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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날씨가 흐리고 음습했다. 새벽 늦게 잠들어서 아주 늦게까지 침실에 누워 있었다. 중간에 깨서 꽃과 배달 식료품을 정리하긴 했지만 도로 침대에 들어가 뻗어 있었다. 그래서 두시 넘어서야 아점을 먹고 늦게 차를 마셨다. 날씨가 어두워서 티타임 사진은 이거 하나 뿐이다. 이 블랙 애크미 잔은 작년 빌니우스의 테이스트 맵(내가 '무적'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던 카페)을 생각하며 주문했던 것이다. 오늘 날씨가 흐려서 테이스트 맵에 갔던 첫날 생각이 났다. 그런데 러브라믹스든 애크미든 사실 크레마가 도는 커피가 더 잘 어울리고 예쁘긴 하다. 홍차의 수색이 잘 사는 잔은 얇은 도자기 잔이니까. 
 
 
오늘까지도 붉은 군대의 여파로 두통과 오한에 시달렸다. 좀전에도 진통제를 먹었다.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이번 주는 건강검진으로 시작해 중간중간 몸이 안 좋아서 뭔가 빡세게 일하긴 했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다음주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만 늘고 있음. 내일까진 일 생각 안하고 쉬어야 하는데. 
 
 
일린과 한동안 통화를 했다. 러시아어와 영어를 섞어서. 이번에 프라하에서 재회했을 때 처음으로 그의 어머니가 러시아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바이킹 느낌이 별로 안 났나보다. 브루넷이고) 오래전 에릭, 일린, 나와 료샤가 함께 만났을 때 료샤와 내가 주고받는 말도 사실은 상당 부분 알아들었다고 한다. 모국어, 유창한 영어, 그리고 절반쯤 알아듣기는 하지만 말은 서툰 러시아어(러시아어는 분명 나보다 못하는데-특히 독해는 더더욱, 그래도 또 회화는 그럭저럭 필요한 건 한다).
 
 
좋겠다, 3개 국어를 해서. 부럽다고 했더니 '왜, 너도 3개 국어 하잖아? 한국어, 러시아어, 영어'라고 되묻는다. 흐흑, 너는 영어 유창하고 나는 안 유창하잖아. 러시아어도 이제 읽는 것 외에는 점점 다 쇠퇴하고 있다고. 그랬더니 이 사람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나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일해서 그래. 지나가면 다 잊어버리지. 나도 베를린에서 일할 때 독일어 꽤 익혔는데 지금은 잘 안돼. 너는 계속 한국에서만 일하니까 그렇지. 거기다 언어 특성이 다르잖아. 나는 일본 출장 열번쯤 갔는데도 아직 일어는 하나도 모르겠어' 라고 한다. 좀 감동받다가... (그리고 유럽어권에서 언어 익히는 거랑 우리가 그쪽 언어들 익히는 건 같은 레벨이 아니란 사실은 나도 아니까) '독일어 꽤 익혔는데'라는 말에 퍼뜩 '아니 뭐야 그럼 너 4개 국어 하는 거네..'라는 생각이 들어서 위로를 받다가 말았음 ㅎㅎ 그리고 나도 일본 여러번 갔고 대학 때 일어 한학기 배웠는데 지금도 히라가나 가타가나도 못 읽고 일본 가면 완전 까막눈이란 말이야...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일린이 '그런가, 근데 그런게 그렇게 중요한가. 말은 그냥 수단일 뿐인데. 상심할 필요가 뭐가 있니' 라고 다시 위로해주었다. 흠, 다정한 남자이긴 한데, 이 친구는 재무 전공에 회계사 자격증인가도 있고 하여튼 그렇지만 나는 심지어 언어를 전공한 사람이니 언어 능력의 쇠퇴에 대한 접근이 애초부터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긴 하다. 나에겐 말이 그냥 수단일 뿐일 수는 없으니까. 하여튼 그래도 이 사람이 다정하게 위로해 주면서도 현실을 장밋빛으로 포장해주지는 않는 게 좋다. 에릭은 '무슨 소리야, 마이 러블리 리틀 베이비, 너는 지금도 영어 잘해, 발음도 짱 좋아~' 하며 현실을 우회해 호들갑을 떤단 말이지. (그런데 얘가 그러면 너무 뻔히 호들갑 떠는 거 들여다보이긴 하지만 귀엽긴 해) 
 
 
.. 그런데 이 메모를 적다 보니, 혹시 이 사람 네덜란드어도 할 줄 아는 거 아니야??? 하여튼 뭐가 됐든 부러움으로 마무리 ㅎㅎ
 
 
 





오늘의 꽃은 피콜리니 거베라. 저렴하고 다듬을 게 없어 주문했는데 컬러 랜덤이라 완전 자줏빛 가까운 핑크가 와서 쫌 아쉽다. 
 
 

 
 
지난주의 하얀 알스트로메리아도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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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