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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 30. 19:49

극장과 꽃의 기억 2017-19 vladivostok2017. 7. 30. 19:49

 

 

 

 

어느새 블라디보스톡에 다녀온지 열흘이 넘게 지났다. 원체 짧은 일정이라 그야말로 정말 공연만 본 거나 다름없는 여행이었다. 목표 자체가 그거였으니 만족한다. 좋아하는 무용수가 주역으로 나오는 두시간짜리 발레를 보고, 다음날은 그의 기자간담회에 갔다가 얘기나누고 화보에 사인받고, 그 다음날은 그의 이브닝 특별 무대를 본 후 또 사인을 받고 얘길 나누었으니 복 터진 여행이었음.

 

 

프리모르스키 마린스키 극장 근처에 숙소를 잡아서 시내 구경은 하루밖에 못 나간데다 숙소 있는 동네는 원체 구식이고 또 갈데가 없어서 이번 블라디보스톡 여행은 딱 두개로 요약할 수 있다. 극장과 꽃.

 

 

위의 사진은 7.18 이브닝 무대 후 사인회 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나탈리야 오시포바가 사인해준 프로그램. 이때 사진 두 장에 더 사인을 받았다. 슈클랴로프는 그때 내가 보여준 황금신상 사진에 깜짝 놀라 '이거 어디서 났어요?' 라고 되묻고는 언젠지 기억도 안난다며 진짜 오래전이라고 막 웃었다. 즐거운 기억이다. 그보다 더 근사한 기억은 그의 무대 자체였고. 나는 극장에서 그의 무대를 그래도 꽤 많이 본 편이지만 이번 무대는 손에 꼽힐만큼 좋았다.

 

 

 

 

역시 극장. 블라디보스톡의 프리모르스키 마린스키 분관 한쪽에 진열되어 있던 지젤 1막 의상. 시골 처녀 지젤이 이 옷 입고 종종종 등장해 (사기꾼) 알브레히트와 손잡고 춤을 추고 꽃을 따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꽃점을 치고... 흑흑 생각하니 또 불쌍한 지젤... 울컥!!

 

 

 

 

이건 18일 슈클랴로프 공연 때. 1막에선 소품 세개를 췄고 두번째 막에선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을 췄다. 누레예프와 폰테인을 위해 프레드릭 애쉬튼이 안무해준 이 작품은 리스트의 피아노곡 라이브에 맞춰 펼쳐진다. 그래서 피아니스트가 나와 두다다다당 하고 연주~ 나는 피아노도 리스트도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이 작품엔 꽤 잘 어울린다. 누레예프도 과잉의 무용수였고 리스트도 과잉의 화려한 음악가이니.... 어쩐지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슈클랴로프는 두다당거리는 건반 멜로디에 맞춰 격렬한 아르망을 보여주었다.

 

 

 

블라디보스톡 가서 공연만 보러 다녔으니 극장은 알겠는데 꽃은 뭐냐고 하신다면..

 

 

블라디보스톡은 마을 여기저기 들꽃이 많았다. 특히 주거지에 가면 무성하게 들꽃들이 자라나 있었고 종류도 여러가지여서 그거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건 18일에 버스 잘못 타서 내렸을 때 돌아다녔던 동네에서 찍은 들꽃 사진. 아파트 건물 주변에 만발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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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국립발레단 '지젤', 2015. 3. 28

 

* 지젤 : 김지영

* 알브레히트 : 김현웅

* 힐라리온 : 정영재

* 미르타 : 한나래

* 페전트 2인무 : 김리회, 김윤식

 

 

돌이켜보면 내가 국립발레단의 지젤 무대를 정말로 좋아했던 것은 김주원씨가 떠나기 전까지, 그리고 파트리스 바르의 안무가 들어오기 전까지였던 것 같다. 일단 김주원씨는 국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레리나였고 특히 지젤 역이라면 최고였다. (물론 김지영씨도 좋아했는데, 옛날에 이 둘이 투 톱일 때 내 마음속에서 '김주원=지젤', '김지영=키트리!'라고 마음 속에 각인되어서 ㅎㅎ)

 

주원씨가 출 때는 그래도 파트리스 바르 안무라도 그럭저럭 참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바르의 안무는 더더욱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더라도 자꾸 보면 익숙해져서 괜찮아지기 마련인데 안 그런 걸 보니 파트리스 바르 안무가 정말 내 취향이 아닌가보다..

 

바르는 내 취향보다 너무 분절적이고 중간중간 쓸데없이 과잉 표현을 한다. 그러니까 바르 안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사람의 안무는 내 감정선이랑 안 맞는 거다. 내가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이면 바르의 안무는 툭 끊어지고, 오히려 여기서는 스피디하게 가도 될만한 곳에서는 한없이 늘어지거나 만용을 부리는 느낌이랄까... 나는 드라마틱한 작품들을 좋아하고 성향에도 맞는 편이지만, 이야기나 장면을 늘리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한다. 소설이라면 모를까 발레 무대라면 탄탄한 짜임새와 일종의 여백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타입이다. 두 가지가 좀 모순되는 표현 같긴 한데. 그러니까, 끊어줘야 할 곳에서는 미련없이 탁 끊어줘야 한다는 거다.

 

이 버전에서 특히 내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은 바로 1막에서 지젤 엄마가 심장이 약한 딸을 가리키며 그러다 죽는다~ 하고 경고하고 지젤이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는 장면인데... 볼때마다 괴롭다. 그냥 이 장면 들어내줘.. 하고 싶다. 지젤의 광란은 예고없이 닥쳐오기 때문에 더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건데 굳이 지젤이 엄마의 경고로 그런 예감과 공포에 휩싸이는 장면을 넣어서 과잉 표현의 예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것은 아마 내 취향이 이런 걸 안 좋아해서 그런 걸 테고, 또 많은 관객들은 오히려 이러한 복선과 드라마틱한 연출이 마음에 들 수도 있으니..

 

그리고 편곡도 그렇고 조명을 쓰는 것도 내겐 너무 over the top 이란 느낌이 든다. (우리 말로 뭐라고 해야 딱 맞을지 모르겠네. 그러니까 과잉이라는 건데... 좀 허세 넘친다 해야 하나) 일단 암전도 그렇고, 지젤 엄마 경고 때도 그렇지만 지젤의 광란 씬에서도 그렇고.. 무대 전체를 암흑으로 물들이며 지젤에게만 조명을 비춰주는 것은 뭐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광란 씬은 지젤이란 무용수 자체가 무대 전체를 지배하는 씬이다. 그녀의 광란과 그녀의 절망, 그녀의 움직임, 이 모든 것만으로도 감정이 넘쳐흐른다. 이러한 드라마와 격렬함이 폭발하는 무대 위에서 굳이 암전과 집중조명은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이랄까. 스탕달이 자기 소설 어딘가에 인용했듯 '어리고 예쁜 소녀가 무도회에 가면서 이미 충분히 발그스름한 볼에 연지를 칠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난 드라마틱하고 감정 과잉으로 흘러넘치는 무대를 좋아하는 적도 많으니 이건 전적으로 나랑 파트리스 바르 안무가 '그냥' 어딘가 안 맞는 걸지도..

 

..

 

근데 오늘 공연 얘길 해야 하는데 바르 안무 얘길 한참 늘어놨네. 본론보다 더 길겠네.. 하여튼 이제 오늘 공연에 대한 짧은 메모..

 

바르 안무를 별로 안 좋아하니 사실 오늘도 큰 기대 없이 갔다. 김지영씨와 김현웅씨가 추니까 그래도 실망은 안 하겠지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 정영재씨의 힐라리온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 사실 이동훈씨의 알브레히트도 좋아하고, 이분 무대 본 지 꽤 돼서 고민했는데 작년인가 재작년에 이은원씨의 지젤을 봤을 때 너무 내 취향이 아니라서, 내 성향으로는 보다 안전한 김지영 & 김현웅 페어를 선택했다.

 

전반적으로 오늘의 지젤은 최근 몇년 간 봤던 국립발레단 지젤 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국립발레단의 군무는 예전에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확실히 강수진씨가 감독으로 부임한 후 발레단의 전체적 무용의 질이 향상된 것 같다. 약간 삐걱대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내가 앞줄 사이드에 앉았으므로 군무의 전체적 균형을 감상하기에는 불편함이 있었다..

 

내가 지젤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미르타의 등장과 그녀의 독무인데, 사실 우리 나라 발레단 공연에서 맘에 드는 미르타를 본지가 오래됐다. 미르타를 잘 추는 게 상당히 어렵다. 춤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와 기품, 서릿발 같은 매서움을 갖춰야 한다. 오래 전에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잠시 췄던 마리야 알라쉬의 미르타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미르타를 춘 무용수는 한나래씨였는데,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전체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상체의 움직임 등은 좀 아쉬웠지만 지난번보다는 좋았던 것 같다.

 

힐라리온! 전에도 몇 번 얘기했지만 난 언제나 힐라리온 동정파이며 알브레히트 죽일놈을 부르짖는 사람이고 다시 태어나 발레리나가 된다면 기필코 미르타가 되어 못된 알브레히트놈을 응징하고 말겠다는 소망이 있다 :) 힐라리온 너무 불쌍하지 않나... 가엾기도 하지. 게다가 오늘의 힐라리온은 내가 언제나 좋아했던 정영재씨. 이 사람 힐라리온 추게 하는 건 아깝지만.. 그러나 잘 추고 연기도 잘한다. 표정 연기도 풍부하고...

 

그러나 오늘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무용수들 얼굴을 생생히 보면서 느낀 점은... 아아, 저 힐라리온 왜 저리 쓸데없이 잘생겼지? 어쩐지 손호준을 연상시키는 정영재씨의 힐라리온 ㅎㅎ 물론 귀족다운 기품과 풍채를 갖춘 김현웅씨의 알브레히트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저 힐라리온 잘생기고 열정적이구만... 지젤 바보 ㅠ 그냥 힐라리온 받아줬으면 행복했잖아 엉엉... (또다시 시작된 나의 힐라리온 변호욕구!)

 

페전트 2인무. 김리회씨와 김윤식씨가 췄는데, 이들은 각자 솔로를 출 땐 좋았고 둘이 출 때는 어딘가 삐끗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실수를 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내 느낌이 미세하게 좀 그랬다.

 

그리고 지젤과 알브레히트에 대해서.

 

김지영씨의 지젤은 언제나 기본 이상이기 때문에 내겐 항상 안전한 선택이다. 물론 김지영씨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옛날처럼 파워풀하거나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신 원숙하고 정확하다. 필요한 동작 하나하나를 깔끔하게 박아넣는다. 그리고 연륜에서 우러난 깊이가 있고 연기도 좋다. 지젤은 사실 아주 어려운 배역이다. 1막과 2막 지젤의 성격도 다르고, 표현해야 할 감정의 스펙트럼도 넓다. 발레리나의 햄릿과 다름없는 역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발레리나가 키트리나 호두까기 마샤를 잘 추는 것과 지젤을 잘 추는 것은 꽤 다른 문제다.

 

오늘 김지영씨는 1막 광란씬이 특히 좋았다. 청순하고 가냘프고 불쌍한 소녀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지젤은 정말 넋을 놓고 미친 여자처럼 보였다. 정신줄을 놓은 표정부터 몸놀림 하나하나가 다 그랬다. 이따금 섬뜩할 정도였다. 처량하기보다는 처절했다.

 

2막의 윌리도 언제나처럼 좋았지만 오늘은 1막 광란 씬이 제일 마음에 들엇다. (2막에선 지젤이 윌리로 등장해 춤출때 전보다 확실히 화려함이 줄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살짝 슬프기도 했다 ㅠㅠ)

 

그리고 김지영씨는 베테랑이기 때문에 항상 파트너와의 호흡이 좋다. 이동훈씨와도 좋았지만 오늘 김현웅씨와는 정말 감정선이 살아 있었다. 아무래도 동훈씨와 출때는 누나 동생 같은 느낌이 좀 있었는데 김현웅씨도 연하이긴 하지만 후자가 훨씬 귀족적이고 남자다운 스타일이라 그런지 둘의 페어에는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김현웅씨의 알브레히트는 생각보다 더 좋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현웅씨의 알브레히트를 본 건 아마도 2011년이었다. 그땐 김주원씨와 췄던 것 같다. 난 예전부터 김현웅씨를 좋아했고 작년부터 다시 국립 무대에 올라와줘서 매우 반가웠는데, 작년에 돈키호테 바질을 췄을 때는 '아, 좋긴 한데 바질을 추기엔 살짝 묵직해보인다..'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무대를 보면서 느꼈다. 이 사람에겐 타고난 알브레히트다움이 있구나!

 

그게 그런 게 있다. 잘못하면 선입견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으나, 남자 무용수들의 속성 중 '프르미에르 당쉐르'다움이라는 것. 그냥 수석무용수 말고. 그러니까 왕자다움이라는 건데. 김현웅씨는 우리 발레계에서 그런 속성을 가진 얼마 안되는 무용수다. 이건 내 느낌만이 아니고.. 예전부터 발레계에서 그에 대해 하던 말이다. 좋은 무용수는 많아도 '왕자' 무용수는 정말 찾기 힘들다... 물론 발레 전통이 두터운 러시아나 서구 쪽에 가면 사정이 다르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는 일단 남자 무용수 자체가 부족한데다 신체 조건부터 시작해 딱 왕자다운 특질을 갖춘 무용수 찾기가 아주 어렵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발레 자체가 서양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고... 그래서 현웅씨가 불미스럽기도 하고 불운하기도 한 일로 우리 발레계를 떠났을 때 더 상실감이 컸던 거고.

 

물론 지금이야 우리 나라 발레 팬들도 더 늘어나고, 무용수들도 늘어나고 좋은 남자 무용수들도 늘어나서 전보다는 훨씬 낫지만. 어쨌든 김현웅씨에게는 진짜 '왕자다운', 혹은 '귀족다운' 아우라가 있는데 사실 알브레히트에겐 그게 필요하다. 그 아우라를 갖췄느냐 갖추지 않았느냐에 따라 알브레히트의 무게가 달라진다.

 

오늘 현웅씨가 추는 알브레히트는 근사하고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이 사람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점프나 앙트르샤는 예전보다 좀 처지는 느낌이었지만 대신 동작 하나하나는 깔끔하고 유려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의 연속 앙트르샤 대신 무대를 가로지르며 춰줬으면 더 어울렸을 것 같긴 했다. 점프나 앙트르샤는 확실히 이동훈씨 쪽이 더 화려한 것 같다)

 

사실 알브레히트의 춤은 다른 고전발레에 비하면 복잡한 테크닉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 연기력과 기품이 뒷받침되어야 더 멋지게 느껴진다. 나는 이른바 복잡한 고전발레 테크닉들로 이루어진 정연하고 곡예같은 춤들보다는 알브레히트나 로미오 류의 감정선을 끌어올리는 춤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오늘 김현웅씨는 춤도 좋았고 연기도 좋았다. 그리고 김현웅씨는 발레 무용수에게는 가장 큰 축복이자 무기인 무용수다운 육체적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몸의 선도, 동작도 근사하고 시원하다. 사실, 저 알브레히트라면 사랑에 빠질만하다.

그래서 오늘 지젤은, 파트리스 바르라는 장애물(ㅜㅜ 바르 안무 좋아하는 분들 죄송.. 하지만 난 도저히 이것을 극복할 수가 없..ㅠㅠ)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었다 :) 오늘 제일 마음에 든 건 김현웅씨~ 솔직히 말하면, 이제껏 본 현웅씨 무대들 중 오늘이 제일 멋있어 보였다!

 

 

 

똑딱이 들고 갔었는데 커튼콜 때 몇 장 찍었으나 밝은 조명과 윌리들 흰 옷 때문에 다 번져서 전부 망하고... 쉬는 시간에 찍은 기둥 사진이나 하나.. 이것도 번졌지만 ㅠㅠ

 

 

 

.. 그 엉망으로 번진 망한 사진 ㅠㅠ 그래도 아쉬우니 윌리들 사진 하나.. ㅠ

 

 

막판에 커튼 앞으로 나와서 옳다구나 하고 찍었으나 역시나 조명 때문에 다 번지고... 지영씨 뒷모습(번짐 ㅠㅠ)과 현웅씨 옆모습 그나마도 건진 것 ㅠㅠ 흑흑..

 

* 태그의 지젤을 클릭하거나 블로그 내에서 '지젤' 혹은 '알브레히트'로 검색하면 그간 올렸던 이 발레에 대한 여러 리뷰나 메모, 마린스키를 비롯한 발레단이나 무용수들 동영상, 그리고 내가 쓴 글 발췌 부분 등을 볼 수 있다~

 

** 사족

국립발레단 지젤 볼 때 느끼는 것...

바틸드 나올 때 그 개 두마리 안 데리고 나오면 안될까.. 난 개를 무지 좋아하긴 하는데.. 개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여서 무대에 집중이 안된다. 저 개들이 뛰어가면 어쩌지, 응가라도 하면 어쩌지 등등.. 그거야 훈련받은 개들이니 괜찮겠지만.. 근데 오늘은 특히 바틸드가 개를 잘 못 다뤘다. 끈을 잡아당겨도 개들이 버티기도 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ㅠㅠ

 

** 사족 2

2월에 연말정산 때문에 화딱지나서 썼던 지젤 + 연말정산 패러디 : http://tveye.tistory.com/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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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지젤, 특히 알브레히트에 대해서는 전에도 여러 번 쓴 적이 있다. 얄미운 배역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인 역할이기도 한데, 아주 오래 전 처음 발레를 보기 시작했을 때 크라소프스카야가 쓴 니진스키 전기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읽은 적이 있다. 사실 카르사비나의 회상록에서 발췌된 내용인데, 지젤을 함께 추기 위해 연습할 때 니진스키가 카르사비나에게 협력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카르사비나가 "이제 알브레히트가 나에게 다가와야 해요" 라고 하면 니진스키는 다가오지 않고 "난 안 가요, 여기서 이렇게 출 거예요" 라고 우겼다는 것이다. 니진스키가 해석한 알브레히트는 지젤을 배신했다가 참회하고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구원받는 고전적 알브레히트가 아니라 일종의 몽상가였다. 자신만의 꿈을 찾아 헤매는 남자.

 

물론 카르사비나는 그의 해석을 이해하지 못했고 당연히 화가 났는데 그게 얼마나 마음에 맺혔는지 나중에 누레예프와 폰테인을 보고는 폰테인에게 "당신은 참 운이 좋군요, 내 파트너는 니진스키였는데.." 라고 했다나.

 

무용수에 따라 알브레히트를 해석하는 방식은 꽤나 다르다. 나는 언제나 '알브레히트 나쁜놈!'을 부르짖는 주인공 이입형(+불쌍한 힐라리온 이입형) 관객이기 때문에, 2막에서 슬프게 참회하고 가능한한 온몸을 던지는 드라마틱한 알브레히트를 선호하긴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귀족적이고 도도한 알브레히트를 사랑하게 만들어버리는 무용수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파루흐 루지마토프다.

 

루지마토프도 자기도취형 무용수란 평을 많이 들었고 발레리나와의 파트너십에 있어서 몇몇 발레리나들은 '자기만 알고 자기만 멋있어 보이려는 최악의 파트너'란 악평을 늘어놓기도 했다(마할리나나 아실무라토바는 그런 식으로 얘기 안했지만) 이 사람이야 원체 존재감이 강력한 무용수이기도 하고, 춤추는 스타일도 아주 진지하고 번쩍이는 타입이라.. 그의 알브레히트는 매우 우아하면서도 섹시하고 동시에 꼿꼿하고 도도했다.

 

그래서 2막에서 미르타와 윌리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의 춤을 추어야 하는 순간에도 이 사람은 죽어야 할 운명에 순응하거나 지젤의 사랑에 기대어 구원을 바라는 유약한 청년이 아니라 끝까지 고개를 쳐들고 자기 힘으로, 그러니까 자신의 춤으로 자신을 구원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파멸해버릴 것 같은 남자로 보였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알브레히트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서 재수없는 놈으로 보이지 않으려면 큰 재능과 내공이 필요하다.

 

아래는 파루흐 루지마토프가 2막 알브레히트 솔로를 연습하는 짧은 클립. 1990년대. 원래 다른 작품 리허설 필름인데 마지막 부분에 잠깐 나온다, 혼자서 알브레히트 춰보는 장면. 정말 근사하다. 좋지 않은 화질, 비디오 촬영 등의 악조건을 전부 잊게 만든다. 특히 그의 몸놀림은 너무나 우아해서 인간의 육체가 어느 정도로 아름다운지, 그리고 어떤 식의 표현으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 되새기곤 했다.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글을 써왔는데, 처음에 그 인물의 무용수적 특질을 설계할 때 루지마토프의 이러한 움직임도 짜 넣었다. 특히 아래 클립이 포함된 리허설 비디오는 꽤 많이 봤다.

 

 

 

그리고 좀 다른 스타일. 그러니까 구해주고 싶은 알브레히트를 추는 무용수 중 하나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가 있다. 이 사람은 외모도 소년다운데다 아주 간절하고 애처롭게 알브레히트를 표현한다. 이 알브레히트는 지젤이 없다면 힐라리온처럼 윌리들에게 둘러싸여 순식간에 잡아먹히고 뜯기고 죽어버릴 것처럼 불쌍해 보인다. 이것도 자칫 잘못하면 '아무 짝에 쓸모없는 연약하고 사내답지 못한 자식 같으니!' 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슈클랴로프는 그 유약함과 간절함, 그리고 지젤을 향한 사랑 사이에서 꽤나 줄타기를 잘 한다.

 

먼저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췄던 후반부. 이 사람의 아내 사랑은 워낙 지극하니.. 클립을 봐도 간절한 사랑이 퐁퐁 넘치는데 슬프게도 쉬린키나는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별로 재능이 뛰어난 것 같지 않다. 움직임도 그렇고.. 그래도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는 꽤 볼만하다.

 

 

 

쉬린키나의 지젤이 아쉽다면 바로 아래에는 나탈리야 오시포바가 있다. 오시포바야 뭐 워낙 유명하고 뛰어난 발레리나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사실 내 취향의 지젤이라기엔 좀 기운차고 몸매도 근육질이긴 하지만 그래도 참 잘 춘다. 바실리예프가 그렇듯 오시포바도 가끔 내겐 운동신경 과잉으로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훌륭하다. 여기서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는 쉬린키나와 췄을 때와는 살짝 느낌이 다르다.

 

조금 아쉬운 것은 이 동영상이 오시포바 팬께서 찍은 거라.. 둘이 같이 출 때면 열심히 오시포바를 클로즈업하여 알브레히트를 추고 있는 슈클랴로프가 가끔 잘린다는 것. 흐흑..

 

 

about writing 폴더에 발췌한 글에서 나의 주인공이 키로프에서 알브레히트로 데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알브레히트는 아주 재수없고 도도한 유혹자에서 정말 살려주고 싶을만큼 격렬하고 고통스럽게 춤추는 젊은이로 변모한다. 그 부분을 쓸때 아마도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이미지 중 일부는 루지마토프의 저 움직임, 그리고 슈클랴로프 식의 저 간절함일 것이다. 물론 그것들은 일부이며 글쓰기가 그렇듯 언제나 변형되고 재구성된다.

 

그 발췌 내용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3128

 

태그의 지젤을 클릭하면 이전에 올렸던 이 작품에 대한 리뷰나 사진들, 그리고 동영상 클립들을 많이 볼 수 있다.

 

* 니진스키와 카르사비나에 대한 웹진 기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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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토요일에 유니버설 발레단 지젤과 이고르 콜브 보고 와서.

 

월요병을 달래기 위해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 사진 몇 장.

 

어제 올린 리뷰(http://tveye.tistory.com/2894)에서도 얘기했지만 본시 나는 '알브레히트 죽일놈, 힐라리온 불쌍하다' 모드가 기본이지만, 알브레히트가 아주 춤을 잘 추거나 자태가 근사한 무용수일 경우 그에 대한 반감이 좀 줄어들면서 '그래도 예쁘니까 살려주자' 모드로 접어들곤 한다 :)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 사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 사람은 외모도 근사하지만 1막의 유혹자 알브레히트를 꽤 섹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왕좌왕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표현하고 2막에서는 진짜 살려주고 싶을만큼 감정선을 자극하는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지젤 사진과 클립(http://tveye.tistory.com/2036)은 전에도 몇 번 올렸는데. 이번에도 몇 장 더.

 

위의 사진과 바로 아래 사진은 아마도 예카테리나 오스몰키나와 함께... 무대를 보니 갈라 쇼로 보인다. 오스몰키나와 추고 있는 것도 그렇고 지금보다 호리호리한 걸 보니 몇 년 전인듯. 오른편에 사진사 이름 적혀 있다. 미하일 쿠르친.

 

 

 

 

 

얼굴이 작게 나와서 저 지젤이 소모바인지 자하로바인지 헷갈리네..

 

무지무지 살려주고 싶은 알브레히트를 연기하고 있는 슈클랴로프.

 

토요일 이고르 콜브의 알브레히트는 상당히 귀족적이어서.. 멋있기는 했지만 2막에서 미르타의 명령에 따라 춤출 때도 어쩐지 끝까지 귀족 자존심을 지키는 모양새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같은 장면에서 슈클랴로프 같은 경우는 정신없이 춤추다가 하염없이 불쌍하게도 온몸을 던져 무대에 푹 쓰러져버리는데 콜브는 격렬한 춤을 추다가 완전히 소진된 순간이면 쓰러지는 게 아니라 다시 알브레히트 2막 기본자세(무릎 꿇고 고개를 떨구는 자세로 내 맘대로 이렇게 부르고 있음)를 취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 같은 관객의 마음이라는 것은, 슈클랴로프처럼 철퍽 쓰러져버리면 '아 쟤도 참 불쌍하네.. 그만 살려주면 좋겠다' 란 생각이 드는데 콜브처럼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쓰러지는 대신 무릎 꿇고 있으면 '쟤 아직 힘이 남았나보네. 안 살려줘도 지 혼자 살아남겠구만. 저 와중에도 백작이랍시고 자존심이냐!'하는 생각이 스멀거리는 것이다!!! 하긴 전자는 훨씬 소년다운 외모이고 후자는 성숙한 외모라 더 그럴지도...

 

 

 

얘가 저러고 있으면 안 살려줄 수가 없음 ㅠㅠ

 

얘야 알브레히트야, 어린 나이에 철도 없고 뭐 불장난치다 그럴 수도 있지... 누나가 용서해 주마...

(나 힐라리온 지지자 맞아? ㅠ.ㅠ)

 

 

이 사진은 alex gouliaev 의 사진.

 

 

마지막 사진 역시  alex gouliaev의 사진. 이건 지젤이 아니고 신데렐라. 좋아하는 사진이라 올려본다. 이 사람은 라트만스키 버전 신데렐라에서도 근사한 왕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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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