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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체크인 가능 시간인 3시가 약간 안되었을 때였고 곧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은 가격의 압박 때문에 그나마 약간 저렴해진 마지막 사흘만 예약을 했는데 들어오니 과연 좋기는 했다. 마루가 깔려 있고 목재가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었고 책상과 침대 등 모두 세심하게 신경쓴 티가 났다. (하지만 비싸다. 하긴 다른 나라 지점이었으면 더 비쌌을 것 같음) 이곳에 들어오자 아스토리야 생각이 많이 났고 뻬쩨르가 무척 그리웠다. (아마 하늘색 리넨 커버 때문에 더 아스토리야 생각이 난 건지도 모르겠다. 호텔 체인은 서로 다르지만)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일요일 아침 체크아웃할 때까지 방에만 처박혀 뻗어 있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차를 마시러 나가기도 애매했고 저녁에는 바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가방을 대충 풀어놓은 후 호텔에서 준 초콜릿 샌드 쿠키를 곁들여서 소피텔에서 집어온 nepal's heaven(이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티백을 우려 마셨다. 이 홍차가 의외로 맛있고 향긋했다. 아마 내가 네팔에서 나오는 홍차를 좋아하나보다. 네팔 일람부터 시작해서. 아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네팔의 헤븐이 아니라 네팔의 히말라야였나... 이미 티백 껍데기 버려서 기억 안남 ㅠㅠ

 

 

 

 

 

 

 

이 책상은 가운데를 위로 들어올릴 수 있게 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문구 세트가 든 나무 상자가 들어있다. 내용물은 별거 아니고 심지어 편지지도 두 장 밖에 안 들어 있어서 아쉬웠지만 어쨌든 이런 세심함 앞에서 글쓰는 사람은 넘어가버리게 됨. 책상, 필기도구, 약간 서재 풍 뭐 그런 거. (방 한쪽 벽에는 책이 몇권 꽂혀 있는 서재 인테리어가 되어 있음. 그래서 내 여행서와 챈들러 서간집도 거기 꽂아둠. 잊어버리고 가면 안되는데)

 

 

차를 마시고 방에서 좀 쉬다가 5시 반 즈음 나왔다. 이 호텔에는 유명한 바가 하나 있는데, 6시에 열기 때문에 그전에 뭘 간단히 먹으려고. 그래서 노비 쉬비아트 도입부에 있는 맥도날드에 갔다. 식당에서 제대로 먹기에는 바에도 가야 하니 너무 과하고 또 어디든 여행가면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좀 궁금하기 때문에. 그런데 먹어보니 바르샤바 맥도날드는 맛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음. 맥치킨에 토마토만 추가된 버전을 시켰는데 패티는 말라 있었고 소스는 불균형하게 뭉쳐 있고 번도 귀퉁이가 말라 있었다. 그래도 키오스크가 있어서 나의 주문공포를 상쇄할 수 있었다. 

 

 

 

 

 

 

맛없었던 바르샤바 맥도날드 ㅠㅠ 

 

 

 

 

 

 

어쨌든 배를 채운 후 다시 길을 거슬러올라와 호텔로 돌아왔다. 석양이 이뻐서 찍어보았다. 

 

 

 

 

 

 

6시 반 즈음이었고 바는 한산했다. 나는 오후에 바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6시부터 여는 바는 좀 오만한 느낌이다. 대부분의 바는 당연히 저녁에 열지만, 호텔에 있는 바는 숙박객을 위해 낮에도 열어주면 좋겠다. (너무 내 맘대로 생각인가 ㅎㅎ) 이 바는 싱가포르 본점 호텔의 바가 유명한데, 거기서 싱가포르 슬링을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싱가포르 슬링 대신 '바르샤바 슬링'이라는 이름의 이곳 시그니처를 시켜보았다. 전자보다는 덜 달았고 조금 더 묵직한 감이 있었는데 오렌지 비터가 들어가서 끝맛은 좀 씁쓸했다. 싱가포르 슬링과 마찬가지로 별로 독하지는 않았다. 김릿이 있으면 그걸 시켰을텐데 메뉴에는 없었고 따로 만들어달라고 청하기에는 소심해서 그냥 이곳 시그니처를 마셔보는 걸로 만족했다. 김릿은 의외로 없는 바가 많다. 

 

 

 

 

 

 

아직 손님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의 한산한 바가 좋다.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 초반부에 이 '이른 저녁의 한산한 바'에 대한 멋진 대사가 나온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너무 공감이 된다. 

 

 

내 옆자리 창가에는 러시아 여인 세명이 자리를 잡았고 탄산수로 시작해 샴페인인지 코냑인지 하여튼 커다란 병을 통째로 시켰고 음식도 시켰다. 부유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전쟁이 일어난 작년부터 빌니우스, 프라하, 바르샤바에서 노어를 쓰기가 어쩐지 걱정되어 가능한한 영어만 쓰고 있는데(더듬더듬) 이 여인들은 너무나 즐겁고 당당하게 자기들 언어로 떠들어서 '나 혼자 기우인가' 하고 의문하게 됨. 

 

 

별로 취하지는 않았지만 칵테일 양이 많아 배가 불렀고 조금 남긴 채 일어섰다. 안주로 나온 트러플 오일로 향을 낸 아몬드와 작은 감자칩이 맛있었는데 당연히 간이 셌기 때문에 이제 계속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는 중 ㅜㅜ 

 

 

 

 

 

 

 

방에 돌아오니 이렇게 커버를 벗기고 침구를 정리해놓았다. 이것을 보니 다시 아스토리야와 에브로파가 그리워졌다. 목욕을 한 후 물을 계속 마시면서(아아 오늘 너무 짜게 먹었어... 오징어볶음 도시락에 맥도날드에 칵테일 안주까지) 이 메모를 쓰고 또 쓰고 있다. 아아 왜 이렇게 길지... 이제 다 썼다, 헉헉. 여행온 후 여유있는 저녁은 한번도 없고 항상 메모까지 다 쓰고 나면 곧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고(졸리고 피곤해서 늦게까지 버티지 못함) 휴가는 짧고... 일주일만 더 있으면 좋겠다 흑흑... 이건 바르샤바가 딱히 너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휴가와 여행이 좋은 것임. 이제 놀 수 있는 날은 내일과 모레밖에 안 남았다. 남은 이틀은 좀 여유있게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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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