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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6. 19:13

쓰는 중 - 모피코트와 스카프 about writing2022. 8. 6. 19:13

 

 

 

 

 

작년에 구상해서 올초에 쓰기 시작했던 글을 아주 느리지만 어쨌든 꾸준히 조금씩 쓰고 있다. 처음엔 원래 쓰려던 글과 여러가지로 연동되는 이야기라 '쌍둥이'라 불렀고 지금은 아직도 제목을 정하지 못해서 임시 파일명으로 저장하고 있는 lida 라고 부른다. 총 4장 정도로 구성되는데 이제 3장 중반으로 진입했다. 1장과 2장은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2층 카페, 3장은 호텔 뒤의 바닷가와 리다가 예전에 살던 집, 4장은 바실리예프스키 섬과 게냐의 원룸 스튜디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데, 이전의 눈의 여왕 때도 그랬고 게냐가 나오는 글은 장소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다. 이게 인물의 특성이라기보다는 내가 너무 쓰는 속도가 느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함 ㅠㅠ 하지만 노동에 시달리고 해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시간도 없고 집중력도 점점 떨어지고 에너지도 닳아서 어쩔 수가 없다고 게냐에게 변명을 해본다 (게냐 : 뭐 임마 이건 그저 네가 게을러서 그런 거얍! 미샤가 주인공이었다면 이렇게 늦게 썼겠냐!)

 

 

 

발췌한 두 파트는 2장 도입부, 그리고 3장의 도입부이다. 전자에서는 헤어진지 3년만에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카페에서 다시 만난 게냐와 리다가 어색한 침묵에 잠겨 있다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후자는 공기가 답답해서 힘들어하는 리다 때문에 둘은 잠깐 바람을 쐬러 호텔 뒤에 있는 바닷가로 나온다. 제목의 스카프와 모피코트는, 발췌한 이야기들 양측에 모두 등장하기 때문에... 

 

 

 

맨위 사진은 2016년 12월, 페테르부르크 아스토리야 호텔의 부티크 매장에 진열되어 있던 스카프와 가방. 방에 올라가려고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로 갈 때마다 훑어보며 '정말 예쁜데, 내 스타일인데' 하고 지나갔었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스카프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이지만, 디올 스카프 이미지 받아놓은 게 없어서 찾기 귀찮아서... 각 글은 접어둠.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2장 도입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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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몇 분 정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각도를 좀 틀어서 그녀의 왼쪽 귀와 목덜미와 어깨, 소파 왼쪽에 걸쳐진 모피코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무대용 시선 처리 기술이다. 이런 건 군무나 마임을 맡았던 신입 시절 유용하게 써먹곤 했다. 물론 누구에게나 통하는 건 아니었다. 동료 무용수들에겐 먹히지 않는다. 적어도 실생활에서는. 당연하지만 미샤도 마찬가지다. 다만 자기에게 그런 게 안 통한다는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그는 보통 상대가 술수를 부리면 아는 척도 모르는 척도 하지 않고 침착한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는 부류에 속했다. 리다 같은 여자에게도 통하지 않는다. 리다는 자기 앞의 남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혹은 뭔가를 감추거나 불편한 게 있는 게 아닌지, 또는 자기의 매력에 사로잡혔는지 아닌지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능력이 있었다. 아마 지금도 내가 자기를 쳐다보는 척하면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자기도 지금 어색한 상황이라 그냥 나를 봐주고 있는 것이지, 안 그랬으면 벌써 화를 냈을 것이다.

 

 

 “ 그거 디올이야? ”

 

 

 갑작스럽게 리다가 물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리다는 손을 뻗어 내 머플러 끝을 가볍게 만지며 질문을 되풀이했다.

 

 

 “ 디올 같은데. 라벨이 안 보이니까 헷갈리네. ”

 

 “ 나도 잘 몰라. 그냥 손에 잡히는 거 매고 나왔어. 바람 많이 불어서. ”

 

 “ 뒤집어서 둘렀잖아. ”

 

 

 

 그녀는 거리낌 없이 내 머플러를 술술 풀어서 뒤집은 후 다시 매어 주었다. 스카프 귀퉁이를 톡톡 치며 디올 로고를 확인하더니 빙긋이 웃었다.

 

 

 

 “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뒤집어놓으면 어떻게 해. 근데 이런 색깔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았나? 이거 네가 산 거 아니구나? 그 사람 건가? ”

 

 

 

나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모른 척하며 기억을 더듬어 대꾸했다. 

 

 

 

 “ 아, 그래. 산 거 아냐. 지난번에 잡지 촬영했을 때 받았던 것 같아. 기념품으로. ”

 

 

 “ 오, 그 엘르. 기억나네. 두 권이나 샀지. 스크랩도 했는데. 가지고 올 걸 그랬나? 사인이라도 받게. 근데 그 화보 보니까 넌 디올보단 아르마니가 더 잘 어울리더라. 그쪽 걸 받았으면 좋았을걸. ”

 

 

 

 나는 그 촬영에서 걸쳤던 브랜드들이 뭔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촬영장은 정말 어수선했다. 발레 화보 촬영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옷과 스카프와 신발, 모자 따위를 계속해서 바꿔가며 걸쳐야 했다. 목걸이와 시계도 있었던 것 같다. 갈아입을 옷가지들을 한 아름씩 가져다주며 코디네이터가 브랜드명을 따발총처럼 주워섬겼고 사진사는 역시 귀가 따갑도록 빠르게 각종 주문을 쏟아놓았다. 심지어 미국인이라 영어를 잘 알아듣기도 어려웠고 촬영을 담당한 잡지 쪽 에디터가 통역을 해줬지만 그나마도 패션 업계용 억양과 특수용어들로 오염돼서 절반 이상은 소용이 없었다. 내가 고전하자 함께 촬영 중이었던 미샤가 몇 단어로 핵심만 전달해줬는데 차라리 그게 더 이해하기 쉬웠다.

 

 

 어쨌든 머플러 덕에 어색했던 분위기가 좀 누그러졌고 나는 리다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일 년만이었고 이렇게 단둘이서 차분하게 얼굴을 마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3장 도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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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호텔 뒤로 돌아서 천천히 바닷가 쪽으로 갔다. 하늘은 어둑어둑했고 싸늘한 해풍이 거세게 불어왔다. 이미 11월이었고 바닷가를 산책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그것도 이런 저녁에는. 주변의 모든 것이 황량했고 우중충한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파도치는 바다는 물거품조차 탈색된 잿빛으로 보였다. 바람이 점점 심해졌기 때문에 나는 리다의 코트 단추를 여며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코트에는 지퍼도 단추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그냥 숄처럼 어깨에 걸치는 멋내기용 모피였고 길이도 짤막했다. 리다는 찬바람이 칼날처럼 파고드는데도 코트를 두 손으로 여며 쥘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반소매 니트 드레스와 얇은 스타킹, 아름답고 무용한 모피코트라니. 나는 내 스카프를 풀어서 그녀의 목에 한 바퀴 둘러주었다. 리다는 무의식적으로 스카프를 여몄지만 잠시 후 그것을 훌훌 풀어서 내게 돌려주었다.

 

 

 

 “ 안 추워? ”

 

 “ 추워. ”

 

 “ 그럼 하고 있어. ”

 

 “ 매고 싶지 않아, 그 사람 건. ”

 

 “ 내 거야. 엘르에서 줬다고 했잖아. ”

 

 “ 화보에서 매고 있었어, 둘 다. ”

 

 

 

 이해할 수 없는 논리였다. 하지만 굳이 더 실랑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스카프를 접어서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위의 사진은 2006년 9월말(이미 진짜 오래 전이다!)에 여기서 등장하는 그 바닷가에서 찍은 것이다. 이때는 아직 9월말이라 덜 황량하고 구름 사이로 햇살도 스며나온다. 

 

 

 발췌문들에서 언급되는 게냐가 스카프를 득템하게 된 그 엘르 화보 촬영 수난기는 작년에 쓴 단편 '눈의 여왕' 에도 등장한다. 이 폴더에도 일부 발췌해 올린 적이 있다. 링크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11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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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