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xette 몇 곡 + 사랑과 추억을 담아, 옛 이야기 조금 arts2021. 8. 5. 17:07
오랜 옛날의 일이다. 내가 샀던 첫번째 cd는 스웨덴 팝락 듀오 Roxette의 Look sharp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큰맘 먹고 cd 플레이어를 사주셨다. 당시엔 cd가 대세로 등장할 무렵이었고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cd 플레이어를 가졌다고 하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고대하던, 값비싼 파나소닉 씨디 플레이어 더블데크(당시 아버지랑 용산에 가서 여기저기 뒤져서 공들여 골랐던 플레이어이다)를 장만한 후 신이 나서 동네 음반 가게에 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골라서 샀던 cd가 바로 록시트의 해외 데뷔 앨범이었다. 저 앨범은 물론 80년대 후반에 나와서 히트했기 때문에 이미 한참 지난 터라 신상은 아니었지만, 하여튼 나는 당시 가장 좋아했던 가수인 조지 마이클조차도 뒤로 하고(뭐 그의 모든 앨범은 이미 테이프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ㅎㅎ) 록시트의 Look sharp을 선택했다. 아래가 그 음반 표지.
** 아래는 록시트에 대한 나의 추억 몇 토막. 스크롤이 좀 있어 글은 접어두었음. 노래만 들으시려면 그냥 접은 글 아래로 가시면 됩니다.
물론 그게 내가 처음으로 산 록시트 앨범은 아니었다. 아마도 91년으로 기억하는데, 지구촌영상음악인가 아니면 다른 팝음악 소개 프로에서(어쩌면 출발 비디오여행이었을수도 있음. 그 프로에서도 초창기에 팝음악을 하나씩 소개해줬던 것 같기도 함. 근데 너무 옛날이라 긴가민가) 신곡이라면서 록시트의 Joyride를 소개해주었다. '다소 선정적이긴 하지만' 이라는 멘트가 달려 있었고 소개 자막에는 아바 이후 스웨덴 최고의 팝 밴드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뮤비는 좀 정신이 없었고 키치했는데(아래 뮤비 링크로 들어가보면 느껴지겠지만 딱 90년대 초반 느낌이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오 얘네 좋아'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 후 일요일에 교회 예배를 빼먹고 동네를 쏘다니다가 음반 가게에 가서 꿍쳐놓은 용돈을 내밀고 록시트의 조이라이드가 수록된 신상 테이프(!)를 샀다. 이 음반이 아주 명반임.
(바로 이 앨범)
나는 중고등학교 때 가요를 거의 듣지 않았다. 팝음악을 좋아해서 항상 팝송과 락음악을 들었다.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전에도 적었듯 조지 마이클이었고 밴드/듀오/그룹은 바로 이 록시트였다. 테이프가 닳도록 들었는데 이들의 해외 데뷔 음반인 Look sharp은 이상하게도 테이프를 팔지 않아서 슬퍼하다가 씨디 플레이어를 장만한 후 음반 가게에서 씨디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샀던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앨범만 씨디로 갖고 있고 나머지 록시트 앨범은 모두 테이프로 샀다. 90년대 중후반까지 열심히 이들의 앨범을 샀는데 이들이 투어 이후 활동을 잠정 중단하면서, 그리고 내 관심사가 데이빗 보위 쪽으로 옮겨가면서 이후에는 옛날 곡들만 듣고 새로 나오는 음악엔 별로 신경을 안썼다. 그래도 러시아에 갔을때 좌판에서 파는 복사 테이프들 가운데 이들의 첫 데뷔 앨범 pearls of passion을 발견(그건 스웨덴에서만 발매됐었다)하고 좋아하며 샀었다. 나중엔 냅스터(!)에서 mp3들을 내려받아 들었다.
이후 메인 보컬인 마리가 뇌종양 투병으로 활동을 중단했다는 소식에 무척 슬퍼했었고, 2010년대 중반 다시 투어를 함께 한다는 얘기에 '오 다행이야' 하고 좋아했었다. 그러다 2019년 12월에 마리가 세상을 떠났다. 무척 슬펐었다.
나는 지금도 내 마음 속에서 마리 프레데릭슨을 능가하는 여성 보컬은 없다고 생각한다. 독특하고 힘있고 강렬하고 또 아름다운 보컬이다.
지금 쓰는 글이 90년대 후반을 다루고 있어서 당시 들었던 노래 몇곡을 유튜브 뮤비로 찾아서 다시 보다가 추억에 이끌려 록시트 뮤비들을 따라갔는데 생각보다 더 가슴이 찡했다. 그리고 다시금 느낀다, 아 정말 나 이사람들 좋아했는데. 아, 정말 마리의 보컬은 훌륭해... 아, 나 정말 페르 게슬레를 좋아했어 하면서.
록시트의 메인 보컬리스트는 마리 프레데릭슨. 작사 작곡, 기타리스트 겸 남성 보컬(그러니까 메인 보컬 빼고 전부)은 페르 게슬레이다. 페르는 지금도 활동 중이다. 마리가 원체 불세출의 보컬이라 페르가 좀 비교되긴 하지만, 나는 이 사람 보컬도 좋아했고 이지 리스닝이면서도 굉장히 멜로딕하고 매력적인 노래를 쓰는 이 사람을 싱어송라이터이자 뮤지션으로서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이 사람 솔로 앨범도 샀다)
옛날에 록시트 노래 같이 듣고 있으면 내 남동생이 나를 자주 놀렸다. '누나가 좋아하는 저 남자는 참 대단한 보컬이야. 아무리 높여 불러도 한 옥타브를 넘어가지를 않아 ㅋㅋㅋ' 하면서.... (참고로 내 동생은 노래를 매우 잘하는 녀석임) '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좋단 말이야! 가창력이 전부는 아니잖앗' 하고 나는 반항하곤 했다. 근데 페르가 톤이 단조로워서 그렇지, 그리고 마리랑 비교돼서 그렇지 이 남자가 그렇게 노래 못하진 않는단 말이야 ㅠㅠ
국내에서 록시트는 프리티 우먼의 주제곡 중 하나인 It must have been love로 가장 유명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조이라이드 정도일까. 아래 내가 특히 좋아했던(그리고 뮤비나 실황 영상이 있는) 록시트 노래 몇 곡 유튜브 링크로 공유해본다.
https://youtu.be/yCC_b5WHLX0?list=PLCSfalJkj4wGOm8ZpwhJbr7ZugcqKy-u0
Listen to your heart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고 록시트 팬들 중에서도 이 곡을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마리의 보컬이 아주 훌륭하기도 하고, 노래 자체가 갖는 파워와 정서적 감동이 있다. Look sharp에 수록된 곡이고 1988년 빌보드 1위 곡이다. 이 노래는 신기하게도 러시아 라디오에서 더 자주 들었다(러시아에서 록시트가 아주 인기가 많았음. 뻬쩨르와 스웨덴이 가까워서였을지도) 그래서 러시아에 갔을 때 라디오에서 생각지 않게 이 노래가 흘러나온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때마다 어쩐지 눈물이 찡해진다. 이 곡 듣고 있으면 좀 벅차다.
https://youtu.be/k2C5TjS2sh4?list=PLCSfalJkj4wGOm8ZpwhJbr7ZugcqKy-u0
It must have been love
이게 프리티 우먼 주제곡. 줄리아 로버츠의 앳된 모습이 나온다.
이 노래는 원래 페르 게슬레가 크리스마스 곡으로 써서 녹음한 거였는데 갑자기 프리티 우먼 영화측에서 노래를 달라고 해서 '어떡하지 노래가 없는데' 하다가 이 노래를 생각해내고는 가사를 조금 바꿔서 재녹음했다고 한다. 가사에서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winter로 바꾸었다고 함. 이 노래도 정말 좋다. 이 노래는 아마 클릭해보시면 '아 이 노래 들어봤어' 하실 것 같음. 이것은 1990년 1위 곡이다. 록시트는 위의 릿슨 투 유어 하트, 이 노래, 조이라이드, 그리고 the look으로 4번 1위를 했고 그외 2위 곡들도 있었다. 이렇게 적고 나니 세월이 무상하네...
https://youtu.be/1I3ebe7ykGI?list=PLCSfalJkj4wGOm8ZpwhJbr7ZugcqKy-u0
Joyride
이것이 내가 이들을 첨 알게 되었던 그 노래. 조이라이드. 얼마전 조이라이드 30주년 기념으로(으악 30주년이래 ㅠㅠ) 페르 게슬레가 인터뷰도 하고 위 뮤비도 리마스터링한 버전이라고 한다. 이 뮤비는 보고 있으면 진짜 옛날 느낌이다. 오히려 라이브 무대 영상들은 화질만 나쁘지 옛날 느낌까진 많이 안나는데 이 뮤비는 딱 그 당시 스타일과 느낌이 총출동되어 보는 맛이 또 있다. 몽타주부터 시작해서 의상이나 유머, 촬영 방식 등등 :)
https://youtu.be/8fGLiIvKKys?list=PLCSfalJkj4wGOm8ZpwhJbr7ZugcqKy-u0
Fading like a flower
조이라이드 앨범에 수록되었던 노래인데 나는 이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마리가 무척 매력적으로 노래를 한다.
https://youtu.be/VFNRh26TPmM?list=PLCSfalJkj4wGOm8ZpwhJbr7ZugcqKy-u0
Dangerous
look sharp 앨범에 수록되었던 노래인데, 나는 데인저러스라고 하면 마이클 잭슨보다 이 노래를 먼저 생각하곤 해서 당시 친구들에게 쿠사리를 듣곤 했다. 이 노래도 되게 좋다. 위의 페이딩 라이크 어 플라워와 함께 이 노래는 빌보드 2위를 했었다. (당시엔 빌보드 순위를 막 외곤 했는데 지금은 하나도 모름. 옛날에 이렇게 빌보드 곡들 좋아하고 엠티비 곡들과 함께 자랐던 세대라 BTS가 빌보드 1위하고 있는 거 보면 깜짝 놀라며 감탄함)
https://youtu.be/oDMtjhG1dkc
Paint
이건 내가 아끼며 좋아하는 노래. 역시 look sharp에 수록된 노래인데 노래 자체와 마리의 보컬이 엄청 근사하다. 특히 중간에 노래의 국면이 확 바뀌면서 마리가 하이 피치로 치고 나오는 부분을 좋아함.
https://youtu.be/El7GVPUl-r0?list=PLCSfalJkj4wGOm8ZpwhJbr7ZugcqKy-u0
Almost unreal
마지막은, 영화가 쫄딱 망하긴 했어도 노래만은 좋았던 올모스트 언리얼.
이것은... 슈퍼 마리오가 영화화됐을 때 사운드트랙에 참여했던 록시트가 부른 노래이다. 그래서 뮤비에 슈퍼 마리오 영화가 나온다(영화는 총체적 난국이었음. 그래서 팬들이 폭망 영화에 이 좋은 노래가 웬말이냐 하고 어이없어함) 페르 게슬레도 이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 때문에 힘들었다고 ㅜㅜ 하지만 노래는 좋은데... 이 버전은 공식 버전이라 마리가 부르는데, 사실 나는 이 노래의 데모 버전을 더 좋아한다. 그건 페르가 불렀는데 좀더 수수하면서도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건 뮤비가 없으므로 이 버전으로 올려봄. 슈퍼 마리오 영화에는 시나몬 스트리트라는 이들의 곡이 하나 더 있는데 그 곡을 듣고 있으면 '페르가 진짜 쫌 이 영화 사운드트랙 하기 싫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함(그 노래는 쫌 대충 쓴 느낌이 든다 ㅋㅋ)
유튜브에 록시트 공식 채널이 있으니 다른 곡들도 궁금하시면 거기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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