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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 00:05

몇년 전의 글 약간 발췌 about writing2019. 11. 3. 00:05





 아래 발췌한 글은 몇년 전 썼던 중편의 일부이다. 중편이라기엔 길고 장편이라기엔 짧은 글인데 제목이 있긴 하지만 쓰는 동안은 '수용소 프리퀄'이라고 부르곤 했다. 미샤가 파리에서 체포된 후 수용소와 클리닉에서 겪는 일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총 3부로 되어 있는데 1~2부는 프라하에 머물때 썼고 3부는 돌아와서 썼다. 발췌한 글은 3부 후반부이다. 미샤의 친구이자 안무가인 일린이 그를 면회하러 와서 나누는 대화와 일린의 회상 일부. 



이 소설을 쓴지 꽤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에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런 일들을 겪고 나자 이 글은 나에게 더 예리하고 고통스럽게 읽히게 되었다. 쓸 때도 그랬지만 지금 읽을 때가 더 그런 것 같다. 보통은 반대이다. 자신이 쓴 글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좀더 객관적으로 읽게 되고 또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게 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좀 달랐다. 나는 물론 그 이유들을 알고 있고(전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느낌은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지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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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다지오였다, 격정적인 사랑의 춤이었다. 2인무는 그 애가 옐레나를 추는 것보다도 더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얘기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애가 그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 그 어느 곳에도 미샤처럼 추는 무용수는 없었다. 이전에 미샤의 그 영문학자 친구와 이야기하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저렇게 출 수 있었다면 목숨이라도 내놨을 걸요. 그건 지금도 유효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애처럼 출 수만 있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목숨이라도 내놨을 것이다. 나는 안무가였지만 그 이전에 무용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 수 있었다면 결코 안무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애에게 그때 뉴욕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왜 춤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했던 것인지 묻고 싶었다. 6월에 레닌그라드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우리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이미 그에게는 보안 요원들이 여럿 딸려 있었다. 아파트는 두 번이나 수색당한 후였고 전화도 도청되고 있었다. 게다가 레닌그라드 무대에 올라온 그 불새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보는 것이 괴로울 정도였다. 물론 전후사정을 무시한다면 공연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안무를 대폭 수정해서 지나가 췄던 불새는 나름대로 매력적이었고 관객들은 백조의 호수를 연상시키는 해피엔딩에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건 미샤가 원래 만들었던 작품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불새는 원본에 대한 조롱이자 끔찍한 패러디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온 질문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무대에 올라가지 않는 것과 춤을 추지 않는 것. 네겐 그 둘이 같아? ”

 

미샤는 생각에 잠겼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 애는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다, 리허설 도중에 나와 함께 연습실 바닥에 앉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같지 않아. ”

 

그것 없이 살아갈 수 있어? 자신해? ”

 

그게 뭔데? 무대? ? ”

 

. ”

 

미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지만 소파에 앉지는 않았다. 대신 에어컨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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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