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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7. 15:48

꿀, 설탕, 레몬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2023. 8. 7. 15:48

 

 

 

 

 

나는 보통 홍차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향이 너무 센 배합차나 가향 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다즐링, 실론, 아삼 같은 차를 스트레이트로 마신다. 이따금 기문이나 랍상소총을 주문할 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 경우로, 이때도 당연히 다른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는다

 

 

예외는 여행을 갔을 때로, 목이 붓고 몸살의 전조가 느껴질 때는 조식 테이블의 홍차에 꿀과 레몬을 넣는다. 레몬은 얄팍한 슬라이스로 내주기 때문에 두 조각을 집어서 즙을 꼭꼭 짜 넣는다. 음료 배식대에 레몬이 없는 경우도 많아서 이때는 샐러드 테이블에서 레몬을 집어온다. 예쁘게 마시려면 얇은 레몬 조각을 둥둥 띄워놓으면 되지만 사실 그러면 즙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아무 효과가 없다. 고급 호텔이 아니면 짜개까지 준비된 곳은 거의 없으므로 손가락과 포크로 꼭꼭 눌러서 즙을 잔뜩 짜 넣는다. 여기에 꿀을 크게 한 숟가락 넣어 녹인다. 일회용 조그만 용기에 든 꿀이 있으면 부어서 마시기에 편리하긴 한데 점도와 맛으로 미루어보면 이것들은 꿀의 탈을 쓴 시럽일 가능성이 높다

 

 

너무 추울 때는 설탕을 넣는다. 이것은 맨 처음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오랜 옛날 러시아에서였고 그 동네는 항상 차에 설탕을 넣기 때문이다. 확실히 추울 땐 차에 설탕을 넣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 꿀보다 설탕이다. 경험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카페에 가서 홍차를 시켰을 때 별말도 없이 우유와 레몬과 꿀을 내주면 매우 기분이 좋아진다. 설탕은 조금 더 복잡하다. 위생적으로는 그다지 권장할만한 일은 아니겠으나 각설탕이 가득 든 그릇이 있으면 어쩐지 가슴이 설렌다. 옛날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테이블 위에 설탕이 차곡차곡 들어차 있는 도자기 그릇이나 조그만 컵이 놓여 있으면 그것에도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접시는 딱히 감흥이 없다. 차에 설탕을 넣는 건 거의 일이 년에 한 번뿐이건만 그래도 테이블 위에 설탕이 놓여 있어야 기분이 좋고 뭔가 모자람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것도 아직은 여행지에서의 낭만에 가깝다. 국내에서는 맘먹고 찾아가는 티룸이 아닌 한 보통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티백 담가주는 홍차를 시키게 되고, 냅킨을 가지러 가면서 일회용 설탕 한 봉지를 직접 챙기는 정도니까. 우유와 레몬과 꿀은 요원하다. 어차피 제대로 넣어서 마시지도 않는 주제에 뭘 그렇게 따지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이 든다.

 

 

 

덧글 1 : 홍차에 꿀을 넣으면 탄닌 성분에 문제가 생겨서 몸에 좋지 않으므로 영양학적으로는 설탕을 넣는 게 맞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정보를 알게 된지도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고집스럽게 꿀을 타서 먹고 있다.

 

 

덧글 2 : 우리 집에는 설탕이 없다. 요리할 때 설탕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따금 프랜차이즈 카페에 갔을 때 일회용 설탕을 두어 봉지 챙겨오는데, 이것은 꽃들에게 먹이는 용도로 쓴다. 꽃이 시들시들할 때 화병의 물에 설탕과 락스를 타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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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작년 겨울 프라하 여행의 메모로 짧게 적었던 원글이 있다. 그것을 좀더 다듬은 버전이다. 원글은 아래. 사진이 몇 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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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