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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2014년 7월 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의 일이다.

떠나기 이틀 전 밤에 공연을 보고 나서 백야의 네바 강을 따라 실컷 산책을 하고 석양을 봤다. 그리고는 이미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던 시각이라 해가 졌고 나는 에르미타주를 돌아 궁전광장을 건너서 이삭 성당 앞에 있는 숙소를 향해 돌아가려는 길이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쪽으로 접어들었을 때 드럼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묵직하고 살짝 긁는 듯한 남자의 저음이 들려왔다. 별건 아니고 '라즈 드바 뜨리', 즉 러시아어로 '하나 둘 셋'이었다. 락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조율을 하면서 하나둘셋 하나둘셋 하고 맞춰보고 있는 거였다. 야외 카페 테이블 앞에는 관광객들과 산책하던 시민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언제나 락 음악과 무거운 베이스, 일렉트릭 사운드와 저음의 남자 보컬에 끌리곤 하는 나 역시 잠깐 멈춰섰다. 모르는 사람들 옆 테이블에 앉기가 머쓱해서 그냥 서서 연주를 들었다. 그때 나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나왔기 때문에 얄팍하고 바람에 펄럭이는 오렌지 쉬폰 민소매 원피스와 구두 차림에 화려한 스카프 한 장을 두르고 있었다. 거리에서 락 밴드의 연주를 듣기에는 조금 안 어울리는 복장이었지만 덕분에 눈에 띄었는지 밴드가 노래 한곡을 마쳤을 때 박수를 치고 있는데 보컬이 윙크를 하며 '스카프가 멋져요, 끄라사비짜'라고 해서 뜬금없이 잠깐 설렐 뻔 했다 :) (끄라사비짜는 미인이란 뜻인데... 나는 토끼이므로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니었... ㅋㅋ)

 

그들은 내가 전혀 모르는 러시아 노래를 불렀다. 자신들의 노래인가 싶었다. 아주 저음의 락 보컬이라 듣기 좋았다. 오랜만에 드럼과 일렉트릭 사운드 들으니 좋았고.. 에르미타주 궁전과 네바 강, 다리, 석양과 일렉트릭 사운드 밴드 음악이 어우러지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꿈 같기도 했다. 매우 행복했던 순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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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