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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12. 21:23

석양 무렵의 프라하 2016 praha2017. 4. 12. 21:23




작년 9월.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에 머물 때였다. 캄파 공원 쪽으로 해서 석양 보러 갔었다. 잠깐 카를 교도 거닐고. 










엄청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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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4. 10. 21:34

로레타 사원 앞에서 잠시 2016 praha2017. 4. 10. 21:34




작년 9월. 프라하.


작년에는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주워모으고 일으키기 위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혹은 자력에 이끌리듯 바깥으로 나다녔다. 새로운 곳에 가지는 않았다. 이미 익숙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이방인으로 있을 수 있는 곳. 동시에 무척 사랑하는 곳. 페테르부르크와 프라하에 가서 몇주씩 머물렀다.


여기는 프라하. 로레타 성당 앞 돌계단에 잠시 앉아 지친 발을 쉬는 중이었다. 햇살이 쨍했고 상당히 더운 날이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어정거리며 다가왔다. 빵조각이라도 먹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나는 목말라서 물만 마시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주자 '그럴 줄 알았다~' 하며 시크하게 지나쳐감






아픈 발을 좀 쉬고 물을 마신 후 이 문을 통과해서 티켓을 사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프라하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이다. 이 사원 자체보다는 이곳의 종소리를 좋아한다. 프라하에서 딱 한 곳만 가라고 하면 카페 에벨이고 두 곳을 가라고 하면 카페 에벨과 이곳이다. 여기서 종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행복하고 가슴 벅찬 일이다. 이곳의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상처가 치유되는 기분이다.




여기 종소리 cd도 사오긴 했는데 역시 파란 하늘 아래 울려퍼지는 라이브 종소리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그래도 아름답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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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3. 30. 22:34

2016 praha2017. 3. 30. 22:34

 

 

새는 멀리 떨어져 홀로 있었다. 마치 오래되고 유명한 시에서 나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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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24. 21:24

파편 2016 praha2017. 3. 24. 21:24




프라하. 9월. 레기 교 따라 걷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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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3. 20. 22:15

모스크바 요양소, 재판 about writing2017. 3. 20. 22:15

 

 

아래 발췌한 글은 이전에 가끔 올렸던 미샤의 수용소 이야기 일부이다. 소설은 레닌그라드 수용소의 1부, 모스크바 요양소의 2,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수용소 간수 흘레브니코프, 2부는 미샤의 후원자인 정치가 게오르기 벨스키가 심리적 화자로 등장하고 3부는 미샤의 친구인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한다. 1~3부 모두 토막토막 발췌해 올린 적이 있다.

 

아래 글은 2부의 거의 도입부이다. '거의'라는 말을 쓴 이유는 이 앞에 벨스키와 요양소장이 나누는 대화가 몇장 있기 때문이다. 유력한 정치가이자 미샤의 예술적 후원자 중 하나인 게오르기 벨스키가 미샤의 병실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들이다.

 

게오르기 이바노비치는 벨스키의 이름과 부칭이다.

 

게르만 알렉세예비치는 스비제르스키의 이름과 부칭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전에 여러번 발췌한 적이 있다. 역시 정치가로 미샤의 후원자이며 벨스키와는 달리 미샤와 끈끈하고 격렬한 관계를 맺고 있다.

 

러시아 이름과 부칭을 함께 부르면 존칭의 의미가 된다.

 

 

..

 

 

내가 그를 수용소에 보내고 어둠 속으로 밀어넣고 고통을 겪게 한 것은 그때 그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내가 그때 써야 했던 것이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접근방법은 무수하게 달라질 수 있다. 문체도, 시점도, 심지어 사건이나 플롯, 슈젯조차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아직은.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햇살이 밝고 뜨거운 여름 오후였지만 병실은 서늘했고 어둑어둑했다. 창문은 커튼으로 완전히 가려져 있었고 불도 꺼져 있었다. 모이세예프는 스위치를 올려 천정의 등을 켰다. 밝은 빛이 몰려들어오자 담당 의사인 올가 파나예바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지만 벨스키 쪽을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이세예프는 곧 나갔지만 파나예바는 병실에 남아 있고 싶어 했다. 벨스키가 단독 면담이 필요하다고 얘기하자 그녀의 표정이 조금 더 일그러졌다.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파나예바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 10분. 더는 안 됩니다. 너무 가까이 다가앉거나 피부 접촉을 하지 마세요. 심문이 아니라 순수한 면담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허가해 드리는 겁니다. 다그치거나 소리를 지르셔도 안 됩니다. 아직 정상이 아니에요. 저는 문 밖에 있을 테니 조금이라도 이상한 징후가 보이면 부르세요. ”

 

 

 게오르기 벨스키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파나예바를 응시했다. 그녀는 일반적인 의사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치 아픈 자기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굴었다. 하긴 이전에도 미샤는 많은 여자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으므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벨스키의 아내도 미샤를 좋아했다. 미샤가 볼쇼이에서 춤췄던 77년에는 한 달에 두 번 가량은 그를 집으로 불렀고 직접 저녁을 만들어 먹이기까지 했다. 정작 친아들 두 명에게는 그렇게 살갑게 대한 적이 없었으므로 벨스키는 그녀가 뒤늦게 젊은 무용수를 향한 사랑에 빠졌다고 놀리곤 했었다.

 

 

 “ 당신은 이해 못해요. 걔에게는 엄마처럼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해요. 제대로 된 가족의 사랑도 못 받고 컸으니 안됐잖아요. ”

 

 “ 레닌그라드에 어머니가 있는데. ”

 

 “ 어릴 때부터 기숙학교에 있었잖아요. 형제도 없고. ”

 

 

 그는 아내가 이번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는 크레믈린이나 정치국, 의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결코 집에서 말을 꺼내지 않았고 아내도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간섭하거나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아내가 분명히 한 마디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심지어 벨스키는 그녀가 낮게 숨을 몰아쉬며 ‘오, 이 가엾은 것. 어쩌면 좋아’ 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얼핏 들었던 것 같았지만 물론 모른 척하고 지나쳤다.

 

 

 파나예바는 거의 연극적 제스처에 가까울 정도로 두드러지게 손목을 들어 올려 시계를 보더니 병실을 나갔다. 그녀는 문을 닫지도 않았다. 아마도 고의적이었을 테지만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이세예프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문을 밀어 닫았다.

 

 

 미샤는 몸을 반쯤 일으킨 채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벨스키가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문가 쪽으로는 눈 한 번 돌리지 않았다. 침대 등받이가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는데다 가슴에 띠가 채워져 있는 것을 보니 스스로 몸을 일으킨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마비 증세를 완화하기 위해 자세를 바꿔주고 있는 것 같았다. 다리는 모포에 덮여 보이지 않았지만 윤곽을 보니 왼쪽 무릎을 세우고 있는 듯 했다.

 

 

 벨스키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이름을 불렀을 때에도 미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목소리를 조금 높여 이름과 성을 함께 부르자 미샤가 어깨를 희미하게 움찔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벨스키는 굳이 모이세예프나 파나예바의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미샤가 어떤 모습일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전에도 약물 쇼크를 일으켜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맸던 환자를 본 적이 있었다. 게다가 사진. 그 문제의 사진이 있었다. 하지만 사진 속에서 그는 눈을 감고 있었고 전혀 의식이 없었다. 벨스키는 차라리 사진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완전히 텅 비고 초점이 없는 눈을 마주하자 잠깐 욕지기가 일었다.

 

 

 “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군. 날 알아보겠나? ”

 

 “ 게오르기 이바노비치. ”

 

 

 미샤가 그의 이름을 천천히 발음했다. 말을 한다기보다는 음절을 조약돌처럼 내뱉었지만 그렇게 끔찍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여전히 나직하고 부드러운 저음으로 말했다. 다만 훨씬 작고 약하게 속삭였을 뿐이었다. 스카프를 입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 그래도 눈이 보이긴 하는 것 같군. 다행인데. ”

 

 

 “ 목소리를 아니까요. ”

 

 

 미샤가 벨스키 쪽으로 몸을 좀 더 돌렸다. 느리게 감기 버튼을 눌러놓은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세워 똑바로 앉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벨스키는 어깨를 잡아주려다 파나예바의 경고를 떠올리고 한 발짝 물러나 의자에 앉았다.

 

 

 “ 아니, 그냥 기대 있는 게 좋겠는데. 의사가 억지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하더군. ”

 

 

 미샤는 그 말을 무시하고 결국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무리한 움직임 때문에 창백했던 얼굴에 희미한 핏기가 돌았지만 곧 사라졌다. 벨스키는 침대에 고정된 띠가 가슴을 팽팽하게 압박할 것을 우려해 고리를 풀어주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이 너무 야위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띠에서 그대로 빠져나와 바닥에 내려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왜 오신 거죠? ”

 

 

 심지어 그런 상황에서도 미샤 야스민은 여전히 단도직입적이었다. 벨스키는 총살대나 전기의자에 끌려가도 그런 식으로 굴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최근 그가 받았던 약물 교화를 생각하며 말을 바꿨다.

 

 

 “ 모이세예프가 아무 말 안 해주던가? ”

 

 “ 그게 누구죠? ”

 

 “ 여기 소장. ”

 

 “ 소장 이름은 글루크인데. ”

 

 

 벨스키는 잠시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 여긴 레닌그라드가 아니야. 일주일 전에 모스크바로 옮겨왔잖아. 수용소가 아니라 요양소야. 기억 안 나나?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여자는 자네 담당 의사고. ”

 

 “ 올가예요. ”

 

 

 미샤가 잘못된 문법을 정정해 주듯 참을성 있고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 그래, 올가. 글루크의 수용소에 여의사가 있을 리가 없잖아. ”

 

 “ 왜 모스크바에 와 있지? ”

 

 

 미샤는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오른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무대 위에서 발레리나를 상대로 마임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벨스키는 그의 왼팔이 아무런 힘도 없이 베개 위에 늘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모이세예프가 마비 증세에 대해 꽤 교묘하게 설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른팔은 제대로 쓸 수 있다고 했지만 왼쪽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다리를 움직일 수는 있지만 일어서거나 걷지는 못한다고 했다. 아마 혼자서 몸을 완전히 뒤집을 수도 없는 상태인 것 같았다.

 

 

 “ 자네 아주 아팠었어. 며칠 의식이 없었지. 스비제르스키 의원이 센터에 들렀다가 그걸 보고 이쪽으로 옮긴 거고. 그 얘기는 못 들었나? ”

 

 

 그 이름을 듣자 미샤가 눈에 띄게 몸을 움츠렸다. 멍하게 눈을 깜박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꿈이었던 것 같은데. ”

 

 “ 혼수상태였으니까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 ”

 

 “ 함께 오셨어요? ”

 

 “ 아니. 게르만 알렉세예비치가 오는 편이 더 좋았을까? ”

 

 

 미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팽팽하게 당겨졌던 입술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보니 안도한 것 같았다. 벨스키는 그 건방진 젊은이가 누군가를 두려워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런 기색을 보일 수 있을 거라고는.

 

 

 “ 왜 오셨어요, 게오르기 이바노비치? ”

 

 “ 파리 때문에. 그 외 다른 문제도. ”

 

 “ 파리? 모스크바라고 하셨잖아요. ”

 

 

 벨스키는 언제까지 미샤와 이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받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머릿속에 간단하게 정보들을 밀어 넣기로 했다.

 

 

 “ 여기 오기 전에. 글루크가 있는 수용소에 가기 전에. 파리에 갔었잖아. 그 니진스키 트리뷰트 때문에. 그 전에는 뉴욕에 갔었고. 자네 그 파리에서 도망쳤었잖아. 그래서 문제가 생겼지. 돌아와서 재판 받았잖아, 그래서 그 수용소로 보낸 거고. ”

 

 

 미샤가 오른손을 뻗어 허공을 두어 차례 휘저었다. 눈에는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가볍게 흔들자 거무스름한 멍들로 뒤덮인 목덜미가 드러났다. 맞아서 생긴 상처 같지는 않았다. 그곳을 맞았다면 쇄골이 부러졌을 터였다.

 

 

 “ 도망치지 않았어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러 갔었을 뿐이에요. ”

 

 

 갑작스럽게 미샤가 아주 또렷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 비공개 재판에서도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무도 그를 변호하려고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미샤는 직접 변론을 했다. 극장 동료들 몇몇이 유리한 증언을 해주려고 자원했지만 모두 자격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참석을 금지 당했다. 벨스키는 그 재판의 일지와 보고서를 훑어보았지만 중간 쯤 읽다가 그만두었다. 미샤의 변론 대부분에는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고 그나마 끝까지 이어지지도 않았다. 재판관이 그의 발언을 중단시킨 후 휴정을 선언했고 30분 만에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벨스키는 그런 종류의 재판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정말 도망친 거였다면 지금 여기 있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기억이 되살아난 것 같군. 자네 소환됐을 때 파리에서 시끌시끌했던 건 생각나나? 호텔 앞부터 공항까지 피켓 시위자들이 몰렸었지. 기자들도. 자네 가고 나서 그 시위가 좀 커졌거든. 게다가 이상한 오해가 생겼지. 헛소문이 퍼져서 상황이 좋지 않았어. ”

 

 “ 무슨 소문이요? ”

 

 “ 뻔하잖아. 자넬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 처박았다는 얘기. 벌써 루뱐카에서 총살했다는 얘기. 제국주의자들 입맛에 맞는 얘기들. ”

 

 “ 그게 제국주의자들 입맛에 맞는 얘기예요? ”

 

 

 미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몸을 가누기가 힘든 듯 점점 어깨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볼품없이 들쭉날쭉 잘린 검은 머리칼이 한 움큼 이마 위로 흘러내려왔다.

 

 

..

 

 

 

 

 

 

이 면회 후반부의 대화를 약간 발췌한 적이 있다. 그건 여기 :

http://tveye.tistory.com/5589 (체제의 이름, 비행사, 천사 이름 붙은 도시)

 

 

..

 

 

맨 위 사진은 프라하 성 이르지 성당. (성 게오르기)

아래 사진은 프라하 아녜슈카 성당 사진. 둘다 작년에 내가 찍은 것.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2017. 3. 15. 22:24

말라 스트라나, 프라하 2016 praha2017. 3. 15. 22:24

 

 

 

 

 

작년 9월.

 

아,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다. 사라지고 싶다. 골목 여기저기 쏘다니고 싶다.

 

 

:
Posted by liontamer
2017. 2. 23. 20:59

물과 빈 병 2016 praha2017. 2. 23. 20:59



작년 9월. 프라하 성. 황금 소로 쪽으로 걸어가다가.


한쪽에서는 오래된 파이프로부터 물이 흘러나와 꾸준히 조금씩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텅 빈 콜라병이 놓여 있었다.


:
Posted by liontamer



일과 사람 때문에 힘든 날이었기 때문인지 격렬하게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의 순간이 그리워졌던 하루였다.

작년 9월. 프라하 구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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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8. 22:07

밝고 따스한 창가에 앉아 있고 싶다 2016 praha2017. 2. 8. 22:07

 

 

 

프라하. 9월. 

말라 스트라나, 우예즈드. 

카페 우 즐라테호 프스트로사.

 

..

 

지치는 날이다. 빛이 들어오는 따스한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뭔가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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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4. 18:12

멋진 빨강 2016 praha2017. 2. 4. 18:12

 

나는 기본적으로 강렬한 색상들에 끌리는 편이다. 물론 톤다운된 푸른색이나 녹색 계열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색은 언제나 붉은색과 검은색이었다. 그래서 (나혼자) 이 두 색깔을 나의 시그니처 칼라라고 우기고 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도 빨간색이 보이면 꼭 돌아보곤 한다.

 

사진은 작년 가을. 프라하 거리 산책하다가 발견한 멋있는 두개의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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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1. 29. 22:51

2016 praha2017. 1. 29. 22:51

 

 

 

지난번 페테르부르크에서 날아가던 새 사진(http://tveye.tistory.com/5753)에 이어.

이건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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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25. 22:24

알록달록 동글동글 2016 praha2017. 1. 25. 22:24

 

 

 

프라하. 9월. 두번째 숙소 근처에는 사탕 가게가 하나 있었다. 지나갈때마다 창 너머로 알록달록 동글동글한 사탕들을 구경하곤 했다. 사탕을 즐겨 먹는 편이 아니어서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바깥에서 화려한 색깔들과 다채로운 모양들을 구경하는 게 즐거웠다. 그리고 각종 사탕을 고르면서 웃고 있는 사람들을 힐끗 보는 것도 좋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줄서 있는 사람들을 볼때처럼, (그리고 그 아이스크림 가게에선 나도 종종 줄을 섰지. 사탕은 그냥 그렇지만 젤라또는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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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1. 23. 22:17

부드럽고 진한 녹색 2016 praha2017. 1. 23. 22:17

 

 

프라하. 흐라드차니.

 

2016년 9월.

 

..

 

너무 바쁘고 정신없고 피곤하고 춥다. 빛도 많고 따뜻하고 밝았던 때를 떠올려보며 눈도 식히고 마음에도 작은 위안을... 이때 많이 걸어다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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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 나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지금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는 듯... 갑자기 이렇게 아무데나 막 낙서 스티커 수십수백장을 손에 잡히는대로 막 랜덤으로 덕지덕지 붙이며 쏘다니고 싶다...


사진은 9월,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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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구시가지 산책하다가. 색깔 때문에 찍었음.


하루하루 아주 작고 작은 얼룩이나 점이라도 좋으니 일상 속의 자신을 흔들어놓는 강렬한 색채를 잠깐이라도 느끼고 싶다.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그게 정말 색채이든 말이든 글이든 스쳐가는 미소든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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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5. 16:15

프라하 전경, 흐라드차니에서 2016 praha2017. 1. 15. 16:15

 

 

9월. 로레타 사원에서 종소리 듣고 스트라호프 수도원 들렀다 내려가는 길. 흐라드차니 언덕길 따라 내려가면서 찍은 사진 세 장.

 

 

 

왼편에 삐쭉 솟아 있는 게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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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블타바 강.

 

구시가지에서 카를교를 건너 캄파 쪽으로 가면 백조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곳이 있어 이따금 백조 구경하러 가곤 했다. 백조는 가까이서 보면 엄청 크고 엄청 꾸불텅거리고 생각보다 안 하얗다. (이건 양이랑 좀 비슷하네)

 

이렇게 사진만 보면 우아한 백조의 호수... 백조 보러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사진도 많이 찍는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우리 청둥오리들~~~ (사실 나는 청둥오리를 더 좋아한다. 더 예쁘고 귀엽고 친근해서)

 

오리들 : 백조고 뭐고~ 우린 오리들~~ 우리도 여기 있지롱~~

 

 

우리는 백조고 뭐고 신경 안쓰고 우리끼리 잘 놀고 잘 헤엄치고 잘 먹는다~~~

 

 

 

백조 저것들 모가지만 길고 꾸불텅한게 무슨 매력이야 자고로 우리 청둥오리들처럼 아담하고 귀엽고 머리도 초록색이고 몸도 알록달록해야 제맛이지~~~

 

지나가던 백조 : 오리들아 나도 좀 끼워줘...

 

** 건너편 강변에는 백조는 거의 안 오고 오리들 천지이다. 오리들은 어디에나 모여서 동동 떠다니는데 어느날 보니 길잃은 백조인지 아웃사이더인지 미운 오리새끼인지 백조 한마리가 자꾸 오리들 곁을 맴돌며 따라다녀서 웃은 적이 있었다.

그때 사진이랑 얘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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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프라하.


요세포프. 베이크숍 프라하에서 차 마시며 케익 먹다가 창 밖을 보니 바로 앞 벤치에 이렇게 두 명의 금발 여인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외모 자체는 거의 닮지 않았지만 비슷한 색채의 곧은 금발 때문인지 둘은 꼭 자매처럼 보였다. 


돌아와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금발의 두 여인은 자매처럼 보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단편을 써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 첫 문장 외엔 아무런 것도 떠올리지 않았다.


사실 그 상태가 좋을 때도 있다. 묻어둔 문장들. 하나씩 간직한 문장들은 무수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그 문장은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어떤 이야기로든 변화할 수 있다. 단 하나의 문장은 마치 하나의 알처럼 미지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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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신시가지에 있는 찻집. 도브라 차요브나.


카페 에벨과 카피치코만큼 애착을 가진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마시기 좋았고 여러번 갔다가 이야기 주고받고 안면을 튼 찻집 주인 아저씨도 생각나서 그리운 곳이다. 여기서도 글을 좀 썼었다. 여기는 2013년 초에 가서 머물 때 처음 갔었다. 여기서 먹은 할바는 무척 맛있었다.


주인 아저씨는 tea trip으로 우리 나라에 가봤다 했지. 보성에도 가고 제주도에도 갔었다고. 떠나기 전날 이곳에 들러 차를 마시고 세라믹 찻잔과 할바를 사면서 인사를 나누다가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깊은 충동을 느꼈었다. '혹시 사람 필요하지 않으세요? 저를 고용하시지 않겠어요? 저는 차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왜 차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왜 차를 마시는 시간이 그토록 소중한지 알아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차를 마시는 것 자체가 하나의 치유이자 행복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이해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인사를 했고 아쉬운 마음으로 파란 세라믹 잔과 빨간 세라믹 잔, 할바 두개와 함께 찻집을 나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로 돌아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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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9. 22:05

에벨 2016 praha2017. 1. 9. 22:05





내가 프라하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딱 한곳만 고르라면 이곳, 카페 에벨이다.


아마도 여태 가본 곳들 중 통틀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고르라고 해도 에벨은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산과 바다, 아름다운 자연보다는 카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


프라하에 다시 가서 딱 하루만 머무르라고 한다면, 아니면 딱 한곳만 들렀다 오라고 한다면 그래도 아마 나는 에벨에 갈 것이다. 한군데 더 갈수 있다고 하면 로레타 성당에 가서 종소리를 들을 것이다.


지난 9월. 2년 반만에 다시 프라하에 갔다. 숙소는 구시가지 쪽이 아니라 말라 스트라나 쪽이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 도시를 걸어다닌 첫날 나는 에벨로 갔다.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멈춰 있었던 손을 움직여 수첩에 메모를 남겼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 글은 지금 멈춰 있다. 프라하에서 조금 썼고 돌아와서도 조금밖에 쓰지 않았다. 사실 지금 좀 쓰고 싶은데 아직 복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심신의 여유가 없고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마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이럴때는 에벨이 떠오른다. 집 근처에 에벨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순간, 그리워하는 순간, 뭔가를 쓰고 싶은 순간 에벨에 앉아 있었으면 좋겠다.


이 사진 세장은 그날 찍은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에벨. 하지만 언제나 바로 어제 들렀던 곳 같은 아늑하고 편안하고 따스한 곳.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익명성, 그리고 적당한 몰이해를 불러오는 무수한 외국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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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벨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고 가끔 글도 주고받는다. 그러고 있자면 참 다시 가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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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7. 22:48

꽃의 여러가지 형태 2016 praha2017. 1. 7. 22:48

 

 

프라하 요세포프 지역 산책하며 만난 여러 가지의 꽃들.

진짜 꽃.

 

 

 

성당의 장미창.

 

 

 

마른 꽃다발.

 

 

 

그리고 해바라기 꽃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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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3. 13:18

창가의 작은 눈사람 2016 praha2017. 1. 3. 13:18

 

프라하. 9월. 요세포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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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야기는 4년 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해서 가장 먼저 썼던 단편  'Frost'에 삽입된 에피소드이다. 원래는 노어 제목을 달고 있는데 번역하면 '서리', 영어로는 프로스트였다. 공산당 고위간부 드미트리 마로조프와 키로프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미샤가 파리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주축으로 그들의 과거에 대한 회상이 끼어드는 형식이었다. 전에 부분부분 몇번 올린 적이 있다.


아래에 발췌한 에피소드는 마로조프가 예전에 자기 별장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배경은 1975년 여름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 아주 오래 전 내가 썼던 미샤에 대한 단편인 'illuminated wall'과 시간/배경상 연결되고 있다. 그 단편은 전에 이 about writing 폴더에 전문을 올린 적이 있다. 맨 아래에 링크를 덧붙여 두었다.


공산당 고위간부이며 정치국의 위세등등한 멤버인 드미트리 마로조프는 교외의 아름다운 별장에서 열리는 동료들과의 모임에 키로프 무용수인 미샤와 지나이다를 부른다. 표면적인 이유는 와서 춤을 추라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다른 이유도 있다. 미샤와 지나이다는 그곳에 간다. 이것은 그 다음날 아침의 이야기이다.


이 단편은 그때도 지금도 나에게는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내밀하고 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아마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시 숨을 쉬는 방법을 익히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가는 방식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래 발췌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종교적인 빛, 맞잡을 수 있는 손의 온기, 그리고 내부의 불꽃. 그 세가지 중 마지막.



... 위의 사진은 순서대로 페테르부르크의 레트니 사드, 지난 여름에 엽님과 같이 갔을때 찍은 연못 사진. 그리고 아래는 지난 9월 찍은 프라하의 말로스트란스카 역 앞의 연못. 깊이가 얕긴 하지만.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1975년 7월, 페테르고프



 밤새 쏟아진 비로 잔디가 젖어 있었다. 비를 흠뻑 맞은 장미들이 순식간에 피어올랐고 정원은 자욱한 향기로 가득 찼다.


 나는 맨발로 잔디를 밟으며 정원을 거닐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공식적으로는 정치국 멤버들의 회동이 있어 별장에서의 휴가를 이틀 더 늘린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어차피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아내나 나나 관심이 없었다.


 미샤는 정원에 없었다. 수영장도 비어 있었다. 뒤뜰 연못가에 새로 들여놓은 독일 설치작품을 보러 간 모양이었다. 그는 지나이다와 함께 전날 밤 도착했지만 우리의 파티가 늦게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걸 보러 갈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를 불러 앉혀 놓고 진지하게 할 말이 있었지만, 과음으로 일찌감치 뻗어버린 에멜리야노프와 구신스카야를 제외한 멤버들이 돌아간 것은 새벽 세시였고 미샤는 보이지 않았다. 이 별장에야 여러 번 와봤으니 마음에 드는 침실을 골라 자러 들어간 게 뻔했다. 어쩌면 지나이다와 함께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자 놀랍게도 심장 한구석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나이가 들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정원으로 내려오기 전에 지나이다를 2층의 터키 풍 침실에서 발견했다. 그녀는 전날 밤 우리 앞에서 보여준 작은 공연 때문에 피곤했는지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은 채 쿠션 사이에 몸을 묻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옆자리에는 자고 일어난 흔적이 없었다. 붉은 머리 타래를 녹색 실크 쿠션 위로 펼치고 태아처럼 웅크린 채 홀로 자고 있는 지나이다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어이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뒤뜰은 햇살이 모자라서인지 아직 장미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간 잡초 손질을 등한시했다는 증거로 조각상들 주변에 드문드문 하얀 풀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 번지르르한 대리석 조각상들을 볼 때마다 박물관에 기증해버리고 싶었지만 아내의 취향이 확고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지인들은 레트니 사드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농담하면서도 은근히 그 오래된 제국주의의 유물들을 부러워했다. 오로지 미샤만이 내 투덜거림에 정면으로 반응했다. 지난 가을에 그는 정원에서 쇠갈퀴를 들고 와서 미네르바 조각상 한 개를 박살냈다. 내가 화를 내자 미샤는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 제게 감사하셔야죠. 가장 흉물스러운 조각상이었다고요. ”


 망가뜨린 걸 치워놓으라고 명령하자 미샤는 쇠갈퀴로 낙엽을 끌어와 박살난 조각상 파편 위에 대충 무덤처럼 쌓아놓고는 수영을 하러 가 버렸다. 나는 겨울이 올 때까지 그 낙엽 더미를 방치했고, 조각상이 사라진 받침대는 아예 치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갈퀴에 찍힌 기다란 자국 외에는 텅 비어 있는 받침대를 볼 때면 혈관 속에서 핏줄기가 뜨거운 강물처럼 거세게 내달리는 것이 느껴졌다.



 젖은 풀잎들이 달라붙어 있는 그 받침대를 지나 독일 설치작품 쪽으로 눈을 돌렸지만 미샤는 보이지 않았다. 연못가도 비어 있었다. 아마 내가 놓치고 지나간 침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그 아이는 항상 늦게 일어나곤 했다.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혀 나는 갑자기 연못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미세한 소음이 일었다. 마치 분수의 물방울이 튀는 소리 같았다. 새가 연못 위로 내려앉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 순간 완벽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모든 것이 정지한 듯 했다. 창백한 푸른빛 하늘과 잎이 무성하게 뻗어 있는 나무들, 짙은 청록색 그림자가 가득한 연못 수면까지.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었다.



 바로 그때, 나는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내가, 드미트리 마로조프, 눈과 피의 마로조프, 레닌그라드의 소리 없는 지배자, 얼음성의 사나이가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다. 손발이 저려오면서 현기증이 났다. 이해할 수도 없고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두려움이 파도처럼 쇄도했고 나는 마비되어 서 있었다.



 대리석 받침대 위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손목 살갗 위로 벌레가 기어가듯 미지근한 공기가 스멀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고함을 지르며 연못가로 달려 내려갔다.



 수면은 차갑고 매끄러운 녹색 금속처럼 단단하게 응고되어 있었다. 한겨울이었다면 얼어붙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연못은 별장을 짓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수심이 어느 정도로 깊은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내는 아이들이 그쪽으로 가는 것을 절대 허락한 적이 없었고 생각날 때마다 그 연못을 메워버려야 한다고 우겼다. 내심 그 연못이 뒤뜰에서 가장 볼만한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래 메워야지'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넘기곤 했다.



 수면 아래에 하얀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두텁게 얼어붙은 네바 강 아래로 물고기가 흐느적대며 헤엄치듯, 거기 그 연못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한가운데에, 짙은 청록색으로 뭉쳐진 수면 아래 하얗고 거대한 짐승 같은 형체가 위아래로 가만히 들썩이고 있었다. 펄럭이는 흰 그림자 위로 검은 해초 같은 머리털이 천천히 나부꼈다.



 맨 처음에 난 그가 헤엄을 치러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수영을 잘 하는데다 겁이 없는 애였으니까. 그저 물 속 깊이 잠수했을 뿐이다. 더운 날씨였으니까.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지르며 셔츠와 바지를 벗어던지고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물은 생각보다 찼다. 심호흡을 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옷을 다 입고 있었다. 전날 밤 지나이다와 춤췄을 때 입었던 하얀 루바슈카 셔츠를 그대로 걸치고 있었다. 파자마 같은 흰색 바지와 슬리퍼마저 벗지 않았다.



 나는 연못 한가운데로 헤엄쳐 들어가 그 아이의 어깨를 잡고 끌어올렸다. 미샤는 내게 어깨를 잡히자 격렬하게 몸부림치더니 작살에 꿰인 고래처럼 순식간에 물 위로 튀어 올랐다. 응고된 수면이 폭발하듯 깨지며 하얀 물보라가 일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미샤의 몸을 연못 가장자리로 밀어붙였다. 깊은 곳에서 벗어난 후에는 거의 발길질을 하며 떠밀어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연못가로 올라온 후 나는 한동안 헉헉거리며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눈구멍과 콧구멍으로 펄펄 끓는 듯한 물이 쏟아져 나왔고 폐가 터질 것 같았다. 간신히 숨을 고른 후 고개를 돌리자 미샤가 1미터 쯤 떨어진 곳에 누운 채 목과 입에서 끔찍한 소리를 내며 경련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그 곁으로 다가갔고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거칠게 몇 차례 내리쳤다. 미샤는 새파랗게 질렸다가 물을 토해내더니 무섭게 숨을 헐떡이며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내 몸에서도 그나마 남아 있던 힘이 몽땅 빠져나갔다.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랫배가 아프고 머리가 멍멍했다. 벗어던졌던 셔츠로 대충 얼굴과 몸의 물기를 훔친 후에야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 다시는 이러면 안 돼. 아침부터 물에 뛰어들기엔 난 이제 늙었어. ”


 그건 사실이었지만 내가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내 말이 들리지도 않을 터였다. 나는 다시금 온 힘을 쥐어짜 미샤의 몸에서 흠뻑 젖은 루바슈카를 벗기고 이미 축축해진 내 셔츠로 목덜미와 가슴을 거칠게 문질렀다. 미샤가 기침을 몇 번 하고 다시 물을 조금 토해낸 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나도 모르게 그 호흡을 따라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숨이 턱에 닿았다. 그는 수차례 심호흡을 반복했다. 무겁게 깜박이는 속눈썹 주위로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미샤의 얼굴에 희미한 붉은 기가 돌아왔을 때에야 나는 일어설 수 있었다. 타월과 마른 옷을 가지러 집 쪽으로 몇 발짝 걸어가다 다시금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불쾌함을 느끼고 멈춰 섰다. 내가 정신 나간 주정뱅이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 안 돼. 혼자 놔두면 안 돼. 절대로. ”




 
 내가 돌아왔을 때 미샤는 일어나 앉아 있었다. 물기를 짜낸 루바슈카를 기다란 베일처럼 머리와 어깨에 두르고 두 팔로 무릎을 감싼 채 연못에 이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모양이었다. 미샤는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 이제 얘기하셔도 좋아요. ”


 “ 뭘 말인가, 만취한 상태로 연못에 다이빙하지 말라는 것? 오늘 자네가 극장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물론 돌아갈 수 없겠지, 내가 저 빌어먹을 연못을 메우게 해줄 테니까! 저 오래된 돌덩어리들을 몽땅 처넣든 삽질을 하든 상관 안 해. 저걸 다 메워버릴 때까진 못 돌아갈 거야! ”



 그르렁거리는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밤중에 산짐승이 우는 것처럼 나직하고 어쩐지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나는 계집애처럼 오한을 느꼈지만 곧 자신이 우습게 여겨졌다. 그건 미샤가 목과 가슴을 울리며 웃는 소리였다. 폐에 물이 들어간 게 분명했다.


 “ 그냥 방수포를 덮으면 될 거예요. ”


 내 눈에는 그가 머리와 어깨에 뒤집어쓰고 있는 루바슈카가 방수포처럼 보였다. 그건 익사체 위에 씌워놓은 하얀 천이 될 수도 있었다. 온 몸 위로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더 심해졌다. 오염된 연못물 탓에 피부에 두드러기가 생기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미샤의 머리에서 루바슈카를 잡아채 내팽개쳤다.


 “ 일단 들어가서 몸을 말려야 해. ”



 미샤는 전신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내게서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파자마 바지가 흰색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연못 위로 이는 잔물결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 원래 하시려던 얘기가 있었을 텐데요. ”



 그 아이의 팔을 잡아 일으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연못으로부터 내 쪽으로 돌려세우는 것은 힘에 부쳤다. 미샤가 정말로 원하지 않는다면 그를 육체적으로 제압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 그래,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안 해. 자네 취기가 가시면 그때 얘기하지. ”


 “ 취하지 않았어요. 술을 마시지 않았거든요. ”


 “ 똑같은 거야, 마셨든 안 마셨든! ”



 나는 연못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뺨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입술은 아직 파랬다. 까만 눈에 이글거리는 섬광이 일고 있었다. 그 아이는 살가죽이 벗겨진 야수처럼 괴로운 표정으로 두 눈을 숯처럼 불태우며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건 같은 게 아니죠. 당신이 이곳으로 날 부른 이유가 5월과 달랐던 것처럼. 같은 건 하나 뿐이에요. 변함없는 것. 이곳의 주인들. 당신들. ”



 그가 말한 대로였다. 나는 그에게 할 얘기가 있었다. 어젯밤의 파티는 2주 전 유보되었던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당 간부들이 종종 별장에서 파티를 열 때 무용수들이나 가수를 부른다. 나는 다른 무용수들에 비해 미샤를 자주 부르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 뿐이었다. 물론 쿨리마코프나 스비제르스키 같은 발레 애호가들도 미샤와 지나이다를 부른 적이 있다. 그들 중에는 미샤의 팬도 있고 단순히 키로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를 부르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자리에 오고 싶어 안달인 무용수들도 많았다. 확실한 후원자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제국주의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기도 했다. 크셰신스카야가 요즘 발레리나였다면 황제 대신 브레즈네프의 정부가 되었을지 누가 아는가.



 완벽한 이성애자이자 발레광인 쿨리마코프는 첫 해부터 미샤의 춤에 푹 빠졌고 1년 이내에 키로프의 모든 고전 레퍼토리 주역을 섭렵하게 해주겠다고 헛소리를 지껄였다. 나는 쿨리마코프처럼 드러내놓고 미샤를 옹호한 적이 없었다. 발레학교 학생 시절부터 가끔 만나고는 있었지만 그건 물론 비밀스런 관계였다. 그는 자기 실력만으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충분했고 나는 낯간지러운 후원자 정부 노릇은 질색이었다. 나도 볼쇼이나 키로프 오페라의 몇몇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후원 입장을 밝힌 적이 있었지만 그들과는 잠자리를 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2주 전 나는 별장에서 정치국 동료들을 불러 중요한 파티를 열었다. 비밀회의는 밤 10시에 시작해 1시간 만에 끝났고 그 이후부터는 밤새 파티가 계속될 예정이었다. 여러 가지 민감한 문제들이 있었고 그 중 두어 가지에 대해서는 쿨리마코프의 지지가 필요했다. 딱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미샤를 포함해 키로프에서 네 명을 불렀다. 


 
 미샤는 그날 밤 별장에 오지 않았다. 무단이탈이었다. 당시 행정 책임자였던 다닐로프가 겁에 질리고 풀이 죽은 채 직접 나머지 세 명을 데리고 왔다. 다닐로프는 미샤가 전날 백야 축제 공연을 마친 후부터 몸이 아파서 집에 누워 있다고 둘러댔다. 물론 나는 다닐로프와 나머지 무용수들의 태도에서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눈치챘지만 그 자리에서 문제 삼지는 않았다. 파티는 그럭저럭 흘러갔고 공연도 나쁘지 않았다. 쿨리마코프가 좀 툴툴거리긴 했지만, 어차피 그 얼간이는 미샤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쾌유를 비는 카드와 꽃을 보낼 게 뻔했다.


 아프다는 건 물론 다닐로프의 거짓말이었다. 게다가 미샤에게는 이미 감시 요원이 딸려 있었다. 다음날 나는 미샤가 밤새 네프스키 거리와 궁전 광장, 사도바야 일대를 쏘다녔으며 그건 의도적 이탈이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요원의 말에 따르면 미샤는 페테르고프 출발 시각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시내에서 마주친 발레단 동료 핀스키의 설득을 가볍게 무시했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반정부적 표현이 있었다. 심지어 파티가 시작될 시각에는 궁전 광장의 딱딱한 돌바닥 위에서 내키는 대로 춤까지 췄다. 이쯤 되면 보안위원회가 미샤를 소환해 무단이탈과 반체제적 행동에 대한 심문을 진행한다고 해도 억울할 게 없었다.


 나는 보안위원회 담당자에게 이 문제는 내가 처리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다닐로프가 미샤에게 한 달간 페스티벌을 포함한 모든 공연의 출연을 취소시켰으며 가을 시즌 개막작으로 잡혀 있던 라 바야데르의 주역에서도 하차시키겠다고 협박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 아이는 이미 겨울 베를린 투어 때에도 숙소를 이탈한 적이 있어 이번 여름 시즌의 해외 투어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나는 열흘 동안 극장이나 미샤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미샤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노심초사한 다닐로프는 급기야 내 비서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나는 지난 번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별장에서 다시 파티가 있으니 미샤와 지나이다를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처음으로 나는 그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별것 아닌 농담 때문에 동료들에게 밀고당해 유죄가 된 남자, 정신교화 수용소에서 꺼져버린 희미한 불꽃.



 한숨을 내쉰 후 나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쁜 일이었나? 미친 짓을 하고 싶을 만큼? 다시는 자네를 이곳으로 부르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도 받고 싶어서? ”


 “ 아니에요,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물론 당신이 앞으로는 그런 무가치한 파티 때문에 절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해준다면 더 좋겠죠. 파티보다는 섹스가 더 나으니까요. ”



 미샤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 정말 그런 약속을 해 줄 생각이 있었어요? ”


 “ 아니. ”



 그 아이는 다시 산짐승이 그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낚아챘다. 햇살 때문에 물기는 거의 다 말라 있었지만 여전히 차갑게 미끌거리는 그 몸을 꽉 붙잡아 끌어당겼다. 두개골이 쪼개질듯 아팠다.



 “ 이유를 말해봐. 다닐로프 때문인가? 아사예프와 맞지 않아서? 아니면 런던에 가지 못하게 돼서? ”



 나는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고 있었다. 하마터면 ‘원하는 걸 얘기해봐!’ 라고 소리칠 뻔 했다. 다닐로프나 아사예프 따위는 별것 아니었다. 세레브랴코프를 비롯한 선배 무용수들의 텃세 때문이라면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손봐주겠다고 권력 자랑을 하기 직전이었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게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그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그에게 있어 나는 그저 ‘당신들’로 지칭되는 거대한 권력의 일부다. 여러 개의 아파트와 별장들, 좋은 차들을 소유하고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오가며 정치라는 것을 하는 지위 높은 인물일 뿐이다. 저 스무 살짜리 풋내기 사내애는 내가 실지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이 꼬마를 자기 아버지처럼 교도소로 보내 망각의 암흑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재판이니 수용소니 하는 절차 따위는 생략한 채 목을 조르거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 넣어 죽이고 캄캄한 네바 강 바닥에 가라앉혀 버릴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도 더러워지는 것은 내 손이 아닐 것이다. 이유를 말해준다면 나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



 미샤는 내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유로운 한 팔로 나를 껴안고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조용히 속삭였다.



 “ 전 알아요, 당신이 학살자라는 걸.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 해도 뼛속까지 그런 사람이란 걸. 하지만 그런 걸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게 있어요. ”




 
 나는 그를 놔주었다. 미샤는 내 곁을 지나 연못으로부터 멀어졌다. 어두운 수면으로부터 마침내 시선을 돌린 채 그 아이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 내 안에 어둠이 있고 밖에도 어둠이 있어요.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믿고 싶어요. 그래서 춤을 추는 거예요. 올라갈 수가 없을 때는 내려가야 해요. ”



 두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미샤가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뭉쳐져 있는 잡초들과 텅 빈 대리석 받침대, 군인처럼 열을 이은 조각상들을 지나쳐 걸었다. 흠뻑 젖어 달라붙은 바지 때문에 평소보다 보폭이 좁았다. 무용수의 우아한 몸놀림은 사라지고 없었다. 한쪽 다리를 무겁게 끌었다. 연못에 뛰어들었을 때 발목을 다쳤을지도 모른다.



 나는 미샤를 욕실로 데리고 들어가 샤워 부스와 욕조 수도꼭지 양쪽을 틀었다. 여름이었지만 그 아이도 나도 뜨거운 물이 필요했다. 미샤는 내 도움을 받지 않고 파자마와 슬리퍼를 벗었다. 왼쪽 발목을 다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살점이 조금 찢겨나간 자리에 피가 고여 있었다. 허리 아래에도 보라색의 커다란 멍이 들어 있었지만 그게 연못에 빠지면서 다친 것인지 연습 도중에 생긴 멍인지, 혹은 무분별한 사랑의 밤들이 남긴 자국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각자 말도 없이 끈적거리는 연못의 흔적을 깨끗이 씻어냈다. 씻고 나서 미샤는 욕조에 걸터앉아 발목에 연고를 발랐다. 나는 그에게 가운을 하나 주었다. 그 루바슈카와 파자마, 슬리퍼는 모두 불태워버릴 생각이었다. 욕실을 나왔을 때 그는 내 뒤를 따라왔다. 에멜리야노프나 구신스카야, 지나이다가 깨어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미샤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침실 문을 잠가야 했다. 미샤는 침대 위로 올라갔고 가운을 벗지도 않은 채 누웠다. 재워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찰나 뜨겁고 힘센 팔이 뻗어 나와 내 머리와 어깨를 끌어당겼다. 사랑을 나누는 내내 그 아이는 침묵했다. 이후 살풋 잠에 빠졌을 때 아주 잠깐 몸을 떨며 외마디 비명을 토해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꿈속에서조차 침묵했다.




..




이건 레트니 사드의 미네르바 조각상. 올빼미랑 있으니 미네르바 맞는 거 같은데 긴가민가... 이것도 지난 6월에 엽님이랑 같이 갔을때 찍었음.

뭐 이 미네르바야 아름답지만.. 미샤가 두들겨부순 미네르바 조각상은... 글쎄 잘 모르겠다. 미샤가 흉물스럽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마찬가지로 레트니 사드.

레트니 사드에는 이렇게 대리석 조각상들이 많다. 그래서 마로조프의 지인들이 그의 별장에 이런 조각상들 많다고 레트니 사드 같다고 부러워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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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 frost는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그 링크들은 아래 :

마지막 동작이 완성되지 않은 춤, 운하를 건너는 미샤 : http://tveye.tistory.com/4485

그가 읽었던 불가코프의 문장, 비행기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 :  http://tveye.tistory.com/4572

미샤의 신입 시절, 싸움의 이유, 붉은 장미와 하얀 눈 : http://tveye.tistory.com/5469


미샤가 마로조프의 부름을 무시해 페테르고프에 가지 않고 네프스키를 쏘다니다 궁전광장에서 춤을 췄던 이야기는 전에 단편 전문을 올린 적이 있다. 그 링크는 아래 :

illuminated wall : http://tveye.tistory.com/3385
레냐에게 궁전광장에서 춤추는 미샤에 대해 해준 이야기 : http://tveye.tistory.com/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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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에 와 있고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고 아름다운 거리를 거닐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산란하다. 평온을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 정상일 것이다. 어쨌든 다음주에 여기서 떠나면 나는 회사와 지방으로 돌아가게 될테니까. 그래서 요 며칠 여기에 예전 글을 올리고 있는 것 같다. 공허한 어딘가를 채우기 위해? 아니면 숨을 쉬고 수면으로 올라가는 방식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 아마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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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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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2. 4. 23:13

하얀 장화 문양 2016 praha2016. 12. 4. 23:13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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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2. 4. 00:39

들어와요, 문은 열려 있어요 2016 praha2016. 12. 4. 00:39

 

프라하 황금소로의 작은 카페.

이때 덥고 목마르고 배고파서 잠깐 여기 들어가서 시원한 에이드로 목을 축이고 파니니로 요기를 했다. 에이드는 좋았지만 파니니는... 내가 자신의 입맛을 간과하고 칠리쇠고기 파니니를 시켜서 맛이 매우 별로였음.

 

하지만 창 너머로 황금소로와 사람들이 보였다.

 

골든 레인이라는 종이쪽지는 점원이 와이파이 비번 적어준 거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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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