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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카 운하'에 해당되는 글 92

  1. 2016.08.15 흐린 날, 공연 보고 운하 따라 걸어오며 찍은 사진들 8
  2. 2016.08.06 얼음이랑 눈 사진으로 더위 좀 식혀보자 4
  3. 2016.08.05 알리사는 기계벌레와 도스토예프스키, 불가코프에 대해 무슨 말을 했나, 항의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불멸입니다! 54
  4. 2016.07.21 백야의 네프스키 거리를 따라 청동기사상까지, 엽님과 다시 만나러 가던 길 8
  5. 2016.07.12 아주 많은 빛 2
  6. 2016.07.06 버리고 간 병과 컵들 2
  7. 2016.06.25 6.24 금 : 소포 성공, 마귀할멈 포진 우체국, 돔 끄니기, 카톨릭 성당, 아이스크림, 빛나는 운하, 방 또 옮김, 마린스키 지젤(슈클랴로프, 마트비옌코) 보고 옴
  8. 2016.02.23 거울 같은 운하 2
  9. 2016.01.29 한겨울, 눈과 얼음의 페테르부르크 2
  10. 2016.01.20 4월초 페테르부르크, 그래도 봄은 오겠지 2
  11. 2016.01.18 백야의 도시 페테르부르크 사진 몇 장 4
  12. 2015.11.24 겨울의 빛살
  13. 2015.11.03 빛, 그림자, 구름, 석양
  14. 2015.09.30 청명한 여름 아침, 두 개의 운하를 따라 걸으며 2
  15. 2015.09.25 천사, 성당, 광장, 마차, 그리고 운하
  16. 2015.09.13 여름날 겨울 운하
  17. 2015.09.07 흐린 날, 모이카 운하 따라서
  18. 2015.08.25 비록 작지만 이름은 원대하다! 2
  19. 2015.08.14 얼어붙은 페테르부르크 사진들로 더위 달래는 중 4
  20. 2015.08.12 백야 황혼녘에 운하를 따라 걷다가.. 2
  21. 2015.08.07 운하 따라 마린스키 극장 가는 길에 찍은 사진 몇 장, 운하 도시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짧은 메모 6
  22. 2015.08.06 여름 밤의 페테르부르크 풍경 세 장 2
  23. 2015.08.03 지나가다 발견한 술병들
  24. 2015.08.01 어스름의 푸른 빛에 잠긴 모이카 운하를 따라 4
  25. 2015.07.11 추운 동네 보면서 더위 좀 쫓자 2



지난 6월 19일.

오전엔 비가 많이 왔었고 추웠다. 이날 숙소를 옮겨야 했고 카페인과 약 때문에 갑자기 좀 가슴이 북받치듯 아파서 고생했었다(그 이후 빈속에 카페인 절대 섭취하지 않기로 함) 그리고 오후에는 마린스키 신관에서 라두 포클리타루의 3악장 심포니와 사샤 발츠의 봄의 제전을 보러 갔었다.


이 사진들은 공연 보고 운하 따라 숙소까지 걸어오며 찍은 것들. 이날 공연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산책하며 돌아오는 길은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라서 그럴지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 곳이다.



맨 위 사진은 숙소 거의 근처까지 왔을때 찍은 것. 여기는 운하변이 아니라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의 어린이 도서관 앞이다. 간판과 안뜰을 바라보고 있던 노부인의 뒷모습이 어쩐지 가슴에 남아 찍어두었다. 어쩌면 붉은 계통의 옷차림 때문일지도(내가 좀 빨간색을 좋아해서 ㅠㅠ)












마지막은 역시 새 두 마리로 :)


그러니까 비둘기라도 푸드득 날아오지 않고 이렇게 아장아장 걷고 있으면 괜찮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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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liontamer

 

 

너무 더우니까.. 추울때 사진으로 눈요기라도...

작년(2015년) 2월에 갔을 때 페테르부르크에서 찍은 네바 강과 운하, 공원에 쌓인 눈과 얼음 등등...

전에 올린 사진들도 좀 섞여 있는데 더우니까 그냥 막 올린다. 아 더워...

다들 눈으로라도 더위 좀 식히세요...

 

 

 

 

 

 

 

 

 

 

 

 

 

:
Posted by liontamer

 

 


 

 

 

아래 발췌한 두 개의 에피소드는 이전에 종종 올렸던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등장하는 장편의 중반부이다. 둘이 시간적으로 연속되는 건 아니고 앞 에피소드 이후 몇개의 이야기가 더 나오고 뒤의 이야기가 나온다. 배경은 1974년 즈음. 소련 레닌그라드.



지금의 내 상황과 같지는 않지만, 이 소설을 썼을때도 역시 나는 회사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물론 미샤가 주인공인 그 본편 우주의 일부이지만 여기 발췌한 에피소드들에는 미샤 대신 그의 친구인 트로이와 알리사가 등장한다. 그들은 운하를 걷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불가코프에 대해 얘기하고 작가에 대해, 쓰는 것에 대해, 그리고 떠나야 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아마도 나의 입을 빌어서, 서로가 다른 방식과 다른 시선으로.


 

전에 나는 런던에서 사라진 미샤를 찾으러 간 알리사의 이야기나 썰매 에피소드, 그리고 흑해로 가는 기차 에피소드를 발췌하면서 알리사란 인물에 대해 잠깐 얘기했었다. 그녀는 비중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저 소설에서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리고 언젠가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도 생각했었다.



맨 위 사진은 내가 이번에 페테르부르크 서점에서 사온 에코백. 그리고 아주 오래전 샀던 한길사 거장과 마르가리따 번역본. 빛이 많이 바랬다. 저 에코백에는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중 고양이 베헤못과 짝패 코로비예프가 작가동맹의 점원에게 작가와 도스토예프스키, 증명서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장면의 대사가 인용되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명문들이야 물론 셀수도 없지만, 사실 나도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와 더불어 이 대화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내 소설에서도 알리사의 입을 빌어 인용했는데 마침 저 에코백에도 씌어 있어 반가워하며 사왔다. 알리사의 인용은 아래 글 중 두번째 에피소드에 나온다.

 


 두번째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어붙은 운하 풍경이다. 아래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트로이와 알리사는 지도교수와의 식사를 마친 후 운하를 산책하다 저런 조그만 계단으로 내려가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사진에서야 워낙 추울때라 사람이 없지만 겨울이 아닐땐 저 자리에 삼삼오오 앉아 술마시는 사람들도 있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림 그리거나 책읽는 사람들도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당시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에서 막 석사 과정을 마친 트로이와 알리사가 지도교수인 스베들로프와 저녁을 먹으면서 진로 상담을 하고, 넌지시 런던의 소련 대사관으로 가서 KGB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식사 후 트로이와 알리사는 다른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 에피소드에서 스베들로프가 말하는 사미즈다트는 지하출판물, 금서 불법출판물을 가리킨다. 콤소몰은 공산주의 청년동맹으로 보통 16~26세 까지 활동한다. (17세인가? 긴가민가...) 안드레이는 트로이의 본명이고 파벨(파블릭)은 알리사의 약혼자이다. 루뱐카는 모스크바에 있는 KGB 본부의 속칭이다. 로미오는 알리사와 트로이를 비롯한 친구들이 미샤를 부르는 애칭이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앞 이야기로부터 약 10개월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알리사가 트로이의 아파트로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는 트로이에게 글쓰기에 대해 얘기하고 불가코프의 문장을 빌어 그를 독려한다. 그리고 그녀는 떠난다.


언급되는 갈랴나 코스챠 등은 이들의 문학서클 친구들이다. 전에 썰매 에피소드, 기차 에피소드, 표절 에피소드 등에서도 나온 적 있다. 코무날카는 공동아파트이다.







 

* 이 글들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첫번째 이야기 : 운하의 트로이와 알리사, 회색 톱니 기계벌레>





 

 트로이와 알리사는 둘 다 별 문제없이 논문에 통과했고 석사 학위를 땄다. 담당 교수인 스베들로프는 논문 심사가 완전히 끝난 후 이례적으로 둘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터놓고 진로에 대해 충고를 했다. 그들이 2년 전 해외 대사관 파견으로 위장한 KGB 근무 제안을 거절한 후 처음이었다. 정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스베들로프는 여전히 그 제안이 유효하다는 것을 넌지시 비추었다.

 


 트로이는 스베들로프가 정말로 그 제안을 하고 싶은 대상은 정부 관료의 딸이자 가장 성적이 뛰어난 알리사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알리사는 원어민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영어가 유창했고 문학뿐만이 아니라 영미 정세에도 환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약혼자가 부책임자로 있는 신문사에서 국제뉴스 업무를 맡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즈베스티야 급은 아니었지만 당에서도 인정받는 건전하고 탄탄한 신문사였다. 스베들로프는 알리사의 결정을 칭찬하면서 그녀가 국제부서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으면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라고 운을 띄웠다.

 


 알리사는 평소처럼 세련된 화술로 교수의 제안을 받아넘겼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내 그녀는 핸드백을 집어 들며 잠깐 자리를 떴다. 그러자 스베들로프는 기다렸다는 듯 트로이에게 학교에 남는 것도 좋지만 재능이 아까우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 세상이 바뀌고 있네, 안드레이. 물론 자넨 어렵지 않게 박사 학위까지 딸 수 있을 거야, 교수가 될 수도 있겠지. 자네 아버지도 학교에 계시니 말야. 교수가 나쁘다는 건 아냐, 하지만 내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난 다른 일을 했을 거야. 연방은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해. ”


 

 알리사만큼 세련된 화술을 보유하지 못한 트로이는 2년 전보다도 더 서툴게 교수의 말을 툭 잘랐다.


 

 “ 아나톨리 유리예비치, 저는 콤소몰 활동도 형편없었어요. ”


 “ 그래, 내가 그런 걸 모를 줄 아나? 자네와 알리사가 불어와 독어 쪽 애들이랑 뭘 하고 다녔는지도 아네. 자네들은 영리하게 스터디 모임이라고 속였다고 생각했겠지만 몇 년이나 봐왔는데 내가 그걸 모르겠나? ”

 


 트로이는 동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스베들로프의 유리알 같은 눈을 응시했다.

 


 “ 그럼 왜 그런 제안을 해주시는 겁니까? ”


 “ 요즘 공부하는 젊은이들치고 사미즈다트 한번 안 읽어본 애들이 어디 있다고. 오히려 자네 같은 친구가 나가면 더 플러스가 될 거야. 그 동네 문화를 많이 아니까. 아예 거기서 뿌리를 박을 필요도 없어. 몇 년만 나갔다 오면 탄탄대로야. 지금 런던으로 나가게 되면 구메로프 라인을 타게 될 테니까. 자네와 알리사가 같이 나가면 딱 좋을 텐데 그 아까운 아가씨가 결혼 때문에 여기 남는군. ”



 트로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베들로프는 그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더욱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 자네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보지 않았지. 그래서 자꾸 그런 모임을 만드는 거야, 그런 것들이나 읽고 말이지. 여기 갇혀 있어서 목이 마르기 때문이야. 레닌그라드는 모스크바보다도 더 작고 답답한 곳이지. 콤소몰 실적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구메로프는 그런 쪽에는 관대한 편이니까. 이건 기회라네, 안드레이. 학교에 남아 곰팡내 나는 책을 뒤지고 분필 먼지를 뒤집어쓰는 건 나처럼 늙은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야. 자네처럼 똑똑한 젊은이들은 다른 일을 해야 해. ”


 

 스베들로프는 이제 드러내놓고 웃고 있었다. 제자가 답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로이는 헛기침을 했다.


 

 “ 정말 감사합니다, 아나톨리 유리예비치.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


 “ 물론이지. 갑작스러울 테니까. 어차피 이번 학기 강의도 나가고 있으니 비교하면서 잘 생각해 보게. 다음 달 쯤 다시 얘기 나누지. ”

 


 그 때 알리사가 자리에 돌아왔다. 스베들로프는 그녀의 아버지와 약혼자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눴고 트로이가 맡은 학부 강의에 대해서도 몇 마디 조언을 늘어놓았다. 식사를 마쳤을 무렵 교수는 애제자들과 보낸 시간 덕에 기분이 좋아져 있었고 알리사와 트로이는 둘 다 꾸며놓은 듯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

 

 

 스베들로프와 헤어진 후 트로이는 알리사와 함께 판탄카를 따라 걸었다. 이미 11월이라 산책하기에는 꽤 추운 날씨였지만 둘 다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 너 괜찮아? ”



 립스틱이 지워져서 그런지 알리사의 얼굴은 창백하고 우울해 보였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핸드백에서 모자를 꺼내 썼다.


 

 “ 속이 좀 좋지 않았어. 이제 괜찮아. ”


 “ 의사한테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요 며칠 계속 그러더니. ”


 “ 벌써 가봤어, 임신인 줄 알고. ”


 “ 뭐래? ”


 “ 임신 아냐. 그냥 스트레스 때문이야. ”


 “ 아... 안타깝네. 아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미안하다, 뭐라고 해야 맞는 건지 모르겠어. ”


 “ 괜찮아, 네가 파블릭보다 훨씬 나아. ”


 “ 파벨이 뭐라고 했는데? ”


 “ 그 사람한테는 얘기 안했어. ”

 


 트로이는 걸음을 멈추고 알리사를 쳐다보았다.

 


 “ 너 말이야,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파벨하고 결혼하는 게 그 사람을 좋아해서가 아니고 아버지가 하라고 해서인 거야? ”


 “ 빨리도 물어보시네, 흑해 갔을 때부터 묻고 싶어 했으면서. ”


 “ 주제넘은 것 같아서 그랬지.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


 “ 아빠 때문인 거 맞아. ”


 

 그녀는 맞은편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몸을 움츠리면서 트로이의 팔짱을 꼈다.

 


 “ 우리 아빠 은퇴 위기거든. 밀려나기 전에 어떻게든 날 괜찮은 집안이랑 엮어놓고 싶은 거지. 파블릭 아버지랑 삼촌 둘 다 모스크바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거든. ”


 “ 너한테는 그게 중요해? ”


 “ 안 중요해. 근데 아빠는 좀 중요하지. 아빠잖아. ”


 “ 파벨은? ”


 “ 파블릭? 그럭저럭 괜찮아. 너희들에 비하면 매너도 좋지. 괜찮은 집안 도련님이니까. 어차피 너희도 나보고 공주님이라고 하잖아. ”


 “ 우리 중에 널 그런 식으로 생각한 사람 아무도 없어. 그건 네가 예쁜데다 항상 일등이었기 때문에 그런 거야, 네 아버지와는 아무 상관없어. ”


 “ 그래, 고마워. ”


 

알리사는 트로이의 코트 위쪽 단추를 채워주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 임신 아니어서 다행이야. 나 사실 그 사람 아기 갖고 싶지 않아. 아직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


 “ 결혼 안하면 안 돼? ”


 “ 순진한 소리 하지 마. 바보같이. ”


 “ 그래, 나 바보야. 스베들로프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 ”


 “ 그 런던 얘기? ”


 

 트로이는 알리사에게 교수의 제안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 가는 게 어때? ”



 알리사는 전혀 뜻밖의 말을 했다. 트로이는 잠시 멍해졌다가 알리사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그녀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 KGB 추천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던 게 누구였더라. ”


 “ 어차피 난 타락했어, 강령이나 읊어대는 신문사에서 선전문구나 번역하게 될 테니까. 트로이, 맹세하는데 그게 런던보다 훨씬 나빠. 완전히 위선자가 되는 거니까. ”


 “ 알랴, 진심인데 결혼하지 마. 그 직장도 집어치워. 아버지 생각 같은 거 하지 말고. 네 실력이면 어딜 가나 혼자 잘해낼 수 있어. ”


 “ 다들 그렇게 말하지, 넌 잘해낼 거라고. 그게 꼭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얼마나 속 빈 강정인지 너도 모를 거야. 그냥 결혼하는 게 나아. 난 그냥 옆에 있어줄 남자가 필요한 건지도 몰라. ”


 “ 코스챠가... ”


 “ 코스챠는 동생 같은 앤데 어떻게 잠을 자. 친구들이랑은 결혼 못해. ”

 


 알리사는 웃기 시작했다.

 


 “ 런던 말야, 나 진심으로 얘기한 거야, 트로이. 그게 꼭 KGB 쪽은 아닐 거야. 그냥 통역 일이나 서류 번역 같은 쪽으로 빠질 수도 있어. 너한테는 지금 나가는 게 좋은 일일 수도 있어. ”

 

 “ 너도 스베들로프처럼 생각해? 여기가 답답한 곳이라고? ”

 


 “ 그럼 답답하지 않아? 우리가 왜 갈랴네 집에서 모이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괜찮은 곳에서 괜찮게 살고 있다면 왜 그런 허세를 부리게 됐겠어. 우린 말이야, 그냥 벌레 같은 거야. 그것도 머리 가슴 배와 다리가 달린 진짜 벌레도 아냐. 우린 플라스틱과 톱니로 만든 기계 벌레야, 공장에서 찍어낸 완제품들이라구. 심지어 다들 불량품이야. 그냥 회색 벌레들, 공산품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우리가 모인 거야, 그나마 진짜 벌레인 척이라도 해보려고. 너 알지? 난 어릴 때 런던이랑 암스테르담에 살았어. 거기서도 난 조그만 톱니가 달린 벌레였어. 그래도 거기선 숨이라도 쉴 수 있었어. 여기? 네바 강? 운하? 궁전광장? 잘난 척 하지 말라고 해, 레닌그라드 따위. 매장도 안 된 채 몇십년 동안 냄새를 피우고 있는 시체 이름을 달고 있는 도시 주제에... 여기 있는 건 런던에도 다 있어. 여긴 모사품에 지나지 않아. 우리가 그냥 기계 벌레에 지나지 않듯이. 그러니까 트로이, 그냥 런던에 가. 한결 나아질 거야. 여기서보다 훨씬 행복해질 거야. 숨쉬기도 더 편하겠지. ”


 

 “ 나, 난 당을 지지하지 않아. 공산주의를 안 믿어. ”

 


 “ 아무도 안 믿어, 파블릭 같은 사람 빼고는.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가서 그냥 서류를 번역해. 그냥 일이니까. 그건 신념이랑 아무 상관없어. 어차피 넌 그렇게 반항적인 애도 아니잖아. 단 일 년이라도 좋아. 일단 가. ”



 

 트로이는 침을 삼켰다. 알리사는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항상 옳았다. 속물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는 스베들로프의 유리알 같은 눈을 보면서도 조금 흔들렸다. 그리고 언제나 옳은 알리사가 그를 지지하고 있었다. 신념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그저 숨을 쉬고 새로운 환경으로 나가기 위한 일일 뿐이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그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체제 비판자나 반항아인 적이 없었다. 그가 사미즈다트나 금지된 외국 서적들을 읽은 것은 그저 문학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루뱐카, 걔를 루뱐카로 데려갔어. 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작은 방으로. ”


 “ 뭐? ”


 “ 아무 것도 아냐. ”


 

 트로이는 운하 옆 돌계단에 앉았다. 검은 물 위로 드문드문 가로등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차갑고 습한 바람이 불어와 코트 자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 왜 그런 말을 해, 알랴? 왜 날 보내고 싶어 해? 난 그냥 여기 있고 싶어. 너희 곁에 있고 싶은데. ”


 “ 우리하고만 있으면 안 돼. ”


 

 알리사도 그의 곁에 앉았다. 모피 목도리를 풀어 트로이와 자신의 목을 길게 빙 둘러 감았다. 와인과 부드러운 향수 냄새가 코끝에 끼쳐왔다.

 


 “ 다들 자기 삶을 살아. 갈랴랑 료카도, 이고리도, 그 철없는 코스챠도 마찬가지야. 근데 넌 그렇지 않아. ”


 “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일을 하잖아. ”


 “ 학교잖아. 그냥 학교에 남아 있는 거잖아. ”


 “ 나한테도 다른 친구들이 있어. 너희가 모르는. ”


 “ 그래, 다른 친구들.

 


 알리사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녀는 나직하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 런던으로 가, 그러면 훨씬 나아질 거야. 쓸데없는 의심도 받지 않을 거야. ”


 “ 무슨 의심? ”


 “ 다른 친구들. ”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손으로 트로이의 손목을 꼭 쥐었다.


 

 “ 조교 몇 명이 거지같은 소리를 하더라. 그러니까, 너하고 이라가 헤어진 다음에 말야. 네가 이상한 친구들하고 어울린다고. 그래서 이라랑 잘 안된 거라고. 그 남자, 물리학부에서 강의하던 사람. 그 사람 얘길 늘어놓고... 그래서 내가 혼쭐을 내놨었어. ”


 

 이사악. 그녀는 이사악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온몸에서 피가 빠져 달아나는 것 같았다. 알리사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 아냐, 오해하지 마. 트로이, 난 그런 말 믿지 않아. 괜히 그 계집애들이 이라 편 들어주느라 그런 거야. 난 그냥... ”


 

 알리사가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언제나 순식간에 눈물을 터뜨리는 능력이 있었다.

 


 “ 그건 그냥 네가 너무 다정하기 때문이야. 넌 친구들을 너무 아껴. 그 남자도 그렇고 또 걔도... 네가 그런 눈으로 그 사람들을 보니까 오해를 사는 거야. 진짜 그것 뿐이야.


 “ 그런 눈이라니. ”


 “ 로미오. 네가 로미오를 보는 눈. ”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피 목도리가 바람에 펄럭이며 그와 알리사의 얼굴을 동시에 때렸다. 그는 목도리를 풀어 알리사의 가냘픈 목에 둘러준 후 일어나 운하 쪽으로 급하게 내려갔다. 알리사가 쫓아왔다. 구두 굽이 돌계단 틈에 끼어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 했다.


 

 “ 미안해. 멍청한 소릴 해서. ”


 “ 아냐. ”


 “ 나 그런 말 하나도 믿지 않아. 그저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게 화가 났을 뿐이야. 다들 벌레라고 했잖아. 그래서 바보 같은 소릴 지껄이는 거라구. ”


 “ 그냥 친구들일 뿐이야. 미샤도. 너도 알잖아. 모두가 걜 그렇게 봐, 우리한텐 없는 걸 가진 애니까. ”


 “ 맞아. 네 말이 맞아. 미안해. 내가 정신 나간 소릴 했어. 결혼 때문이야, 힘들어서 그래. 미안해. ”


 

 알리사가 우는 동안 트로이는 판탄카 운하의 어두운 수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검은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저만치에서 순찰 경찰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알리사가 울음을 그쳤을 때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와 경찰들의 곁을 지났고 연인들처럼 판탄카를 돌아 나갔다.

 

 

 




 

<두번째 이야기 : 아파트의 트로이와 알리사,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신분증이 필요한가? 떠나는 알리사>

 


 

 

 

 여름이 끝나갈 무렵 알리사가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6월에 파벨과 이혼한 후 그녀는 신문사도 그만두고 두어 달 동안 잠적해 있었다. 트로이조차도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연락이 전혀 없어 걱정이 되었지만 알리사의 어머니는 딸이 근교의 친척집에 가 있다고 그를 안심시켰다. 이전 같았다면 어떻게든 행선지를 알아내 찾아갔겠지만 그때 트로이는 격하게 사랑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숨어버린 친구를 위해 달려 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

 


 이제 생전 피우지도 않던 담배를 입에 물고 소파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는 알리사의 바짝 야윈 얼굴을 보니 트로이는 친구를 등한시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알리사는 이혼 서류를 접수하고 그의 아파트로 찾아와 밤새 울고 갔던 두 달 전보다 몇 킬로그램이나 체중이 준 것처럼 보였다. 유행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말끔하게 정돈하고 있었지만 머리칼에는 윤기가 전혀 없었다. 도톰하던 볼 살이 쭉 빠져서 광대뼈가 두드러져 있었고 갈색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갈랴의 집에 모여든 남자들의 가슴을 두근대게 하던 재기 넘치던 공주님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스물다섯 살이 아니라 서른다섯 살은 되어 보였다.


 

 “ 너 박사 과정 시작할 거라면서. ”


“  아, 응... 학교에 남기로 했으니까. ”


 

 알리사는 담배 연기를 가볍게 내뿜었다. 마스카라 사이로 커다란 갈색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갑자기 물었다.


 

 “ 톨랴하고는 이제 안 만나? ”


 “ 봄 되기 전에 헤어졌어. ”


 “ 그래, 말은 안했지만 네가 아까웠어. ”

 


 그녀는 화제에 오랫동안 집중하기가 힘든 듯 말을 멈추고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과 부엌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정리벽이 있는 사람답게 습관적으로 식탁 위에 지저분하게 쌓여 있는 책들을 한쪽으로 차곡차곡 밀어놓고 다 먹은 우유팩을 집어 휴지통에 버렸다.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이 제대로 들어차 있는지도 확인했다. 어릴 때부터 알리사는 항상 그에게 엄마나 누나처럼 굴곤 했다.



 “ 나 런던에 가기로 했어. ”


 

 식탁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앉은 채 알리사가 불쑥 말했다.

 


 “ 뭐, 스베들로프가 말했던 그거? ”


 “ 응. 지난주에 만나서 얘기했어. 어제 구메로프한테 가서 면접도 봤어. ”


 “ 아, 그래.... ”


 

 트로이는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 자신도 잠시 고민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알리사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 런던으로 떠난다고 하니 배신감이 들었다. 그게 자신을 두고 가버리는 친구에 대한 서운함인지, 아니면 당과 정부의 이름으로 지저분한 짓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을 선택한 그녀에 대한 감정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 너 실망했지. ”


 “ 아냐. 무슨 소리야, 축하해. ”


 “ 실망했잖아. 내가 안드로포프 앞잡이가 되고 스파이들의 뒷돈이나 세탁하게 될까봐 화난 거잖아. ”


 “ 그럴 거야? ”


 “ 진짜 바보. 그런 일은 나 같은 풋내기한텐 안 시켜. 그냥 대사관에서 통역이나 할 거야. 내가 그랬잖아, 그냥 서류 일만 들어올 거라고. ”


 “ 모르지, 넌 미인이잖아. 마타하리 같은 일을 시킬지 누가 알아. ”



알리사는 농담을 받아들일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 미인은 없어졌어. 난 팍삭 늙어버린 이혼녀야. ”


 “ 한 집 건너 하나씩 다 이혼하는 세상인데 그게 뭐 어떻다고. 그리고 너 아직 꽤 예뻐. ”


 “ 너한테 그런 말 듣는 건 하나도 기쁘지 않아. 너와 잘 건 아니잖아. ”


 “ 코스챠는 아직도 널 좋아해. ”


 “ 걔가 지금 내 쪼그라든 가슴을 보면 그 마음이 달라질 걸. ”


 

 그런 얘기를 하는 동안 알리사는 가스렌지에 냄비를 올려놓고 물을 끓였다. 냉장고에서 달걀과 감자를 꺼내 삶더니 시든 오이와 양파를 찾아내 능숙한 칼질로 잘게 토막냈다.

 


 “ 레몬은 없네. ”


 “ 독신남의 아파트에서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냐? ”


 “ 하긴, 이 정도 있는 것도 놀랍다. 그래도 식초는 있네. ”



 

 알리사는 달걀과 감자를 썰어 으깬 후 소금을 뿌렸다. 오이와 양파를 섞고 마요네즈와 후추와 식초를 쳤다. 순식간에 샐러드를 수북하게 한 접시 만든 후 흑빵과 햄을 두 조각씩 잘랐다.

 


 “ 먹어, 점심도 걸렀을 거 아냐. ”


 “ 나도 방법 좀 가르쳐줘. 내가 만들면 물이 엄청 생기던데. ”


 “ 넌 손재주가 없어서 그래. 가르쳐줘도 안될 거야. ”

 


 언제나처럼 알리사는 가차 없는 진실만 말했다. 트로이는 그런 그녀가 떠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는 알리사가 만들어준 샐러드를 먹었다. 그의 친구는 요리 솜씨가 좋았다.


 

 “ 너도 먹어. 런던에 가려면 몸을 좀 만들어야지. ”


 “ 오다가 카페에서 커피랑 케익 먹었어. ”


 “ 카페인과 당분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아. ”


 “ 네 몸이나 잘 챙겨. ”


 

 그녀는 식탁 위에 쌓여 있는 강의 노트와 메모지들을 무심하게 뒤적이다가 생각난 듯 물었다.


 

 “ 요즘은 글 안 써? ”


 “ 시간이 없어, 재능도 없고. ”


 “ 아니야, 난 네 글 좋아했었는데. 틈나면 계속 써봐, 응? ”


 “ 어릴 땐 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알지. ”


 “ 쥬진스키 같은 멍청이도 벌써 책을 두 권이나 냈는걸. ”


 “ 그래, 증명서를 받은 작가지. ”


 “ 도스토예프스키가 작가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해야 해? 그에겐 그런 신분증 따윈 없었을 게 뻔해! ”


 

한 때 그들의 밤을 하얗게 새게 만들었던 소설의 대사를 인용하며 알리사가 열을 냈다. 트로이는 그녀의 열성에 맞춰 대사를 따라가면서도 우울하게 끝을 꼬았다.


 

 “ 아, 맞아. 도스토예프스키는 불멸이지. 하지만 우린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닌걸. ”


 “ 그건 모르는 일이지, 지금 어떻게 알아? ”

 


 그녀는 끝까지 불가코프의 대사를 따라가며 친구의 재능을 변호했다. 그건 믿음이라기보다는 우정이었고 트로이는 감동을 받았다.


 

 “ 계속 써, 트로이. 그만두지 마. ”


 “ 시간이 나면 써볼게. ”

 


 그는 자신이 아직도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신의 재능에 대해 아무런 환상이 없는 작가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재능이 없는 자를 작가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것이다.



 

 다 먹은 샐러드 접시를 빼앗아 싱크대에 던져 넣으며 알리사가 물었다.

 


 “ 걔 여기 와 있어? 발레슈즈가 있네. ”

 


 트로이는 당혹감을 감추려고 애쓰며 느리게 대꾸했다.

 


 “ 아... 전에 하루 자고 갔어, 이사하느라. ”


 “ 이사? 사도바야 쪽에 있었잖아. ”


 “ 지난달에 새 아파트를 줬어. 극장 바로 근처에. ”


 “ 코무날카 아니고? ”


 “ 아니, 복층에 방이 대여섯 개는 돼. 룸메이트는 하나뿐이고. 그 아파트 진짜 대단해. 스몰니의 네 부모님 댁보다 더 넓어. ”


 “ 굉장한데, 일 년 밖에 안된 애가. 정말 스타 대접을 받나보네. 그때 갈랴네 집에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그냥 형 누나들 틈에 낀 귀여운 꼬마라고만 생각했지. ”

 


 알리사는 똑똑하고 뭐든지 잘 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재능에 대한 판단력은 부족할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다면 트로이에게 글을 쓰라고 간절히 권하면서 미샤를 그냥 어린애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룸메이트는 누구야? 지난번처럼 극장 동료야? ”


 “ 그렇대. ”

 


 트로이는 그 룸메이트가 학창시절 동기이며 최근 새 파트너가 된 지나이다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극장에서는 미샤와 지나이다를 볼쇼이의 바실리예프와 막시모바 커플처럼 만들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둘 다 실력도 좋았고 일 년 만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데다 강렬한 외모가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미샤가 좀 더 빠르게 뜬 편이었지만 지나이다의 어머니는 키로프의 유명한 무용수 출신이었고 아직도 극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유력한 군인이었다.


 미샤는 파트너 발레리나와 한 아파트를 쓰도록 조치한 극장 측의 이른바 세심한 배려에 드러내놓고 분노를 터뜨리지는 않았다. 그저 가장 편하고 자기다운 방법으로 반항했을 뿐이었다. 이사 후 그는 종종 트로이의 아파트에 와서 자고 갔고 트로이가 이름을 알고 싶지 않은 다른 애인들의 집에서도 밤을 보냈다. 트로이는 지나이다가 그런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미샤에게 묻지는 않았다.

 


 “ 런던 가기 전에 사인이라도 받아놔야겠네. 8월에는 공연 없나? ”


 “ 지금 투어 때문에 부다페스트에 가 있어. 바르샤바 거쳐서 비엔나랑 프라하까지 간대. 겨울엔 런던도 갈 것 같다던데. ”


 “ 나한테 감시 업무 맡길 수도 있겠네. 이 누나가 잘 봐주겠다고 전해줘. ”




‘ 그래, 잘 봐줘야 할 거야. 걘 문제아니까. 바깥으로 나가면 더욱 눈에 띄겠지. 튀어나온 못처럼. ’

 


 트로이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미샤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은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특히 알리사와는.



 “ 같이 가지 않을래? ”


 “ 런던? ”


 “ 그럼 어디겠어. 나 진짜 마지막으로 물어보는 거야. 구메로프가 사람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했어. ”



 알리사의 눈이 너무나 진지하고 간절하게 빛나고 있어서 트로이는 선뜻 대답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잠시 침묵한 끝에 그는 입술을 축이며 대꾸했다.

 


 “ 나도 너와 같이 가고 싶어, 알랴. 너랑 같이 일하고 싶어. 하지만 난 그게 안돼. 레닌그라드를 떠나고 싶지 않아. ”


 “ 왜? 여기가 대체 뭐라고. 너한테 뭘 해준 게 있다고. ”


 “ 여긴, 그러니까 내 주위의 모든 것, 전부야. ”




 몇 달 전 어두운 침실 안에서 미샤에게 얘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트로이는 자신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미샤는 레닌그라드가 전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다른 소련 시민들은 평생 한번 나가보기도 힘든 해외 도시들로 날아가 춤을 추고 환대를 받는 남자가 이 도시를 자신의 전부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트로이에게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족할지도 몰랐다.



 

 알리사는 화를 내거나 따져 묻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그를 엑스레이 광선 같은 눈빛으로 응시했다. 그는 어린 시절 알리사가 자신을 투명한 책처럼 읽어냈던 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이제 그 책은 페이지가 너무 많고 지리멸렬하게 뒤엉켜 있었다.


 

 “ 그래. 여기 남아도 좋아. 하지만 꼭 글을 써야 해. ”



 그는 왜 알리사가 그토록 집요하게 그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환상을 갖는 부류에 속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너무나도 그를 아끼기 때문에 그럴지도 몰랐다.

 



 알리사는 저녁이 되기 전에 돌아갔다. 그리고 9월 초가 되자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를 끌고 런던으로 떠났다. 여전히 자작나무처럼 야윈 채, 어두운 붉은색으로 물들여 짧게 자른 새 헤어스타일과 소년처럼 직선으로 떨어지는 재킷과 바지 차림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트로이는 친구들과 함께 그녀를 전송하러 공항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코스챠가 제대로 고백해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오래된 짝사랑에 절망해 난폭운전을 하다 교차로에서 버스를 들이받을 뻔 했다. 다행히 주변에는 경찰이 없었고 그들은 잽싸게 샛길로 도망쳤다. 코스챠는 그날 밤 떡이 되도록 취했고 갈랴의 품에 안겨 실연당한 고등학생처럼 엉엉 울었다.

 

 

 


... 


 

 



트로이와 알리사가 어깨를 맞대고 쭈그려 앉아 이야기를 나눴던 운하 계단은 이런 식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운하변을 따라 걷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에서 알리사가 인용하는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문구. 이 에코백에 씌어 있는 문장은 파란색 표시를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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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코프와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대해 전에 썼던 짧은 원고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13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이전에 발췌한 드미트리 마로조프와 미샤의 이야기에서도 미샤가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 그 얘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572 (그가 읽었던 불가코프의 문장, 비행기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러브 스토리에 대한 짧은 발췌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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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발췌했던 이야기들 중 알리사가 등장했던 에피소드들은 아래.


썰매 에피소드 : http://tveye.tistory.com/4050

 

 

흑해로 가는 기차 에피소드 : http://tveye.tistory.com/4671

 

 

런던에서 사라진 미샤를 찾으러 간 알리사의 이야기 : http://tveye.tistory.com/2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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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6월 22일이니 근 한달 전. 이날 엽님과 페테르부르크의 아스토리아 호텔 빨간 지붕 아래에서 처음 만났다. 함께 늦은 점심을 먹고 엽님은 마린스키로, 나는 미하일로프스키로 각자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 끝나고 나와서 청동기사상 앞에서 다시 조우했고 네바 강변을 거닐며 함께 석양을 보았다. 즐거운 기억이다.

 

사진은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잠자는 미녀 보고 나와서 엽님과 다시 만나기 위해 청동기사상 있는 쪽까지 걸어가며 찍은 것들. 주로 창문과 간판 사진들이다.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지만 백야의 페테르부르크답게 저녁의 빛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막 빠르게 걸어가다가..

여기가 아마 발샤야 코뉴셴나야 아니면 말라야 코뉴셴나야 거리 쯤인데.. 여기서 밴드가 음악 연주하고 사람들이 춤추고 즐겁게 놀고 있어 나도 잠깐 구경했는데... 이러다가 옆에서 어떤 술취한 아저씨가 자꾸 집적거려서 짜증낸 후 씩씩대며 빠져나오느라 좀 늦었다 ㅠㅠ 취객 싫어...

 

 

잰걸음으로 걷다가 모이카 운하에서 석양을 보며 사진 한장 찍고..

 

 

 

역시나 모이카 운하에서 내가 좋아하는 창문과 빛, 수면 사진 한장 더 찍은 후 길을 건너 부지런히 걸었다.

 

네프스키 초입에 있는 버거킹. 레냐가 좋아하는 곳... 맨날 여기 지나갈 때마다 료샤에게 애교부리며 '빠빠, 부르게르낑, 부르게르끼이이잉...' 하고 조른다. 부르게르낑은 버거킹의 러시아식 발음이다 :)

 

 

 

 

그리고 여기서 다시 엽님과 만났다.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 :) 이곳의 석양은 언제나 아름답다.

 

 

:
Posted by liontamer
2016. 7. 12. 00:05

아주 많은 빛 2016 petersburg2016. 7. 12. 00:05

 

 

지난 6월 24일.

세번째 숙소로 옮긴 날. 저녁에는 마린스키에서 슈클랴로프의 지젤을 본 날.

빛이 아주 찬란했고 뜨거웠던 날.

 

내 안에도 빛이 아주 많이 들어와서 흘러넘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라 사진들 몇 장 올려봄.

 

 

 

 

새들을 많이 봤던 날.

 

 

 

 

 

빛을 받으며 운하를 따라 걸었다. 온몸에 열기가 차올랐다. 그냥 뜨거워지는 열기였다. 땀이 나는 열기가 아니라.

 

 

 

 

여기는 전에 포스팅했던 '그' 빨간 다리 옆의 피자헛. 그 얘긴 여기 : http://tveye.tistory.com/3958

 

 

 

 

 

나는 언제나 보트나 배 위의 남자들에게 좀 끌리는 편이다. 이거 페티쉬인가, 흰 가운 입은 과학자에게 끌리는 것도 그렇고...

 

:
Posted by liontamer
2016. 7. 6. 23:05

버리고 간 병과 컵들 2016 petersburg2016. 7. 6. 23:05

 

 

아마 사람마다 사진 찍을 때 취향이 있을텐데 나도 좋아하는 소재가 몇개 있다. 이 블로그에 여태 올린 포스팅을 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난 창문과 문양, 간판, 메뉴 찍는 걸 좋아하고 이따금 새를 찍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버려진 컵이나 술병 따위를 찍는 것도 좋아한다. 마지막 취향은 좀 웃겨서 료샤에게 항상 '너 이상해!'란 구박을 받았다.

 

이번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물며 찍었던 버려진 컵과 병들 사진 몇 장.

 

이건 네바 강변.

 

 

 

 

이건 아마 루빈슈테인 거리나 블라지미르 대로 쪽이었던 듯.

 

 

이것부터 아래는 그리보예도프와 모이카 운하변...

 

 

 

 

 

 

 

 

 

마지막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바라보는 그리보예도프 운하 돌난간의 커피컵으로 마무리..

 

:
Posted by liontamer

 

(사진은 모이카 운하)

 

 

늦잠 자고 싶었지만 9시 알람을 맞췄다. 그 이유는 우체국 소포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_- 오전까지 머문 숙소가 중앙우체국 근처라 소포를 부치려면 오늘 오전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어제 가방을 싸보니 무게보다도 부피 때문에 그 망할 소포를 부쳐야 했다. 여름이고 홍차랑 책 몇권 외엔 별로 산 것도 없는데 왜 가방이 터져나가는 것일까 허헝,,,

 

10시 반쯤 중앙우체국에 다시 갔다. 어제의 그 마귀할멈 대신 다른 창구로 가서 물어봤는데 거기도 제2의 마귀할멈이 앉아 있었다. 딸론칙을 가져오라며 화를 냈다. 대체 딸론칙이 무엇인가 한참 고민했는데(보통 종이쪽지, 버스표 등을 가리킨다) 알고보니 번호표였다. 러시아도 그동안 기술발전이 물론 있었고... 번호표를 뽑아오면 스크린에 몇번 창구로 가라고 뜨는 것이다. 중앙우체국이라 워낙 크고 창구가 많으니 그런 거였다. 흠, 몰랐던 내 잘못도 있구나. 그건 그렇다치고 엄청 신경질냄. 손님도 하나도 없었는데!

 

번호표 기계로 갔는데 뭔가 엄청 복잡했다. 소포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나는 저렴한 소포를 부치고 싶었으나 도대체 몇번을 눌러야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마침 내앞에서 번호표 뽑는 나이든 아저씨가 계셔서 물어보니 너무나 친절하게 '이건 비싼거고 저건 싼건데 어떤걸로 할거니?' 라고 물어봐줘서 '싼거요~' 했더니 그럼 이 메뉴를 누르라고 알려주심. 아저씨 복받으실 거에요 흐흑... 그래, 시민들은 친절한데 관료들만 불친절한 것이야 허헝...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창구에 번호가 떠서 상자를 가져갔더니 새로운 마귀할멈 3이 막 화를 냈다, 왜 상자를 봉해왔냐는 것이다. 원래 여기는 소포 포장을 할때 안의 내용물을 모두 검사한다. (예전엔 CD 같은 건 반출 못했는데 아마 지금도 그러려나..) 그래서 '어제 다 검사해서 저쪽 창구 아주머니가 봉해준 거에요. 근데 쉬는 시간이라 다 놀아서 난 시간이 없어 오늘 다시 온 거에요' 라고 설명하고 다행히 어제 상자 포장해준 아줌마가 한쪽에 있어서 그분이 '응, 그거 어제 내가 다 봤어' 라고 확인해 주었다(유일하게 약간 친절했던, 마귀할멈 아닌 사람이었음 ㅠㅠ)

 

그리하여 1700루블을 내고(3만원 정도) 선박 운송을 선택하여 망할 소포를 부쳐버리니 살 것 같았다. 기껏 4킬로 더 쑤셔넣고 오버차지 내지 그랬냐고 하신다면... 가방에 자리가 없었습니다 ㅠㅠ 그리고 근력 따위 없는 나에게 4킬로 추가란 엄청난 짐!!!

 

 

 

(보기에는 아주 웅장하고 아름다운 중앙우체국. 그러나 오랜 옛날부터 나에게는 고생과 원망의 장소 -_-)

 

 

..

 

소포를 해결한 후 방에 돌아와 가방을 마저 싸고 체크아웃을 했다. 2시 반 택시 예약을 한 후 이제야 가벼운 맘으로 부셰에 가서 오믈렛 아점을 먹었다. 맛있어서 기분이 나아졌다

 

오늘도 엄청나게 날씨가 좋았고 하늘이 파랬고 햇살은 따가울 지경이었다. 진짜 눈부셨다. 돔 끄니기에나 갈까 하고 쭈욱 걸어올라갔다. 원래 목표는 돔 끄니기에서 책을 한권 사서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책 읽는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라서 옛날에 미샤를 초창기에 등장시켰던 illuminated wall 에서도 미샤는 처음에 카잔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근데 잠깐 와이파이 연결이 필요해서 유럽호텔 로비로 가서 폰을 좀 봤다.

 

그리고는 카톨릭 성당에 들러 다시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

 

 

돔 끄니기에 가서 새 지도를 샀다. 구글이나 앱이 있어도 나는 아날로그라 옛날부터 보던 종이 지도가 편한데 한 2~3년 쓴 지도가 너무 헐어서 찢어지고 말았다. 새 지도를 산 후 글쓰기에 필요해서 7~80년대 레닌그라드 시절 도시 현황과 거리 이름 등이 기재된 책이 필요하다고 점원에게 물었으나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책장을 뒤져 페테르부르크 거리 이름 유래에 대한 책을 샀다. 이건 제정시대부터 지금까지를 다 아우르는 거라 사실 내가 원하는 건 아닌데 ㅠㅠ 나중에 구글링으로 찾는 게 빠르겠다.

 

(이게 오늘 산 책과 지도 두 종)

 

 

별거 안 했는데도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에 앉아 책 읽을 시간이 없어졌다. 호텔까지 걸어내려가는 시간이 있으니(버스는 밀림) 그냥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돔 끄니기 앞 아이스크림 수레에서 에스키모 플롬비르 초콜릿 아이스크림 바를 사서 먹으면서 혼잡한 네프스키 대로와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 대신 모이카 운하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햇살이 눈부셔서 운하의 수면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붉은 다리와 푸른 다리를 건너 호텔로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네번째 호텔(하루 묵었었으므로 실제로는 3개째의 호텔)로 와서 체크인을 했다. 근데 저번보다 방이 안 좋네... 하긴 급하게 방을 예약했고 제일 저렴한 방으로 했으니... 그때보다 좁고 침대도 트윈을 두개 붙여놓은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 방은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는데 이번 방은 안쪽 마당인 중정 방향이네. 그래도 뭐...

 

이 호텔은 그래도 프린트를 공짜로 할수 있어서 오늘 지젤 티켓과 새로 끊은 항공권 이티켓을 프린트했다. 그리고는 피곤해서 좀 늘어져 있다가 컵라면 대충 먹고 원피스로 갈아입은 후 마린스키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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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연이 이곳에서 머무는 3주 동안의 마지막 공연이다. 원래 매진이었는데 우연히 표가 몇개 나와서 급히 득템했던 것으로, 바로 슈클랴로프가 알브레히트를 추는 지젤이었다. 오오...

 

공연은... 사실 내가 지젤을 진짜 좋아하는데 이번 공연은 작품 자체보다는 슈클랴로프 보느라 넋을 놓아서 ㅠㅠ 지젤 보면서 안 울었던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가 지젤로 나와서 좀 이입이 덜 되기도 했다만...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는 완벽했다... 이 남자의 타고난 기품과 동정심을 자아내는 눈빛과 애절한 춤. 10년 전 그의 알브레히트가 생각났다. 이반첸코 대신 나와서 '저거 누구야!' 하고 짜증냈던 걸 떠올리니 참 놀랍기도 하고 어쩐지 감개무량 ㅋ

 

사진은 따로 올려보겠다. 리뷰도 따로 써보겠다. 근데 이걸로 총 8개의 공연을 봤는데 제대로 리뷰 쓴 건 거의 없네 어헝...

(커튼 콜 사진과 또 짧은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35)

 

내 자리가 간신히 득템한것까진 좋은데 1층 베누아르 완전 사이드의 게다가 2열이었다. 앞사람 머리에 너무 가리고 왼쪽 무대는 잘 안보여서 진짜 괴로웠다. 슈클랴로프가 출땐 반쯤 엉거주춤하게 서서 봤다(내 뒤에는 사람이 없어 다행...) 나중엔 꼭 기합받는 듯.. 허벅지 쥐나는 줄 알았다. 흐흑... 내 앞에 앉은 사람들 다 키 크고 머리 컸어 엉엉...

 

샵에서 파루흐 루지마토프의 희귀한 옛 사진 세장(아마 베자르 작품 췄을 때인듯)과 테미르카노프가 지휘한 호두까기 CD를 샀다. 그리고 내친김에 CD 파는 아저씨에게 레인골드 글리에르의 청동기사상 음악 있느냐 물었다. 이번 마린스키에서 올린 그 발레. 아저씨는 안타까워하며 다른 작품들만 있다고 했다. 그 음악 정확한 제목이 뭐냐 물으니 청동기사상 맞다고 한다. 하긴 발레음악으로 만든 곡이니... 네프스키의 다른 샵에 한번 가보라 한다. 그 음악 구하고픈데...

 

..

 

슈클랴로프의 우아하고 애절한 알브레히트 춤과 사랑스러운 커튼 콜 인사 때문에, 그리고 마린스키 구관의 지젤이라는 것 때문에, 또 마지막 공연이란 생각 때문에 좀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나왔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럴줄 알고 우산 가져왔다!!!!! 요 며칠 너무 날씨가 좋았어!

 

근데 진짜 엽님 운 좋으셨습니다~ 가시자마자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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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쓰고 호텔까지 15분 정도 걸어야했다. 오다가 수퍼에 들러 자두 세알과 체리 300그램, 새로 나와서 궁금해진 구운 고기맛 감자칩(ㅋㅋ), 물 1.5리터를 샀다. 방에 와서는 배고파서 체리와 감자칩을 조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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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제 4일 남았어...

 

돌아가고 싶지 않아...

 

우울함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래도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는 아름다웠다. 외모 얘기가 아니고(외모도 뭐 예쁘지만) 그의 춤과 표현력, 무대 자체가 아름다웠고 때로는 그런 아름다움이 마음을 뒤흔들고 감동시키고 또 위안과 평온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도스토예프스키 말이 맞다. 때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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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3. 18:27

거울 같은 운하 russia2016. 2. 23. 18:27

 

 

페테르부르크.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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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29. 21:02

한겨울, 눈과 얼음의 페테르부르크 russia2016. 1. 29. 21:02

 

 

2015년 2월. 페테르부르크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들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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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20. 20:41

4월초 페테르부르크, 그래도 봄은 오겠지 russia2016. 1. 20. 20:41

 

 

2014년 4월초. 페테르부르크를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 장.

 

봄이 늦게 오는 곳이다. 4월초에도 춥다. 패딩을 입고 다녔다. 제대로 된 봄은 5월이 다 되어야 온다. 그리고 6월부터 8월 중순까지, 찬란한 백야가 오고 이후 짧은 가을, 그리고 10월말부터는 겨울이다.

 

공원에는 아직 덜 녹은 눈이 쌓여 있고 나무는 헐벗은 상태로 검은 가지들을 앙상하게 내뻗고 있다. 바람은 차갑고 햇살도 따스하지는 않고 그저 찬란할 뿐이다. 그러나 잘 보면 푸릇푸릇한 풀이 올라오고 있고 바닥에는 검고 축축한 흙이 깔려 있다. 그 검고 축축한 흙을 보고 있노라면, 혹은 밟거나 만져보면 왜 러시아 사람들이 '어머니 대지'라는 이미지에 경도되었는지 알 것 같다.

 

어쨌든, 곧 봄이 오는 것이다.

 

황량하고 건조한 4월초의 페테르부르크를 산책하는 것은 백야 때만큼 쾌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 순간만의 매력이 넘쳤다. 돌아와서도 가끔 저때 생각이 났다. 이 시즌에 페테르부르크를 거닐었던 건 아주 오래전 1년 가까이 살았을 때와 2014년 딱 두번 밖에 없어서 더 그런가보다.

 

사진 두세 장은 전에 올린 적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주르륵 올려본다. 해군성과 이삭 성당 사이의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과 모이카 운하 근방이다. 한겨울과 백야 때와는 빛의 느낌이 아주 다르다.

 

아름다운 도시이다. 언제 어느 순간이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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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8. 19:39

백야의 도시 페테르부르크 사진 몇 장 russia2016. 1. 18. 19:39

 

 

작년과 재작년 여름, 페테르부르크를 산책하며 찍은 사진들 몇 장.

너무 추워서 조금이라도 빛과 온기를 느껴보려고...

 

위의 사진은 말라야 코뉴셴나야 거리에서 카잔 성당 쪽을 바라보고 찍은 것.

 

 

 

모이카 운하. 마린스키 극장 가는 길에.

 

 

 

스뜨렐까.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

 

 

 

판탄카 운하 따라 걷다가, 선착장 표지판.

 

 

 

레트니 사드에서 발견한 까마귀

 

 

 

청동기사상 앞 잔디공원

 

 

 

이삭 성당이 보인다.

 

백야의 페테르부르크는 너무 찬란해서 때로는 도시 전체가 온통 창백하고 탈색된 것처럼 보인다.

 

 

 

네바 강. 멀리 보이는 건물 실루엣은 에르미타주.

 

 

 궁전광장의 포석.

 

 

 

모이카 운하.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백야 막바지라 이때가 되면 이미 어두컴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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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24. 22:20

겨울의 빛살 russia2015. 11. 24. 22:20

 

 

2015년 2월, 페테르부르크.

요즘은 심신이 많이 힘들고 고민이 많아서 그런지 빛이 많은 게 좋다. 그래서 전에 찍은 사진 중에서도 빛이 많이 들어가 있는 사진들을 종종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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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3. 21:31

빛, 그림자, 구름, 석양 russia2015. 11. 3. 21:31

 

 

2015년 7월, 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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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페테르부르크.

 

여름 아침 산책하면서 찍은 운하 사진들 몇 장. 당시 숙소는 이삭 광장에 있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모이카 운하를 따라 걷다가 크라스느이 다리(빨간 다리)를 건너서는 그리보예도프 운하로 접어들었다.

 

 

 

여기까지는 모이카 운하. 멀리 크라스느이 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와 근처 피자헛에 대한 추억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3958

 

 

 

 

길을 건너서 그리보예도프 운하 쪽으로 건너와 다시 걸었다.

좋은 날씨였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서 거울같은 수면이 살며시 흔들렸다. 흔들리는 수면에 비친 건물들 풍경이 운치 있었다.

 

 

 

이렇게.. 색색의 파스텔톤 건물이 수면에 비춰지자 무지갯빛으로 보였다. 어떻게 보면 기름 얼룩을 띄워놓은 마블링 색지 같기도 하고..

 

 

 

 

 

 

 

 

 

한적하고 여유롭게 저 운하변을 따라 다시 걷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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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25. 20:02

천사, 성당, 광장, 마차, 그리고 운하 russia2015. 9. 25. 20:02

 

 

7월에 산책하면서 찍었던 페테르부르크 사진들 몇 장.

이삭 성당과 궁전광장, 그리고 마린스키 극장으로 향하는 모이카 운하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세 군데 모두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주인공인 미샤가 어린 시절부터 매일같이 걸어다녔던 곳들이다.

 

위의 사진은 이삭 성당의 천사.

 

 

 

이건 원로원 광장에서 바라본 이삭 성당. 페테르부르크에서 제일 높은 건물. (근데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제한구역 외에서는 도시 개발도 계속 이루어지고 고층건물도 짓고 있는 것 같아서... 이삭 성당보다 높은 건물은 짓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도시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말았으면...)

 

여름에 갔더니 사진 기준으로 오른편 종루는 수리 중이었다.

 

 

 

여기는 궁전광장.

전에 썼던 illuminated wall에서 미샤가 권력자의 별장에 춤추러 가는 것을 거부하고 백야의 레닌그라드 거리를 쏘다니다가 즉흥적으로 춤을 추던 곳. 그런데 여기 산책하러 올때마다 생각한다. '미안하다, 미셴카.. 여기서 춤추려면 발이 무지 아팠겠구나 ㅠㅠ)

 

 

 

궁전광장 사진 한 장 더. 관광마차가 이렇게 세워져 있다.

마차와 말이 근사해 보이긴 하지만.. 나는 사실 마차 관광에 반대하는 편이라서.. 말도 불쌍하고... 작년 백야 때 앙글레테르 호텔에 묵었을땐 새벽까지 마차가 다녀서 말발굽 소리 때문에 잠도 다 설침..

(그런데 또 벨벳처럼 반질반질한 흑마는 좋아해서... 만일 새까맣고 근사한 말을 태워주겠다고 하면 혹해서 탈지도 몰라...)

 

 

 

이건 모이카 운하. 이삭 성당 뒤쪽으로 걸어와서 이 운하를 따라 쭉 올라가면 마린스키 극장이 나온다. 본편 우주에서 미샤는 키로프 입단 첫해에 사도바야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동료 무용수들이랑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극장에 출근할 때는 항상 이 길을 따라 걸어갔다. 원체 산책을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지난번 발췌한 썰매 에피소드에서 잠깐 언급했듯 떠밀려서 다칠까봐 사람 많은 버스는 타지 않는 것으로 구상했다. (그리고 마린스키 앞에는 지하철이 없다)

 

그리고 아주 춥거나 비바람으로 우중충한 날이 아니면 이 운하를 따라 마린스키까지 걸어가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이때는 7월이라 햇살이 굉장히 찬란해서 더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을 따라 마린스키에 갈 때마다 무용화와 책 한 권, 볼펜과 모눈종이 수첩, 갈아입을 옷, 이따금 사과 한 알이나 물병을 쑤셔넣은 가방을 어깨에 비스듬하게 메고 극장으로 걸어가는 신입단원 미샤를 떠올리곤 한다 :)

 

 

 

찬란하고 아름다운 도시. 페테르부르크.

결국은 항상 같은 결론으로 끝낸다.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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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13. 18:33

여름날 겨울 운하 russia2015. 9. 13. 18:33

 

 

페테르부르크.

이전에 몇번 올린 적 있는 '겨울 운하'. 겨울궁전인 에르미타주 박물관 사이를 잇는 운하라서 겨울 운하라고 불린다. 노어로는 짐냐야 까나브까.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에르미타주 극장 건물을 이어주고 있다. 이 운하는 모이카 운하와 네바 강을 이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3개의 조그만 다리로 이어져 있고 마지막 다리 너머로는 네바 강이 펼쳐져 있다. 맞은편 멀리 보이는 것이 네바 강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운하이다. 특히 겨울에 이곳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페테르부르크의 명소 중 하나이다.

이번 7월에 갔을 때 찍은 사진 몇 장.

 

 

 

 

 

 

 

 

 

 

 

 

 

 

태그의 겨울 운하를 클릭하면 이전에 올린 이곳의 여름, 가을, 겨울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 운하가 좀 그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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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7. 08:00

흐린 날, 모이카 운하 따라서 russia2015. 9. 7. 08:00

 

 

지난 7월. 페테르부르크 마지막 날.

 

루스끼 무제이(러시아 박물관) 갔다가 모이카 운하를 따라 쭈욱 걸어서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의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공항으로 떠났다.

 

흐린 날이었다. 이따금 비도 흩뿌렸다.

 

난 햇살 찬란하고 하늘 파란 날을 좋아하지만 사실 페테르부르크는 백야 시즌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흐린 날이 더 많다. 사진 찍어놓으면 나름대로 운치는 있지만 그래도 산책하기에는 찬란한 날씨가 더 좋긴 하다.

 

모이카 운하 따라 걸어가며 찍은 사진 몇 장.

 

난간에 앉아서 한 잔 하며 얘기하고 있는 사람들... 여름엔 특히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초점이 좀 안 맞아서 비둘기가 흐리게 나왔지만..

페테르부르크에는 갈매기도 많고 비둘기도 많고 까마귀도 많다. 오리도 종종 보이고.. (물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청둥오리~~)

 

 

 

 

저 멀리 크라스느이 모스트, 붉은 다리가 보인다 :)

 

 

 

 

 

 

 

 

 

빛바랜 파스텔톤 건물들도 페테르부르크의 매력 중 하나이다.

그리고 물론 저 창문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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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25. 17:09

비록 작지만 이름은 원대하다! russia2015. 8. 25. 17:09

 

 

페테르부르크, 지난 7월 20일. 모이카 운하 따라 걷다가..

페테르부르크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유람 보트들이 참 많이 지나간다.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는데 이렇게 아담하고 귀엽고 어딘가 허술해보이는 배는 또 처음이라 귀여워서 찍어봤다.

그런데 이 깡통보트처럼 보이는 배의 이름은 무려 '코스모스'!!! 우주!!!! 진짜 맘에 든다 :)

 

나중에 페테르부르크 유람보트들과 이들의 이름들에 대해서도 시간 나면 한번 줄줄이 올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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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전히 덥다.. 쉬는 날이라 참 좋긴 한데 통창문 오피스텔이라 집이 온실처럼 더움.. 에어컨을 계속 틀어놓자니 춥기도 하고 전기세도 걱정되고 해서 잠깐 끄고 선풍기만 켰는데 너무너무 덥다.. 다시 켜야겠다..

 

그래서 지난 2월의 추웠던 페테르부르크 사진 몇 장으로 더위를 쫓아보는 중이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운하와 네바 강, 공원을 보면서 더위 쫓아보세요~

 

위의 사진은 얼어붙은 모이카 운하 위로 눈이 쌓인 것.

여름날이면 운하 여기저기 있는 저 오목한 계단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병나발을 분다 :)

 

 

 

역시 모이카 운하.

가끔 올린 적 있는 마린스키에서 이삭 성당 쪽 가는 그 길이다. 여름날의 이 운하는 물결이 넘실거리고 유람보트가 거품을 내뿜으며 흘러가지만.. 겨울엔 이렇다 :)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 맞은편으로 이삭 성당이 보인다~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에서 청동기사상이 있는 원로원 광장 가는 길.

저 눈 위에서 뒹굴고 싶어라.. 아이 더워라..

 

 

 

 

광장 너머로는 네바 강과 인류학 박물관 쿤스트카메라 건물이 보이고..

 

 

꽁꽁 얼어붙은 네바 강과 그 위로 쌓인 눈~~

아, 빙수 먹고프다..

 

 

 

쿤스트카메라 건물. 등대. 궁전 다리. 오른편 저멀리 보이는 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 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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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12. 20:38

백야 황혼녘에 운하를 따라 걷다가.. russia2015. 8. 12. 20:38

 

 

해가 다 지고 캄캄해지고 있었던 때라 플래쉬 안 터뜨렸더니 사진이 세 장 다 조금 흔들렸지만 내 마음에 들어서 지우지 않고 남겨두었다. 사실 나는 흔들린 사진도 색감이 마음에 들면 좋아하는 편이다.

 

7월 25일. 마린스키에서 발레 해적 보고 숙소로 돌아가던 길이다. 다음날 떠나야 했기 때문에 참 아쉬웠다..

삐쭉 보이는 황금빛 돔은 역시 이삭 성당의 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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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이번 마지막 공연인 마린스키 발레 '해적' 보러 가는 길에 찍었던 사진 몇 장.

날씨가 매우 좋았던 날이다. 오전에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갔었고 숙소로 돌아와 잠깐 쉬다가 공연 보러 나갔었다. 숙소가 있는 포취탐스카야 거리에서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 쪽으로 가서 모이카 운하로 나온 후 운하를 따라 쭈욱 걸어가면 데카브리스트 거리에 있는 마린스키 극장에 이를 수 있다.

 

가운데의 곡선 램프가 보이시는지. 저 거대한 가로등 램프가 양쪽에 서 있는 저 다리의 이름은 '포나르느이 모스트', 즉 가로등 램프 다리이다.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1세가 베네치아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도시이기 때문에 운하와 다리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이 도시는 옛날부터 북방의 베네치아라고 불렸다. 나는 업무 때문에 베네치아에도 여러번 가봤고 그곳 운하와 다리들도 많이 걸어본 편인데 페테르부르크는 확실히 운하 도시이긴 하지만 '북방의'가 중요한 것 같다. 베네치아는 훨씬 손때묻고 아기자기하고 전통적이고 뜨끈뜨끈하고 화사하다. 페테르부르크는 보다 인공적이고 차갑고 환상적이고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도시이다. 그리고 황제의 뜻에 따라 인위적으로 계획되어 지어진 도시, 러시아라는 국가의 특성, 기후 등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페테르부르크의 운하는 베네치아보다 더 넓고 반듯하다. (그러나 역시 운하도시인 암스테르담과 비교하면 이쪽이 더 좁고 무질서해보였는데, 그건 서구 유럽과 러시아의 특성이 또 달라서일지도..)

 

하여튼 나는 베네치아보다도, 암스테르담보다도 페테르부르크가 제일 좋다 :)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이게 바로 어떤 도시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새나 짐승이 보이면 꼭꼭 사진을 찍어봄 :)

 

 

 

다리마다 이렇게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이 다리는 포취탐스키 다리.

 

 

 

전날까지 비오고 춥다가 드디어 찬란한 백야 시즌의 여름 날씨.. 이날 유람 보트 탄 사람들은 행운!!

 

 

 

 

 

페테르부르크는 운하와 다리가 많아서 이렇게 난간 문양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실제로 러시아 사람들이 페테르부르크를 만화로 표현하면 꼭 강물과 다리 난간이 나온다!

 

 

 

 

 

언제나 그렇듯 수면에 부딪치며 자잘하게 부서지는 찬란한 햇살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서 이렇게 마린스키 극장 도착. 해적은 신관에서 공연했기 때문에 신관으로 건너가고 있음. 신관의 유리창에 맞은편 마린스키 극장 구관이 그대로 비치고 있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실제로 마린스키 극장과 신관 사이에 서게 되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묘한 풍경에 매혹된다. 여전히 내게, 그리고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에게 진짜 '극장'은 오리지널 마린스키 극장, 구관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도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여러 차례 공연 보러 가보니 신관에도 이미 애정이 생겼음(일단 공연 보기가 좋다)

 

다시 가고 싶다!! (항상 결론은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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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6. 21:39

여름 밤의 페테르부르크 풍경 세 장 russia2015. 8. 6. 21:39

 

 

포취탐스카야 거리.

 

 

 

모이카 운하

 

 

 

역시 모이카 운하

 

7월 25일. 마린스키에서 마지막 공연인 '해적' 보고 돌아오던 길에 찍은 사진 세 장이다. 다음날 떠나야 했으므로 너무너무 서운하고 가슴이 아팠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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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3. 14:32

지나가다 발견한 술병들 russia2015. 8. 3. 14:32

 

 

전에도 두어번 이런 사진들 올린 적 있다. 돌아다니다 길거리에 뒹구는 술병들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어서 종종 사진 찍는다. 이런 거랑 낙서, 간판, 메뉴 손글씨, 창문, 울타리 문양, 램프 등등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이건 모이카 운하. 마린스키 공연 보고 돌아오던 길에.

 

 

 

이건 스트렐까. 맞은편으로 에르미타주가 보인다.

이쪽으로는 신랑신부들이 기념촬영을 많이 하러 오고 샴페인 건배를 한 후 돌난간에 잔을 깨뜨리는 관습도 있어서 여기저기 이렇게 술병들이 나뒹군다.

 

 

 

이건 마지막 날. 그리보예도프 운하 따라 돌아오면서 찍은 사진. 바닥에 그냥 막 버려놨네.. 마실 때는 좋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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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마린스키 극장에서 슈클랴로프의 라 바야데르를 보고 나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모이카 운하를 따라 쭉 걸어왔다. 밤 10시 반 즈음. 해는 다 넘어가고 어스름에 잠기고 있음. 이때 찍은 사진 몇 장.

 

맞은편에는 아름다운 이삭 성당의 황금빛 돔이 보인다.

 

 

 

꽤 쌀쌀했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수면에는 자잘한 물결이 쉼없이 일었다.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았더니(원래 플래시 쓰는 걸 안 좋아한다) 황혼녘이라 빛이 모자라서 사진이 다들 조금씩 흔들리거나 화질이 흐린 편이다. 근데 이게 또 황혼 즈음의 매력인 것 같다. (나만 그런 건지도)

 

 

 

 

 

 

 

페테르부르크의 하늘은 언제나처럼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웠다.

 

 

 

많이 걸어내려왔기 때문에 이삭 성당의 돔은 이렇게 점점 건물들 너머로 숨어들고..

 

 

 

이쯤에서 다리를 건너고..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검푸르게 변해가는 수면 위로 가로등 불빛과 신호등 불빛이 부드럽게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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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5. 7. 11. 21:59

추운 동네 보면서 더위 좀 쫓자 russia2015. 7. 11. 21:59

 

 

사우나 같은 날씨 때문에 참 괴로운 여름날이다.

추웠던 때 사진 보면서 조금이라도 더위를 달래보는 중. 지난 2월 페테르부르크 갔을 때 찍은 사진 몇장.

이건 모이카 운하. 눈 꽁꽁~

 

 

 

역시 모이카.

 

 

 

이제부터는 얼어붙은 네바 강.

가운데는 이렇게 얼음이 깨져 있었다. 가운데로 보이는 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와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

 

 

 

더워서 그런지 얼음이 전부 빙수로 보인다...

 

 

 

 

 

 

 

마지막은 갈매기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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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