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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8. 22:49

파편 from 밤, 레닌그라드 about writing2020. 2. 8. 22:49

 

 

얼마 전에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연말과 새해에 따로 구상했던 글이 있었는데 막상 자리에 앉아 노트를 열고 메모들을 적기 시작하자 다른 글을 쓰게 되었다. 가제를 '밤, 레닌그라드'라고 붙여놓긴 했는데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는 물론 모르는 일이다. 오래전부터 머릿속으로 이따금 상상하던 장면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마 지금은 이 이야기를 써야 하는 시기인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주말에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좀 빨리 적어내려간 문단들 중 약간을 발췌해본다. 쓰는 중이라 아직은 호흡이 빠르고 거칠다. 문장들은 미샤의 1인칭 독백으로 기술된다. 가제 그대로, 어떤 밤과 레닌그라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좀 더.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나는 언제나 그렇듯 크냐제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그럴싸한 술책을 부리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누군가에 대한 서류를 만들고 절차를 밟는 데 있어 가장 필요 없는 존재가 누구라고 생각해? 당연히 그 자신이지. 등록 말소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모스크바로 이송되었을 때 레닌그라드 거주등록부에서 지워진 상태였어. 어쩌면 그 전에, 재판을 받기도 전에. 아니, 헤아릴 수 없는 이전의 어둠 속에서.

 

 

그건 전혀 중요한 사실이 아니야. 내 핏속에 어떤 도시가 있고 그건 등록과는 무관하기 때문이야. 어떻게 번호와 글자와 도장과 서류철들이 한 인간을 어떤 도시에 영원히 속하게 만들 수 있겠어. 그건 하느님의 영역이겠지.

 

 

 

 

 

 

사진들은 작년 6월, 백야 시즌 한밤중의 페테르부르크 판탄카 운하. 소련 시절에는 레닌그라드. 이 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거대하고 묵중한 다리는 로모노소프 다리이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편 너머에 바가노바 발레학교가 있다. 미샤는 학창 시절 이 다리를 셀 수도 없이 건너다녔고 모든 운하와 모든 골목을 따라 걸었을 것이다.

 

 

 

 

 

 

 

 

로모노소프 다리에서 운하 쪽을 향해 찍은 사진인데 황혼녘이라 빛이 모자라서 흔들렸다. 저멀리 한가운데 흐릿하게 보이는 세개의 둥글고 파란 쿠폴은 트로이츠키 사원의 쿠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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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