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러시아 뮤비 : 블라드 스타셰프스키 Позови меня в ночи arts2022. 8. 7. 18:00
작년부터 90년대 후반의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글 몇 편을 써오고 있어서 그 당시 노래도 종종 다시 듣고, 뮤비와 영화도 다시 보곤 한다. 지금 쓰는 '쌍둥이' 혹은 'lida' 라는 가제의 단편을 쓰면서는 특히 이 곡을 자주 듣고 있어 뮤비를 올려본다. 가수는 블라드 스타셰프스키(Влад Сташевский), 노래는 Позови меня в ночи (밤에 날 불러줘 / 발음은 '빠자비 미냐 브 노치)
90년대 후반 페테르부르크에서 연수를 받으며 기숙사에서 지내던 쥬인과 나는 각각 좋아하는 가수가 있었는데, 이 스타셰프스키는 쥬인이 좋아했다. 그래서 옆에서 항상 같이 뮤비도 보고 노래도 같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긴 머리의 좀더 왕자님 스타일의 가수였음(ㅎㅎ) 그런데 이 블라드 스타셰프스키도 그렇고 내가 좋아하던 가수도 그렇고 러시아 교수님이나 지인들은 '어휴 얼굴만 빤질빤질하지 노래 못해, 제대로 된 가수가 아니야' 라는 혹평을 쏟아놓곤 해서 슬펐다 ㅎㅎ 당시 러시아는 소련붕괴 후 혼돈의 90년대였고 각종 자본주의를 비롯 온갖 광고와 뮤비 등도 물밀듯 밀려들어왔는데, 기존의 인텔리겐치야 청자들을 비롯해 소련 시절의 '가창력 위주' 가수들에게 익숙해진 사람들은 외모를 앞세워 이지 리스닝 계열의 노래와 90년대 후반 식의 빤질빤질하고 스타일리쉬한 뮤비를 찍어대는 가창력 별로 없는 미남 가수들에 대해 전혀 관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녀팬들은 열광하고... 이미 엠티비와 각종 우리나라 뮤비에도 익숙해진 나와 쥬인에겐 뭐 비판할 여지따윈 없이 '오 잘생겼다, 오 멋있다, 오 노래 멜로딕하다~ 오 뮤비 재밌다' 하며 즐겁게 이들을 좋아했다.
이 노래를 부른 블라드 스타셰프스키는 당시 20대 초반이었는데 일종의 마이다스의 손 피디에 의해 스타가 된 케이스다. 가창력은 혹평을 받았는데, 이 노래에서는 그래도 적절한 음역대를 오가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 다른 노래들을 들어보면 곡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나는 이 가수가 딱히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이 노래는 상당히 좋아했다. 멜로딕하고 가사도 잘 들리고. 이 노래 말고 다른 뮤비들에선 이 사람이 심히 헐벗고 나와 이두근과 등근육을 자랑하곤 했는데 쥬인은 '너무 멋있지 않니~' 라고 좋아하고 나는 '좀 심하게 몸이 좋은걸' 하고 투덜댔다(당시만 해도 내가 근육질을 별로 안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 청년은 그렇게 심한 근육질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뮤비의 이 청년이 그저 해맑고 이쁘게만 보인다. 옛날엔 어휴 넘 떡 벌어졌어 좀 부담스러워~ 했는데 ㅋㅋ)
어느날 쥬인이 좌판에서 파는 신문인가 잡지를 보고 '블라드가 결혼한대!' 하고 슬퍼하였고 우리는 그 신문을 사와서 열심히 읽었다. 신부는 무슨 게네랄의 딸(당시엔 장군의 딸이라 생각함)로 잘나가는 여자라고 하였는데 우리 눈에는 너무 못되게 생긴 금발 여인이라 '어머 블라드가 아깝다' 라고 했다. 최근에 90년대 러시아 문화에 대한 sns에서 이 사람이 몇년 후 그 여자와 이혼하고, 또 자기를 스타로 만들어줬던 피디와도 결별한 후 홀로서기를 했다가 실패했다는 기사를 읽고는 '아유 좀 안타깝네' 라고 생각했었다. 알고보니 그 게네랄은 장군이란 뜻의 게네랄이 아니고 그 뒤에 단어가 몇개 더 있었다. 즉, 노브이 루스키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한 거였는데 그녀에게 이혼당한 후 아들과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슬픈 스토리가 있었다. 그래도 몇년 전부터 다시 토크쇼에도 나오고 또 공연도 하는 것 같다. 그 사이에는 재혼도 하고 뭔가 사업도 하고 그랬다 함.
하여튼, 글을 쓰면서 이 노래 자주 듣는 이유는
1. 원래 좋아하는 노래여서
2. 이 가수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주인공과 얼추 나이도 비슷하고(둘다 74년생이라 글의 배경에선 20대 초반) 훤칠해서(외모는 그리 비슷하지 않다만 스타일은 조금 비슷했을것 같기도 하다- 다리가 긴 게 좀 비슷할 듯 ㅋ)
3. 이 뮤비가 상당히 딱 그 당시 90년대 풍경을 잘 담고 있어서.
4. 지금 쓰는 단편은 주인공 게냐랑 그의 전 여자친구 리다의 옛 연애담과 헤어진 이후 오랜만에 만나 주고받는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 이 뮤비를 보면 가수 블라드와 상대역으로 나오는 아름다운 여인의 알콩달콩 데이트 풍경이 나와서.
5. 원래 이 글에서 리다랑 게냐가 이 노래를 같이 듣는 장면을 삽입하려 했는데 아직 안 썼음. 근데 아마 안 쓸것 같긴 함
6. 뮤비의 로케이션을 정확히 모르겠다만, 보통은 모스크바에서 찍었을 것 같긴 한데 맨앞에 나오는 공원 뒤의 실루엣이나 중간의 바닷가 비슷한 풍경, 얼어붙은 강가와 작은 배 등 은근히 페테르부르크 같기도 하다. 모스크바에도 강이 있어서 정확하진 않다만, 하여튼 페테르부르크랑 좀 비슷한 느낌이 있음.
뮤비는 아래 유튜브 링크. 내용은 엄청 간단해서, 이쁜 여친이 있는 이 블라드란 녀석이 다른 여자랑 양다리 걸치다가 여친이 그 광경을 목격, 헤어지게 됨. 그러나 주인공은 계속해서 이 여친을 잊지 못하고 밤이 되면 날 불러줘, 갈게~ 운운 하는 이야기임. 가사도 딱 그런 얘기다. 이 노래는 96년에 공전의 히트를 했다는데 나랑 쥬인이 갔을때는 그 이후 이 사람이 낸 다른 노래 뮤비들이 히트해서 이 뮤비는 본 적이 없었다. 이 뮤비는 오히려 러시아에서 돌아온 후에, 그것도 최근 몇년 전에야 유튜브에서 봤다. '어머 블라드 이 뮤비는 참 잘 찍었네' 하고 깜짝 놀랐다(다른 뮤비들은 좀 이상한 게 많음 ㅋㅋ 그래서 내가 맨날 쥬인을 놀렸음) 뮤비에 나오는 긴 머리의 코트 차림 여친 역할 맡은 여인이 참 이쁘다 :) 그리고 역시 당시 매력 섹시 미남으로 인기를 떨치던 가수라 중간에 뜬금없이 이 블라드가 욕조에 들어가는가 하면 상의를 벗고 사진을 찍는다(전자는 그렇다치고 후자는 내러티브 상 참 뜬금없음 ㅎㅎㅎ) 그래도 뮤비 자체는 당시를 생각하면 준수하게 잘 찍었다. 노래도 여전히 좋다~
노래 가사는 내가 옛 추억을 되살리려고 아래 붙여봄. 이 가사에 대해서도 추억이 있는데, 당시 쥬인과 나, 거북이는 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연수를 받고 있었다. 그 중 음성학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이 수업을 엄청 싫어했다. 나는 어학보다는 문학을 좋아해서 정말 음성학이 재미없었다. 그리고 그 교수님도 너무 지루했다. 쥬인은 반대로 음성학을 더 좋아했음, 그런데 하도 학생들이 음성학 시간에 땡땡이를 치고 졸자, 교수님이 새해부터는 수업시간마다 우리가 좋아하는 곡 한곡을 듣고 가사를 받아적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것이 의외로 참 재미있었다 ㅎㅎ 그래서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한곡씩 가져갔다. 당시에는 원체 해적판 테이프나 씨디가 판을 쳤고 인터넷도 별로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노래 가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날 쥬인이 이 노래를 가지고 갔고 우리는 다같이 수업시간에 이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받아적었다. 못 알아듣는 단어는 교수님이 알려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교수님은 당시 중년 여인이어서 우리가 온갖 꽃미남들의 노래를 가져오면 속으로 쫌 웃으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러시아 가수 노래들은 가사도 시적이고 심오하고 가창력 또한 훌륭하기 때문이다(브이소츠키 뭐 이런 분) 그런데 우리는 막 이런 가수 노래를 가져오고, 가사도 다 너무 쉽고 또 통속적이기 짝이 없어서 ㅎㅎ 이 노래는 뮤비와 비슷한데, 방탕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진 후 자기를 돌아보며 사랑을 토로하는 가사였다. 내용은 대충 '난 막 살았지, 방탕했지, 바람도 피웠지 근데 널 잃고 나니 만사가 끝난 것 같고 세상 모든 여자가 싫고 네가 돌아오기만 바란다, 밤이 되면 날 불러줘, 내가 갈게, 나 쫓아내면 나 미쳐버릴거야' 운운... 그런데 이 가수의 발음이 은근히 명확해서 듣기가 참 좋았다 ㅎㅎㅎ
가사를 받아적다가 중간에 '브세흐 줸쉰 야 도 스메르찌 바즈네나비젤, 까그다 야 찌뱌 빠쩨랼 Всех женщин я до смерти возненавидел, Когда я тебя потерял' 이란 가사가 나오자 교수님을 비롯해 우리 모두 웃어버렸다. 그뜻은 '널 잃고 난 후 난 모든 여자들을 죽도록 증오하게 됐지' 란 뜻이다. 아니 지가 바람피고 방탕하게 살아놓고 차였다고 왜 애꿎은 다른 여자들을 그냥 기피하는 것도 아니고 죽도록 증오해? 근데 또 이 부분이 그냥 들을 때는 멜로딕하고 괜찮아서 자꾸 흥얼거리게 됨. 2절에 가서는 '악마의 무도회는 끝났다'라는 허세넘치는 가사도 있음 :) 하여튼 그래서 추억을 되살리며 아래 가사도 붙여놓고 마무리.
Позови меня в ночи
Влад Сташевский
Я жил по старинной привычке
И свой ритуал не менял
Но стал для меня целый мир безразличным
Когда я тебя потерял
Я жил не святой не провидец
Кутил и тебе изменял
Всех женщин я до смерти возненавидел
Когда я тебя потерял
Позови меня в ночи приду
А прогонишь прочь с ума сойду
Всех из памяти сотру друзей
Лишь бы ты всегда была моей
Позови меня в ночи приду
А прогонишь прочь с ума сойду
Всех из памяти сотру друзей
Лишь бы ты всегда была моей
Шло время в игре бесполезной
И кончился дьявольский бал
И понял тогда что стою я над бездной
Когда я тебя потерял
Позови меня в ночи приду
А прогонишь прочь с ума сойду
Всех из памяти сотру друзей
Лишь бы ты всегда была моей
Позови меня в ночи приду
А прогонишь прочь с ума сойду
Всех из памяти сотру друзей
Лишь бы ты всегда была моей
Позови меня позови меня позови меня позови
Позови меня в ночи приду
А прогонишь прочь с ума сойду
Всех из памяти сотру друзей
Лишь бы ты всегда была моей
Позови меня в ночи приду
А прогонишь прочь с ума сойду
Всех из памяти сотру друзей
Лишь бы ты всегда была мое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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