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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7. 23:52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을 따라 russia2014. 1. 17. 23:52

 

 

작년 가을. 페테르부르크에 일주일 머무르고 떠나는 날 오전. 호텔이 예술 광장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푸시킨 동상을 지나 루스키 무제이(러시아 미술관)와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을 한 바퀴 돈 후 그리보예도프 운하와 모이카 운하 쪽으로 산책을 갔다.

표지판에 '예술광장'이라고 씌어 있다. 이곳이 예술광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러시아 미술관,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을 비롯해 바로 앞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연주홀까지 모여 있기 때문이다.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전에 몇번 얘기한 것 같지만 이 극장 이름도 페테르부르크나 마린스키 극장과 마찬가지로 파란만장하다. 제정 시대엔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이었지만 소련 시절엔 무소르그스키 극장으로 불렸고 '말르이' 극장이라고도 불렸다. ('말르이'는 '볼쇼이'의 반대말로 '작은'이란 뜻이다. 드라마 극장으로 유명한 말르이-우리 나라엔 '말리'라고 소개됐을듯-와는 또 다른 극장임)  하지만 나중에 다시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내가 처음 머물렀던 90년대 후반만 해도 무소르그스키 극장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 이름이 입에 익긴 하다.

내가 고전 발레를 가장 처음 본 극장이다. 첫 발레는 마린스키에서 봤던 예브게니 판필로프 안무의 '봄의 제전'과 '결혼'이었지만 고전 발레는 여기서 본 '잠자는 미녀'였다.

다들 지루하다고 했지만(사실 잠자는 미녀는 다른 레퍼토리들에 비하면 재미나 춤 자체의 아름다움은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나는 정통 고전 발레보다는 드라마틱한 쪽을 더 좋아해서) 그래도 처음 본 고전 발레라 그런지 너무 재미있게 봐서 지금도 잠자는 미녀에 대해서는 애정이 있다.

왼쪽 석판에는 '이 건물에 유명 화가 이사악 브로드스키가 살았었다' 라고 새겨져 있음.

 

 

10월 1~4일에 '파리의 불꽃' 프리미어가 있다는 거대 광고판. 일정이 안 맞아 못 봤다. 사실 나는 프로파간다 색채가 묻어나는 발레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아쉽진 않았다.

 

 

이건 나초 두아토가 그때 새롭게 선보인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 광고판. 매진 띠가 붙어 있다. 이 공연 봤다. 폴리나 세미오노바와 이반 자이체프가 췄다.

훌륭한 무용수들이었고 무대 미술도 좋았지만... 지나치게 무용수들의 테크닉과 화려한 움직임에 포커스가 맞춰진 나머지 이 발레의 가장 중요한 점.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타오르는 케미스트리가 너무 약했다. 그냥 로미오와 줄리엣이 계속해서 열심히 뛰어오르고 격렬히 춤추다 후다닥 죽는 것이다. 감정 이입할 여지가 너무 없었다. 프로코피예프 음악조차 도움이 안 됐다. 세미오노바가 추는 걸 본 건 좋았지만 그래도 너무 아쉬웠다.

 

 

내가 좋아하는 이 곳 가로등 램프.

 

 

극장 창문. 옛날 생각난다. 공연 보러 왔다가 막간에 나오면 저 창가 쪽에 놓인 긴 테이블 위에 엽서와 발레 잡지, 포스터, 심지어 마트료슈카와 파블로프스크 숄이 늘어서 있었지. 에이프만의 까라마조프와 돈키호테 보러 갔을 때 거기서 잡지랑 포스터 샀던 기억이 난다.

 

 

이것도 극장 뒷편 창문. 이건 왜 찍었냐면... 아마 여기가 연습실인 듯. 지나가는데 성악가가 열심히 아리아 연습을 하고 있어 창문 사이로 우렁찬 노랫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새어나왔다.잠시 창문 곁에 서서 노래 들었다. 그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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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