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를 부르는 방법, 좋아했던 장면 등 2016 praha2016. 9. 14. 05:46
나는 옛날부터 자타공인 개들에게 사랑받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편이다. 료샤가 키우는 고고하고 까다로운 순종 셰퍼드 네바는 그의 옛 아내에게도 끝까지 매몰차게 대한 것으로 유명했으나 나를 보자마자 발라당 드러누워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길 가다가 개를 보고 눈을 맞추거나 '개야 이리 와~' 하고 부르면 개가 잘 온다. 심지어 재롱도 잘 부린다. 료샤는 나에게서 개가 좋아하는 맛있는 냄새가 나거나 개를 유혹하는 페로몬이 분비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만... 나한테서 뼈다귀 냄새가 난단 말인가!!! (-_-)
개나 고양이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고 특히 비둘기는 박테리아 때문에 좀 무섭지만, 하여튼 새들을 보는 것도 좋다. 새들 중에는 청둥오리를 제일 좋아한다. 동동 떠가는 걸 보면 너무 귀엽다. 페테르부르크에 가면 한겨울의 꽁꽁 언 네바 강 얼음 사이로 청둥오리들이 종종종 모여있는 걸 보고 안스러워한다.
청춘 시절 가슴을 뜨겁게 불태웠던(ㅋㅋ)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 콜필드가 택시기사에게 '겨울에 강이 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그 소설엔 명장면이 참 많지만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그 장면을 읽을때 난 '홀든, 이 자식... 사랑해!' 라고 외쳤다. 뭐 그때야 나도 주인공 또래의 사춘기였으니 더더욱 이입했을 수밖에. 근데 나중에 이 책 재밌게 읽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의외로 홀든이 오리에 대해 묻는 장면에 대해 나처럼 감명받았거나 이입했거나 공감했다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항상 강 위의 오리, 특히 청둥오리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랬나보다 싶기도 했다.
하여튼, 아까 석양 보러 나갔더니 블타바 강 저 멀리 청둥오리들이 동동동 떠오고 있었다. 아아, 가까이 오렴...
하지만 개와 오리는 다르다! 개는 나의 눈빛의 마력 혹은 페로몬(ㅜㅜ)으로 끌어들일 수 있지만 새는 그게 안된다. 나는 토끼라서 조류가 아니기 때문인가. 그래서 청둥오리를 부르기 위해서는 좀 치사한 방법을 쓴다.
..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 콘 귀퉁이를 부숴서 던져줌...
" 오리야, 오리들아~ 콘 먹어~ "
(새우깡으로 갈매기 꼬시는 것도 아니고 ㅋ)
자맥질하던 오리들...
콘 부스러기 발견, 두두두...
순식간에 돌진해와 홀라당 다 주워먹음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도도하게 제 갈 길 가버림
칫... 그래도 개들은 나를 좋아하니까...
오리들 : 너는 서양배 화이트와인 소르베 아이스크림 먹고 우리는 기껏 콘 귀퉁이 찌꺼기 떼어주냐!!!
... 아아 그런 거였는가 ㅠㅠ
..
여튼 오리도 좋아하고 갈매기 날아가는 거 보는 것도 좋아해서 본편 쓸때 미샤가 네바 강변 거닐다가 갈매기에게 흑빵 던져주는 장면을 삽입한 적도 있다. 그때 트로이는 미샤에게 '갈매기는 물고기 먹는다!' 고 면박을 줌. 물론 미샤는 개의치 않음. (그러고보니 이 부분 아주 짧게 전에 발췌한 적 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1840)
그래서 본편 패러디인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서도 미샤의 패러디 캐릭터인 왕재수는 강변에 가서 오리에게 빵을 준다 :) 24번째 에피소드인 시계탑 이야기였을 거다. 그건 여기 : http://tveye.tistory.com/3785
이렇게 적고 보니 다시 본편이랑 서무가 쓰고 싶네.. 오늘 새 글 윤곽 잡아놓고는... 역시 이거 하면 저게 하고 싶다니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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