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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에 해당되는 글 884

  1. 2019.11.14 11.13 수요일 밤 : 새로운 곳 발굴은 좋았는데 비 때문에 고생, 생각지 않은 즐거움, 준엄한 레냐 등
  2. 2019.11.13 비둘기도 추워 보인다
  3. 2019.11.13 뽀드삐스니예 이즈다니야 서점 2
  4. 2019.11.13 11.12 화요일 밤 : 셉카벨 항구 갔다가 망함, 힙스터 되기 글렀음, 나보고 더블 바보라 한다ㅠㅠ
  5. 2019.11.12 11.11 월요일 밤 : 핀란드 우하, 스몰니, 세월, 용서의 징표 4
  6. 2019.11.12 날씨는 계속 이렇다 2
  7. 2019.11.11 스몰니 사원 6
  8. 2019.11.11 반코프스키 다리의 황금날개 사자 2
  9. 2019.11.11 돌아오는 길에, 비가 주룩주룩
  10. 2019.11.11 11.10 일요일 밤 : 비, 박물관 가려다 카페로, 료샤의 꿍얼꿍얼, 젊은이와 죽음 아주 약간
  11. 2019.11.05 얼음과 빛 속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서
  12. 2019.11.01 커피, 홍차, 도넛 간판 + 뽄치끼 아니고 쁘이슈끼 2
  13. 2019.10.31 본치 카페 한 컷 2
  14. 2019.10.29 브리티쉬 베이커리에 대해 짧은 메모 2
  15. 2019.10.24 작은 문 너머 4
  16. 2019.10.22 불빛
  17. 2019.10.20 모이카, 미샤의 운하, 극장과 백야
  18. 2019.10.17 페스텔랴 거리 2
  19. 2019.10.13 백야의 판탄카, 로시 호텔, 트로이츠키 사원
  20. 2019.10.02 에르미타주 박물관 내부 사진 몇 장 + 료샤, 창 너머로 네바 강이 보이면 4
  21. 2019.10.01 창 너머 램프 불빛
  22. 2019.09.25 판탄카, 밤
  23. 2019.09.24 해골 낙서로 마무리
  24. 2019.09.17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 2
  25. 2019.09.11 건들지 말라고!





늦지 않게 깼지만 피곤해서 조식 포기하고 침대에서 뒹굴었다. 그러다 부서 톡방에 업무 관련 골치아픈 이슈가 올라와서 결국 몇가지 체크와 지시를 해야 했다. 흑, 휴가 기간엔 다 위임할 거고 난 부서 톡방 안 볼 거라고 큰소리쳤었는데 ㅠㅠ


정오가 넘어서 기어나갔다. 배가 고파서 일단 부셰에 갔다. 생선 라자냐와 크루아상, 홍차를 주문해 먹었다. 우리나라에도 부셰가 있음 참 좋겠다. 어언 십여년 전부터 드나든 곳인데 메뉴도 점점 더 다양해져서 좋고 무엇보다도 맛있다.


팔로우하는 뻬쩨르 잡지를 통해 맘에 드는 로컬 디자인 기념품샵을 하나 알게 되었다. 홈페이지를 보니 여기는 공방들과 연계되어 있는데 러시아 작가들에 대한 유머러스하고 귀여운 디자인이 꽤 있었다. 페트로그라드 지역의 안 가본 동네에 있었다. (지하철 스뽀르찌브나야 역 근방) 여기 가서 좋아하는 작가들의 캐리커처 굿즈 등을 산 후 며칠 전 가려다 힘들어서 안 간 루스키 무제이(러시아 박물관)나 에르미타주에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


근데 기념품 샵은 지하철 한정거장이긴 했지만 내려서 좀 걸어야 했다. 그리고 샵에서 나왔을때 비가 갑자기 넘 많이 와서 무거운 가방(이것저것 샀다!) 들고 진창과 웅덩이를 피해 지하철역까지 걸어오는 동안 엄청 힘들었다.



짐이 무겁고 또 비도 쏟아져서 급 피곤해진 나머지 박물관은 다시 포기. '여기서 박물관 수없이 다녔고 담에 와서도 갈 수 있는데 일케 힘들때는 그냥 말자' 하고 자기 혼자 끄덕끄덕하고 호텔로 일단 돌아왔다.



사온 기념품 컵들과 에코백, 티셔츠 등을 정리한 후 온몸이 무겁고 졸려와서 소파에 좀 늘어져 있었다. 그냥 방에서 쭉 쉴까 하다가 또 서서히 배도 고프고 목금만 지나면 돌아가야 하니 너무 아쉬워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갔다. 비가 약간씩 내리고 있었다. 이번에 와서 파란 하늘 1도 못봄. 돌아갈 때까지 못볼 것 같다.



피곤하니 에르미타주는 못가도 선물 사러 샵에는 가자 하고 궁전광장에 갔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 않은 즐거움이 있었다.







5시 직전이었고 황혼녘이라 주변이 온통 푸른빛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는데 궁전광장 한가운데 알렉산드르 원주 곁에서 거리의 가수 한명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노래가 빅토르 최의 Перемен(뻬레멘, 변화)이었음. 꺅, 내가 좋아하는 노래~! 선물받은 기분! 그래서 노래랑 기타 연주 듣고 행복해졌다. 가수가 빅토르 최 보컬과 비슷하게 하려고(특히 발음) 노력하며 불렀는데 듣기 괜찮았다. 폰으로 영상도 좀 찍었는데 모바일로는 티스토리엔 안 올라가네.



맨 위 사진은 궁전광장의 알렉산드르 원주. 높은 분 별장 초대를 땡땡이친 미샤가 길바닥에서 춤춘 곳이 바로 저 거대한 기둥과 천사상 아래이다 :) 글의 배경은 여름의 백야 시즌이지만 오늘 황혼녘의 푸른 빛과도 좀 어울려서 찍어봄.



글라브느이 슈땀프에 있는 에르미타주 샵에 가서 선물과 엽서를 산 후 황혼녘 푸른빛이 아까워서 아틀라스와 겨울 운하, 네바 강변 약간, 모이카 운하 약간을 따라 걸었다. 카메라는 무거워서 안 들고 나왔으므로 폰으로 사진 몇장만 찍음.









그리고는 부크보예드 서점에 가서 부서원들 줄 조그만 기념품 등을 사고 지친 채 바로 근처 본치 카페에 갔다. 료샤랑 레냐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배고파서 바질 페스토와 파르마산 치즈로 버무린 닭고기 버섯 파스타 시켜서 막 먹었다. 조식 건너뛰고 종일 엄청 작은 생선라자냐랑 크루아상밖에 안먹었다고 하자 료샤는 가만히 있는데 레냐가 좀 꾸짖었다. '쥬쥬! 게으른 건 알지만 밥은 잘 먹고 다녀야 할 거 아니야!! 정말 문제야! 어째 나아지지를 않아?!' 하고 또랑또랑하고 준엄하게 야단쳐서 옆테이블 선남선녀가 내쪽을 보며 쿡쿡 웃기까지 했다 ㅠㅠ 흐엉 이제 레냐 너무 많이 컸어... 약혼자에게 맨날 혼나 엉엉 ㅋㅋ



본치에 앉아 저녁 먹고 차 마신 후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료샤는 레냐를 집에 데려다 준 후 방에 들렀다. 이번엔 일반적인 휴가 기간이 아니라서 료샤도 낮엔 계속 일하느라 저녁에만 시간을 낼 수 있다. 레냐도 학교 갔다가 저녁에만 봄. 레냐 엄마인 이라가 나를 안 좋아하는 편인데 그래도 이번주에 저녁마다 아들이 나 보러 올 수 있게 해줘서 좀 고마웠다. 통화도 한번 했다. 료샤 말로는 자기와 이라가 올해 좀 사이가 나아지고 묵은 앙금도 많이 풀었다고 한다. 너네 둘다 나이 먹어서 그래 ㅋㅋ



료샤가 기특하게도 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다샤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그리고 내가 사다줬던 맥심 모카골드 믹스도 한봉지 들고 왔다. '그건 왜 가져왔니 난 커피 안 마시는데' 하고 물어보니 '나 타줘. 이상하게 내가 타는 것보다 네가 타주는게 더 맛있어' 라고 한다. 이넘이... ㅋㅋㅋ



그래서 료샤에겐 맥심 타주고 나는 다샤 아이스크림 까먹으며 한동안 얘기 나누었다. 내가 오늘 득템한 컵과 티셔츠 등을 보여주며 자랑했는데 문학과 담쌓은 이 녀석은 작가들 얼굴도 이름도 거의 구분 못함.. 푸쉬킨하고 도스토예프스키만 알아봄. 흑, 그래도 도스토예프스키 알아본게 어딘가...



내일도 비가 오겠지 흐흑... 모레는 슈클랴로프님의 백조의 호수 보러 가니 내일부터 짐을 좀 싸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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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1. 13. 04:24

비둘기도 추워 보인다 2017-19 petersburg2019. 11. 13. 04:24




어제 스몰니 사원 잔디밭에서 마주친 비둘기. 추워서 파랗게 질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ㅠㅠ






이런 날씨이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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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1. 13. 02:36

뽀드삐스니예 이즈다니야 서점 2017-19 petersburg2019. 11. 13. 02:36





전에도 두어번 소개한 적 있는 서점. 리쩨이느이 대로에 있는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서점이다. 재밌는 책도 많고 깨알같은 인테리어도 귀엽고 창가의 아주 작은 카페에서 내주는 미니 에클레어도 맛있다. 복층 난간 앞 좁은 바 테이블이나 창가의 서너개 뿐인 테이블에 앉아 차 마시며 책장들과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여기는 몇년 전 발로쟈 슈클랴로프님이 화보집을 냈을때 그거 사러 첨 와봤었다. 한정판이라 여기서만 팔았다(거금 주고 구입함! 그치만 화보도 멋지고 그 무거운 화보집 들고 이듬해 블라디보스톡 가서 이분 기자간담회 갔다가 첨으로 얼굴보고 책에 사인받고 얘기도 나눴음!!)



하여튼 그 화보집 사러 왔던 때는 16년 백야 시즌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심신이 다 아팠다. 병가를 냈고 도망치듯 페테르부르크로 날아와서 죽은 듯 엎드려 있었다. 서점은 당시 묵었던 호텔에서 가까웠다. 긴가민가 하며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화보집을 구한 것도 기뻤지만 서점 자체도 맘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는 너무 괴롭던 시기라 이렇게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는데. 고맙다.



매년 뻬쩨르 올때마다 이 서점에 들른다. 지난 여름엔 회원 카드도 만들어서 5% 할인도 받는다. 여름에 여기서 브로드스키의 시가 적힌 멋진 검정 에코백을 사서 지금도 잘 쓰고 있다. 오늘 들렀을때도 이쁜 에코백 있음 사려 했는데.. 있긴 있었지만 도블라토프 에코백은 너무 얇아서 비실용적이었고 형광스카이블루의 멋진 해골 그림 에코백은 사이즈가 너무 커서 나에겐 버거워 포기함... 힝...







그러니까... 셉카벨이나 노바야 골란지야 같은 현대미술 야외 복합공간보단 이런 아늑한 서점이 더 좋다. (나 심지어 몇년간 현대미술 관련 업무도 했는데 다 소용없다 ㅋ 하긴 현대미술 자체를 싫어하진 않지만 나는 이른바 공공미술 스타일과는 코드가 안 맞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함)







엽서나 배지 등 이쁜 기념품들도 있으니 뻬쩨르 가는 분들, 러시아어 모르더라도 아늑한 서점 좋아하시면 한번 들러보세요! 난 커피 안 마셔서 차를 마셨지만 커피가 또 괜찮은 모양인지 다들 커피를 주문한다. 창가에 십여분만 앉아 있어도 온몸에 커피향이 배는데 매일 신선한 원두를 갈아서 쓴다고 적혀 있고 그래선지 냄새가 싫지 않다. 그러니 여러분, 여기 잠깐 들러 커피 한잔쯤 마셔봐도 좋을듯!!! 그리고 여기 에클레어가 엄청 소박한데 맛있음!!!







이 문을 열고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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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늘은 새벽에 깬 후에도 도로 자는 걸 반복해서 간신히 8시간 넘게 수면을 취했지만 내내 졸리고 멍했다. 피로도 누적되고 춥고 햇볕도 안 나서 그런 것 같다. 조식 먹고 방에 돌아와 침대에 들어갔다가 다시 너무 졸려서 오늘은 그냥 종일 호텔에 처박혀 쉴까 했다.


근데 일기예보엔 돌아가는 날까지 계속 비오고 오늘만 잠시 해가 난다고 했다. 그래봤자 춥겠지 하며 낑낑대고 있는데 갑님에게서 업무문자가 오는 바람에 결국 일어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거 체크하고 갑님과 메시지 나누느라 잠이 좀 달아나서 밖으로 기어나왔다.



여름에 왔을때 가려다 못간 셉카벨 항구에 가보기로 하고 트롤리버스를 탔다. 바실리예프스키 섬 한쪽 바닷가 항구인데 최근 공원+현대예술+레스토랑/카페 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해 올해 뻬쩨르에서 아주 힙한 곳이 된 곳이다. (여기가 사실 예전에 내가 지냈던 기숙사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인데 힙한 구석은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하여튼 궁금해서 한번 가봤는데 역시나 지금은 바닷가 가기에 최악인 날씨였다. 가뜩이나 황량한 스타일인데 칼바람.... 잿빛 바다... 흑... 얼어죽는 줄 알았다. 현대미술과 콘크리트 등 노바야 골란지야랑 많이 비슷했지만 여기가 더 춥고 아직 덜 꾸며져서 날것이라 더 휑하다 ㅠㅠ 하긴 난 노바야 골란지야도 딱히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힙스터가 되기엔 너무 게으르고 또 아늑한 걸 좋아한다 ㅠㅠ



사진만 세장 올려봄. 맨위랑 이 아래는 건물 벽화. 올 봄쯤 아티스트들이 벽화 프로젝트를 했었다. 두번째는 황량하고 추운 바다 풍경.







셉카벨이 너무 추운데다 별로 맘에 드는 스타일이 아니어서(식당과 카페는 괜찮아보이는 곳이 이것저것 있었지만 끌리진 않았다) 결국 나는 여기서 나와 도로 전차를 타고 네바 강과 궁전 교각을 건너 네프스키 중간에 내려 리쩨이니 대로에 있는 서점에 갔다. 흐흑 마음의 안식처.. 거기서 미니 에클레어 두개와 홍차를 해치우고 좀 회생.



서점에서 책 구경하다 나와서 고로호바야 거리에 있는 한국식당에 갔다. 넘 피곤하고 지쳐서 밥이랑 국물이 먹고파서. 뻬쩨르에서 한국식당 간 거 십년도 넘었는데. 여기는 요즘 인기가 좋은 곳이라 해서 갔다. 해물탕 중간 맵기로 시키고 밥 추가했는데 의외로 정말 먹을만했다.



뜨거운 국물 먹고 조금 땀도 남. 그래서 숙소 돌아오는 길에 다샤 아이스크림 사 먹음(뭐야 이게 ㅋ)



방에 돌아와 늘어져 있는데 료샤가 일을 마치고 들렀다. 셉카벨 갔다가 망한 얘길 해주니까 나보고 겨울에 왜 거길 가냐고 바보라고 비웃었다 ㅠㅠ 흑흑 나도 알아 엉엉 옛날에도 그 동네는 추웠어. 그치만 궁금했단 말이야 엉엉..



웃긴 일 하나. 료샤가 왔을 때 나는 씻으려고 욕조에 입욕제를 풀고 뜨거운 물을 받고 있었다. 근데 바깥에서 쿵쿵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계속 들렸다. 소음에 민감한지라 좀 짜증이 났다.



나 : 어휴 여기는 좋은 호텔인데 왜 방음이 잘 안되는 거지... 창문도 닫고 커튼도 쳐놨는데.. 역시 이삭 광장 쪽이라 그런가....


료샤 : (욕실에 들어가봄) 야, 욕조에 물 받는 소리자나!!!



그랬다... 욕조 바닥에 물이 콸콸 쏟아지는 소리였다 ㅠㅠ



료샤는 나에게 '바보 바보' 라고 하였다. 추운데 셉카벨 갔다오고, 욕조에 물 받는 소리를 바깥 소음으로 착각해 애꿎은 호텔을 탓하고. 나는 더블로 바보임 ㅠㅠ




... 이제 수목금 사흘만 지나면 토욜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흑 벌써부터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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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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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좀 넘어 잠들었지만 여섯시간 반 정도 자고 깼다. 날씨 때문에 내내 졸리고 피곤한데 시차 적응이 이번따라 더 안되네.


일곱시 안돼 깬 후 자보려고 뒹굴다 결국 조식 먹고 왔다. 도로 침대에 들어가 어제 산 뻬쩨르 여행서 좀 읽으며 오늘 어디 갈까 생각하다 스몰니 사원에 오랜만에 가보기로 함. 숙소 근처에서 트롤리버스 5번을 타면 갈 수 있다.


스몰니에선 아주 옛날 첨 갔을때 쥬인과 거북이랑 같이 수업을 들었고 십여년 전 다시 갔을때도 그랬다. 그 이후엔 갈 일이 거의 없었다. 료샤가 스몰니 근처 동네에 살기는 하지만 걔네 집 갈때도 그 방향으로는 안 가서 굳이 갈 일이 없다. 게다가 좀 멀고 또 네바 강변을 등지고 있어서 강바람도 추운 곳이다. 이쪽에 정부 기관들이 있어서 분위기도 좀 삭막.



그래도 한번 오랜만에 가보았다. 넘 오랜만이었다. 옆의 공원을 산책하며 젖은 검은 흙을 밟고 마르크스 동상도 다시 보고. 스몰니 사원에 들어가서 초도 켜고 기도도 했다. 옛날엔 부속건물에 있는 교실에서 수업만 들어서 막상 이 사원 안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사원 안은 넓고 휑했다.



수업 받았던 건물 앞에 서자 옛날 생각이 많이 났고 세월이 이토록 빠르게 흘렀다는 사실에 좀 아득했다. 쥬인 손 잡고 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도 들고 이런저런 기분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네프스키에서 내려 로모노소프 가게 갔다. 새로 나온 이쁜 빨강 금빛 찻잔이랑 네바 강 그려진 뻬쩨르 찻잔 샀다. 행사 기간이라 두개 사면 하나 공짜로 준다 해서 파란 드레스 입은 귀족여인 찻잔을 골랐다.



숙소에 돌아오니 너무 배고프고 으슬으슬하고 습했다. 료샤랑 레냐 볼때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배고파서(아침 먹은 후 빈속...) 근처 식당에 갔다. 팔로우하는 뻬쩨르 출신 일러스트레이터가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곳인데 괜찮아 보여서.



맨위 사진의 핀란드 우하 먹었다. 크림이 든 생선 수프이다. 춥고 습한 날씨라 어쩐지 먹고 싶어서.



핀란드 우하를 먹으면 언제나 두셰브나야 꾸흐냐와 친절했던 데니스가 생각난다. 안타깝게도 그 식당은 언제인지 문을 닫았다. 데니스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자묘르즐리?' (추워서 얼었어요?) 하고 묻던 부드러운 목소리도 기억에 생생하고. 나는 몇달 전에 쓴 미니 단편에서 알리사가 미샤에게 이 수프를 데워주게 만들었었다. 데니스에 대한 기억과 또 다른 여러가지를 되살리며.



이 식당의 핀란드 우하는 크림이 진하지 않고 가벼워서 먹기는 더 편했다. 맛있었고 몸이 따스해졌다.







연어와 이름모르는 흰살 생선, 감자와 홍합 한개가 들어 있었다.



수프와 함께 치킨 커틀릿을 먹었다. 그것도 맛있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남겼다.



먹고 나니 허기가 가셨다. 근처 조그만 식료품점에서 에스키모 아이스크림을 한개 사서 디저트로 입가심을 했다.



료샤랑 레냐가 방에 와서 좀전까지 같이 놀고 얘기 나눴다. 어젯밤에도 친척집 갔다 돌아오면서 얘들이 깜짝 방문을 했다. 시간이 늦어서 어젠 십분만 있다 갔는데 레냐가 그때 분홍 장미 세송이를 주었다. 즉, 내가 슈클랴로프님에게 눈이 멀어 공연 보러 갔던 것을 용서해준 것이다 ㅋㅋ 도량이 넓은 우리 레냐 :)







갱지로 둘둘 말아서 갖다준 분홍장미 세송이 :) 레냐는 그래도 약간의 뒤끝을 드러냈다.



레냐 : 쥬쥬는 나 아니고 슈클랴로프한테 꽃 줬지만 나는 쥬쥬한테 꽃 준다아!!! 나는 진정한 남자야!!!



으앙 레냐야 내가 양갱이랑 붕어빵 과자랑 새우깡이랑 양파깡, 오징어땅콩 챙겨왔자나 ㅠㅠ (레냐 좀 할머니나 아재 입맛이라 이런 과자들 좋아함 ㅋ 그리고 얘는 지금도 어릴때와 변함없이 양갱을 엄청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남자인 레냐에게서 용서의 징표인 꽃을 받아 고맙고 기뻤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 방에 온 레냐는 내가 세개의 물병에 꽃을 나눠서 꽂아 여기저기 놓아둔 것을 보며 뿌듯해 했다 :))




료샤랑 레냐는 좀전에 돌아갔고 나는 오늘의 메모를 적고 있다. 졸려서 결국 오늘도 발레 후기를 못 쓸듯.

:
Posted by liontamer
2019. 11. 12. 02:14

날씨는 계속 이렇다 2017-19 petersburg2019. 11. 12. 02:14






예상은 했지만 흑흑 파란 하늘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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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1. 11. 21:03

스몰니 사원 2017-19 petersburg2019. 11. 11. 21:03





오랜 추억의 장소. 다시 다녀옴.



 






여기서 수업 듣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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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1. 11. 17:43

반코프스키 다리의 황금날개 사자 2017-19 petersburg2019. 11. 11. 17:43







카잔 성당 뒤의 그리보예도프 운하 따라 걷다 보면 나타나는 유명한 반코프스키 다리. 네마리의 황금날개 달린 사자들이 다리 양쪽을 지키고 있다. 보통 그리핀이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뜯어보면 그리핀은 아니고 날개 달린 사자임. 얘들 안쪽에 동전 던져 들어가면(다리인지 어디에 구멍이 있음. 나도 전에 해봤는데 어딘지 긴가민가)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어제 빗방울 맞으며 걸어들어가다 폰으로 찍어봄.







근데 사진은 왜 또 있어보이지... 날씨 우중충해서 괴로웠음 ㅠㅠ 오늘도 우중충. 조식 먹고 들어와 침대에 좀 누워 있었다. 이제 샤워하고 나가야지.

:
Posted by liontamer
2019. 11. 11. 03:57

돌아오는 길에, 비가 주룩주룩 2017-19 petersburg2019. 11. 11. 03:57





비가 이렇게 주룩주룩 왔다. 운하 따라 걸어서 호텔 돌아오는 길에 그래도 폰으로 한장 찍음. 이삭 성당이랑 아스토리야 호텔.






흑흑 사흘이 넘었는데 비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저 빨간 차양 내내 걷혀 있음 ㅠㅠ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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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알고 보니 태풍 영향권에 들어서 기온이 오르고 비가 내리는 거라고 함. 어쩐지 오늘 패딩 입고 나갔다가 덥고 습해서 힘들었다.



목욜 한밤중에 도착해 금토 연속 밤 공연 보느라 피곤했다. 어제는 잠자는 미녀가 4막짜리라 11시 넘어 끝난데다 돌아와서는 마샤랑 잠시 얘기 나누느라 두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시차 적응이 안되어 일곱시 좀 넘어 깬 후 결국 도로 자는데 실패했다. 포기하고 조식 먹은 후 오전에 기어나갔는데 비가 주룩주룩 왔다. 이런 날은 원래 박물관이다. 아니면 백화점에 갈까 하다 일단 러시아 박물관 근처에 내렸다.



그러나... 이미 습하고 덥고 다리 아프고 졸리고 피곤하고... 도저히 드넓고 기다란 그 박물관을 돌아다닐 상태가 아니었음. 그래서 사랑해마지 않는 금발의 가브리엘 이콘과 브루벨의 악마들을 좀 미뤄놓고(매년 보러 가긴 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안 갔었다. 돌아가기 전에 가야지) 근처 예카테리나 카톨릭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좀 했다.








나와서는 길을 건너서 카잔 성당 맞은편의 부셰에 갔다. 2층 가장 좋아하는 창가 자리는 못 잡았지만 그래도 그 옆 테이블을 잡아 차 마시며 잠시 책 읽고 늘어져 있었다.



나오니 비가 거의 안와서 그리보예도프 운하를 따라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근데 운하 옆 좁은 보도는 여기저기 패여 있어 웅덩이들이 많았고 결국 신발과 발이 좀 젖음. 흑...




그래도 방에 돌아오니 이럭저럭 네시가 다 되어 있었다. 거품목욕을 좀 한 후 멍때리다가 들어오는 길에 사온 도시락 컵라면에 누룽지 말아서 간단히 저녁 먹었다. 나가서 먹기도 귀찮다.



료샤랑 레냐는 오늘 친척집에 가서 못 봤다. 내일 볼 듯하다.



료샤랑은 금욜 저녁에 만나 젊은이와 죽음을 같이 봤었다. 끝나고 내 방에 들렀는데 물론 흑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그의 영원한 사랑 노란 맥심 커피믹스 ㅋㅋ


맥심 백개들이 안겨주니 료샤넘은 좋아하면서도 '야, 넌 그 슈클랴로프넘한텐 꽃도 주고 또 뭔가 훨 좋은 거 주라고 안내원한테 맡기더라, 근데 소중한 친구한텐 기껏 믹스커피...' 하고 꿍얼꿍얼.



'야 임마 질투나면 그분처럼 엄청나게 춤을 잘 추란 말이야!' 라고 했더니 '쳇. 엄청나게 잘생기란 말이겠지. 얼굴밝힘...' 하고 또 꿍얼꿍얼. 그런데 뭔가 곰곰 생각해보니 발로쟈님은 절대미모이기 때문에 또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어려워서 걍 가만히 있었다 ㅋㅋㅋ



원래 오늘은 방에 일찍 돌아왔으니 발로쟈가 춘 젊은이와 죽음 다시 본 후기랑 어제 잠자는 미녀 1890년 버전 후기 를 써보려 했는데 수면부족으로 너무너무 졸려온다.



오늘 후기를 남길지 내일이든 모레일지 모르겠어서 짧게 요약하면 젊은이와 죽음은 몇년만에 다시 슈클랴로프님 무대를 본 거였는데, 훨씬 성숙했고 또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게 되었고 좀더 물흐르듯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후반부로 가서는 불처럼 로켓처럼 폭발하고 또 폭발했다. 관객들이 숨도 못 쉬고 봤다. 아아아 발로쟈, 당신 너무 근사하오... 흐흑...



아 피곤하다. 저녁 먹은 거 소화만 되면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헉헉... 근데 벌써 사흘이나 휙 갔어 잉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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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사진첩에서. 2015년 2월. 페테르부르크. 무척 추운 날이었지만 대신 하늘이 파랗고 맑았다. 네바 강을 건너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까지 걸어갔고 오전 내내 산책했던 날이었다. 이런 겨울 날씨는 좋다.

 

 

 

 

 

꽁꽁 얼어붙은 네바 강과 그 너머로 보이는 해군성 건물, 이삭 성당, 등대 등 페테르부르크 랜드마크들. 조그맣게 보이는 실루엣들은 얼어붙은 강을 걸어서 건너가는 사람들. 위험하니 얼음 위로 나가지 말라고 표지판이 여기저기 있건만 다들 그냥 막 강 위로 걸어나간다.

 

 

나는 빛이 가득한 겨울이 습기찬 여름보다 더 좋다. 물론 해가 일찍 지는 것은 싫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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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씌어 있다. 꼬페, 차이, 쁘이슈끼.



쁘이슈끼(пышки)는 포실포실 푹신푹신하고 둥실둥실하고 기름진 러시아식 도넛이다. 복수형인데 모스크바에선 뽄치끼(пончики)라고 하고 페테르부르크에선 쁘이슈끼라고 한다. 단수는 각각 뽄칙, 쁘이슈까.



료샤는 소련 시절 태어났기 때문에 역시나 이 쁘이슈끼를 좋아한다. (내 입맛엔 너무 달고 기름진 편임. 난 사실 크리스피 도넛도 안 좋아함) 그리고 페테르부르크 토박이라 가끔 모스크바 사람에 대해 비아냥거릴때 '뽄칙 먹는눔들'이라고 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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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31. 22:51

본치 카페 한 컷 2017-19 petersburg2019. 10. 31. 22:51





내가 좋아하는 페테르부르크 카페 중 하나. 이렇게 밝은 홀과 안쪽의 어두컴컴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에도 몇번 사진 올려본 적 있다.



료샤랑 같이 가기도 하고 혼자 글쓰거나 스케치하러 가기도 하는 곳이다. 료샤는 자기는 안쪽 공간을 좋아하지만 밝은 것과 빨간색을 좋아하는 나때문에 맨날 이 바깥 홀의 창가 테이블이나 중간의 빨간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며 툴툴대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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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브리티쉬 베이커리는 영국이 아니라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이다. 블라지미르 대로, 도스토예프스키 호텔 옆에 있다.



은근히 여기 케익이 맛있다(이름이 브리티쉬라 맛없을거라고 심히 의심했는데 양귀비씨 케익, 까르또슈까 등등 맛있는 케익 많음. 에클레어도 맛있고 빵도 맛있다) 그리고 창가에 앉아 블라지미르 사원의 쿠폴 보며 종소리 듣고 혼잡한 거리 오가는 사람들 보는 재미도 있다. (이 거리는 걷기엔 적합하지 않다, 너무 사람도 많고 차도 밀리고 이쁘지도 않고)



사실 여기서 뒤로 빠지면 이 도시에서 가장 힙한 루빈슈테인 거리가 나오고 거기 잘나가는 카페와 펍, 바들이 몰려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곳들보단 여기가 더 좋다. 료샤는 나에게 '온갖 멋진 척 다하는 주제에 루빈슈테인 대신 기껏 여기냐' 라고 놀리곤 한다만 여기는 좀 신기하게 내 마음에 든다. 아마 몇년 전 너무 힘들때 처음 왔던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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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24. 21:52

작은 문 너머 2017-19 petersburg2019. 10. 24. 21:52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들어가는 길에 찍었던 사진. 지난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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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22. 23:22

불빛 2017-19 petersburg2019. 10. 22. 23:22





판탄카 운하 따라 걷다가. 작은 가로등 불빛. 그리고 창 너머 램프 불빛. 마음의 위안이 필요해서 지난 여름 찍은 사진을 폰에서 꺼내 자기 전에 올려본다.



... 재능도, 소양도, 알맹이도, 정당한 기치도 없이 그저 목소리 크게 떠들며 몰려드는 부류가 지겹고 역겹다. 내 마음 수양이 모자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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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20. 21:22

모이카, 미샤의 운하, 극장과 백야 about writing2019. 10. 20. 21:22

 

 

 

지난 7월, 백야의 모이카 운하 사진 몇 장.

 

페테르부르크의 여러 운하들 중 도심을 가로지르는 세개의 운하가 있는데 판탄카, 그리보예도프, 모이카 운하이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운하는 가운데의 그리보예도프이다. 여기에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피의 구세주 사원), 돔 크니기, 예술광장 등의 명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판탄카 운하를 따라가면 레트니 사드와 아니치코프 다리, 이즈마일로프 사원(트로이츠키 사원)이 나오고, 모이카 운하를 따라가면 이삭 성당과 마린스키 극장에 닿을 수 있다. 이 운하들은 도시를 가로지르고 또 얽혀든다.

 

미샤를 등장시켜 쓴 소설들에서 페테르부르크는 단순한 배경과 장소가 아니라 때로는 소설 자체이기도 했다. 이 도시를 드나들면서 나는 가끔은 오감을 열고 머리를 비운 채 걷고, 가끔은 글과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고, 가끔은 그들을 불러내어 같이 걷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고 에너지가 소진되어 한동안 글쓰기를 중단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페테르부르크를 거닐 때면 이러한 과정들이 되풀이된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이 도시에 몸이 가 있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뒤적이거나 혹은 그저 머릿속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에도 반쯤은 저절로 나는 도시의 곳곳을 재생할 수 있다. 거의 육체적인 반응에 가까운 재생이다.

 

판탄카 운하가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였다면 모이카 운하는 누구보다도, 미샤의 운하다. 극장으로 통하는 운하이기 때문이다. 극장. 사도바야 거리. 그리고 트로이가 살고 있는 고로호바야 거리. 이 모든 곳들을 관통하는 운하. 미샤는 도시의 모든 운하들을 알고 있고 눈을 감고도 그곳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그래도 그의 운하는 모이카이다.

 

 

사진은 7월,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공연 본 후 나와서 운하 따라 걸어가는 길에 몇장 찍은 것이다.

 

 

 

 

 

마린스키 극장 이야기를 하고서 사진 한장 없이 넘어가는 건 어쩐지 아쉬우니, 천정 장식화와 샹들리에 사진 한장.

 

 

이날 보았던 발레 공연은 돈키호테였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프의 투우사가 정말 근사했던 날이다.

 

 

 

 

모이카 운하. 백야. 밤 10시 반에서 11시 사이.

 

 

이삭 성당의 황금빛 쿠폴이 보인다.

 

 

 

 

저 너머로는 카잔 성당의 쿠폴도 보인다. 미샤는 학창 시절과 사도바야 쪽에 살던 신입 단원 시절에는 이 길을 따라 걸어서 극장에 다녔다. 이후 극장 근처 아파트를 받은 후에도 이 운하를 뻔질나게 지나다녔을 것이다(그리고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트로이네 집도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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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17. 20:55

페스텔랴 거리 2017-19 petersburg2019. 10. 17. 20:55





페테르부르크, 7월. 페스텔랴 거리. 판탄카 운하를 따라 걷다가 이쪽 길로 방향을 틀어 거슬러올라가다 리체이느이 대로 쪽으로 가면 내가 좋아하는 이즈다니야 서점이 나온다. 그래서 종종 이쪽 길을 걷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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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공연 보고 판탄카 운하 따라 숙소로 걸어가면서 찍은 사진 세 장. 백야의 푸른 빛으로 가득하다. 걸어가며 플래쉬 없이 찍어서 좀 흔들리긴 했지만 맘에 들어서 남겨둠.


24시간 식료품점이란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다. 가끔 저기 가서 물을 샀음. 숙소에서 제일 가까워서.


저날 본 공연은 슈클랴로프님이 솔로르를 추신 라 바야데르였다.






다리 건너편에 보이는 저 건물이 내가 묵었던 숙소. 로시 호텔. 바가노바 발레학교와 면해 있다. 같은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임. 거리 이름도 그 건축가 이름 따서 조드쳬고 로시 거리이다. 백야 시즌엔 원래 가던 호텔들이 넘 비싸고 또 방도 없어서 저기 묵었는데 바가노바 옆에 있는 것만 (심적으로 공연히) 플러스일 뿐 이것저것 불편한게 많아서 다음번엔 안 묵는 것으로...







운하 저 너머로 파란 쿠폴이 보인다. 이즈마일로프 사원, 애칭은 트로이츠키 사원이다. 저기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인 트로이의 본명을 따기도 했었다. 저 사원도 그렇고 이 판탄카 운하를 따라 걸으면 나는 트로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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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사진들 뒤적이다가. 2014년 4월에 찍었던 사진 몇 장. 에르미타주 박물관. 에르미타주는 작품들도 정말 근사하지만 당초 궁전이었으므로 내부 인테리어도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원체 옛날부터 자주 드나들었던 곳인데 예전엔 좋아하는 그림들 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너무 넓고 작품도 많아서) 요즘은 여기 가면 그림 보는 것만큼이나 각종 문양들과 화려한 장식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이따금 료샤에게 '에르미타주나 루스키 무제이(러시아 박물관)에서 볼래?' 하고 농을 던지곤 한다. 료샤는 박물관이고 미술관이고 뭔가 예술적인 거라면 질색팔색을 하기 때문이다. 박물관 미술관이라면 어릴 때 학교에서 억지로 보냈을 때 간게 전부고 그때도 너무 싫었다고 함. 그나마도 나 때문에 발레는 여러번 봤다. 슈클랴로프 팬인 나 때문에 이 녀석이 지금까지 본 발레의 80% 이상은 전부 슈클랴로프님 나오는 것들임 ㅋㅋ

 

 

 

 

 

 

이따금 다리 아프면 의자에 앉아 쉬면서 물을 좀 마시고 이렇게 창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기도 한다. 에르미타주는 워낙 크고 넓기 때문에 궁전광장부터 시작해 네바 강변까지 쭉 이어져 있기 때문에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가지가지이다. 문득 창 너머로 네바 강이 보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글을 쓸 때 미샤도 에르미타주와 루스키 무제이를 자주 드나드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이 창가에서 바깥을 바라보면서 소설의 일부를 잠깐 구상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다시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바쁜 것일까 엉엉 도무지 글을 다시 쓸 집중력과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 결국 에르미타주로 시작해 노동노예의 신세타령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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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1. 23:49

창 너머 램프 불빛 2017-19 petersburg2019. 10. 1. 23:49




지난 여름. 페테르부르크. 판탄카 운하 따라 걷다가 창 너머 램프 불빛이 예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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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25. 21:58

판탄카, 밤 2017-19 petersburg2019. 9. 25. 21:58


지난 7월 밤. 판탄카 운하. 백야의 석양 보려고 기어나갔을 때. 료샤와 같이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 중 한컷. 역광이긴 한데 하늘이 이뻐서 이쪽 방향에서도 여러 장 찍었음. 내가 사진 찍고 있으면 료샤는 옆에서 뭐라고 꿍얼꿍얼거리는데 뭔말인지 쫌 못알아듣겠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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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24. 00:21

해골 낙서로 마무리 2017-19 petersburg2019. 9. 24. 00:21





무지 피곤하고 탈탈 털린 하루는 페테르부르크 골목 산책하다 발견한 해골 낙서로 마무리. 지난 7월. (낙서들 찍는 취향 아직 유지 중) 저 해골바가지에 대왕이입 중 ㅋㅋ 아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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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17. 22:45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 about writing2019. 9. 17. 22:45




판탄카 운하. 지난 7월, 백야 저녁.


전에 메모에서 몇번 언급했듯, 판탄카 운하는 내가 쓰는 글의 등장인물들 중 특히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이다. 둘은 이 난간과 돌바닥을 따라 자주 걸었고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







알리사가 떠나고 난 후에도 트로이는 계속해서 이 운하를 따라 걷는다. 판탄카 운하 난간 귀퉁이에 이렇게 나뒹구는 술병을 보면 나는 보통 트로이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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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11. 23:37

건들지 말라고! 2017-19 petersburg2019. 9. 11. 23:37

 

 

지난 7월. 페테르부르크. 판탄카 운하 따라 자주 걸어다녔는데 그 산책로에는 반려동물 샵이 있었다. 저 창문에 붙어 있는 스티커에는 '창문 두드리지 말아주세요' 라고 적혀 있다.

 

누가 봐도 저 고냥이님은 지금 자기 건드리지 말라고 바르르 하고 있는 표정인데... 눈치없는 인간 하나가 손을 뻗어 건드리고 있는 중... 냥이 좀 가만 놔둬요!!!!

 

저 냥이 너무 이뻐서 지나갈때마다 창 너머로 보고 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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