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 일요일 밤 : 월요병, 바쁠 예정, 표지 좀 어떻게, 마르케스 fragments2022. 6. 26. 21:21

쉬면서 보낸 일요일이 다 지나가서 월요병으로 몸부림치는 중이다. 새벽 늦게야 잠들었고 아침에 조금씩 자다 깨다 꿈도 이것저것 꾸며 반복해서 도로 자느라 머리도 지끈거리고 피로감이 남아 있다.
아마 그날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 듯 좀전부터는 두통이 좀 심해지고 있음. 간밤에 재채기도 좀 했던 터라 혹시나 하여 방금 자가진단키트도 해봤는데 음성임. 하여튼 이번주에 몸이 좀 힘들 것 같긴 한데 이미 매일같이 내부/외부 회의들이 꽉 차 있다ㅜㅜ 특히 금요일엔 오후에 그 덜컥 수락했으나 엄청 먼곳까지 가야 하는 심사까지 있어 후회막급 ㅠㅠ
티타임 사진의 좀 괴로운 표지의 저 책은 며칠전 번역된 마르케스의 '동유럽 기행'이다. 마르케스가 청년 기자였던 50년대 말에 서독에서 국경을 넘어 동독으로 들어간 후 소련 비롯 동유럽을 여행했던 얘기를 쓴 것인데 아직 앞의 두 챕터 정도만 읽었다. 재미있긴 한데 아직 확 끌어당기는 맛은 없다. 본격적으로 체코와 소련으로 들어가면 좀 달라질 것도 같다.
그건 그렇고 이 표지가 너무 괴로워서 커버를 따로 씌우고싶다ㅠㅠ 20년대 포스터에서 가져온 표지인데 내가 너무 싫어하는 스타일임. 꿈자리 시끄러울 것 같아 ㅠㅠ 나름대로 멋지게 디자인한 표지일 테지만.. 정말이지 책 표지엔 제목과 작가 이름 정도만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면 딱 지만지의 책 표지가 떠오르는데... 지만지는 표지 자체는 괜찮은데 커버가 너무 잘 손상되는 지질인 게 나쁨 ㅠㅠ
마르케스는 언제나 나의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가다. 동네 서점. 대학 도서관의 낡은 서가. 거의 매일 '서반아어 문학' 코너를 돌며 번역서들을 찾곤 했던 시절들. 한때 그 문체와 화법에 굉장히 매혹되었던 작가. 맨처음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었을 때의 즐거움과 놀라움이 문득 기억난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들춰보지 않게 된 작가. 나는 보통 한번 좋아하면 꾸준히 읽고 닳도록 다시 읽는 편인데. 어쩌면 이 작가에 대해서는 그 매혹의 종류가 10대 학창시절과 20대 초중반까지만 유효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성격은 다르지만, 20대 중반 이후 더이상은 헤세의 글들을 읽기 어려워졌던 것처럼. (그러나 나는 마르케스를 헤세보다 훨씬 좋아하며 개인적 취향으로는 더 뛰어난 작가로 평가한다)
마르케스는 가장 유명한 소설인 '백년 동안의 고독'을 비롯한 장편들도 훌륭했지만 재기와 화려함이 넘쳤던 건 역시 단편들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 중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체'였는데 아마 거기 배어 있는 약간 뒤틀린 유머와 아름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제목이 지금 딱 떠오르지는 않는다만(눈 위에 남은 피의 흔적인가 비슷한 제목인데... 아니, 전혀 다른 소설인지도 ㅠㅠ), 아주 작은 상처로 시작했으나 계속 피가 흘러서 결국 죽게 되는 인물에 대한 단편도 기억난다. 싫어했던 건 '순박한 에렌디라와 못된 할머니'(이것도 제목이 명확하진 않음)였는데 이것은 그저 찝찝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 작가의 소설들은 실망시키는 일이 없었고 원체 문체의 달인이라 플롯이 좀 부실해도 그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슥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싫어한 건 전적으로 그 찝찝한 기분 탓임. (그런 면에선 저 책 표지와도 느낌이 좀 비슷한가 ㅎㅎ)
아마도 나이를 먹을수록 너무 대놓고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작가보다는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를 선호하게 되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래서 어릴 때는'나 멋있지! 어때 이 문체 좀 봐! 이 아이디어 좀 봐!' 하는 마르케스를 더 좋아했지만 나이먹을 수록 오히려 그보다는 조금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비오이 카사레스를 읽는 것이 더 취향에 맞게 된 것 같다.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가... 보르헤스도 '나 대단하지? 어때 나 똑똑하지?' 하는 작가이다만 여전히 좋아하는 걸 보면.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저주받은 도시'는 밤마다 조금씩 읽고 있다. 원래는 이번 주말에 다 읽을 생각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무거워져서 그런지 어제와 오늘은 좀 가벼운 책들을 읽느라 미뤄두었다.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오후 늦게 글을 좀 썼고 실내자전거를 25분 가량 탔다. 엄청 덥고 습해서 금방 지쳤다. 조금 운동은 했지만 식생활은 그대로 막 먹어버려서 개선되지 않았음.
이제 글을 조금 더 쓰다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아아 너무너무 출근하기 싫다. 월요병 으엉.

티타임도 좀 늦었던데다 날씨가 흐려서 사진을 몇장 안 찍어서 그냥 나머지 몇 장도 여기 올리고 마무리.


꽃이 많이 시들어서 이것만 남았음. 그래도 몇 송이 정도는 하루이틀 더 버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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