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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행도 거의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월요일 저녁 비행기로 떠나기 때문이다. 엄마는 시간 많다고 하시지만 나는 돌아가면 다시 과중한 업무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터라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음.
 
어제 너무 피곤했다. 여행 와서 쉬지 못하고 계속 다녔던 터라 피로도 누적됐을 거고(금요일까지 빡세게 일하고 곧장 비행기를 탔으니 휴식이 없었다), 엄마를 모시고 다니는 건 생각보다 마음이 상하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는데(첫날 취향이 달라서 좀 힘들었지만 그 이후부턴 괜찮아짐), 엄마가 유럽 쪽도 처음이고 또 말도 통하지 않으시므로 혹시라도 힘드시거나 내게서 뒤처지실까봐 항상 좀 긴장을 하게 된다. 이런 것들은 그래도 마음이 힘든 일은 아니어서 괜찮은데, 어제 업무 통화를 하면서 일들이 더욱더 과중해지고 꼬이고 나빠진 상황을 알게 되니 너무 진이 빠졌던 것 같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도 피곤하고 마음이 무겁다. 돌아가면 정신없이 달려야 할 것이다. 비행기 타고 오는 길에, 그리고 둘째날 도브라 차요브나에서 엄마와 내가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놓고 이야기를 찬찬히 나눴는데, 엄마가 그래도 예전과는 달리 이해해주셔서 감사했지만 사실 이 결정이 너무 어려운 터라 나도 아직 모르겠다. 앞날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업무 통화를 하고 또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합리적 과제들을 마주하면 아 정말 이제 됐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여튼 이런 일들 때문에 어제는 피곤했고 목도 많이 가서 인후염 약까지 먹고 잠들었다. 피로와 약기운 덕인지 7시간 가량 쭉 자고 일어났다.
 
엄마도 은근히 힘드셨던 것 같다. 기존에도 나보다 매일의 운동량이 훨씬 많고 활동적이지만 아무래도 연세를 속일 수는 없는 게 맞다. 간밤에도 기침약을 드시고 주무셨다. 엄마는 힘들면 기침을 하고 나는 목이 붓는 타입인 것 같다. 그래선지 오늘은 쇼핑몰 구경을 한 후 집에서 좀 쉬다가 저녁 음악회에 가자고 하셨다(간밤에 성당에서 하는 음악회 티켓을 예매했다)
 
아침에 조식을 먹은 후 집에 돌아와 정비를 하고, 바츨라프 광장 쪽 쇼핑몰 지역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바츨라프 광장 초입의 무스텍 역 앞에 접어들었을 때 아주머님 세 분이 우리를 보고 다가와 한국분이냐고 묻고는 길을 물으셨다. 구시가지 광장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어보셨다. 혹시 구글맵 깔아두셨나 물었는데 구시가지 광장 사진들만 가지고 계셨다. 벌써 한참 동안 뺑뺑이를 돌고 계신다고... 거기서 구시가지 광장으로 가려면 골목에서 두세 번 턴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기가 좀 어려웠는데, 그 사이에 일행이 데리러 온다는 문자가 왔다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달라고 하여 다행이다 싶었다. 여기는 바츨라프 광장인데 이쪽이 원체 넓은 곳이니 옆에 보이는 빨간 간판 건물(new yorker 상점이었음)을 이정표로 하여 거기 사진을 찍어서 일행에게 보내고, 아무 데도 가지 마시고 그 아래에서 기다리시라고 알려드렸다. 일행과 잘 만나셨어야 할 텐데.
 
엄마는 블라우스를 샀던 막스 앤 스펜서 매장에 다시 들르셨다. 그때 블라우스 옆에 있던 예쁜 치마가 어른거린다고 하셨다. 받쳐입으면 예쁠 것 같다고, 그런데 치마가 더 비쌌기에 엄두가 안 난다 해서 일단 구경이라도 하러 가자고 했다. 그렇게 하여 재발견한 치마는 과연 굉장히 예뻤지만 엄마가 산 블라우스와는 잘 받지 않았다. 둘 다 색채가 화려하고 색감도 많이 달라서 서로 다른 옷들과는 어울리겠지만 그 둘은 어울리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러다 그 옆쪽 매대에서 흰색과 초록색의 에스닉풍 미니 원피스를 발견. 초록색을 너무 좋아하는 올케 생각에 사진을 찍어서 톡으로 보내주고 통화를 했다. 올케는 너무 예쁘다면서도 비싸니까 사지 말라고 했고 나는 안 비싸다고 안심시켜주고(엄마 블라우스에 비하면 3분의 1), 엄마는 여행오실 때 동생과 올케가 용돈을 주었으니 그것으로 원피스를 사줘야겠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이 매장에서 엄마와 올케의 옷을 득템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영국 스타일이셨나보다.
 
매장에서 나와서 바츨라프 기마상을 지나 박물관 앞까지 올라가 광장과 건너편 전망을 구경하고 조식테이블에서 싸왔던 미니 사과를 한 알씩 먹었다. 엄마는 집에 가서 쉬고 싶어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나 프르지코페 거리 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들어가는 길에 나는 엄마를 모시고 시민회관 카페에 갔다. 여기는 쥬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곳이고 아르누보 건물이라 내부 장식이 아름답다. 엄마는 갈증 때문에 맥주를 드시겠다고 했다. 예전엔 여기 블랑쉬도 있었고 종류가 여럿이었는데 지금은 필스너밖에 안된다고 한다. 엄마가 첫날 마시고 너무 쓰다고 했던 거였는데... 어쨌든 엄마는 필스너 0.3리터를 시켜드리고 나는 다즐링과 견과 케익을 시켰다. 맨 위 사진이 카페 내부. 카페에서 우리는 좀 쉬었다. 제대로 우려진 차를 마시니 좀 살 것 같았다. 이번 프라하 여행은 철저히 엄마에게 맞추고 있어서 나는 카페에 별로 가지 못했다. 사실 바츨라프 광장에서 헤드 샷 커피가 가까워서 들르고 싶었지만 엄마는 커피를 드시지 않고 거기가 엄마 모시고 오래 앉아 있을 분위기는 아니어서... 좀 아쉽긴 했다. 아마 에벨과 헤드 샷은 못 갈 것 같다. 헤드 샷은 토, 일은 휴무라서...
 
집에 돌아오니 한시였다. 엄마는 한국식품점에서 1개 사온 오징어짬뽕, 나는 내가 혹시나 해서 싸왔던 유부우동을 먹었다. 어제부터 계속 라면을 먹고 있어서 나는 그게 먹기 싫었지만 밥을 차려먹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먹음. 엄마는 좀 쉬시겠다고 하여 나 혼자라도 헤드샷이나 그 근방 러시아식품점에 다녀올까 했지만 그때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 엄마가 주무시는 동안 나도 그냥 쉬었다. 침대에 누우니 너무 졸렸지만 어찌어찌 잠들진 않았다.
 
햇반으로 저녁을 먹은 후(정말 이렇게 밥을 꼬박꼬박 먹고 다니는 여행은 처음!) 엄마 모시고 음악회에 갔다. 카를 교 옆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서 하는 오르간 콘서트였다. 나는 시민회관이나 큰 공연장의 음악회에 모시고 가려 했지만 엄마는 그냥 연주보다는 노래 듣는게 좋다고 하셨고 이것저것 목록을 말씀드리니 아리아와 파이프오르간 쪽을 택하셨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쥬인과 십여년 전에도 이 교회 콘서트에 갔었다. 그런데 그때 콘서트 직전 근처 아프로포스 식당에서 밥먹은 건 기억나고 콘서트 자체는 기억 안나는 걸 보니 당시 음악회가 별로였던 것 같다. 하여튼 엄마는 성가대 활동도 하시고 또 엄마 교회에도 얼마전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을 들여놓았다고 하시니 나보다는 더 좋아하시겠지 하며 들어갔다. (나는 클래식 연주는 좋아하지만 성악 듣는 건 별로 안 좋아함. 특히 소프라노는 쥐약임) 오늘은 메조소프라노와 바이올린, 파이프오르간 3명만 나오는 미니 음악회였는데 메조라서 그래도 덜 부담스러웠고 목소리가 예뻤다. 바이올린이 가장 나았다. 음악원 졸업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매일 같은 곡목들을 연주하고 노래부르는 기분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예전에 썼던 중편에 등장한 바이올리니스트 코즐로프에 대해서도 생각했고 다시금 가브릴로프 장편을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중간중간 좀 지루해하셨지만 아는 곡들은 좋아하셨고, 의외로 바이올린이 너무 좋다고 하셨다. 사실 교회에서 울려퍼지는 바이올린의 매력이 있긴 하다. 나는 파이프오르간이나 피아노보다는 관, 현을 더 좋아한다.
 
음악회가 끝난 후 엄마와 함께 집까지 걸어왔다. 오늘은 어제보다 덜 걸었고 중간에도 쉬었지만 엄마는 많이 걸었다고 하셨다. 확실히 피곤하시구나 싶었다. 엄마는 좀전에 주무시러 들어가시고 나도 이제 자려고 한다(이 아파트는 침실이 두 개라서 편하다. 비싼 이유가 있음) 내일은 엄마가 토요일에만 열리는 시장에 가고 싶어하셔서 아침 먹은 후 트램을 타고 강변의 시장에 가려고 한다. 여태 한번도 안가본 곳임 :)
 
오늘은 14000보, 9킬로 가량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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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