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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향이 너무 강하고 장례식을 연상시키는 꽃이라 직접 사본 적은 거의 없다. 지난 토요일에 오랜만에 랜덤 박스를 주문했더니 거기 이렇게 커다랗고 향이 아주 강한 오리엔탈 화이트 백합이 여러 송이 들어 있었다. '백합은 별로인데 들어 있네'라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나는 가장 사랑하는 무용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저 슬픈 우연이지만 시차를 생각해보면 내가 이 꽃이 든 상자를 열었을 무렵 그가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다.



백합은 지젤 2막에서 알브레히트가 망토로 몸을 감싸고 지젤의 묘로 다가가 바치는 꽃이다. 지젤은 오래 전, 2006년에 내가 제일 처음 그를 마린스키 무대에서 봤던 작품이다. 그때 그는 입단한지 3년밖에 되지 않았고 아주 젊었다.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봤었다. 몇년 후 나는 마린스키에 다시 갔을 때 그의 '젊은이와 죽음'을 보고 완벽하게 사랑에 빠졌다.
 
 
간밤 많이 피곤했지만 이런저런 생각과 슬픔 때문에 늦게 잠들었다. 난방을 해서 더웠는지 새벽 3시에 깨어났고 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세시간 쯤 잔 것 같다. 그리고는 다시 새벽 출근했다. 오늘도 바쁘게 일했다. 하지만 일한다고 마음의 아픔이 가시지는 않았다. 여전히 슬프다. 목요일에 마린스키에서 작별예식을 하고 니콜스키 사원에서 미사를 드린 후 스몰렌스크 묘에 안장된다고 마린스키에서도 어제 공지를 해주었다. 모두에게 개방한다고. 너무나도 가서 인사하고 싶다. 사실 아직도 진짜 인사가 나오지 않는다. 노어로는 할 수 있다. 영원한 추억에 대해, 언제까지나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거라고. 하지만 노어로도 그 마지막 작별인사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 목요일에는 할 수 있겠지. 너무나도,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프다. 가엾고 불쌍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잠을 너무 못 잤고 밥도 잘 먹히지 않아서 매우 피곤하다. 점심땐 죽을 먹고 저녁엔 단감 1개와 포도 몇 알을 먹었다. 내일은 좀더 나아지겠지.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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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