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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메모에 이어. 
 
 
블리클은 바르샤바에서도 오래된 유서깊은 카페이다. 뻬쩨르의 세베르와 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그루지야 식당에서 저녁 먹은 후 영원한 휴가님과 구경갔다가 엄청난 비주얼의 에클레어를 발견, 초콜릿 아이싱은 새까맸고 크림이 너무 많이 들어있어 밖으로 튜브처럼 흘러나와 폭발하고 있었다. 너무 촌스럽지 않나 저것은 분명 휘핑크림일 것이다 하면서도 '정말 박력 있다, 의외로 맛있을지도 모른다. 저 거친 느낌은 고급 카페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으리라! 좀 소련 맛 아닐까' 하며 <박력 있는 에클레어>라고 명명하고는 반드시 저것을 먹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구시가지에서 노비 쉬비아트까지 덥고 다리아프지만 꾸역꾸역 걸어내려가서 블리클에 갔고 홍차와 <크림 에클레어>를 주문했다. 홍차는 아쉽게도 티백이었고 아삼, 얼그레이 뿐이어서 아삼을 시켰다. 그래도 티포트에는 담아줌. 
 
 
에클레어는 정말로 <박력 있는 에클레어>였다. 섬세한 맛은 당연히 없었지만 그래도 맛있었고 크림도 맛있었다. (너무 지쳐서 당분이 쏙쏙 흡수되어 그런 건지도) 순식간에 크림폭발 박력 에클레어를 다 먹어치우고 차도 다 마셨다. 오래된 카페라 나이든 분들이 많이 오셨고 젊은 손님은 없었다. 그래도 내 맘에는 들었다. 유일한 흠은 화장실에 갔더니 고장이 나 있었다는 것이다. 바르샤바는 서비스든 뭐든 다들 어딘가 좀 어설프고 부족한 느낌이 있다. 그래도 여기도 맛있었으니까 괜찮다. 
 
 

 

 
 
 
박력 있는 에클레어, 마지막 남은 한 토막. 나이프도 안 줘서 포크로 자를 때마다 크림이 주르르 비죽비죽 분출. 
 
 
차를 마신 후 방으로 돌아왔다. 들어오는 길에 어제 저녁 영원한 휴가님과 앉아 차를 마셨던 그린 카페 네로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빵집(사람들이 줄을 서는 곳이다)에 들러 버섯파이와 포피씨드 빵을 한쪽 사왔다. 다리도 아프고 너무 더웠다. 폰을 충전하면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침대의 차가운 시트 위에 누워 좀 쉬었다. 그랬더니 너무너무 졸렸다. 낮잠 자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적응한 시차를 생각하며 꾹 참았다. 
 
 
네시 쯤 다시 방에서 나왔다. 거창한 뭔가를 하는 대신 호텔 맞은편의 커다란 사스키 공원에 가서 책을 읽으려고. 햇빛이 일렁이는 공원의 나무 그늘에 앉아 책 읽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기쁨이다. 평소엔 일에 치어서 공원은 커녕 낮에 햇빛 쬘 기회가 전혀 없으니... 나무 아래 앉아 책 읽는 것만큼 기분 좋은 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가을빛이 서서히 어리고 있는 공원. 이 공원은 바르샤바에서 제일 오래되고 시민들이 제일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아마 가장 시내 중심에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조각상과 분수, 작은 연못이 있어 아주 약간 레트니 사드도 생각났는데 너무 적어서 아쉬웠다. 분수는 조그만 걸 여기저기 더 만들어두면 훨씬 더 기분 좋았을텐데. 하지만 우리 나라 공원을 생각하니 이곳이 너무 부러워짐. 바르샤바는 모스크바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녹지와 나무가 많아서 좋다. 
 
 
 

 
 

 
오랜만에 챈들러의 서간문 모음집을 읽었다. 그리고 저 꽃게 감자칩은 그저께인가 어제 발견했던 우크라이나 식료품점에서 궁금해서 사본 거였는데(각 나라의 감자칩이 궁금해서 보이면 꼭 사봄), 이것은 처참한 실패였다. 너무 닝닝해서 조금 먹다 포기함. 
 
 
책을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강아지들을 구경하다 방으로 돌아왔다. 내일 숙소를 옮겨야 해서 저녁에 가방을 꾸렸다. 영원한 휴가님께 먹거리와 책들을 넘겨드렸으므로 가방이 매우 여유있어질거라 생각했었지만 둘다 똑같은 마음으로 이것저것 챙겨다준 바람에 가방이 여전히 꽉꽉!
 
 
가방을 대충 꾸린 후 저녁밥은 노비 쉬비아트의 비에드론까 수퍼에서 발견했던 김치사발면으로 때웠다. 때웠다기에는 맛있게 먹었음 :) 이제야 오늘의 메모를 다 적었네... 저녁에 일찍 들어와서 여유있고 한적할 줄 알았는데 가방 꾸리고 한시간 동안 오늘 메모를 적었더니 어느새 아홉시가 넘었다. 글이라도 좀 써볼까 했지만 배터리 다 됨. 좀 쉬다가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동행하던 영원한 휴가님이 집에 가셔서 좀 허전했지만 그래도 알차게 보낸 하루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메모들도 대부분은 먹을 것 얘기...

 
 
 

 
 
 
오늘 사진 중 가장 맘에 드는 것. 사스키 공원의 작은 연못과 오리들. 빛과 색감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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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