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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루빈슈테인 거리 초입에서 찍은 것. 이 도시의 힙스터들이 몰려드는 곳이지만 이땐 이른 오후라 한적했다.


..



어제 여독과 그간 노동착취로 누적된 피로 때문에 10시 안되어 잠들었다. 새벽 5시쯤 깨서 두어시간 뒤척이다 다시 잠들었고 앞서 남긴 메모와 같이 괴기스러우면서도 격렬하고 재밌는 꿈을 꾸었다. 이런 꿈들 다 모아서 나중에 단편들 쓰고 싶은데 쓰고픈건 넘쳐나지만 맨날 노동착취당하느라 에너지 안 생김 ㅠㅠ



조식 먹었다. 오늘은 치즈와 버​섯 든 오믈렛을 부탁해 먹었는데 유럽호텔보단 아스토리야가 오믈렛을 더 잘 만듬 ㅠㅠ



날씨가 흐리고 어제보다 선선했다. 낮에 비온다는 예보가 있어 망설이다 그래도 수도원 가고 싶어서 료샤, 레냐와 같이 갔다. 다행히 오늘도 비는 안 왔다.


수도원에 갔는데 마침 교회 종 연주 축제가 있었다! 종소리를 좋아하는 날 위한 선물인가! 한시에 도착했는데 딱 한시에 시작! 자리 없어서 저만치 떨어진 화단 귀퉁이에 레냐랑 앉아서 몇곡 들었다. 행복... 근데 난 종 연주만 계속 했음 좋겠는데 중간에 자꾸 독창, 합창이 있어 아쉬웠다. 좀 듣다가 사원에 들어갔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예배 마친지 얼마안된 시각이라 그런지 어수선했다. 원래 이곳은 경건하고 어두컴컴하고 고요해서 좋아하는 곳인데.. 초 켤 자리도 간신히 찾음...



사원 나와서 검고 축축한 흙을 밟으며 묘지 사이를 거닐었다. 네프스키 수도원 묘지는 무섭거나 괴기스럽지 않고 무척 평화롭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반지하의 소박한 수도원 티룸(진짜 소박함) 갔다. 목이 말라서 모르스를 마셨고 전에 본적 옶던 서양배 절임 든 빵을 한개 먹었다. 역시 수도원 빵이 제일 맛있다.. 근데 40루블이라 전보다 가격이 약간 오른 듯.. 하긴 올때마다 버스요금 오르는걸 보면 그럴만도 하다. 그치만 우리 돈으로 800원도 안되는 가격으로 이런 빵을 먹을수 있는 것이다...



내가 서양배 절임 빵을 먹으며 맛있다 하자 사과빵 먹던 료샤가 내 빵 절반 쪼개갔음. 강탈자! 하고팠지만 얘가 원래 서양배 좋아하니 그러려니..



‘왜 애초부터 서양배빵 안시킨겨?’ 하고 묻자 료샤는 ‘난 네가 사과빵 먹을줄 알았단 말이야! 넌 배보다 사과 더 좋아하자낫’ 한다. 그건 서양배가 맛이 없으니 그렇지 나도 우리 나라에선 배 더 좋아하는데!!!


그동안 레냐는 버섯빵 먹음. 어른 둘은 달달한 서양배빵 사과빵 먹는데 열살 레냐는 버섯빵 먹었다 ㅋㅋ



수도원에서 나와 루빈슈테인 거리에 차 세워 놓고 골목 거닐었다. 그 사이에 도블라토프 동상이 생겨서 너무 반가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현대 러시아 작가이다. 루빈슈테인 거리에 이 사람이 망명 전까지 살았던 집이 있다.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도블라토프 동상의 손을 어루만지며 사랑과 존경을 담아 소원을 빌었다. 어째 수도원 촛불 앞에서 기도했을 때보다 더 경건하게.


료샤는... 이넘 누구냐고 했다 ㅠㅠ 야 해도 너무해 ㅠㅠ너 뻬쩨르 토박이자나 ㅠㅠ 이 도시가 낳은 최고 작가 중 하나인데 정말 너무해 ㅠㅠ 아무리 문학과 담쌓아도 그렇지 엉엉...


오히려 레냐는 ‘알아!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여행가방!’ 하고 외침. 여행가방은 도블라토프의 유명단편집이다. 물론 레냐도 안 읽었지만(10살짜리가 읽긴 아직 도블라토프는 무리) 그래도 누군지도 알고 책 제목도 안다! 아이고 기특해!!!



전에 bravebird님 소개로 알게 되어 종종 갔던 우크라이나 음식점 쉬녹에 가려 했는데 문닫았는지 그 자리에 딴 식당이 있었다 ㅠㅠ 흑, 음식 맛있었는데.. 하긴 갈때마다 넘 한적했어... 아님 우크라이나 음식점이라 닫았나 엉엉..



실망한 우리는 이쪽에 오면 항상 들르는 대형 수퍼마켓 랜드가 있는 쇼핑몰 감. 2년 전 6월에 지치고 괴로운 상태로 머무르던 무렵 몇번 갔던 브리티쉬 베이커리에 가서 좀 쉬면서 티백 차 마시고 까르또슈까 먹음. 그리곤 수퍼마켓 가서 먹을거 조금 샀다.


레냐는 이모 생일이라 저녁 같이 먹기로 했기 때문에 집에 먼저 가야 했다. 이모보다 쥬쥬가 더 좋다고 찡찡대는 레냐를 집에 데려다준 후 료샤랑 나는 호텔로 돌아왔다.



료샤는 레냐가 평소엔 의젓한데 나만 나타나면 어리광쟁이가 된다고 투덜투덜.. ‘근데 너야말로 애 어리광 다 받아주는 아빠임! 레냐가 의젓한건 전부 무서운 엄마 이라 때문임!’ 해주고팠지만 료샤는 여전히 전부인 이라를 무서워하므로 그 말 안함 ㅋㅋ



쉬녹 문 닫았다는 슬픔에 잠긴 나에게 료샤는 비프 스트로가노프를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거라고 꼬셨다. 그래서 유럽호텔 바에 내려가 칵테일이랑 비프 스트로가노프 시킴.



여기 비프 스트로가노프는 시그니처 메뉴이고 공작의 오리지널 레시피대로 만든다고 하는데 나도 무척 좋아하지만 꽤 비싸다. 그런데 일이년 전 마지막으로 먹었을때보다 가격도 훨씬 올랐기 때문에 칵테일 한잔, 비프 스트로가노프 한접시 합치면 무려 3천루블이 넘어서 아무리 그랜드호텔유럽이라도 너무 비싸단 생각이 들었다. 루블 쓰는 동네에서 유로 쓰는 동네 비싼 식당 가격이라니 ㅠㅠ



근데 막상 비프 스트로가노프 나오자 역시 무지 맛있어서 그냥 가격을 용서했음. 이렇게 만드는 비프 스트로가노프는 다른데선 먹을 수 없다. 진짜다...






그리고 안나 아흐마토바 이름 붙은 칵테일 마셨는데 이게 쫌 셌다. 내 칵테일 한모금 마셔본 료샤는 얼굴 찌푸리며 내게 ‘또 기절하면 어쩔겨! 이번엔 방에 안 업어다줄거야!’ 하고 투덜댔음. (몇년 전 이 바에서 낮에 복숭아 벨리니 마신후 필름 끊겨서 료샤가 방까지 업어다준 적 있는데 그후부터 칵테일 한잔만 마시려 하면 엄청 잔소리한다 ㅠㅠ 내가 너니까 그나마 같이 마시지ㅠㅠ)



다 먹고 마신 후 역시나 내가 노곤해하자 료샤는 거보라는둥, 못마시는 술 왜 마시냐는둥 잔소리하며 방까지 데려다줌. 그래도 내발로 걸어왔음!!! 단백질 가득한 비프 스트로가노프랑 먹어서 별로 안 취했음. 유럽 호텔 로비 바는 다 좋은데 김릿이 없다. 칵테일 종류가 15개 뿐이라 아쉽다.



료샤는 내가 곧 맛이 갈거라 지레짐작하고 툴툴대며 ‘에이 오늘도 윷놀이는 글렀구만. 빨랑 자, 이 알까골릭아!’ 하며 집에 감.



아니 내가 왜 알까골릭(알콜중독자)인가.. 칵테일 한잔 마셨고만 ㅠㅠ 술도 일년에 서너번 마실까말까에 회식할땐 윗분들이 줘도 안 마시는데!!!! 이럴때나 한잔 마시는데 서럽구나 엉엉 ㅠ 넌 나보다 윷놀이가 더 좋냐 흐앙... 윷놀이 괜히 가르쳐줬어 엉엉...



하여튼 목욕을 하고 소파에 앉아 방에 비치된 잡지를 좀 보고 나니 술기운도 가셨다. 료샤 이 바부팅이 왜 갔냐 나 안 취했는디.. 윷놀이 할수 있는디.. (해봤자 내가 지니까 재미없긴 함. 얘 윷놀이 너무 잘함 ㅠㅠ)



내일 날씨 좋으면 뻬쩨르고프 가고프긴 한데.. 화욜부터 비온대서 내일이 적시이긴 한데 자봐야 알겠음. 즐거운 하루였다. 회사 안가면 이렇게 좋은 것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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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