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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17. 21:01

11.17 일요일 밤 : 애도에 필요한 힘 fragments2024. 11. 17. 21:01

 
 
 

거실에 놓아둔 식탁 겸 티테이블 위에는 액자 두 개를 세워놓는다.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 이 액자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 슈클랴로프의 화보에서 이 2017년 프로그램 사인본으로 바꿔놨던 것이다. 그는 블라디보스톡 프리모르스키 마린스키 분관에서 곱사등이 망아지의 이반을 췄고 이틀 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갈라 공연을 했다. '고팍'과 '나를 버리지 마', '발레 101', 그리고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을 췄다. 그 무대들은 너무나도 훌륭해서 관객 모두는 완전히, 완벽하게 사랑에 빠졌다. 공연을 마친 후 그는 로비에서 사인회를 했고 나는 저 프로그램과 다른 사진 몇 장에 사인을 받으며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프로그램이다. 여기에는 영어로 사인을 해주었다. 아래에는 오시포바의 사인도 있다. 

 
 
액자에 끼워진 사인과 프로그램을 보니 그때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슬퍼졌기 때문에 다른 사진으로 바꿀까 했지만 사진을 보니 정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놓아두었다. 
 
 
잠을 거의 못 잤다. 새벽 늦게까지도 잠이 오지 않아 약을 반 알이나 더 먹었지만 세시간도 못 자고 깨어났다. 오후까지 내내 심장을 둔탁한 뭔가로 계속 두들겨맞는 느낌이 들었다. 충격도 그렇고 너무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온갖 안좋은 추측과 가설, 미디어와 코멘트들이 이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은 보고 싶지 않았지만 보였다. 가버린 사람이 너무나 허망하고 아쉽고 슬프고 불쌍했다. 그러다 오후 늦게 쥬인과 통화를 했고 그때 울음이 나왔다. 쥬인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무척 놀랐다. 울면서 이야기를 했고 쥬인은 위로를 해주었다. 걔는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서 사랑받았으니까, 널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줬으니까 이제 괜찮다고 말해준 것 같다.



나는 그저 그가 너무 불쌍하고 안됐고 아까웠다. 그래서 울었고 울고 나면 좀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조금은 나아졌다. 적어도 가슴을 두들겨대는 충격은 좀 가라앉았다. 이후엔 이웃님들과도 잠시 톡과 dm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쨌든 이제 새벽 출근을 해야 하니까, 출근하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그 모든 무시무시하고 골치아픈 일들을 해내는 동안에는 마음이 덜 아플 거라고 생각하며, 잠시 후 잠자리에 들어보려고 한다. 사랑하고 아꼈던,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아끼는 무용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지만 막상 말로 표현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큰 충격과 아픔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몇몇 글 파편들을 썼지만 차마 정말로 작별인사의 말은 아직도 쓰지 못한다. 어쩌면 제대로 된 애도에도 많은 용기와 힘이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는 단순한 무용수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선 내게 뮤즈처럼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잠을 못 자서 머리가 너무 아프다. 생각을 하지 말고, 마음의 스위치를 조금 닫아야 하는데 여전히 이건 어렵다. 올해는 정말 많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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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