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317주년 + about writing2020. 5. 27. 22:50
이 도시는 텅 비었고 동시에 온전하게 꽉 차 있다. 빛이고 어둠이다. 실체 없는 그림자이다. 모든 것이 번쩍이는 투명한 섬광 속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돌아온다. 거대하고 무관심하고 부드럽게. 숨을 수 없다. 하지만 드러나지도 않는다. 밤도 없고 낮도 없다. 무거운 물결들로 가득한 네바 강과 검게 내려온 하늘을 구분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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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페테르부르크가 317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념으로 백야의 청동기사상 사진 한 장 올려본다. 2015년 7월 한밤중에 산책하며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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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문장들은 최근 썼던 단편에서 주인공이자 화자인 미샤가 자신의 도시인 레닌그라드(지금의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이야기하는 파트에서 일부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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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맨 처음 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물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친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며 말했었다. 뻬쩨르(페테르부르크) 300주년에 꼭 궁전광장에서 다시 만나!
300주년은 2003년이었다. 우리는 그때 궁전광장에서 재회하지 못했다. 내가 다시 그 도시로 돌아간 것은 그 이후였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후에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매년 뻬쩨르에 간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 궁전광장에서 재회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맘때가 되면, 이 도시의 생일이 되면 나는 항상 저 문장을 그대로 떠올린다. 뻬쩨르 300주년에 궁전광장에서 만나! 시기는 지나갔고 모든 것이 변하고 또 흘러간다. 하지만 저 말을 했을 때의 마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생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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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쟈 슈클랴로프님도 자기 인스타에 뻬쩨르 생일을 기념해 찍은 영상 클립을 올렸다. 모이카 운하변에 있는 켐펜스키 모이카 호텔 옥상에서 찍은 비디오인데 매우 아름답다. 궁금하신 분들은 이분의 인스타에 가보시길.
** 추가 : 그 영상은 여기 : https://tveye.tistory.com/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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