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2

« 2026/2 »

  • 22
  • 23
  • 24
  • 25
  • 26
  • 27
  • 28

 
 
카잔 성당, 코뉴셴나야 거리, 그리고 네프스키 대로. 너무 그리운 풍경인데 어느새 여기 마지막으로 다녀온지도 수 년이 흘렀다. 
 
 
아주 바쁘고 피곤한 하루였다. 새벽 출근했는데 막상 오늘 해내려던 일은 거의 못했다. 일을 싸들고 오긴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아무래도 월요일 새벽에 가서 몰아서 해치우고 대충 내버릴 것만 같다. 실무자들이 작성한 초안도 많이 손대야 하고 내가 써야 할 항목들도 있는데 너무 지치고 힘이 든다. 오늘은 심지어 갑님들의 회의에서 올해 우리 사업계획을 보고하고 결정을 받는 자리가 있었기에 이것도 여러 모로 기력이 소진되는 일이었다. 
 
 
퇴근길에 간신히 병원에 갔다. 원래 월요일에도 갔어야 했는데 그날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안 갔었다. 오늘따라 도수도, 충격파도 아팠다. 주사도 당연히 엄청 아팠지만 그래도 지난주만큼 아프진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방금까지 업무 전화를 한참 했다. 싸들고 온 일을 주말에 해버리면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너무 피곤해서 안 하고 그냥 뻗어 있을 것만 같아. 자고 일어나면 우렁이가 청소 좀 해놨으면... 내가 밥해달라는 것까지도 안 바라는데, 청소만 해놓으면 되는데... 아 역시 로봇청소기를 사야 하나. 우렁이란 이름을 붙이고... 근데 일린이 '로봇청소기 해킹된대' 라고 너무 리얼하고 냉정하게 한 마디 던진 것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음.
 
 
오늘 퇴근길에 일린과 잠시 통화를 했는데-향수의 결말이 궁금하다고 함. 뭐야 그럼 네가 에릭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잖... 안되는구나. 라스가 또 질투모드 들어가겠구나... 내가 '로봇청소기 너 때문에 안 샀다, 아무도 청소 안해준다, 나 너무 힘들다 피곤하다' 하고 푸념했더니 일린이 '나도 청소 싫어. 그래서 너무 피곤하고 귀찮을 땐 그냥 공기청정기를 가동해놓고 청소 다 된 것처럼 스스로를 속여. 효과 좋아' 라고 해서 날 엄청 웃겼다. 공기청정기 가동하고 자기 기만 모드에 들어가는 게 웃긴 게 아니고-이건 어쩐지 나도 너무 끄덕끄덕하게 되는지라-, 그냥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김. 특히 '효과 좋아'라고 무심하게 덧붙이는 게 우습다. 성실하고 쿨한 사람이 이렇게 말해서 웃긴 것 같음. 그리고는 ‘해킹 얘기해서 미안. 사고 싶으면 사. 해킹 확률보다 네가 청소 때문에 힘들 확률이 더 높은 것 같아’ 라고 하는데 이게 뭔가 이성적/합리적인 말 같으면서도 어딘가 구멍이 있음 :) (위험의 수준이 다르잖아!) 자기가 한 말을 내가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에 미안해하긴 했다. 야, 난 물건 사는 것에 대해선 귀가 얇단 말이야. 특히 가전제품은 고를 줄도 모르고 아는 사람이 먼저 써본 리뷰를 들어봐야 안심한다고.. (옛날 룸메이트였던 쥬인은 ‘토끼는 날 마루타로 생각해’라고 했음. 하긴 요즘 사람들은 마루타가 뭔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무심결에 우렁이라는 말을 해서 그게 뭐냐고 물어보길래 우렁이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일린도 '아 그거 너무 좋다. 그거 보통 요정들이 해주는 거 아닌가? 한국은 그런 손톱만한 조개 같은 녀석들이 해주는구나' 라고 신기해했다(우렁이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엄청 조그만 조개랑 달팽이 섞어놓은 것 같은 놈이라고밖에 설명을 못함 흐흑 나의 영어 실력이 나빠서...) 우렁이 우렁이 하고 혼자 연습을 해보는데 발음 잘 안됨 ㅎㅎㅎㅎ 우로니... 가 되었음. 그는 자기 공기청정기에게 우로니라는 이름을 붙여주겠다고 했다.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우로니 그런 거 아닌데... 눈가리고 아웅하면 진짜 우렁이 아닌데.

:
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