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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돌아와서는 너무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한동안 침대에 기대어 뻗어 있었다. 너무너무 졸렸지만 꾹 참았다. 자버리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차를 마시고 싶어 미칠 것 같았는데 휴대폰 충전을 시키느라 한시간 쯤 방에서 쉬다가 라운지로 내려갔다. 이 호텔에는 바 옆에 작은 델리 샵이 있는데(Lourse 라고 한다) 내부에는 아주 작은 테이블 두어개 뿐이라 다들 호텔 로비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신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이 호텔과 좀 안 맞는 점이 있었다. 라운지 소파 다 좋긴 한데 소파들이 너무 크고 테이블이 너무 낮고, 차 마시는 분위기가 별로 편안하지가 않다. 워낙 화려하고 멋있는 호텔이라 돈들인 티가 많이 나긴 하는데 막상 티타임의 아늑함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카페를 하나 제대로 만들어두면 좋았을텐데. 어제 갔던 바는 좋았는데. 홍차도 결국 조식 먹었던 레스토랑 아니면 그 바에서 우려다 주는 걸 보니 그냥 바에 갈 걸 그랬다. 바는 6시에 연다고 했는데 아까 들어오면서 보니 5시 즈음 이미 영업 중이어서 '에이 그냥 바에 갈 걸' 싶었음. 바에 앉아서도 케익과 차를 먹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일 다시 가볼지도 모르겠다. 다즐링을 시켰는데 조식 먹을 때와 똑같은 찻잔과 포트, 차도 똑같아서 조금 아쉬웠다. 시그니처 케익을 시켰는데 초콜릿과 견과 코팅된 초코 스폰지 케익 안에 자두잼이 들어 있었다. 별로 내 취향은 아니었고 역시 초코케익은 부담스러워서 다 먹지는 못했다. 그냥 메도빅 먹을 걸 괜히 시그니처 케익 먹었어 ㅠㅠ(메도빅 처음으로 발견했는데...)

 

 

차를 마신 후 이렇게 좋은 날씨는 오늘로 마지막이어서 더 이상 공원에 앉아 있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책을 들고 다시 사스키 공원에 갔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한다) 첨엔 브리스톨 카페 맞은편의 작은 공원에 갔으나 벤치가 꽉 차 있고 자꾸 우크라이나 모금 요청하는 분들이 다가와서 소피텔과 광장 쪽으로 한바퀴 돌아서 사스키 공원으로... 

 

 

 




 

이번엔 분수 앞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분수 사진은 의외로 별로 이쁘지 않아서 뺌) 

 

 

 




 

조식 테이블에서 집어온 납작 복숭아(이거 엄청 맛있었음), 그리고 비에드론까에서 샀던 파프리카맛 감자칩. 꽃게맛 우크라이나 감자칩에 비해 맛있었다. 이것들을 먹으며 챈들러 서간집을 읽었다. 

 

 

그리고는 '아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이 동네 별다방도 궁금하니 가보고프다' 라는 마음에 노비 쉬비아트로 다시 걸어갔다. 이 거리에 제일 많이 간 것 같다. 가는 길에 성 십자가 교회에 들렀다. 며칠 전엔 미사 중이라 못들어갔는데 오늘은 저녁 시간이라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는 쇼팽의 심장이 묻힌 곳으로 유명한 교회인데 제단 앞까지는 가지 않았고 그냥 기도를 좀 하고 초를 하나 켰다. 여기 초는 아주 작은 몽당초라서 불 옮겨 붙이다가 촛농이 엄지손가락 아래 떨어져 너무 뜨거워서 깜짝 놀랐다 ㅠㅠ 나와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나왔다. 성당 사진 두 장. 

 

 

 




 

 




 

그리고 노비 쉬비아트에 있는 별다방에 갔다. 여기는 리저브 매장이었다. 그리고 날씨가 좋아서 다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어선지 매장 내부가 아주 한적했다. 여기가 또 의외로 좋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오늘 호텔 카페보다 여기 만족도가 더 높았음. 의자도 테이블도 편하고 조명도 밝고 책 읽기도 좋고... 내일 또 올지도 모름. 이래서 결국 나는 자본주의의 노예로 판명됨. (그런가... 근데 호텔 카페가 더 자본주의인 것 같기도...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노예이지 부르주아 귀족은 아닌 거라고 끄덕끄덕...)

 

 

 

 

 

 

책을 마저 다 읽은 후 컴컴해진 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왔다. 추석인데 내내 맑다가 해가 지고 나자 흐려져서 달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부모님과는 오후에 따로 통화를 했는데 잘 계시는 것 같았다. 어제 동생네가 와서 같이 지내고 갔다고 한다. 

 

 

방에 돌아오니 일곱시가 넘어 있었다. 목욕을 하고 간단히 밥을 챙겨먹었다(오늘 이것저것 주워먹은 탓에 그냥 누룽지와 볶음김치 먹음) 그리고 이 메모를 이제야 간신히 다 썼더니 벌써 아홉시 반이네. 여유있는 여행 없어 ㅠㅠ 이번 여행은 전보다 하루이틀 정도 짧기도 하지만 뭔가 매일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처음 와서 돌아다니는 도시라서 그런가. 이제 내일 하루밖에 안 남아서 너무 아쉽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온 곳인데 바르샤바라는 도시 자체에 폭 빠진 건 아니지만 그날그날 재미있게 여행을 해왔다. 아마 처음 절반은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다녀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제 내일은 쉬엄쉬엄 차나 마시고 짐 꾸리고 방에서 좀 쉬면서 보내야겠다. 가방 꾸리기 싫어 엉엉. 

 

 

잊어버리기 전에, 그리고 나중에 한국 돌아가면 시차 때문에 건강 앱의 이동거리가 다 뒤섞이니까 여행 와서 매일 걸었던 거리를 지금 여기 적어둔다. 

 

 

 

9.23 토 : 4.2킬로 / 7,411보 (공항/비행/도착한 날)

9.24 일 : 11.2킬로 / 16,332보 (구시가지, 신시가지, 노비 쉬비아트 다 주파한 날)

9.25 월 : 7.5킬로 / 11,511보 (탐카 거리 등 뒷길, 코페르니쿠스 과학관, 그러다 방에 들어와 카페 자이칙 개장)

9.26 화 : 8.6킬로 / 13,578보 (대사관, 버스로 멀리 이동, 노비 쉬비아트 등등)

9.27 수 : 7.4킬로 / 10,437보 (구시가지 다시, 공원 독서)

9.28 목 : 7킬로 / 9,933보 (구시가지 인어상 광장, 숙소 옮김, 롱 바)

9.29 금 : 8.7킬로 / 12,224보 (문화과학궁전, 시장, 노비 쉬비아트 두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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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곤하게 잤는데 새벽에 깨버려서 다시 한시간 정도 잤다가 결국 여섯시 전후 더 잠들지 못하고 계속 뒤척이기만 했다. 침대는 굉장히 편했다. 바닥에 뭔가가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배기는 느낌이 전혀 없었고 푹신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데 이 편한 침대에서 왜 많이 못 잤는지 ㅠㅠ 그래도 새벽에 깼을 때 너무 곤하게 자서 그런지 내가 어디 있는지 한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여기 시간으로 일요일 정오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여행이 오늘과 내일 이틀밖에 남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그래서 오늘은 여태 안 가본 곳, 안 해본 것들을 해보았다. 어제의 인어상과 좀 비슷하려나. 즉, 도착한 날 시내 진입하면서 실루엣을 보고는 '아아 소련 같다' 라고 생각했던 문화과학궁전, 그리고 시장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외 멋진 호텔에 머무르고 있으니 티타임도 즐기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이 셋은 그저 그런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이 호텔은 조식 포함 요금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삼모사로 좋아하며(더 비싸진 것은 생각하지 않음)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뷔페는 아주 간소했고 주로 달걀 위주의 메인 조식 하나와 사이드 하나를 주문받아서 가져다주었다. 주문하면 갖다주는 건 좋은데 나처럼 가리는 게 많은 사람은 뭐가 이것저것 있는 게 더 좋을 때도 있어서... 달걀 요리의 대부분은 수란이었기 때문에 반숙이나 안익은 계란 안 먹는 나로서는 오믈렛 외엔 선택지가 없음 ㅠㅠ 내일은 프렌치 토스트를 주문해봐야지. 어쨌든 에그화이트 오믈렛과 아보카도 사이드를 주문했는데, 나는 원래 아보카도를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식초와 후추 등 간이 잘되어 있어서(조금 과카몰리 같은 느낌으로 간을 해주었다) 오믈렛과 함께 먹으니 맛있었다(떠나오던 날 공항의 에그드랍에서 먹었던 맛없고 달달한 아보카도 계란 샌드위치와는 하늘과 땅 차이) 오믈렛도 생긴 건 좀 안 예뻐보였지만 실제로 먹어보니 폭신하고 맛있게 잘 만들어주었고 아래 깔린 토스트도 바삭했다. 그것과 홍차를 주문하고, 샐러드와 과일을 조금 가져다 먹었다. 

 

 

조식을 먹은 후 호텔을 나섰다. 오늘도 아침부터 쨍쨍했고 후드티 원피스를 입었음에도 더웠다. 볼트로 택시를 불러서 문화과학궁전에 갔다. 이것은 소련 시절 만들어진 건물로, 박물관, 전망대, 극장 등이 모여 있다(무슨무슨 궁전이란 소련 시절에 잘 붙이던 용어이다. 왕이 사는 궁전이 아니고 ~센터 비슷한 개념이다) 소련에서 소위 '선물'로 만들어준 건물이라는데 폴란드인들이 이 건물을 보면 느낌이 묘할 것 같다. 내려서 보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고 높고 육중하고 꼴보기 싫었다(ㅜㅜ) 내가 모스크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모스크바국립대학교 건물을 비롯해 각종 건물이 너무 크고 무겁고 잿빛으로 내리누르는 느낌 때문인데 바르샤바 한복판에 모스크바의 일부를 이식해놓은 것 같았다. 전망대는 심지어 30즈워티를 넘게 내야 했는데 원래부터 높은 것도 싫어해서 전망대에도 취미가 없고 바르샤바 시내가 그렇게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이것저것 재밌긴 한데 아름다움과 매력 쪽은 좀 덜함) 그냥 입구 로비만 들어갔다가 나옴. 이러려고 내가 택시를 타고 왔는가 싶었지만 그래도 또 안 가봤으면 아쉬웠을테니, 그리고 계속 구시가지와 노비 쉬비아트, 대학가와 대사관, 그 뒷길 등만 다니고 막상 현대적 시내는 별로 안 가봤으니 오늘 다녀온 건 후회하지는 않는다. 

 

 

 



 

너무 높고 육중해서 간신히 전체 높이를 잡고 찍은 사진. 이거 말고는 다 구도가 찌그러짐. 

 

 

그런데! 인어 광장도 원주 광장도 그랬지만 여기도 광장이고! 그늘 하나도 없고 엄청 덥고! 게다가 여기는 중앙역 맞은편이라 엄청나게 번잡하고 크고 난리였다. 너무 더웠다. 게다가 여기서 시장에 가려고 첨엔 걸어가보려 했지만 나의 방향치 특기가 되살아나면서 구글맵이 너무 헷갈렸다. 그래서 택시를 잡으려고 볼트를 불렀더니 내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취소하고는 다시 구글맵 검색을 해서 지하철을 한정거장 타고 가서 걸어가기로 했다(전체 다 걸어가기엔 방향도 헷갈리고 다리도 아프고 더워서) 이리하여 나는 바르샤바에서 지하철을 처음으로 타보게 되었다. 

 

 

 




 

나는 중앙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눈에 보이는 입구로 개찰해 들어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개찰해 내려가자마자 곧장 지하철 플랫폼이 나왔는데 내가 타야 하는 방향은 반대쪽이었던 것이다. 건너가는 계단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뭔가. 이때 지하철이 들어왔고 나는 반대방향임을 알면서 그냥 탔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혹시나 반대로 올라가는 플랫폼이 같이 붙어있지 않을까 하고. 다행히 다음 정거장은 정말로 그렇게 되어 있어서 얼른 내려서 반대방향 지하철을 다시 타고 스비아토크리지스(? 성 십자가 교회 역인데 단어가 맞는지 헷갈림. 일주일째인데 여전히 폴란드어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일단 단어가 너무 길고 자꾸만 w가 나와서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이게 노어를 알기 때문에 더 헷갈리는 건가 싶고... 작년에는 폴란드항공과 공항에서 폴란드어 들으면서 조금만 배우면 금방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아 안되겠구만' 싶다)에서 내려서 구글맵을 보며 시장(hala mirowska)을 찾아갔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았고 찾기가 쉬웠다. 

 

 

 




 

시장 찾아가는 길에 찍은 풍경. 이게 아마 krolewska 거리였을 것이다. 이 풍경은 딱 명동 근방 같다. 첫날에 택시로 숙소 들어올때 이 길과 문화과학궁전 쪽을 지나왔기 때문에 바르샤바의 첫인상은 명동과 모스크바를 섞은 느낌이 되었던 것이다. 혹은 도쿄 같기도 했다. 대도시의 현대식 중심가는 비슷비슷하다. 

 

 

 




 

시장에 도착했다. 도심에 있는 시장으로는 가장 유명한 곳인데, 정오 즈음 도착했으나 이미 로컬들로 우글거렸다. 뻬쩨르의 블라지미르스키 시장이나 빌니우스의 시장이 떠올랐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헬싱키 시장도 좀 비슷했다. 여기는 농산물이 제일 많았고 너도나도 줄을 서서 과일과 야채를 사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자두가 정말 많았다. 폴란드는 자두가 유명한 듯 자두가 들어가는 음식도 많고 여기저기서 자두를 판다. 그러다 드이냐를 파는 좌판을 발견해서 너무 먹고 싶었지만 그 한 통을 먹을 재간이 없으니 그냥 포기. 대신 사람들이 줄서 있는 빵집에서 포피씨드 빵 한 덩어리를 샀다. 그런데 사고 나서 보니 그 가게가 '글루텐 프리'라고 적혀 있었다. 글루텐 프리까진 괜찮은데 그럼 비건인가... 비건 빵은 맛없는데 흐흑... 기껏 여기까지 와서 빵을 샀는데 비건이라 맛없으면 슬플 것 같다. 평소 비건 음식이나 빵을 싫어하진 않는다만 여행와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고... 어쨌든 빵과 케익에는 버터가 들어가야 맛있는데! 

 

 

사진 왼편 가운데는 시장 건물 내부에 있던 어떤 제과점 진열대. 블리클의 박력 있는 에클레어보다 더욱더 박력 있는 크림 범벅 비주얼이라 찍어두었다. 

 

 

시장을 다 구경하고 나오니 너무 배고프고 더웠다(결국 빵 한덩어리 산 게 전부)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어서 구글맵 검색을 해서 근처 정거장에서 106번 버스를 타고 5정거장을 가서 노비 쉬비아트 거리에서 내렸다(이제 버스도 마스터함~) 그리고 며칠 전부터 찍어둔 우크라이나 해산물 식당 czarnomorka에 갔다. 지나가다 생선수프 간판을 보고는 '오오 우하 아닌가' 하며 계속 가고 싶어했던 곳이다.

 

 

미리 메뉴를 검색해서 우하 수프와 새우 올리비에 샐러드만 먹을 생각이었다. 생선구이 시키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하고 비싸서. 그런데 우하는 공짜라고 했다. 이게 웬일인가 했는데 뭔가 미끼용으로 공짜 수프를 셀프로 퍼갈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다. 나는 생선과 해물이 많이 든 진짜 우하를 먹고 싶었는데 들통 가득 들어 있는 우하는 그냥 연어가 아주 얄팍한 부스러기로 둥둥 떠있고 감자와 당근만 가득했다. 국물을 먹으니 좋긴 했지만 제대로 된 우하는 아니었고 그냥 횟집에서 서더리로 대충 끓여주는 매운탕이랑 비슷했다. 물론 맵지는 않았지만. (횟집 매운탕 특유의 그 맛을 기름져서 안 좋아하는 1인)

 

 

하여튼 공짜 생선수프(... 국물) 한 그릇, 그리고 새우가 든 올리비에 샐러드에 논알콜 아페롤 스피리츠를 시켜서 먹었다. 너무 적게 시킨 거 아닌가 했지만 먹고 나니 배불렀다. 올리비에는 맛있었다. 올리비에 한 접시에 만원이나 하다니 너무하다 싶었지만 어쨌든 자잘한 칵테일 새우가 들어있긴 해서 내륙국가니 어쩔수 없으려니 했다 ㅠㅠ (역시 바다가 있는 나라들이 음식이 맛있고 풍부한 듯함. 여기 와서 제대로 된 폴란드 음식은 첫날 피에로기 외엔 딱히 찾지 않았음)

 

 

 




 

생선국물... 수프. 연어 부스러기는 아주아주 얄팍했다. 

 

 

 




 

새우 올리비에 샐러드. 

 

 

 

 

 

 

이렇게 먹고 나서 일단 방으로 돌아갔다. 이미 너무 녹초가 되어 있었다. 걸어가는 것도 엄청 힘들었다. 가는 길에 다시 비에드론까에 들러 물을 샀다. 아아 아직 01밖에 안썼는데 왜 메모가 이렇게 길고 안 끝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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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두번째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체크인 가능 시간인 3시가 약간 안되었을 때였고 곧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은 가격의 압박 때문에 그나마 약간 저렴해진 마지막 사흘만 예약을 했는데 들어오니 과연 좋기는 했다. 마루가 깔려 있고 목재가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었고 책상과 침대 등 모두 세심하게 신경쓴 티가 났다. (하지만 비싸다. 하긴 다른 나라 지점이었으면 더 비쌌을 것 같음) 이곳에 들어오자 아스토리야 생각이 많이 났고 뻬쩨르가 무척 그리웠다. (아마 하늘색 리넨 커버 때문에 더 아스토리야 생각이 난 건지도 모르겠다. 호텔 체인은 서로 다르지만)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일요일 아침 체크아웃할 때까지 방에만 처박혀 뻗어 있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차를 마시러 나가기도 애매했고 저녁에는 바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가방을 대충 풀어놓은 후 호텔에서 준 초콜릿 샌드 쿠키를 곁들여서 소피텔에서 집어온 nepal's heaven(이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티백을 우려 마셨다. 이 홍차가 의외로 맛있고 향긋했다. 아마 내가 네팔에서 나오는 홍차를 좋아하나보다. 네팔 일람부터 시작해서. 아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네팔의 헤븐이 아니라 네팔의 히말라야였나... 이미 티백 껍데기 버려서 기억 안남 ㅠㅠ

 

 

 

 

 

 

 

이 책상은 가운데를 위로 들어올릴 수 있게 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문구 세트가 든 나무 상자가 들어있다. 내용물은 별거 아니고 심지어 편지지도 두 장 밖에 안 들어 있어서 아쉬웠지만 어쨌든 이런 세심함 앞에서 글쓰는 사람은 넘어가버리게 됨. 책상, 필기도구, 약간 서재 풍 뭐 그런 거. (방 한쪽 벽에는 책이 몇권 꽂혀 있는 서재 인테리어가 되어 있음. 그래서 내 여행서와 챈들러 서간집도 거기 꽂아둠. 잊어버리고 가면 안되는데)

 

 

차를 마시고 방에서 좀 쉬다가 5시 반 즈음 나왔다. 이 호텔에는 유명한 바가 하나 있는데, 6시에 열기 때문에 그전에 뭘 간단히 먹으려고. 그래서 노비 쉬비아트 도입부에 있는 맥도날드에 갔다. 식당에서 제대로 먹기에는 바에도 가야 하니 너무 과하고 또 어디든 여행가면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좀 궁금하기 때문에. 그런데 먹어보니 바르샤바 맥도날드는 맛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음. 맥치킨에 토마토만 추가된 버전을 시켰는데 패티는 말라 있었고 소스는 불균형하게 뭉쳐 있고 번도 귀퉁이가 말라 있었다. 그래도 키오스크가 있어서 나의 주문공포를 상쇄할 수 있었다. 

 

 

 

 

 

 

맛없었던 바르샤바 맥도날드 ㅠㅠ 

 

 

 

 

 

 

어쨌든 배를 채운 후 다시 길을 거슬러올라와 호텔로 돌아왔다. 석양이 이뻐서 찍어보았다. 

 

 

 

 

 

 

6시 반 즈음이었고 바는 한산했다. 나는 오후에 바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6시부터 여는 바는 좀 오만한 느낌이다. 대부분의 바는 당연히 저녁에 열지만, 호텔에 있는 바는 숙박객을 위해 낮에도 열어주면 좋겠다. (너무 내 맘대로 생각인가 ㅎㅎ) 이 바는 싱가포르 본점 호텔의 바가 유명한데, 거기서 싱가포르 슬링을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싱가포르 슬링 대신 '바르샤바 슬링'이라는 이름의 이곳 시그니처를 시켜보았다. 전자보다는 덜 달았고 조금 더 묵직한 감이 있었는데 오렌지 비터가 들어가서 끝맛은 좀 씁쓸했다. 싱가포르 슬링과 마찬가지로 별로 독하지는 않았다. 김릿이 있으면 그걸 시켰을텐데 메뉴에는 없었고 따로 만들어달라고 청하기에는 소심해서 그냥 이곳 시그니처를 마셔보는 걸로 만족했다. 김릿은 의외로 없는 바가 많다. 

 

 

 

 

 

 

아직 손님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의 한산한 바가 좋다.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 초반부에 이 '이른 저녁의 한산한 바'에 대한 멋진 대사가 나온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너무 공감이 된다. 

 

 

내 옆자리 창가에는 러시아 여인 세명이 자리를 잡았고 탄산수로 시작해 샴페인인지 코냑인지 하여튼 커다란 병을 통째로 시켰고 음식도 시켰다. 부유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전쟁이 일어난 작년부터 빌니우스, 프라하, 바르샤바에서 노어를 쓰기가 어쩐지 걱정되어 가능한한 영어만 쓰고 있는데(더듬더듬) 이 여인들은 너무나 즐겁고 당당하게 자기들 언어로 떠들어서 '나 혼자 기우인가' 하고 의문하게 됨. 

 

 

별로 취하지는 않았지만 칵테일 양이 많아 배가 불렀고 조금 남긴 채 일어섰다. 안주로 나온 트러플 오일로 향을 낸 아몬드와 작은 감자칩이 맛있었는데 당연히 간이 셌기 때문에 이제 계속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는 중 ㅜㅜ 

 

 

 

 

 

 

 

방에 돌아오니 이렇게 커버를 벗기고 침구를 정리해놓았다. 이것을 보니 다시 아스토리야와 에브로파가 그리워졌다. 목욕을 한 후 물을 계속 마시면서(아아 오늘 너무 짜게 먹었어... 오징어볶음 도시락에 맥도날드에 칵테일 안주까지) 이 메모를 쓰고 또 쓰고 있다. 아아 왜 이렇게 길지... 이제 다 썼다, 헉헉. 여행온 후 여유있는 저녁은 한번도 없고 항상 메모까지 다 쓰고 나면 곧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고(졸리고 피곤해서 늦게까지 버티지 못함) 휴가는 짧고... 일주일만 더 있으면 좋겠다 흑흑... 이건 바르샤바가 딱히 너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휴가와 여행이 좋은 것임. 이제 놀 수 있는 날은 내일과 모레밖에 안 남았다. 남은 이틀은 좀 여유있게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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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늘도 메모를 두 토막으로 나누어 올려본다. 사진은 오늘 아침 조식. 어제 저녁에 들어오면서 숙소와 바르샤바 대학 근처의 빵집(폴란드에선 유명한 체인인 것 같다)에서 사왔던 버섯 파이와 포피씨드 빵. 그리고 내가 딱 두개 챙겨왔던 로네펠트 다즐링 티백. 그런데 어제 들어오면서 파이가 따끈따끈해서 너무 먹고 싶은 걸 참았더니, 아침에 이미 파이가 좀 눅눅해져 있었다. 파이의 맛은 그냥 그랬다. 버섯 속 들어 있는 파이를 매우 좋아해서 어딜 가나 그게 있으면 꼭 먹어보는데 이것은 버섯 필링이 좀 짰다. 그리고 포피씨드 빵은 안에 아무것도 안 들어 있어서 원래 버터나 치즈를 발라 먹어야 하는 놈이었으므로 맨입에 먹기는 좀 별로였다. 하여튼 이것들로 아침을 먹고 가능한 한 게으름을 피우다가 가방을 마저 꾸려서 12시 다 되어갈 무렵 체크아웃을 했다. 

 

 

 

 

 

첫번째 숙소였던 소피텔. 위치도 매우 좋았고 나름대로 아늑해서 잘 쉬었다. 고마웠어요, 소피텔 빅토리아. 여기는 영원한 휴가님과 같이 며칠 지냈고 카페 자이칙 분점도 개장한 터라(선물받은 러브라믹스 티포트와 다즐링으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체크아웃하고 짐 맡기고 나와 다시 구시가지로 향했다. 사실 구시가지는 한번 정도만 가도 별로 아쉽지 않은 곳인데(나는 여기보다는 노비 쉬비아트와 대학가가 더 맘에 드는 것으로 결론...), 영원한 휴가님과 돌아다니면서도 못 찾았고, 그리고 어제까지도 찾아내지 못한 인어 조각상이 있는 광장 때문에 다시 갔다. 분명히 폴란드 여행서에는 인어가 있는 구시가지 광장이 제일 유명하댔는데 우리는 첫날 그렇게 구시가지 광장을 돌아다니고도 인어상을 못 찾았다. 지그문트 왕의 원주만 찾았고 그 광장이 제일 컸다. 그래서 당연히 그 광장 = 구시가지 광장인 줄 알았기에 '그 인어 보수하려고 옮겼나봐요' 하며 인어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제도 혼자 뒷길을 다녀봤지만 못 찾았다. '구시가지 광장 = 원주가 있는 캐슬 광장' 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간밤에 자려고 누워 구글맵을 뒤져보니 구시가지 광장과 원주가 있는 광장은 서로 다른 거였다. 아니, 내가 구시가지를 그렇게 많이 돌아다녔는데 이게 말이 되나 하며 오늘 구글맵을 켜고 다시 가보았다. 

 

 

 

 

 

 

그래서 결국 찾아낸 인어 조각상과 구시가지 광장. 여행서에 나와 있는 사진 그대로였다. 알고 보니 여태까지 이 광장 주변을 계속 돌아다니면서도 계속 뒷길, 옆길로만 가고 여기만 쏙 빼놓고 다녔다. 바로 옆 골목으로 빠져서 바르바칸도 갔었던 것이었다. 이 광장과 바로 뒷골목(기념품샵 밀집)만 빼고... 영원한 휴가님께 알려드리자 '광장의 더위가 무서워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피해다녔나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럴지도 모른다! 하여튼 인어는 찾았는데 이때 정말 엄청 더웠고 볕이 두개골을 쪼개는 듯했다. 선크림을 발랐는데도 피부가 다 타는 느낌이었다. '아아 나는 광장 싫다, 그늘 없다' 하며 급하게 뒷골목으로 돌아 나왔다. 전에 구글맵에서 찾아 찜해두었던 티룸도 바로 거기서 찾아냈는데 1시에 오픈이어서 좀 기다려야 했고 이 골목이 맘에 안 들어서 그냥 포기했다. 

 

 

 

 

 

 

쨍쨍~ 나도 둘이었으면 저 펌프 당겨서 물 나오게 했을텐데... 

 

 

골목엔 기념품샵이 많았지만 별로 사고 싶은 게 없어서 그냥 무심하게 걸어나오다 어느 가게에 폴란드 도자기가 좀 많이 있는 걸 곁눈으로 발견... 거기 들어가서 매의 눈으로 구경하다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지 않고 또 크기가 작고 상당히 예쁜 찻잔을 하나 발견했다. 그런데 그놈은 크기도 작았지만 커다란 다른 놈들보다 비쌌다. 일반적인 폴란드 찻잔보다 무늬가 예쁘고 섬세하긴 했다. 꼭 비싼 것만 이렇게 찾아냄 ㅠㅠ 뭐 전체적으로는 저렴한 편이다만 그래도 폴란드 찻잔을 3만원 넘게 주고 사는 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하긴 빌니우스에서 샀던 귀여운 누가바 찻잔은 접시도 없었지만 그 정도 하긴 했으니까. 이 섬세하고 예쁜 조그만 찻잔은 이미 뽁뽁이로 싸버려서 나중에 한국 돌아가서 인증 샷을 올려보겠음. 

 

 

이때쯤 나는 너무 지쳤다. 원래는 노비 쉬비아트 거리에서 발견한 우크라이나 해산물 식당에 가서 우하와 새우 올리비에 샐러드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으나 구시가지에서 노비 쉬비아트까지는 꽤 걸어야 했고 날씨가 너무 뜨거웠다. 걷다가 다리도 아프고 배고파서 도저히 더 걸어갈 엄두가 안 나서 첫날 발견했던, 옆골목으로 꺾으면 금방인 한식/일식 식당에 갔다. 여기는 일식 벤또와 한국 도시락 점심 메뉴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지 않게 점심으로 오징어볶음 도시락을 시켜서 한식을 잔뜩 먹음. 전체적으로 간이 셌다. 이렇게 짭짤하면 달걀말이나 두부 같은 좀 밋밋한게 있어야 되는데... 하긴 폴란드에서 더 바라는 것도 사치... 오징어볶음은 떡볶이와 떡꼬치 소스 맛이 났다. 

 

 

 

 

 

 

그래도 너무 지친 상태였기에 잘 먹고 나왔다. 이것에 미역두부 미소시루가 딸려 나왔다. 

 

 

다 먹은 후 wedel 초콜릿 카페나 그 옆의 demmer 티하우스에 가서 뭘 마셔볼까 했지만 후자는 들어가보니 차와 기념품 판매 위주였고 이미 첫날 노비 쉬비아트에서 차를 샀으므로 그냥 나왔고 전자는 너무 달달한 음료 위주라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거리에 있는 작은 식료품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한개 사서 나와 벤치에 앉아 그것을 먹었다. 어제도 거기서 물을 사서 그 벤치에 앉아 부모님께 전화를 했었는데. 아마 그 지점 쯤 오면 딱 지쳐서 주저앉아야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바르샤바에는 여기저기 벤치가 있어서 앉아 쉬기 좋다. 

 

 

아이스크림은 bounty 제품이라 코코넛 맛이 많이 나서 좀 별로였지만(그 가게가 워낙 작아서 아이스크림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맵고 짠 음식의 입가심을 한 후, 힘을 내어 소피텔로 돌아가 짐을 찾았다. 그리고 조금 더 기운을 내서 가방들을 끌고 돌길과 횡단보도를 건너 두번째 숙소로 향했다. 숙소가 맞은편에 있어 3분 거리인데 짐을 끌고 가니 시간은 조금 더 걸렸고 중간에 포석 깔린 길이 있어 위기가 좀 있었지만 그래도 걸을만했다. 새 숙소부터는 다음 메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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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메모에 이어. 
 
 
블리클은 바르샤바에서도 오래된 유서깊은 카페이다. 뻬쩨르의 세베르와 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그루지야 식당에서 저녁 먹은 후 영원한 휴가님과 구경갔다가 엄청난 비주얼의 에클레어를 발견, 초콜릿 아이싱은 새까맸고 크림이 너무 많이 들어있어 밖으로 튜브처럼 흘러나와 폭발하고 있었다. 너무 촌스럽지 않나 저것은 분명 휘핑크림일 것이다 하면서도 '정말 박력 있다, 의외로 맛있을지도 모른다. 저 거친 느낌은 고급 카페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으리라! 좀 소련 맛 아닐까' 하며 <박력 있는 에클레어>라고 명명하고는 반드시 저것을 먹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구시가지에서 노비 쉬비아트까지 덥고 다리아프지만 꾸역꾸역 걸어내려가서 블리클에 갔고 홍차와 <크림 에클레어>를 주문했다. 홍차는 아쉽게도 티백이었고 아삼, 얼그레이 뿐이어서 아삼을 시켰다. 그래도 티포트에는 담아줌. 
 
 
에클레어는 정말로 <박력 있는 에클레어>였다. 섬세한 맛은 당연히 없었지만 그래도 맛있었고 크림도 맛있었다. (너무 지쳐서 당분이 쏙쏙 흡수되어 그런 건지도) 순식간에 크림폭발 박력 에클레어를 다 먹어치우고 차도 다 마셨다. 오래된 카페라 나이든 분들이 많이 오셨고 젊은 손님은 없었다. 그래도 내 맘에는 들었다. 유일한 흠은 화장실에 갔더니 고장이 나 있었다는 것이다. 바르샤바는 서비스든 뭐든 다들 어딘가 좀 어설프고 부족한 느낌이 있다. 그래도 여기도 맛있었으니까 괜찮다. 
 
 

 

 
 
 
박력 있는 에클레어, 마지막 남은 한 토막. 나이프도 안 줘서 포크로 자를 때마다 크림이 주르르 비죽비죽 분출. 
 
 
차를 마신 후 방으로 돌아왔다. 들어오는 길에 어제 저녁 영원한 휴가님과 앉아 차를 마셨던 그린 카페 네로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빵집(사람들이 줄을 서는 곳이다)에 들러 버섯파이와 포피씨드 빵을 한쪽 사왔다. 다리도 아프고 너무 더웠다. 폰을 충전하면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침대의 차가운 시트 위에 누워 좀 쉬었다. 그랬더니 너무너무 졸렸다. 낮잠 자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적응한 시차를 생각하며 꾹 참았다. 
 
 
네시 쯤 다시 방에서 나왔다. 거창한 뭔가를 하는 대신 호텔 맞은편의 커다란 사스키 공원에 가서 책을 읽으려고. 햇빛이 일렁이는 공원의 나무 그늘에 앉아 책 읽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기쁨이다. 평소엔 일에 치어서 공원은 커녕 낮에 햇빛 쬘 기회가 전혀 없으니... 나무 아래 앉아 책 읽는 것만큼 기분 좋은 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가을빛이 서서히 어리고 있는 공원. 이 공원은 바르샤바에서 제일 오래되고 시민들이 제일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아마 가장 시내 중심에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조각상과 분수, 작은 연못이 있어 아주 약간 레트니 사드도 생각났는데 너무 적어서 아쉬웠다. 분수는 조그만 걸 여기저기 더 만들어두면 훨씬 더 기분 좋았을텐데. 하지만 우리 나라 공원을 생각하니 이곳이 너무 부러워짐. 바르샤바는 모스크바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녹지와 나무가 많아서 좋다. 
 
 
 

 
 

 
오랜만에 챈들러의 서간문 모음집을 읽었다. 그리고 저 꽃게 감자칩은 그저께인가 어제 발견했던 우크라이나 식료품점에서 궁금해서 사본 거였는데(각 나라의 감자칩이 궁금해서 보이면 꼭 사봄), 이것은 처참한 실패였다. 너무 닝닝해서 조금 먹다 포기함. 
 
 
책을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강아지들을 구경하다 방으로 돌아왔다. 내일 숙소를 옮겨야 해서 저녁에 가방을 꾸렸다. 영원한 휴가님께 먹거리와 책들을 넘겨드렸으므로 가방이 매우 여유있어질거라 생각했었지만 둘다 똑같은 마음으로 이것저것 챙겨다준 바람에 가방이 여전히 꽉꽉!
 
 
가방을 대충 꾸린 후 저녁밥은 노비 쉬비아트의 비에드론까 수퍼에서 발견했던 김치사발면으로 때웠다. 때웠다기에는 맛있게 먹었음 :) 이제야 오늘의 메모를 다 적었네... 저녁에 일찍 들어와서 여유있고 한적할 줄 알았는데 가방 꾸리고 한시간 동안 오늘 메모를 적었더니 어느새 아홉시가 넘었다. 글이라도 좀 써볼까 했지만 배터리 다 됨. 좀 쉬다가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동행하던 영원한 휴가님이 집에 가셔서 좀 허전했지만 그래도 알차게 보낸 하루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메모들도 대부분은 먹을 것 얘기...

 
 
 

 
 
 
오늘 사진 중 가장 맘에 드는 것. 사스키 공원의 작은 연못과 오리들. 빛과 색감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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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 파트로 나누어 메모를 쓴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많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호텔 방 와이파이와 티스토리 둘다 딱히 잘 돌아가는 편이 아니어서 사진을 몇 장 올리려고 보니 너무 무거운 것 같아서 나눠 적는 것이다. 이 파트는 아침부터 낮 2시 무렵까지. 

 

 

어젯밤 늦게 영원한 휴가님께서 밤 버스를 타고 빌니우스로 귀가하셨고(오늘 아침 무사 도착하셨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11시 좀 넘어서 완전히 뻗었다. 새벽에 한번 깼다가 도로 잠들어서 여행온 후 처음으로 8시간 가량 수면을 취했는데 계속계속 잘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오후에 잠시 방에 돌아왔을 때는 너무너무 졸렸다. 피로가 쌓이긴 했나보다. 

 

 

어제 들어오면서 아침거리를 사오지 않았기 때문에 조식을 먹으러 10시 좀 넘어서 방을 나섰다. 첫날 걸어다니다 '저기는 빌니우스의 슈가무어랑 비슷해보이네요' 하고 영원한 휴가님이 가리켰던 숙소 근처의 카페 '수크레'라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 매우 가까웠고 검색해보니 아침 메뉴가 좋다고 해서. 맨 위 사진이 수크레 내부. 카페는 예쁘고 아기자기했다(빌니우스와 비교하자면 내부 인테리어는 슈가무어보다는 크루스툼을 연상시켰다) 

 

 

그런데 '프렌치 크루아상과 햄이나 베이컨을 곁들인 스크램블드 에그, 커피나 주스 중 택일' 이라는 아침 세트 메뉴를 시키면서 내가 '햄, 베이컨 빼주세요' 라고 하자 점원이 당황+뚱한 표정으로 망설이다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방에 가서 선배 점원에게 확인하더니 '오케이, 햄과 베이컨 뺄 수 있어요. 근데 크루아상이 없어요' 라고 한다. 뭐지, 여기는 프렌치 베이커리 카페인데 크루아상 없음... 그래서 빵과 차이브를 곁들인 오믈렛으로 바꿔 주문했는데, 분명 세트에 커피나 캐피 주스가 포함되어 있어서 주스를 달라고 했더니 계산서에 8즈워티가 더 붙었다. 다행히 선결제를 하고 있었던 터라 내가 '메뉴판엔 45즈워티랬는데 왜 53즈워티인가요?' 라고 물었고, 점원은 다시 멍해졌다. 곧 선배점원이 나와서 내게 '프레쉬 주스 아니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요, 그냥 캐피 주스 주세요' 라고 대꾸. 제대로 정정이 되었다(캐피는 병주스임)

 

 

뭔가 다 어설퍼서 기대가 뚝 떨어진 채 앉아 있었는데 서빙된 오믈렛이 의외로 상당히 맛있었고 버터 토스트도 맛있는데다 샐러드 양도 엄청 많아서 짜증이 사라졌다. (나는 일단 맛있기만 하면 좀 용서가 되는 타입이다) 그러나 역시 어설픈 건 남아 있어서 샐러드에 든 양상추와 그냥 상추가 제대로 잘려 있지 않고 손바닥만한 잎사귀가 통째로 가득... 뭐 나도 샐러드 만들때 야채에 칼 닿는 거 안 좋아해서 잎사귀 자르지 않고 손으로 뜯어서 넣는다만 이건 좀 다른 경우 아닌가... 

 

 

 

 

 

 

그래도 푸짐하고 맛있어서 용서가 되었던 오믈렛과 버터토스트와 산더미 샐러드, 캐피 주스. 

 

 

 

 

 

 

조식을 잘 먹고 나와서 구시가지 산책을 하기로 했다. 첫날 영원한 휴가님과 구시가지, 바르바칸, 신시가지까지 한 바퀴 돌았지만 좀더 자세히 구경하려고. 이번에는 안 가봤던 뒷골목들 위주로 다녀보았다. 그리고 사진도 좀 찍었다. 아침에 나오면서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가 막판에 '아 무거워 힘들어' 하며 빼버려서 결국 오늘도 폰으로만 찍음. 아무래도 돌아갈 때까지 dslr 안 꺼낼 것만 같음 ㅠㅠ 

 

 

바르샤바는 전쟁 이후 재건된 도시라 작은 구시가지 외에는 상당히 현대적인 느낌이다. 맨처음 시내로 진입할땐 명동과 모스크바를 섞은 느낌이었고 과학관 쪽 방면이나 어제의 대사관 방면, 버스 잘못 타고 갔던 동네들 쪽은 소련 시절을 겪은 동유럽 국가들의 주거지 풍경과 비슷했다. 구시가지는 예쁘고 한적하지만 확실히 재건된 곳이라는 티가 좀 나긴 한다. 드레스덴과도 좀 비슷한 느낌이다. 어쨌든 가보지 않았던 뒷길들을 골라서 걷자 결국은 첫날 갔던 shabby coffee가 있는 피브니 거리가 나왔다. 이후 다시 광장을 통과해 직선 거리인 왕의 길을 따라 쭉 내려왔다. 그러다 중간의 가게에 들러 물을 한병 사고 그 앞의 벤치에 앉아 부모님과 통화를 좀 했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인데 놀러나와 있는 게 미안해서 ㅠㅠ

 

 

날씨가 엄청나게 덥고 쨍했다. 겉옷은 아침부터 이미 벗어서 허리에 묶고 반소매 셔츠로 다녀야 했다. 더위에 지치고 다리도 아파서 어서빨리 차를 마시고 싶었기에 어제 찜해놓았던 노비 쉬비아트의 블리클 카페로 꾸역꾸역 걸어갔다. 그 얘기부터는 다음 메모에. 구시가지 사진 몇 장 아래 붙여 놓는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고 정말 해가 쨍쨍 났다. 오늘 27도였다고 하는데 체감온도는 거의 30도 가까웠다. 그나마 습기가 덜해서 그늘로 가면 괜찮았다. 

 

 

 

 

 

 

 

 

 

 

 

 

 

 

 

 

 

 

 



 

햇볕 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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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오늘 아점. 노비 쉬비아트 거리에 있는 빈센트 카페라는 프렌치 베이커리 카페에서 치즈오믈렛과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 영원한 휴가님은 샥슈카와 카푸치노로 늦은 아점을 먹었다. 지금 머무르는 숙소는 조식 추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께는 컵라면과 빌니우스에서 온 오리고기 서양배 타르트, 어제는 역시 빈센트 카페에서 사왔던 레몬커드 크루아상과 자두 절임 패스트리로 호텔방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오늘은 오전에 대사관에 가야 할 일이 있어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에 일을 마친 후 중심가로 돌아와 간밤에 브렉퍼스트 메뉴 검색을 해놨던 이 카페에서 거의 정오 다 되어 아점을 먹었다. 이번 여행은 온통 먹을 것 얘기 뿐이고 어디어디를 갔었고 무엇무엇을 구경했는지 제대로 된 얘기가 없다. 이유는 1. 돌아다닌 곳은 많은데 이야기를 하며 무작정 걸어다녀서 갈만한 곳은 다 주파했지만 막상 어느 거리의 무엇이었는지를 많이 파악하지 않았고, 2. 정말 주로 먹으며 다녔기 때문이다. 동행이 있을 때의 좋은 점 중 하나이다. 

 
 
 






 

잠이 모자란 상태로 일어나 아침 일찍 볼트로 택시를 불러 타고 한국대사관에 갔다. 영원한 휴가님이 대사관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사관은 예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으므로 나는 바깥을 잠시 산책했다. 오늘 26도까지 올라가고 해가 쨍쨍 난다고 해서 후드 원피스를 입고 나왔는데 오전엔 흐리고 쌀쌀해서 맨다리가 좀 썰렁하고 추웠다(오후엔 정말 기온이 올라가고 파란 하늘도 나타남) 사진은 대사관 앞에 피어 있던 예쁜 장미. 
 

 
 





 

생각보다 금방 일을 처리하고 나오신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아점을 먹으러 가려고 처음으로 폴란드에서 버스를 탔는데... 내가 여기 교통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버스를 반대방향으로 타고 말았다. 교통카드 앱도 깔았는데 생긴 건 체코 것과 비슷했지만 이것저것 달랐고 상당히 불편하게 되어 있었으며 추가결제를 교묘하게 유도하는 점이 있어 빈정상했다. 그리고 이 앱에서는 버스 경로와 이동 현황 같은 것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반대방향으로 탄 이유는 정류장의 버스 노선도가 긴 세로 직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위아래로 양방향이 다 나와있고 화살표 같은 표시도 없어서, 구글맵에서 검색한 후 Topiel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 저 직선 노선에서 그 정류장 표시를 확인하고는 너무 마음놓고 그 자리에서 버스를 타버린 것이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구글맵으로는 점점 정류장 수가 늘어나고... 너무 이상해서 몇정거장 후 내려서 길을 건너 다시 노선도를 확인해보니 저렇게 양방향이 다 나와 있어 실수를 한 거였다. 게다가 단기 티켓은 겨우 20분밖에 지속되지 않았고 버스를 탄 후 큐알로 활성화하게 되어 있는데 코드 오류로 몇분이나 중단되었다. 앱으로는 티켓 한장만 사려고 해도 무조건 앱의 전자월렛을 충전하게 되어있었고, 그 금액도 10즈워티나 되었다. 20분짜리 단기 티켓은 3.4즈워티인데 이렇게 되면 2장을 끊은 후에는 3.2만 남기 때문에 그 다음 티켓을 사려면 또 10즈워티 충전을 해야 하는 등 상당히 의심스럽고 기분나쁜 방식이었다 ㅠㅠ 버스 반대로 탄 건 내가 부주의한 게 맞는데 하여튼 이 교통시스템은 너무나도 고객에게 불친절한 방식이라는 생각에 툴툴거리며 다시 12정거장을 거슬러 올라왔다 ㅠㅠ 제대로 탔으면 5정거장 거리였는데... 
 
 
하여튼 토피엘 거리 정류장에서 내려 노비 쉬비아트 거리까지 걸어가 위의 카페에서 아점을 먹은 후 우리는 잠깐 방에 돌아와 쉬었고 영원한 휴가님의 인증서 발급도 좀 도와드렸다. 방에서 쉬다가 다시 배가 꺼져서 첫날부터 먹고 싶었던 힌칼리를 먹으러 그루지야 식당에 갔다. 힌칼리는 그루지야식 찐만두로 육즙이 가득해 약간 샤오롱바오와도 닮았지만 크기가 상당히 크고 두툼하다. 어제 푸드코트에서 하차푸리는 먹었지만 힌칼리는 먹지 않았던 터라 노비 쉬비아트의 식당을 찾아내 거기 가서 힌칼리 5개 세트(소고기), 그리고 첨 보는 음식인데 설명이 맛있어보여서 가지 요리인 바드리자니를 주문했다. 후자는 올리브유(로 추정)로 조리한 가지의 속을 견과류 페이스트로 채우고 겉에 석류알로 포인트를 준 것인데 상당히 맛있었다. 힌칼리도 매우 맛있었다. 이것을 먹는 방법은 꼭지를 잡고 뒤집어서 아랫부분 귀퉁이에 살짝 틈을 내서 육즙을 먼저 마시고 이후 만두를 먹는 것이다. 꼭지는 손잡이용인데다 익히지 않기 때문에 남긴다. 든든하고 맛있었는데 양이 많아서 5개 중 1개는 남겼고 아쉬웠다. 

 
 
 






 
가지 요리인 바드리자니. 사진은 좀 황태찜 같음. 
 
 
 






이것이 힌칼리. 이리하여 이번 여행의 전반부는 온통 만두들로 장식. 첫날은 폴란드식 전통 만두인 피에로기(기름에 구운 것과 과일 필링의 찐 것들), 베트남 식당의 스프링롤, 게다가 오늘은 힌칼리. 이 중에선 힌칼리가 가장 훌륭했다. 평소 만두를 별로 먹지 않는데 이번엔 온통 만두 파티였다. 남은 여행 기간엔 만두 류는 이제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소설에서만 접했던 보르조미 탄산수도 곁들여 마셔보았다. 이 물은 상당히 짜서 깜짝 놀랐다. 실제로 나트륨 함량이 높다고 한다.
 
 

 
 
 

이후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성 십자가 성당 앞의 그린 카페 네로(폴란드 카페 체인)에 들러 민트티와 과일티로 입가심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방에는 7시 좀 넘어서 돌아왔다. 좀 쉬다가 영원한 휴가님이 빌니우스로 귀가하는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이 되어 10시 즈음 택시를 부른 후 호텔 앞으로 함께 나갔고 여기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함께 4일 동안 여행해서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방에 혼자 돌아오니 무척 아쉬웠다. 장시간 밤 버스를 타고 가셔야 하는데 평안한 이동과 귀가를 하실 수 있기를 바라며 나도 이제 이 메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흑, 내일부턴 혼자 밥먹고 혼자 돌아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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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열한시 무렵까지 영원한 휴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급 졸려서 까무룩 잠들었는데 역시나 시차 때문에 네시 좀 넘어서 깼고 뒤척이다 두어시간 더 자고 일어났다. 어찌어찌 시차 적응은 한 것 같은데 잠이 좀 모자란다. 
 
 
어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노비 쉬비아트 거리 대부분을 모두 돌아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보통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루트로, 그냥 발길 가는대로 대로들과 공원들, 층계를 따라 돌아다녔다. 영원한 휴가님이 전에 묵으셨던 탐카 거리 쪽을 지나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중앙역 방향 어딘가에 있는 언덕배기 높은 곳의 공원에도 갔다. 공원 벤치에 앉아 쉬면서 가는 길의 골목에서 발견한 과일가게에서 사온 자두를 까먹었다. 바람이 불어서 좀 싸늘하긴 했지만 나무와 하늘이 이뻤다. 거기서 내려와 쇼팽 음악원 쪽도 갔다. 
 
 
열심히 돌아다니다 너무 배가 고팠고 길거리에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을 보다가 영원한 휴가님이 작년에 친구분과 같이 갔던 코페르니쿠스 과학관 맞은편에 푸드코트가 있는 쇼핑몰 같은 곳이 있다고 하여 거기로 갔다. 본시 우리는 오늘 그루지야 식당에 가서 하차푸리와 힌칼리(꼭지가 달린 샤오롱바오 비슷한 그루지야 만두)를 먹기로 했는데 이 쇼핑몰 푸드코트가 은근히 힙한 곳이었고 심지어 그루지야 식당도 있었다. 한바퀴 돌다가 우리는 인도음식에 꽂혔다. 어제 종일 피에로기(군만두와 디저트 만두), 베트남쌀국수와 춘권 등 좀 느끼한 것을 먹었고 아침에도 빵을 먹고 나온 터라 매콤한 티카 마살라 커리와 긴쌀밥, 그리고 그루지야 식당 코너에서는 치즈만 든 미니 하차푸리를 시켰는데 이것이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흰밥에 티카 마살라 커리가 매우 맛있어서 배고픈 우리는 정신없이 흡입을 했고 하차푸리는 치즈가 너무 적게 올라가긴 했지만 커리 소스랑 같이 먹으니 맛있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와서 그 쇼핑몰 지하에서 좀 큰 수퍼를 발견(비에드론카라는 체인이었다)해서 폴란드 감자칩(궁금해서) 1봉지, 오리지널 폴란드 wedel사의 프타치예 믈레즈코 초콜릿(프티치예 말라코의 원형이다) 한 상자, 할인하는 무화과 네알을 사서 나왔다. 그리고는 공원과 오르막길을 가로질러 올라오면서 이제 카페에 가서 차 마시자고 했는데... 첨에 찍어둔 브리스톨 호텔의 카페 브리스톨이 생각만큼 매력적인 느낌이 아니었고 이때 너무 다리가 아파서 그냥 공원 벤치에 주저앉아 쉬었다. 날이 더워지고 끈적해서 잔머리가 피부에 달라붙었고 날벌레가 다리를 물었다. 갑자기 우리는 '그냥 방에 가서 차 마실까요' 하고 의기투합, '냉장고에 팅기니스도 있어요!' 하고 기뻐하며 바로 근처에 있는 숙소로 들어왔다. 이미 1만보 이상 걸은 후였다. 
 
 
세시 즈음 방에 돌아온 우리는 차가운 시트에 다리를 뻗고 누워 쉬다가 영원한 휴가님이 나를 위해 빌니우스에서 가져다주신 선물상자를 열어서 티타임을 했다. 바르샤바 숙소에서 카페 자이칙 개장! 모든 게 다 갖추어졌다! 러브라믹스 티포트(내가 가지고 있는 민트 블루와 똑같은 색!), 스코니스 이르 크바파스에서 사오신 23년산 퍼스트플러쉬 다즐링, 그리고 맛있는 초콜릿 팅기니스 케익까지! 거기에 수퍼에서 사온 무화과 두알을 추가했고 나는 심혈을 기울여 차를 우렸다. 이렇게 마신 차는 너무 맛있었고 팅기니스는 완벽했다. 무화과는 좀 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외국 무화과의 맛이 궁금했던지라 호기심은 해소되었다. 이 티타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차를 마신 후 우리는 그냥 방에서 쉬고 목욕도 하고 내가 가져온 컵라면, 누룽지, 볶음김치 등으로 저녁을 먹었다. 피로도 풀리고 좋았다. 지금은 수퍼에서 사온 폴란드 감자칩(이것이 은근히 맛있음. 기대 안했는데 별로 짜지 않아서 좋음)과 사과자두주스를 먹으며 이 메모를 남기고 있다. 몇시간 동안 계속 걸으며 돌아다녔는데 관광지 아닌 쪽이어서 어디를 갔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재미있었다. 이 거리는 꼭 빌니우스의 필리모 거리 같아요, 카페 엘스카가 나와야 할것 같아요 등 작년의 빌니우스 기억을 되살리며 즐거웠다. 
 
 
맨 위 사진은 초반부 걸어가다 발견한 쇼팽 살롱. 내부에는 작은 카페처럼 살롱이 조성되어 있었고 매일 피아노 연주회를 한다면서 할아버지가 열심히 호객을 하셨는데 좀 부담스러워서 구경만 하고 나옴. 사진 속 피아노는 장식용으로, 목각건반이다. 
 
 
 

 
 
 
이것이 조식. 어제 노비 쉬비아트 거리의 빵집에서 사온 레몬커드 크루아상과 자두 절임을 얹은 패스트리. 전자는 별로였고 후자는 맛있었다. 거기에 호텔 방에 있던 캡슐커피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각각 한 잔. 
 
 
 
 




 
한동안 쉬었던 언덕배기 공원. 나무가 예뻤다. 
 
 
 




 
 
그 공원 벤치에 앉아 자두를 한알씩 까먹었다. 나머지 자두는 이후에 '방으로 돌아가자!' 하고 결심했던 그 공원 벤치에서 해치웠다. 서양배 한 알만 남았음. 
 
 
 

 
 
 
카페 자이칙 바르샤바 분점 :) 기억에 남을만한 완벽한 티타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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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곤하게 자다가 시차 때문에 새벽 3시 반에 깨어나 괴로워하다 다시 잤다. 수면 부족 상태였지만 어쨌든 일어나서 아침은 영원한 휴가님이 나를 위해 사다주신 오리고기와 서양배가 든 타르트, 호텔방에 있던 민트티, 그리고 내가 가져온 튀김우동 컵라면과 캡슐커피로 뭔가 신기한 조합의 조식을 먹었다. 튀김우동이 좀 이질적이지만 맛있었고 사진도 예쁘게 나왔다. 
 


 
10시 반 정도에 방에서 나와 바르샤바 구시가지로 걸어갔다. 지금 생각하니 왕의 길에서 시작해 구시가지 광장으로 가고 거기서 여러 거리를 지나 나중에 바르바칸 성벽도 지나고 신시가지의 마리 퀴리 동상까지 갔다. 중앙역과 문화과학궁전을 뺀 거의 모든 곳을 하루에 주파한 것 같다. 워낙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데 구글맵이나 거리 이름을 보지 않고 다녀서 골목골목 구경은 했지만 어디가 어디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웬만한 거리는 다 가본 것 같다. (박물관, 궁전 등 빼고) 중간중간 공원이나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즐거웠다. 아침엔 비가 와서 우리가 나갈땐 흐리고 추웠는데 점점 해가 나고 따뜻해지고 하늘도 파래졌다. 숙소 위치가 매우 좋아서(노비 쉬비아트 거리와 구시가지 딱 중간) 도보로 구경다니기 편했다.
 
 
오늘은 11킬로, 16,300보를 걸어서 무척 피곤하다. 그래서 메모는 짧게 적는다.(갔던 곳들 이름을 모르는 것도 큰 이유임) 오늘은 맛있는 것을 많이 먹었다. 그래서 오늘 사진은 먹을 것 사진만 올려본다. 맨 위는 방에서 우리끼리 챙겨먹은 조식. 

 
 
 

 
 
 
폴란드의 가장 유명한 음식은 피에로기. 러시아식으로는 펠메니. 만두이다. 그래서 자피에첵이라는 체인에 가서 군만두와 잼 들어 있는 디저트 만두를 시켰고 폴란드식 시큼한 양배추 훈제수프를 시켰는데 후자는 너무 짜서 몇숟갈 먹고 포기. 만두는 맛있었으나 양이 너무 많아서 남겨서 싸왔다. 맨 위가 군만두. 
 
 
 

 
 
 
이 예쁜 색깔의 만두는 각종 과일이 들어 있는 디저트 만두. 블랙커런트, 딸기, 애플시나몬, 라즈베리와 코티지 치즈가 들어 있었다. 후자가 제일 맛있었고 블랙커런트는 엄청나게 시었다. 
 
 
 
만두-피에로기를 먹고 나니 너무 짜고 목이 말라서 슈퍼에 가서 복숭아 사과주스를 사서 거리에 앉아 정신없이 마셨다. 
 
 
 

 
 
 
이건 구시가지 돌아다니다가 내가 검색해서 찾아낸 귀여운 카페. Shabby Coffee라는 이름이었는데 내부의 작은 홀에는 서점처럼 책장과 오래된 영어책들이 뒤섞여 있었다. 여기서 나는 얼그레이, 영원한 휴가님은 라지 카푸치노, 그리고 머랭 케익을 한 조각 시켜서 먹었다. 카페가 아늑하고 편해서 찰싹 붙는 느낌이었다. 커피잔과 접시를 너무 빨리 치워간 것 외에는 만족한 곳이었다.
 
 
사진엔 나오지 않았지만 저녁은 노비 쉬비아트 거리 옆 골목으로 들어가서 발견한 작은 베트남 식당에서 쌀국수와 야채 스프링롤을 먹었다. 고수를 빼서 만족하는 맛이었다. 그리고 노비 쉬비아트 거리에서 발견한 프렌치 빵집에서 내일 아침에 먹을 크루아상과 자두 패스트리를 사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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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비행으로 무척 지쳤지만 그래도 생각보단 많이 지연되지 않고 바르샤바에 무사히 도착. 버스로 먼저 도착하신 영원한 휴가님과 숙소 로비에서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 마치 어제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수퍼에서 폴란드 아이스크림(와플콘에 유지방 높은 아이스크림을 철푸덕 올려놓은것)을 사서 코페르니쿠스 조각상 근처에 앉아 함께 먹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짐을 대충 풀고 서로 맛있는 먹거리를 나누고, 이제 씻고 자려는 중이다. 오늘은 짧게 줄인다.


.. 24일 아침에 추가


시차 때문에 새벽 세시반에 깼다가 간신히 다시 잤다. 깨긴 했는데 씻고 나니 너무 졸린다. 욕실 헤어드라이어 콘센트가 고장남 ㅠㅠ




숙소는 공항에서 택시로 20여분 밖에 안 걸렸는데, 신시가지 쪽으로 진입한데다 저 멀리 소련시절 지어진 문화과학궁전이 보여서 바르샤바 시내의 첫인상은 명동과 모스크바를 섞은 느낌이었다. 구시가지에 가보면 또 다르겠지. 아무래도 재건된 도시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제 저녁 영원한 휴가님과 재회했을 때도 그냥 서울에서, 마치 어제 만났다가 다시 보는 느낌도 들고, 밤에 공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더욱 그런 기분이었다.



욕조에 몸도 담갔는데 다리가 너무 아프고 머리 감고 나니 이제 와서 졸림. 머리도 못 말려서 누울 수가 없음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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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3. 9. 23. 10:22

공항에서 2023 warsaw2023. 9. 23. 10:22





새벽 4시 조금 넘겨서 퍼뜩 깼는데 비행기 지연 메일이 와 있었다. 그래도 35분 정도라 이 정도만 지켜주면 양호하다고 생각하며 더 자보려 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결국 다시 잠드는데 실패하고(ㅠㅠ) 괴로워하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좀 한 후 7시에 집을 나섰다.




길이 전혀 밀리지 않아 택시로 30여분만에 공항 도착. 체크인 카운터도 20분 정도 기다리니 열려서 수속도 비교적 수월했다. 연휴가 다가와 공항이 아주 혼잡할줄 알았는데 아직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 돌아올 때는 사람 엄청 많겠지.



수속 전에 수화물 무게를 재보니 22.5킬로라 제한무게 23킬로를 넘기지 않고 잘 맞췄다. 이런 걸 감으로 잘 맞추는 편이다. 폴란드항공은 깐깐해서 기내 캐리어와 핸드백 무게까지 쟀다. 그것도 무사통과함.



출국수속 후 잠도 모자라고 덥고 머리아프고 배고팠는데 푸드코트가 만석이라 그나마 자리가 비고 빨리 나오는 에그드랍에서 아보카도달걀 샌드위치를 주문해 먹었다. 원래 여행 가기 전에 공항에선 된장찌개 아니면 황태국 먹어야 되는데ㅠㅠ 그래도 아보카도달걀이 속은 좀 편하겠지 하며(아보카도 별로 안 좋아하는 자) 시킨 건데 역시나 달고 밍밍하고 맛이 없었다. 왜 달걀에 설탕으로 간을 하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아프고 피곤해서 방금 이부프로펜 알약을 두알 먹음. 과로와 수면부족 때문임. 비행기에서 좀 잘 수 있으면 좋겠다. 터뷸런스 없이, 무사하고 평안하고 안전한 비행과 여행이 되기를 기도하며 30여분 후 탑승해야겠다. 영원한 휴가님도 새벽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오실텐데 바르샤바에서 재회하면 너무 반가울 것 같다. 그 기대와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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