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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에 해당되는 글 451

  1. 2017.07.08 근 1년 전, bravebird님과 백야의 페테르부르크에서 4
  2. 2017.07.08 옥사나 본다레바의 근사한 화보들 + 슈클랴로프, 비슈뇨바 2
  3. 2017.07.05 마린스키 극장 2층 홀과 샹들리에 + 카페 6
  4. 2017.06.29 한겨울 오후 네 시, 눈오는 페테르부르크 거리 4
  5. 2017.06.28 더위 퇴치를 위한 페테르부르크 12월 사진 두 장 더 8
  6. 2017.06.27 겨울의 페테르부르크 그리워하며 8
  7. 2017.05.15 겨울의 페테르부르크 10
  8. 2017.05.07 한겨울 오후의 페테르부르크 2
  9. 2017.04.11 레냐가 강변의 커플을 따라한 후 했던 말 2
  10. 2017.04.05 나의 페테르부르크 2
  11. 2017.04.02 북방 도시의 빛은 창백하다
  12. 2017.04.01 이해할 수 없지만 확신이.. 4
  13. 2017.03.28 외곽은 아직도 레닌그라드 같지... 2
  14. 2017.03.27 항상 떠나고 싶으니.. 6
  15. 2017.03.26 파이프. 운하의 검은 물. 레닌그라드. 몇년 전의 메모 25
  16. 2017.03.17 겨울,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
  17. 2017.03.13 12월, 얼어붙은 모이카 운하 10
  18. 2017.03.08 밤중에 호텔 복도를 지나다 4
  19. 2017.03.08 나는 그의 말투로 시작했다 16
  20. 2017.03.05 모스크바에 있는 것들, 오직 불길 23
  21. 2017.03.02 창백한 푸른빛과 황금빛, 물과 얼음의 도시 2
  22. 2017.02.14 얼음과 빛 8
  23. 2017.02.07 12월 페테르부르크 거리 4
  24. 2017.02.06 당신에게는 감사와 기도와 입맞춤을, 그리고 꽃과 송가와 촛불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2
  25. 2017.02.02 여유를 찾고 싶다 4

 

 

 

 

 

엄밀히 말하자면 딱 1년 전은 아니고 1년하고 한달 쯤 전이다. 블로그 이웃인 bravebird님과 페테르부르크에서 조우했었다. 항상 장난삼아 '언젠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요~'라고 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이삭 광장의 아스토리야 호텔 빨간 차양 아래에서 만났다. 6월이었지만 비바람이 불고 매우 추운 날씨였다. 나는 무슬림처럼 머리에 스카프를 칭칭 두르고 나갔다.

 

다음날 우리는 고스찌에서 점심을 먹고 아스토리야의 로툰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케익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해가 질 무렵 함께 청동기사상에게 가서 황제에게 인사를 하고 네바 강변을 거닐며 백야의 석양을 만끽했다. 그리고 어두워진 골목을 걸어서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bravebird님이 먼저 귀국하시고 며칠 후 나는 다시 그 아스토리야 호텔 빨간 차양 아래에서 다른 블로그 이웃분인 엽님을 만났다. 그때도 역시 무척 즐거웠다.

 

떠나는 날 아침에는 그야말로 우연의 일치로 pica님을 만나 돔 끄니기 2층 카페에서 같이 아침을 먹기도 했다. 작년 6월은 내게 무척 힘든 시기였지만 대신 좋은 분들을 세분이나 만나게 되어 이것만은 큰 기쁨이었다.

 

 

얼마전 프라하에 갔을때도 이웃분인 영원한 휴가님과 그야말로 번개치듯 갑자기 드레스덴에서 만났다. 이렇게 번개치듯 만난 분들이 다들 좋은 분들이라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작년 6월, bravebird님과 아스토리야 로툰다 카페에서 차 마시며 찍은 사진 몇 장 + 그리고 차 마신 후 산책하러 나가다 찍은 사진 두 장.

 

 

 

 

사진들에서 서로의 얼굴을 교묘하게 잘라내느라 ㅋㅋ 몇 장은 귀퉁이가 좀 잘려나갔다.

 

 

 

 

이것은 내가 시켰던 안나 파블로바. 머랭과 바질, 생크림과 딸기가 들어간다. 그런데 내 입맛엔 좀 안 맞았음 ㅜㅜ

 

 

 

 

이건 bravebird님이 주문하신 레몬 무스 케익(..이었다고 추정됨) 이것은 새콤하고 맛있었음.

 

 

 

 

로툰다 카페 창 너머로는 이삭 성당이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이다.

 

 

 

 

이건 폰으로 찍어서 어둡게 나왔네... 피아노도 연주해준다 :)

 

 

 

 

 

 

 

이건 전에 한번 올린 적 있음. bravebird님께서 갑자기 내게 짠 하고 내밀어주신 깜짝선물 :)

 

 

 

 

 

 

그리고 우리는 같이 이 길을 따라 해군성 공원을 지나 청동기사상 앞으로, 그리고 네바 강변으로 산책을 하러 갔다. 사진 오른편 아래에 그 빨간 차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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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간만에 아름다운 발레리나 화보들로 심신의 정화.

 

 

마린스키 발레리나 옥사나 본다레바 화보들 몇 장.

 

 

본다레바는 원래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주역을 추다가 몇년 전 마린스키로 옮겨왔다. 세컨드 솔리스트인데 미하일로프스키에서는 꽤나 인기가 많았던 무용수였다. 미모가 뛰어나고 열정적인 스타일이라 화보들이 아름답다.

 

 

다만 내 기준으로 볼 때는 고전 발레에는 확실히 덜 어울린다. 일단 체격 조건이 맞지 않는다.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긴 한데 좀 영화배우나 모던 댄서처럼 아름답고 체형은 클래식 발레리나에는 어울리지 않는 편이다. 목선이나 상체 조건 때문에 날씬한 무용수임에도 불구하고 길쭉하고 늘씬해보이지는 않는다. 근육질의 강건하고 자그마한 무용수 느낌이라서... 나탈리야 오시포바도 내겐 좀 그런 느낌인데, 본다레바가 좀 더 그런 편이다. 그래서 본다레바의 무대는 실제로 몇번 보았을때도 그다지 인상에 남지는 않았다. 마린스키 타입 발레리나는 확실히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화보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좀 고양이 같은 외모이고 광대뼈가 넓고 눈이 큰 러시아 미녀 특징도 잘 살아 있다. 그래선지 무대 화보보다는 패션 화보가 더 잘 어울리고 아름답다.

 

사진 출처는 옥사나 본다레바의 instagram : bondareva.oksana.f

 

 

야외 화보는 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가와 에르미타주 쪽에서 찍은 것들인데 분위기가 근사하다.

 

 

 

 

 

 

 

 

 

 

 

 

 

 

 

 

 

 

 

 

 

 

 

 

 

 

 

 

 

..

 

 

 

 

 

그래도 안 나오면 섭섭하니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두 장 :))

 

얼마 전 마린스키 신관 옥상에서 찍은 화보 두 장.

 

너는 어쩌면 야자나무 앞머리를 해도 멋있는 거니...

 

 

 

 

 

 

마지막은 아름답고 우아한 디아나 비슈뇨바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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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작년 12월. 마린스키 극장 구관. 이날은 안드레이 예르마코프와 옐레나 옙세예바가 바질과 키트리를 춘 돈키호테를 보러 갔었다. 공연 시작하기 전, 차 한 잔 마시고 2층 홀로 가서 전시 구경. 내가 사랑하는 극장인 마린스키는 내게 미로처럼 좁게 이어지는 복도와 칸막이 좌석들, 푸른 빌로드 좌석과 복도에 기다랗게 늘어선채 샴페인 잔과 연어샌드위치를 들고 있는 사람들, 오페라 글라스,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 차림의 아름다운 여인들, 정반대로 운동화에 배낭을 메고 아무때나 플래쉬를 터뜨리는 관광객들 등등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리고 물론 샹들리에. 아름답고 우아하고 근사한 샹들리에들. 이제 마린스키 신관도 꽤나 마음에 드는 극장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구관이 갖는 광채와 아우라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



샹들리에와 홀 사진 하나로는 아쉬우니... 카페 사진도 두 장. 전에 몇번 소개한 적 있는 마린스키 구관 사이드 윙의 2야루스(4층)에 있는 작은 카페이다. 마린스키 구관은 복도마다 미로처럼 조그만 카페(..라고 해봤자 작은 카운터와 복도에 놓여진 테이블 몇개가 전부)가 있는데 여기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라서 항상 공연 시작하기 한시간 전에 빨리 입장해 이 카페부터 간다. (한시간 전부터 입장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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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작년 12월. 오후 4시!!!!


페테르부르크 블라지미르스키 거리.



이때 눈 갑자기 많이 와서 엄청 고생함... 추운데다 짐도 무거워서 ㅠㅠ 그런데 지금 너무 덥고 습하고 답답하다 보니 고생했던 저 날 사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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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아 정말 습하고 답답하다. 오늘은 미세먼지 농도마저 나쁜 날이네.



비 좀 좍좍 왔으면 좋겠다.



더위 퇴치하려고 작년 12월에 찍은 페테르부르크 사진 두 장 더. 위는 청동기마상 쪽으로 가는 길. 아래는 모이카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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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27. 21:47

겨울의 페테르부르크 그리워하며 2016 petersburg2017. 6. 27. 21:47






너무 습하고 답답한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어서 겨울의 페테르부르크 꽁꽁 언 사진 몇 장 올려본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작년 12월에 갔을 때 찍은 사진 몇 장.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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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5. 15. 23:14

겨울의 페테르부르크 2016 petersburg2017. 5. 15. 23:14





얼어붙은 그리보예도프 운하와 스파스 나 크로비(피의 구세주 사원). 작년 12월.


내게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문학적으로 환상적인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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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7. 15:51

한겨울 오후의 페테르부르크 2016 petersburg2017. 5. 7. 15:51

 

 

 

작년 12월. 복직을 앞두고 페테르부르크로 다시 날아갔었다. 물론 그 동네는 매우 추웠다. 여름과 정반대로, 오전 10시가 넘어서 해가 떴고 오후 3시면 이미 캄캄해져버리는 곳.

 

여기 사진들은 대부분 오후 3~4시에 산책하면서 찍은 것들이다. 이때 날씨가 엄청 안 좋았다. 눈이 왔다가 진눈깨비가 쏟아졌다가 비가 왔다가... 뭐 전형적인 이 동네 날씨니까 그러려니 한다. 사실 이것이 이 도시의 매력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만큼 6월부터 8월까지의 찬란한 백야와 여름을 여기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는 내가 좋아하는 카페 겸 레스토랑 고스찌의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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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작년 12월. 페테르부르크 갔을 때.


오후 3시 반 즈음 석양 보려고(ㅜㅜ 겨울엔 3시 반에서 4시면 해가 진다) 얼어붙은 네바 강변을 거닐었다. 료샤랑 레냐랑 함께였다. 그러다 저렇게 포옥 껴안고 있는 커플 발견.


이런 걸 보면 언제나 따라하고 싶어하는 레냐가 동동거리며 달려와 나를 포옥 껴안았다 :)

(료샤는 '쳇, 아빠보다 토끼를 더 좋아해. 아들 따위 다 소용없어' 운운하며 투덜투덜)



엄청 추운 날이었는데 보들보들 복슬복슬 온통 말랑말랑 조그만 레냐가 폭 안겨오니 정말 따뜻했다. 나도 마주 꼬옥 안아주었다.


포옹을 풀고 나서 레냐가 하는 말...



레냐 : 쥬쥬한테서 꿀 냄새가 나. 너무 좋아. 블린 먹고 싶어~


료샤 : 크흐흐흐흐흐 하하하하하...


나 : 야! 뭐가 그렇게 웃겨!!!!


료샤 : 꽃 냄새도 아니고 꿀 냄새래 크흐흐흐 하하하하 블린 먹고 싶대 하하하하 너무나도 토끼 같아~~~


나 : 야!!! 꿀향기 나는 향수 뿌렸단 말이얍!!!!!!



... 하여튼 우리는 블린 먹으러 갔다. 레냐는 꿀 뿌려진 블린을 먹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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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4. 5. 00:01

나의 페테르부르크 2016 petersburg2017. 4. 5. 00:01





테러 소식에 마음이 많이 아프다..

작년 12월에 갔을 때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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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4. 2. 21:51

북방 도시의 빛은 창백하다 2016 petersburg2017. 4. 2. 21:51







지난 12월. 페테르부르크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 장. 매우 추웠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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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4. 1. 00:50

이해할 수 없지만 확신이.. 2016 petersburg2017. 4. 1. 00:50


​​​

​​





사진들은 모두 지난 12월, 페테르부르크에서 찍음


..



오늘은 집에 막 들어와 씻으려고 옷을 벗다가 문득 거의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저 도시에서 살게 될 거야. 언제가 됐든, 언젠가는, 결국은 저곳으로 돌아가고, 저곳으로 떠나게 될 거야.


.. 어떻게? 나 '왜?'는 없었고 그냥 그런 기분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뭐 오늘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도...



사실 지금 저기 있고 싶네.



..




어디가 되었든 어떻게 되든 이곳에 언제까지 남을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될 것 같다. 어제와 오늘 이곳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더 이상 젊지도 않은 나 자신의 급속한 소모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들었다.


근데 또 곰곰 생각해보면 원래 회의주의자니까 그런지도 ㅠ (생각 좀 그만 해ㅠㅠ)



..



그러고 보니 일찍 자려고 10시 반쯤 침대로 들어갔는데 막상 잠이 안와서 일어나 책 읽고 있다. 오늘 무리한 머리 엔진이 덜 식었나보다. 내일은 낮 기차니까 11시 즈음에만일어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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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3. 28. 23:27

외곽은 아직도 레닌그라드 같지... 2016 petersburg2017. 3. 28. 23:27









작년 12월. 페테르부르크.

로모노소프 도자기 박물관 가는 길. 도심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라 황량하고 건물과 주변 풍경에는 잿빛 소련 느낌이 배어 있는 동네다. 레닌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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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3. 27. 23:49

항상 떠나고 싶으니.. 2016 petersburg2017. 3. 27. 23:49




작년 12월. 페테르부르크에서 찍은 사진들 몇장















몸이 아플 때도 안 아플 때도 항상 떠나고 싶으니 현실에 불만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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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예전에 발췌했던 에피소드 중에 아파트 수도관이 터져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친구인 트로이의 집으로 피신 온 미샤의 이야기가 있었다. 두 토막으로 나누어 올렸는데 하나는 흠뻑 젖은 미샤가 트로이네 집으로 오는 이야기였고 다음 얘기는 잠든 미샤를 바라보는 트로이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의 링크는 아래.



http://tveye.tistory.com/5524 (수도관 터진 날, 푸쉬킨,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진다)
http://tveye.tistory.com/5783 (깊은 잠, 멈춘 육체)



그 파트는 사실 트로이와 미샤가 처음으로 밤을 보내고 육체적 관계를 맺는 순간을 그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행복한 순간이었겠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래 발췌한 부분은 그 직후의 이야기이다(공개 블로그라 자기 검열에 의해 둘의 불꽃튀는-ㅋㅋ- 장면은 건너뜀) 덜컥 관계를 맺어버린 후 트로이와 미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사실 내겐 그들의 잠자리보다 이 순간이 더 중요했다.



실지로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이야기와 단어와 표현조차 그 순간의 트로이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샤라면, 그는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농담을 하는 사람이다. 그의 말은 믿을 수 없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작가로서의 나는 오직 그의 말만을 믿을 수 있다. 웬 횡설수설이냐고? 어쩔 수 없다. 애초부터 작가란 거짓말쟁이이며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인간이다.



발췌한 에피소드 아래에는 이 글을 쓰던 당시 내가 사적으로 남겼던 메모를 첨부했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한참 후 미샤가 몸을 일으키더니 그의 팔에서 빠져나갔다. 침대에서 내려가 방을 나갔다. 트로이는 잠깐 동안 어둠 속에 누운 채 두려움에 잠겼다. 그가 떠나 버릴까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봐. 그 두려움이 너무 생생하고 강렬해서 어지럽고 욕지기가 났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일어나 침실 밖으로 비틀거리며 나갔다.



 미샤는 가버린 게 아니었다. 그는 부엌에 있었다. 식탁 구석에 오랫동안 놓여 있던 미지근한 과일주스를 팩 째로 마시고 있었다. 달착지근한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애였으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트로이는 냉장고 문을 활짝 열고 안을 뒤져 맥주 한 병을 찾아냈다. 막 뚜껑을 따고 들이키려는데 미샤가 병을 빼앗아 크게 두 모금 마시고 돌려주었다. 트로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 넌 마시지 마. ”



 “ 왜? 미성년자도 아닌데. ”



 “ 찬바람 맞고 왔잖아. 투어도 가야 한다면서. ”



 “ 폐렴에라도 걸릴까봐? ”



 트로이가 맥주 대신 물을 따라 주자 미샤는 컵을 들고 침실로 돌아갔다. 트로이는 술병을 거꾸로 들어 끝까지 다 마셨다. 차가운 알콜이 목구멍을 타고 뱃속까지 단숨에 흘러내려갔다. 하지만 갈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는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을 손등으로 닦으며 침실로 갔다. 차가운 술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고 툴툴거리긴 했지만 미샤는 모포를 찾아내 몸에 두르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모포를 뒤집어쓰고 벽에 기댄 채 넓은 침대에 앉아 있는 미샤는 더 이상 격렬하게 그를 포옹할 때처럼 대담하고 강해 보이지 않았다. 사원을 기어오르던 악마도, 끝없이 그를 몰아대며 끌어당기던 젊은 폭군도 사라졌다. 부스스하게 뒤엉켜 사방으로 치솟은 검은 머리칼을 갸름한 얼굴 주위로 종려나무 잎사귀처럼 드리운 채 보풀 어린 모포로 어깨를 감싸고 사춘기 소년처럼 사지를 늘어뜨리고 앉아 트로이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검은 눈이 어둠 속의 고양이처럼 세로로 길게 빛나고 있었다. 트로이는 침대 위로 올라가 그의 어깨를 안고 베개 위로 눕혔다.



 미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이런 거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



 길 잃은 아이처럼 우울한 목소리였다. 미샤는 베개에 이마와 눈을 파묻고 몸을 웅크렸다.




 충격을 받은 게 당연해. 무경험, 친구의 배신, 충격.


 아니, 사회 윤리와 법률 위반도 있지. 발각되면 체포당할 짓이니까. 넌 항상 그런 규율과 질서를 경멸하는 것처럼 굴지. 하지만 어쩌면 넌 그렇게 강하지 않을지도 몰라.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야. 넌 아직 애에 지나지 않아. 얕보이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리는 애. 그런 상황을 거부할 용기가 없는 어린애. 그건 강간이나 마찬가지였을지도 몰라. 내가 그렇게 한 거야.




 트로이는 공포를 억누르려고 애쓰며 떨리는 음성으로 속삭였다.



 “ 네 잘못이 아냐. 내가 그런 거니까. 넌 아무 것도 몰랐잖아. ”




 “ 네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 ”



 알리사와 마찬가지였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알아차린 것이다. 미샤는 언제부터 알았던 걸까?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알리사는 조교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의 표정과 태도 전체에 선명하게 낙인이 찍혀 드러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오랫동안 감추려고 애썼는데.



 미샤가 눈을 들어 충격에 잠긴 트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 다른 애들은 모를 거야. 난 같이 자는 남자들이 많아. 보면 알아. ”



 “ 그럼 다른 것도 알았어?"



 그는 차마 ‘내가 널 원했던 것도 알았어?’ 라고 대놓고 묻지 못했다. 다시 두려움이 솟구쳤다.



 “ 몰랐어. 알고 싶지 않았어. 어쨌든 너와는 자고 싶지 않았어. ”




 “ 교회 첨탑 같아서? ”



 트로이는 억지로 농담을 짜냈다. 미샤는 웃지도 않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 파트너나 친구와는 자는 게 아니니까. 신뢰가 사라지잖아. ”



 “ 난 나보다 널 더 믿어.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변하지 않을 거야. ”



 “ 네가 그렇다는 건 알아. ”



 미샤는 그의 얼굴에 뺨을 마주대고 여전히 우울하게 말했다.



 “ 파트너는 바꿀 수 있어. 친구는 그게 안 돼. 내게 친구는 너 하나 밖에 없어. ”



 “ 주위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쩌고. 극장 동기들은, 이고리는, 타냐는? ”



 “ 친구는 잘 사귀지 못해. 난 사람들을 믿지 않아. ”



 처음으로 트로이는 미샤의 완벽하게 서늘하고 우아한 아름다움 너머로 깊게 일그러지고 오그라든 어둠을 보았다. 어둠. 불. 추락. 크세니야가 했던 말. 불을 뿜으며 떨어지는 아이. 모스크바 역 좁은 의자에 앉아 공포에 질려 있던 소년.



 “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건 이상한데. ”



 그는 심각하게 들리지 않도록 애쓰며 팔 안의 몸을 천천히 끌어당겼다.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느껴졌다. 미샤의 몸에는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었다.



 “ 세상이란 게 뭔데. 소비에트 연방?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




 
 그는 키로프라고 하지 않고 마린스키라고 했다. 레닌그라드 대신 페테르부르크라고 얘기한 것처럼.



 “ 우리 주위의 모든 것. 전부. ”



 “ 레닌그라드. ”



 미샤가 결론을 내리듯 단호하게 말했다. 트로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레닌그라드. ”



 그는 미샤가 이 도시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의 깊이에 전율했다. 물 위에 돌로 지어진 도시, 학살과 절망의 도시, 피와 바람의 도시, 허위와 모방의 역사로 가득 찬 옛 수도, 이제는 모스크바의 광휘에 밀려나 퇴색하고 있는 도시를 향해 그런 절대적이고 강력한 사랑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 나하고 레닌그라드는 같을지도 몰라. ”



 미샤는 트로이의 귓가에 입술을 마주 댄 채 따스한 숨결을 내쉬며 말했다.



 “ 뿌리가 없어. 돌이킬 수 없이 안이 비었어. 파이프처럼. 운하의 검은 물이 그 안으로 차올랐다가 어디론가 빠져나가. 그래서 사람들을 잡을 수가 없어. 친구를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 ”



 2년 반 전 갈랴의 집에서 만난 이래 미샤는 단 한 번도 트로이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 누구에게도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그럼 나는? ”




 “ 내가 널 잡는 게 아니야, 네가 날 잡아주는 거지. 그래서 나한테는 친구가 너 하나 밖에 없어. 너하고 나는 레닌그라드에 같이 있으니까. ”



 그는 미샤의 말을 절반쯤 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는 지금껏 미샤를 이해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에게 있어 미샤 야스민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의 내부에 있는 것이라곤 깊은 사랑과 욕망뿐이었다.



 가슴을 에는 듯한 연민과 애정을 느끼며 안드레이 트로이츠키가 조용히 물었다.



 “ 누구든 사랑해본 적이 있어? ”



 “ 같이 자는 남자들은 많아. ”



 미샤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트로이의 목을 껴안고 따뜻하게 데워진 몸을 바짝 밀어붙였다. 한쪽 다리를 들어 트로이의 허리를 감았다. 엷은 갈색 털이 성기게 돋아난 트로이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애무하듯 쓸어내리며 턱을 들어 입을 맞췄다.



 키스를 잠시 멈췄을 때 미샤가 입술을 떼지도 않고 말했다.



 “ 좀 안아줘, 안드레이. 한번만 더 해줘. ”



 절망적이고 쓸쓸한 목소리였다. 불을 뿜으며 떨어지는 아이.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생명체. 낯선 인간. 하지만 트로이는 더 이상 그게 새로 온 존재인지 그들 이전부터 있었던 존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거라곤 ‘좀 안아줘, 안드레이. 한번만 더 해줘란 말과 ‘안드레이, 나 좀 잡아줘. 잠시만’ 이란 말이 똑같은 울림과 똑같은 깊이로 밀려나온다는 것뿐이었다. 파이프에서 검은 물이 빠져나오듯, 그렇게.



 그들은 새벽이 될 때까지 시트가 말려 올라간 매트리스 위를 구르며 다시 사랑을 나눴다. 아침이 되었을 때 트로이는 면도도 하지 않고 강의 노트를 챙겨 학교에 나갔다. 그가 나갈 때 미샤는 기침을 하면서 모포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파이프가 터져 엉망이 되었던 아파트는 예상 외로 다음날 곧 복구되었다, 레오니드 핀스키가 아는 수리공에게 보드카를 뇌물로 주며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샤는 3일 후 키예프로 투어를 떠날 때까지 트로이의 아파트에 머물렀다.





...







<2012년 가을의 메모 - 이 소설을 쓰던 무렵>




요즘 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텅 빈 일종의 파이프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끔은 그 파이프 안으로 차가운 물이 들어와 위아래, 양옆으로 물결치는 것 같다. 그 물은 아주 차갑고 아주 검다. 주로 밤에 그렇다. 원래 밤이란 건 그런 시간이다. 


 
옛날에도 가끔 우울증에 시달렸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나 자신이나 주변과 타협하는 기술을 익히게 되면서 훨씬 나아졌다. 그런데 그건 사실 해결의 기술이 아니라 회피의 기술이다. 파이프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
 


오래 전 글을 쓸 때, 그리고 최근 다시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난 동일한 인물의 입을 빌어서 한 인물의 내부와 외부에 오로지 어둠만이 존재하며 거기에는 어떤 정점도 어떤 바닥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고 우울한 일인지 이야기했다. 난 그 느낌을 안다. 그건 파이프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그 인물은 파이프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난 그 느낌을 안다. 


 
어쩌면 내가 다시 글을 쓰기로 했을때 비슷한 성향이지만 훨씬 더 사랑스럽고 부드러웠던 다른 인물, 이미 정교한 플롯이 짜여져 있던 다른 이야기를 되살리는 대신 그 음울하고 고통스런 인물을 데려온 것은 그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주인공은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망치기로 한다. 재능을 배신하고 열망을 버린다. 다른 세계로 옮아간다. 그건 기만이며 일종의 회피, 비겁한 행위이다. 딱히 살아남기 위한 열정에서 나온 회피도 아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말로 나쁜 건 어떤 식으로 행동하든 그에게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이해한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지금껏 내가 만들어냈던 그 어떤 인물보다도 더. 물론 나는 그와 같은 재능이나 매력을 갖춘 예술가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다.


 
어쨌든 파이프가 되는 건 우울한 일이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건 더욱 그렇다.



2012.10.19




..








* 사진들은 모두 작년 여름과 겨울에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찍은 것. 마지막 사진은 푸쉬킨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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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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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3. 17. 22:11

겨울,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 2016 petersburg2017. 3. 17. 22:11

 

 

 

지난 12월. 페테르부르크.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날. 복직 며칠 전.

 

춥고 흐린 날이었다. 습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전형적인 잿빛 페테르부르크 날씨였다.

 

..

 

사진의 저 기념품 가게에서 파란 망토의 목각천사 미하일을 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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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3. 13. 21:36

12월, 얼어붙은 모이카 운하 2016 petersburg2017. 3. 13. 21:36




지난 12월. 페테르부르크. 모이카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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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3. 8. 21:13

밤중에 호텔 복도를 지나다 2016 petersburg2017. 3. 8. 21:13




아스토리아 호텔의 색깔과 빛, 붉은색과 푸른색 줄무늬,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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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3. 8. 21:05

나는 그의 말투로 시작했다 about writing2017. 3. 8. 21:05



사진은 페테르부르크 풍경. 예전의 레닌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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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나직하고 부드러운 음성, 귓가에 조용히 닿았다가 아무런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목소리. 그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흠잡을 데 없이 예의바르고 차분한 태도, 그러나 어쩐지 부아가 치밀게 만드는 어조. 어쩌면 음성학 수업에서나 들을 법한 정확하고 모범적인 발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0여 년 동안 나는 그가 부정확한 어휘를 쓰거나 문법적 실수를 범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무용수로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아마 레닌그라드 토박이라서 그럴 것이다. 방송국에서 일했던 그의 아버지나 교정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후자가 더 신빙성이 있을 테지만 대놓고 물어본 적은 없다. 사실 미샤가 나 외의 그 누구에게든 자기 부모 이야기를 꺼낸 적이나 있을지 의심스럽다. 선동 죄목으로 죽은 가족이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 2012년 9월, Frost ..



..




몇년 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단편의 이 문단으로 시작했다. 앞부분에는 생략된 대화가 몇 줄 있다.


어떤 글이든 처음이 가장 어렵다. 동시에 첫 단어와 문장과 문단을 만들어내는 것만큼 심장을 조이고 또 흥분시키는 일도 거의 없다.


지금은 다른 글을 쓰고 있지만 어느 정도 궤도를 찾으면 나는 저 본편의 우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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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3. 5. 20:01

모스크바에 있는 것들, 오직 불길 about writing2017. 3. 5. 20:01






아래 글은 체포된 후 약물 고문으로 피폐해진 미샤가 수용소 클리닉에서 절친한 사이인 스타니슬라프 일린과 면회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예전에 이 소설 일부들을 여러번 발췌해 올렸었다.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샤와 일린의 면회는 마지막 3부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모스크바 토박이이자 그 도시의 대표 극장인 볼쇼이 극장에서 무용수 노릇을 하다 안무가가 된 일린과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토박이이며 역시 그곳 대표 극장인 키로프(지금의 마린스키)의 간판 무용수였던 미샤의 대화이기도 하다.



벨스키와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모두 미샤를 후원하던 공산당 고위 간부이다. 전자는 미샤를 수용소에서 빼내 가브릴로프로 보내는 인물이고 후자는 오랫동안 미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인물이다.



..




미샤와 일린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볼쇼이, 트레치야코프, 므하트, 아르바트는 모두 모스크바의 명소들이다. 볼쇼이는 다들 아는 그 볼쇼이 극장, 트레치야코프는 미술관 이름이고(여기에 브루벨의 백조공주가 있다) 므하트는 모스크바 예술극장(Московский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Театр)의 약자이다. 유명한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창립한 극장이다. 아르바트는 모스크바에서 가장 유명한 젊음의 거리이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는 병을 집어 남은 물을 한 모금 마셨지만 전부 삼키지는 못했다. 바닥에 반쯤 뱉어버렸다. 에어컨을 꺼 주자 한기가 덜한 듯 목과 어깨에 둘렀던 스카프를 풀었다. 아니면 더워서 그랬던 건지도 몰랐다. 열 때문에 추웠다 더웠다 하는 것 같았다. 눈의 광채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몇 초 사이에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기 때문에 나는 소파로 가서 그 애의 머리와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 여기 의사들도 알아? ”


 
 “ 뭘? ”


 
 “ 아무 약이나 주면 안 되는 거. ”
 


 “ 아는 것 같아. ”


 
 “ 다 말해. 그 올가란 여자에게. 아픈 데 있으면 전부. 약 먹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데 있으면 무조건 얘기하고. 고집 부리지 마. 벨스키에게 들었어, 회복돼야 내보내준다고 했어. ”
 


 “ 친절한 분이시군, 조건을 하나만 걸어놓으신 것처럼 얘기하시다니. ”
 


 “ 가브릴로프 얘기도 들었어. ”
 


 “ 아. 그건 조건이 아니고 벨스키가 결정해놓은 거야. 그 사람은 가을부터 극장이 제대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벌써 내년 행사 미션까지 줬어. 거기 가 봤어? ”
 


“  아니. 전에 이그나트가 가봤다고 했어. 좋았다고 했어, 한적하고 공기도 좋고. 온천도 있을지도 몰라. 회복하기엔 좋을 거야. 좀 쉰다고 생각해. 곧 돌아올 수 있을 거야. ”
 


 “ 어디로? ”


 
 “ 글쎄. 모스크바는 아직도 싫어? ”


 
 “ 거긴 충분히 있었어. ”


 
 “ 겨우 일 년 있었으면서. 모스크바도 좋은데. ”


 
 “ 그건 네가 거기서 태어났으니까 그렇지. ”


 
 “ 그럼 넌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서 거길 좋아하는 거야? 정말 간단한 이유네. ”


 
 “ 그럴지도. ”


 


 미샤의 창백한 얼굴에 잠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대답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 고집쟁이, 언제나 한결같고 견고한 마음을 가진 그 애가 사랑하는 도시, 돌아가고 싶은 유일한 도시가 거기 있다는 것을. 그 애를 파리에 남지 못하게 했던 유일한 이유. 물과 돌의 도시, 아무런 지지대도 없이 안개를 딛고 세워진 도시, 네바 강과 발트 해, 그림자와 습기 사이에서 부유하는 도시, 환영으로 축조된 도시.


 
 그 애가 레닌그라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벨스키가 어떤 식으로 반대파들을 요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높은 분들에게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을 테니까. 그는 미샤의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수용소에서 풀려날 거라고, 하지만 재판 결과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레닌그라드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한동안 연금될 거라고 말했다. 그건 추방 조치나 다름없었다. 그가 미샤를 구해준 것은 맞다, 아마 다른 의원들 몇몇이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그 애의 오래된 후원자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권력자들. 
 


 그러나 아무리 벨스키와 스비제르스키, 그 외의 많은 의원들이 미샤를 강력하게 후원했다 해도 해외에서 그토록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애를 구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권력자들에게 있어 일개 예술가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하잘것없는 대상일 뿐.
 


 미샤가 옳았다.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 사실 그런 문제에 있어서 미샤는 언제나 옳았다. 그 애가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를 몸서리치게 싫어하고 증오했던 것처럼.
 




 벨스키의 전화를 받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내 마음 속을 꽉 채웠던 것은 미샤의 상태에 대한 걱정도, 그 애의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었다. 어이없게도 그건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에 대한 분노였다. 스비제르스키는 그 애가 체포되어 그 불공정하고 더러운 재판을 받도록, 가혹하게 과장된 죄목들을 뒤집어쓰도록, 그 끔찍한 정신병자 수용소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자가 정말 원하기만 했다면 애초부터 그런 재판을 받지 않도록 손을 썼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자는 아직도 KGB와 사법부 쪽으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높으신 분, 정치국 위원, 무소불위의 권력자 의원께서는 고개를 돌렸고 그럼으로써 그놈들이 마음 놓고 더러운 짓을 할 수 있도록 묵인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자의 묵인이 없었다면 그 애에게 그 정도로 심한 판결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벨스키도, 다른 의원들과 간부들도, 아니, 그 애의 모든 동료들, 심지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비겁하게 행동했다. 모두가 등을 돌렸고 손을 씻었다. 우리는 뒤늦게 일어났을 뿐이었다. 벨스키가 그 애를 위해 노력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파리 시위가 없었다면, 그 사진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해외에서 그토록 지속적이고 격렬한 소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역시 계속해서 침묵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비겁자들이었다. 그러나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사악하고 더러운 인간, 모든 비겁자들보다 더 지저분하고 더 비열한 인간이었다.




 
 한때 나는 그자가 그토록 오랫동안 미샤를 놔주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 애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랜 적이 있었다. 그 잔혹하고 더러운 학살자 역시 인간이며 내부에는 부드러운 심장이 뛰고 있어서 비밀스러운 애정을 품을 수도 있을 거라고.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심기가 불편하고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미샤는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스비제르스키와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안다는 것은 눈치 채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 자존심 강한 애는 충분히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그 애가 스비제르스키의 호출에서 돌아온 직후 모스크바 강을 따라 뛰고 또 뛰는 것을 보았고 창가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말 한 마디 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을, 가끔은 거울을 주먹으로 치고 또 쳐서 유리 파편이 박히고 피를 흘리는 것을, 또 언젠가는 욕조에 들어가 몇 시간이고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럴 때면 그 애는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춤조차 추고 싶어 하지 않았다.
 




 두 번, 나는 그 애를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내 몰래 병원으로 데려갔다. 지난 5년 동안 두 번. 한 번은 페이퍼 나이프를 썼고 다른 한 번은 스카프를 썼다. 그 애가 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여러 번. 그게 스비제르스키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더러운 이름이 그 애를 떠밀고 계속해서 길을 잃게 만드는 어둠 속에 존재하는 괴물 중 하나라는 건 알았다. 그자들이 계속해서 그런 짓을 했다. 재판과 판결, 수용소와 고문이 있기 전부터 당과 국가와 체제, 영광과 명예와 의무,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그 애의 심신을 산란하게 하고 고통을 가하고 자꾸만 넘어지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건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그저 눈을 돌리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미샤는 그만큼 무심하고 평온한 심장을 가진 애가 아니었다. 그 침착하고 서늘한 태도, 흐트러지지 않는 또렷한 눈빛 너머로는 오직 불길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불을, 그 뜨겁고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을 단숨에 꺼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공포에 떨었다.



 
 아마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도 거기 있었을 것이다. 그 애를 넘어지게 하고 마침내 불을 꺼버리는 그 끔찍한 행렬 맨 앞에 있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자기 것으로 삼고 착취하고 더러운 짓을 하면서. 그런데도 그자는 모른 척했다. 그 애를 자기 수하의 사냥개들에게 그대로 던져주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 음습했던 욕망이 마침내 꺼져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건 비열한 짓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혹은 그런 낭만적인 가장조차 없이 누군가를 지배하고 끊임없는 고통을 가하고 마침내 파괴하고 쓰레기처럼 내버리는 행위보다 더 사악하고 더러운 짓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그자를 그토록 증오하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미샤를 고발하고 억지 혐의를 씌워 수용소로 보낸 자들보다도, 그 애를 고문하고 거의 죽일 뻔 하고 이런 상태로 만들어놓은 자들보다도 더 증오했다.
 



 
 미샤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 모스크바 싫다고 해서 그래? ”

 
“ 모스크바도 좀 좋아해줘. 안 그러면 섭섭할 거야. ”

 
“ 좋아할 이유를 좀 대봐. ”


 
“ 볼쇼이. ”


 
“ 그리고? ”


 
“ 트레치야코프. ”


 
“ 이제 므하트라고 할 거지? ”

 
“ 안 통하는군. 그럼 아르바트. ”


 
“ 그 동네 요즘 재미없어졌어. ”

 
“ 나. ”

 
“ 넌 안 떠날 거야? 끝까지 모스크바에 남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

 
“ 그래. ”

 
“ 그럼 모스크바도 나쁘지 않아. ”



미샤가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그리고는 내게 기댔던 몸을 떼었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








맨 위의 사진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그리고 이 사진은 네바 강과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배경으로 찍은 페테르부르크 사진. 당시의 레닌그라드.



..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라는 표현은 앞부분에서 일린이 미샤와의 대화를 회상할때 나온 것이다. 전에 이 부분에 대해 올린 적이 있다.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468



..



사실 이 에피소드의 뒷부분 일부는 예전에 이미 올린 적이 있다.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에 대한 문단이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두어가지 주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쓰는 순간만 하더라도 저 부분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다 쓰고 난 후, 그리고 그 이후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내내 나는 저 부분을 떠올렸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전에 저 부분에 대해 했던 얘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341, http://tveye.tistory.com/2508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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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페테르부르크. 얼어붙은 네바 강과 찬연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지난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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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2. 14. 21:49

얼음과 빛 2016 petersburg2017. 2. 14. 21:49




페테르부르크. 모이카 운하. 지난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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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2. 7. 22:05

12월 페테르부르크 거리 2016 petersburg2017. 2. 7. 22:05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고, 해는 늦게 떠서 금방 져버리는 계절. 12월. 한겨울, 페테르부르크. 거리는 눈으로 뒤덮이고 사람들은 모자와 두터운 외투와 목도리로 꽁꽁 싸맨채 천천히 걸어간다.


정말 춥고 거친 계절이지만 무척 아름다운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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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상트 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묘지.


이곳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잠들어 있다. 내 인생을 바꾼 사람 중 하나. 나에게 러시아어를 전공하게 했던 사람. 여전히 나에게는 최고의 작가. '쓰는 자'로서의 첫사랑.


매우 추운 겨울날 오후. 나는 그의 묘를 찾았고 감사와 기도와 입맞춤을 남겼다.

그리고 그를 찾아온 러시아 여인들의 조용한 송가와 정교식 기도문을 들었고 얼어붙은 눈 위에서 광채를 내뿜는 꽃들과 부드럽게 빛나는 촛불을 보았다.


고마워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이 세상에 와줘서, 그토록 치열하고 강렬하고 아름다운 글들을 써줘서.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제 마음속 1번 작가이고 마지막 작가일 거예요.

사랑해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나의 도씨.








매우 추운 날이었다. 내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파우치 안에 들어있는 립스틱 한개, 그리고 수첩과 볼펜이 전부였다. 초를 살 동전도 없었고 꽃을 사올 정신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 이 수도원에 올때면 심신이 산란한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로지 아주 짧은 편지와 입맞춤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누군가는 촛불을, 누군가는 꽃다발을, 그리고 누군가는 송가와 기도문을 남긴다. 나는 입맞춤을. 그리고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



이날 나의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5633


도스토예프스키와 나의 첫 만남에 대해서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1606 (내가 러시아어를 전공하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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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2. 2. 23:44

여유를 찾고 싶다 2016 petersburg2017. 2. 2. 23:44




한달 넘도록 내내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며 일에 파묻혀 있다 보니 두뇌 대부분이 일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져서 사적인 일들이나 쓰는 글, 그외 자신을 위해 꼭 필요한 사고/감상 등에 대한 뇌세포는 거의 활동을 멈춘 상태인 것 같다. 매일 멍하게 돌아와 멍하게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이면 일하러 간다.



책도 읽고 글도 다시 조금씩 쓰고 싶은데 토요일에 잠시라도 여유를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에겐 쇼핑이나 수다, 스포츠 같은 것들보다 실은 저런 일들이 더 필요하다. 제대로 쓰고 읽지 못하고 쉬지 못하니 좀 힘들다.


좀 있으면 나아지겠지.


사진은 12월 페테르부르크, 아스토리아 호텔 로툰다 카페. 내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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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