는 우렁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여행에서 돌아와 이틀 후 달력을 넘겼다. 벌써 12월이구나 하면서... 작년 12월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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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약기운에 취하고 몸이 힘들어서 자정 좀 안되어 누우면서 귀마개가 필요하지 않나 했다. 축구 때문에. 그런데 귀마개를 여행가방 안의 파우치에 넣어놓고는 꺼내두지 않은 채 그대로 가방을 창고에 넣어버린 것이 생각났다. 자다가 깰지도 모르겠네 하면서 까무룩 잠이 들었고, 새벽 언젠가 멀리서 환호성이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골을 넣었나보네, 그래도 지겠지' 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 6시 즈음 도착한 꽃 상자를 현관 안에 들여놓으려고 잠깐 일어났을 때 궁금증을 견디지 못해 폰의 뉴스를 켜보고는 역전해서 16강에 갔다는 기사에 깜짝 놀랐다. 어머 그랬구나. 아마 그 환호성이 들려왔을 때가 역전골 아니면 16강 진출 때였나 보다.
자고 또 잤다. 깨어났다가 다시 잤다. 마침내 눈을 뜨자 10시 반이 다 되어 있었다. 여독과 몸살, 약 모든 것이 한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난방을 돌려둔데다 너무 많이 자서 약기운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목이 바짝 말라서 마치 목구멍이 코 안쪽까지 올라가 붙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계속해서 말라붙는 느낌이었다. 난방 때문에 더웠지만 추운 것은 더 싫었다.
계속 누워 있고 싶었지만 현관 안에 들여놓은 꽃을 다듬어야 해서 억지로 일어났다. 잔잎사귀가 원체 많아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누가 대신 다듬어줬으면 싶었다. 어쨌든 꽃을 다듬어 꽂아둔 후 도로 침대로 갔다. 두어시간 더 침대에 붙어 있다가 간신히 일어났다. 밤 사이 눈이 왔고 베란다 창 너머를 내려다보니 땅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무 아래 화단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으면서 청소를 했다. 여행 때문에 근 2주만에 청소를 하는 거라서 먼지가 많았다. 우렁이는 어디에 있을까. 하여튼 목욕을 하고 나와 밥을 대충 먹었다. 정말 입맛이 없었고 잘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왜 살은 빠지지 않는 것일까 ㅠㅠ 밥을 먹은 후 약을 먹고 나니 목이 바짝 마르는 증상은 좀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대신 차 마시는 동안 너무너무 졸리고 머리가 멍했다. 인후염에 더해 코막힘 개선 약까지 같이 먹어서 그런 것 같다. 항상 코감기 약이 독하다.
여행 갈때 읽으려고 샀다가 비슷한 종류일 것만 같다는 의심이 드는 국내 에세이에 데어서 그냥 놔두고 갔던 사노 요코의 에세이집을 대충 읽으며 차를 마셨다.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여행용은 아니었고 글도 별로 내 취향은 아니어서 가져갔으면 별로였을 것 같다. 그럭저럭 다 읽었다. 늦은 오후에는 글도 조금 썼다. 다 쓰고 여행을 갔어야 했는데 시간이 묘하게 모자라서 결국 마무리를 못했었다. 다시 쓰려고 하니 흐름 속으로 재몰입하는 것에 시간이 좀 걸렸다. 하여튼 이 메모를 마친 후 이어서 쓰다 잘 것이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실내 자전거도 20분 가량 탔다. 탈 때는 별로 안 힘들었는데 다 타고 나서는 좀 후회했다. 목이 다시 바짝 마르는 느낌이라서. 아마 약기운이 다 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씻고 난 후 억지로 김치와 두부와 콩나물을 잔뜩 넣어 국을 끓여서 밥을 먹었다. 내가 요리솜씨가 그리 나쁘진 않은데, 하여튼 이건 아무 맛도 안 났다. 뭘 먹어도 그런 걸 보니 아프긴 아픈 모양임. 뭐 약 먹으려고 밥 먹은 거니까. 조금 전에 다시 저녁 약을 먹었다. 약기운이 돌면 또 졸려올텐데. 글을 조금이라도 쓰다 자고 싶다.
그건 그렇고 다시 추워지는지 몸이 으슬으슬해져서 니트 짚업을 걸쳐입고 수면바지 위에 무릎담요를 겹쳐 두른 채 이 메모를 적고 있다. 난방도 다시 올렸다. 오늘 자고 나면 내일은 몸이 한결 나아져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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