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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내가 소속된 곳은 아니지만 주저없이 ‘나의 도시’라 부르는 곳. 언제나 이방인일지라도 상관없이, ‘나의 도시’. 물론 나는 나의 인물들이 이곳, 페테르부르크, 당시 이름 레닌그라드를 주저없이 ‘나의 도시’, ‘나의 세계’라고 부르는 만큼의 자격과 소속감과 일체감을 가질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 역시 이 도시를 사랑한다.



도시를 산책하며 찍은 사진들 몇장. 전부 아이폰 6s로 찍음. 많은 부분 변화했겠지만, 이 길들은 내가 되살려낸 미샤와 안드레이/트로이가 함께 걸었을 것이다. 레닌그라드이던 시절.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세상이란 게 뭔데. 소비에트 연방?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




그는 키로프라고 하지 않고 마린스키라고 했다. 레닌그라드 대신 페테르부르크라고 얘기한 것처럼.





“ 우리 주위의 모든 것. 전부. ”




“ 레닌그라드. ”




미샤가 결론을 내리듯 단호하게 말했다. 트로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레닌그라드. ”




그는 미샤가 이 도시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의 깊이에 전율했다. 물 위에 돌로 지어진 도시, 학살과 절망의 도시, 피와 바람의 도시, 허위와 모방의 역사로 가득 찬 옛 수도, 이제는 모스크바의 광휘에 밀려나 퇴색하고 있는 도시를 향해 그런 절대적이고 강력한 사랑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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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최근 그렸던 알리사랑 지나 스케치들 여러 장 올려봄. 스케치는 요즘도 하루나 이틀에 한장 정도는 하는데 포스팅은 자주 안 했다. 



먼저 알리사 시리즈. 범생이면서도 뿌루퉁하던 학생 시절부터. 맨 위 스케치는 뭔가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등교 중인 모습(아무래도 트로이가 무슨 잘못을 했나봄)





이건 대학 친구들과 문학 서클 활동할 때. 친구네 집에 모여서 토론하는 중인데 슬며시 얄미운 태도로 자기 주장을 펼치고 계심(이 바부들아 그것도 모르냐 뭐 이런 투 ㅠㅠ)







하지만 얼음공주같던 알리사는 사실 이렇게 눈물보따리 ㅠㅠ






이건 페테르부르크 떠나던 날 아스토리야의 로툰다 카페 창가에 앉아 그렸던 스케치. 이거 색칠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화상이에요? 잘 그리시네요' 라고 해서 깜놀했었음. 



땡글눈이랑 앞머리 때문에 그렇게 보였나 ㅋㅋ  사실 땡글눈이랑 앞머리 그것만 쫌 닮았음. 아 생각해보니 이때 나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ㅋ 



그 남자 속으로 '쟤 아무리 봐도 토끼인데 지를 무지 미화해서 그리는구나' 했을지도 모르겠음. 나 아니고 알리사에요 ㅋ







그리고 이제 빨간 머리 지나 몇 장 :)



이건 페테르부르크행 비행기 안에서 그렸던 지나 스케치. 지나도 뭔가 심통나 있음. 아마 미샤가 쪼꼬 조공을 안 했나봄.






러시아 전통 숄 두르고 전통 꽃무늬 귀걸이하고 미술관에서 전시 보고 계심. (이날 내가 숄을 사서 신나는 마음에 지나가 숄 두른 그림 그렸음)





연습 끝나고 물을 꿀꺽꿀꺽~ 들이켜고 계시는 중





이건 해외 투어 가서 호텔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바깥 내다보고 있는 중. KGB들 다 무시하고 미샤처럼 싸돌아다닐 정도로 막 나가지는 못하고... 근데 놀러 나가고 싶긴 해서 시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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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10. 5. 23:03

엄마랑 아가 sketch : 지나와 말썽쟁이2018. 10. 5. 23:03

 

 

 

오늘의 스케치는 간만에 등장한 율리야. 미샤 엄마 :)

 

 

아가 미샤 안고 산책 나왔다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잠깐 쉬고 있는 중. 아가 미샤는 바깥 세상에 온통 정신팔려 있음.

 

 

 

미샤 : 엄마엄마 짹짹이 좀 보래. 엄마엄마 야옹이 있어. 엄마엄마 짹짹이랑 야옹이도 아쭈꾸림 먹어? 나도 아쭈꾸림..

 

율리야 : 얘는 맨날 결론은 아이스크림이야 ㅠㅠ

 

세르게이(미샤 아빠) : 내 강아지 내 새끼~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율리야 : 안돼! 아이스크림 먹이면 점심 못 먹어!!! 자꾸 오냐오냐하지 말란 말이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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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10. 3. 22:24

(오래 전의 글) Incomparable Blind about writing2018. 10. 3. 22:24





오래 전에 스타차일드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단편들을 여럿 썼었는데 이 about writing 폴더에도 서너편 발췌하거나 전문을 올린 적이 있다. 지금 쓰고 있는 본편의 미샤가 제일 먼저 등장했던 것도 이 시리즈에서였다(물론 그때의 미샤는 초기라서 지금의 모습과는 좀 달랐지만)



며칠 전 이웃님과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 단편이 생각났다. 주제도 그렇고 이것저것 맥락이 통하는 느낌이 있었다. 종교와 신앙과 심지어 도스토예프스키 등등... 좀 거창한 거 같지만 별로 그렇진 않다. 2003년에 쓴 거니까 15년 전에 쓴 글이다. 엄청 오래됐다. 스타차일드 시리즈 자체가 2000년대 초반에 썼던 거긴 하다. 



전에 다른 에피소드 올리면서도 적었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분명 변화가 있고 나이와 경험을 통해 생겨난 주름들이 있다. 글을 쓰는 방식이나 문체도 조금은 변했다. 이 시리즈는 당시의 나였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마치 지금의 글들이 지금의 나이기에 쓸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스타차일드 시리즈의 약 30편에 달하는 단편들을 오랜만에 다시 뒤적이게 되면 가끔 좀 오글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수정하거나 손을 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떤 것들은 그대로 놓아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는 가장 진실하고 가장 뜨겁게 썼기 때문이다. 과거의 불꽃은 현재의 눈으로 보면 빛바래고 좀 우스꽝스러워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 순간엔 불꽃이었고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카르멘은 열여섯 살의 고급 사립학교 학생(이라 쓰고 문제아라 읽는다. 마약중독에 길거리 생활 등등 이것저것 하다가 겉으로는 좀 마음을 잡고 학교로 돌아와 있다)이고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마크와 데본은 같은 학교 아이들이다. 마크는 소위 엄친아로 공부와 운동 다 잘하고 번듯하고 쿨한데다 있는 집 자식이다. 데본에 대해서는 전에 올렸던 open up and bleed란 단편(http://tveye.tistory.com/7072)에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있는 집 자식이긴 한데 혼혈이고 학교에선 사이코패스로 통해서 왕따당하는 애다. 오픈 업 앤 블리드에선 카르멘에게 '학교 애들을 다 쏴죽이자~'라고 꼬드기기까지 한다. 시리즈 초반 에피소드에서 마크는 카르멘에게 들이대다 된통 얻어맞은 적도 있고 그러다가 또 하룻밤 보낸 적도 있긴 하다만 보통은 카르멘에게서 '부르주아 나치넘' 이란 욕을 듣는다. 한마디로, '나에게 이런 건 네가 처음...' 이다 ㅋㅋ 



이 단편 Incomparable Blind는 시리즈의 25번째 이야기였다. 제목은 아마 앨런 긴스버그의 어떤 시에서 따왔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스타차일드 시리즈 제목들 중 절반 이상은 시나 노래 가사에서 따왔었음. 전문 올려본다. 



이야기 초입에서 마크가 회상하는 클레이튼 템플은 맨뒤에 등장하는 그레이와 동일 인물이다. 이 사람이 주요 인물로 나왔던 바로 다음 에피소드인 not enough의 일부를 전에 발췌했던 적이 있다.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774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Incomparable Blind

 

  

 

 

 

 





 

With the absolute heart of the poem of life butchered 

out of their own bodies good to eat a thousand years.

 

... Allen Ginsberg, Howl ...

 


 



 

.. 1981년 9월 ..

 

 

 


연한 노란색이 감도는 타원형의 작고 매끄러운 캡슐 세 개. 처음에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환각제를 몇 알 먹고 양호실 침대에 누워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교실들은 텅 비어 있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몰려나가 열띤 응원을 하고 있었다. 매년 열리는 미식축구 대회 결승전 때문이었다. 그 지역의 이름난 사립학교들 사이에 벌어지는 리그였는데 그들의 학교는 3년 만에 결승에 올라갔기 때문에 축제 분위기가 완연했다.

 


양호실 쪽으로 길게 이어진 복도는 눈이 멀 것 같은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열린 창들 사이로 가차 없는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귀를 찢는 듯한 소음도 함께였다.

 


마크는 양호실 문을 열었다.

 


 

*  *  *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고 동경했다. 교사들은 그를 두뇌가 명석하고 리더십이 풍부한 좋은 학생이라고 여겼고 동급생들은 무슨 일이든 잘 하는 그의 재능을 부러워했다. 그는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사실 지금 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기에서 뛰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였다. 하지만 여름이 되기 전에 그는 발목을 약간 다쳤고 그것을 핑계로 팀에서 빠져나왔다.

 


3년 전 팀의 부주장이었던 클레이튼 템플은 그가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멋있게 보이기 위해 경기를 하면 절대 이길 수 없어. ’

 


그는 선배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멋있게 보이기 위해 경기를 하는 사람들이 과연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게임은 이기기 위한 것이다. 단지 승자이기 때문에 멋지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심지어 3년 전 그 결승전에서 템플이 무릎이 박살난 채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하며 들것에 실려 나갔을 때조차 그랬다. 왜냐하면 그는 팀을 역전시켰고 승자로서 경기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대학에 가서도 운동을 계속하리라고 생각했지만 템플은 그 날 이후 미식축구를 그만두었다



마크는 복도나 강당에서 템플이 카르멘과 함께 있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는 그때 카르멘을 처음으로 보았다. 아마 그가 카르멘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클레이튼 템플 때문이었으리라. 졸업반이었던 템플은 한동안 마크의 역할 모델과 같았다. 그런 템플이 카르멘을 선택했다면 그녀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인생이란 신기한 것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눈빛, 아주 사소한 무엇이 인간을 뒤흔들고 지나간다. 그리고 삶이 바뀌어버린다. 마크는 어느 한순간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전,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클레이튼 템플과 당시에는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카르멘을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면 그는 그 사소한 순간이 자신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변하는 순간을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난 후에야 깨닫는다. 때로는 영원히 깨닫지 못할 것이다.


 

리비에라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고 돌아온 후 마크는 변했다. 마치 그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통째로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끊임없는 눈짓을 던지는 해변의 예쁜 여자아이들도, 달아오른 맨몸을 식혀주는 차가운 파도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마크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었다. 여전히 모두는 그를 아주 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쿨함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카르멘은 그를 공기나 되는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여전히 혼자였다. 하지만 그녀를 욕하고 비웃는 아이들의 시선은 그녀가 마크에게 던지는 시선만큼 예리하고 무심하지는 않았다. 이제 마크는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왜 바비 인형처럼 차려입은 치어리더들이 그녀를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하는지. 그들은 결코 카르멘의 존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을 불편하게 했다. 벽에 불쑥 튀어나온 못처럼 거슬렸다. 혹은 매혹적이었다. 마크는 그 둘 사이에는 사실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카르멘은 그를 완전히 무시했다. 그녀에게 있어 마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길바닥에 걸리적거리는 돌멩이보다도 더. 그녀의 시야는 기묘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앞을 똑바로 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틈새에 매혹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공기를 뚫고 나아가듯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카르멘의 행동들을 어느 만큼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녀가 헤로인을 찔러 넣는다고 해서 어떻단 말인가. 그런 것이 역겹게 느껴졌다면 애초부터 그녀에게 접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얌전한 마리화나와 안전한 환각제에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가기 시작하면 결국 헤로인의 품으로 다이빙하게 되어 있다. 마크 자신은 아직 독한 마약을 손댄 적이 없었지만 유혹을 느낀 적은 몇 번 있었다. 그건 카르멘이 그를 무시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순전히 그녀가 어떤 기분으로 헤로인을 맞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걸핏하면 주먹과 발이 올라가는 그녀의 폭력성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수십 차례 미워하는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위선자들에 비해 그녀가 좀 더 솔직하고 참을성이 없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소다수를 마시러 가듯 아무렇지도 않게 섹스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카르멘의 행동들에서 혐오를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의식적으로 마크는 그녀와 동거하고 있는 남자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애썼다. 때때로 그는 그 남자의 이집트 여왕처럼 긴 머리와 기묘하게 거칠고 나지막한 음성을 떠올리며 전율하곤 했다. 카르멘과는 달리 그 남자의 행위는 그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 왜냐하면 그건 더러운 짓이기 때문이다. 카르멘의 마약과 폭력은 어리석은 짓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더러운 짓을 하고 있었다. 호모 짓거리를 한다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우스운 일이었다. 마크는 그가 남자 애인과 함께 있는 것조차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맨 처음 본 순간부터 그 남자가 호모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다. 1 더하기 12라는 것만큼 분명하게. 그 남자는 자신의 더러운 호모 섹슈얼리티를 온몸에 두르고 다녔다. 이마 깊숙하게 타들어간 낙인처럼.. 그 누구든 그걸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을 보는 순간 내부의 무언가를 들여다볼 수 있을까? 마크는 의문했다. 왜냐하면 그조차도 자신의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카르멘은 항상 그에게 부르주아 나치 스킨헤드 같은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욕을 했지만 그는 자신이 왜 그런 식으로 취급되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부르주아 나치 스킨헤드의 사고방식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카르멘의 질책과 욕설이 생소했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낯선 시선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처럼, 마크는 몰이해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에게 필요한 일일까?

 


 

*   *   *

 



 “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어야만 하기 때문이야. 그 절망감이 서로를 사랑하게 하는 거야. ”

 

  “ 그건 환상에 지나지 않아. 사랑이란 건 존재하지 않아. 그건 그저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기 위안거리에 지나지 않아. 마치 자신들의 나약함을 위장하기 위해 신을 만들어낸 것처럼. ”

 
“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우리 내부에서는 상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 어쩌면 거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이 외부로 나온 순간 실체를 가진 그 무엇이 되는 건지도 몰라. 사람들이 외로움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이란 감정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거짓으로 우리를 위안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나쁠 게 뭐가 있어? 결국 허위에서 진실이 태어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

 
“ 그건 로맨티스트들이 하는 말이야. 너와는 어울리지 않아. 허위에서 진실이 태어난다는 건 불가능해. 진실은 오직 한 가지 뿐이야. 인간이란 끔찍한 존재란 것. 파괴하고 서로 죽이는 존재란 것. 우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건 그것 밖에 없어. ”


 
카르멘은 물끄러미 데본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처럼 강렬하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거기에는 평소에는 결코 볼 수 없는 희미한 부드러움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하얀 시트가 깔려 있는 좁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1인용 침대였지만 둘 다 몸집이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카르멘은 데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데본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창밖으로부터 환호성이 들려왔다. 어느 편이든 골을 성공시킨 모양이었다.


 
“ 담배를 끄든가 머리를 치우든가 둘 중 하나야, 너. 질식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


“ 한번만 더 투덜거리면 입을 틀어막아 버릴 거야. ”

 

카르멘은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 거의 필터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바닥에 내던졌다. 빨간 불꽃이 희미하게 일었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잠시 데본은 홀린 듯한 시선으로 바닥에 떨어진 꽁초를 바라보았다. 불꽃은 언제나 그를 매혹시켰다. 


 
“ 왜 그런 짓을 했어? ”
 


카르멘의 음성은 나직하고 부드러웠다. 데본은 그녀의 질문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기묘한 일이었다. 그는 언제나 침묵을 지켰다.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입을 열기를 원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대화들은 어리석고 저열했다. 사람들은 진정한 관심이나 필요가 아니라 몇천 년 동안 몸에 배어온 관습에 의해 뜻 없는 이야기들을 반복했다. 얼마나 끔찍한 낭비일까? 데본은 종종 모든 인간들이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표현 외에는 완벽하게 침묵하며 살아가는 세계를 상상했다. 어쩌면 그편이 더 나았다. 최소한 입술과 혀에서 밀려나오는 위선과 허위는 없을 테니까. 그것이 그가 침묵하는 이유였다. 사람들의 음성,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표현은 그를 역겹게 했다.


 
하지만 카르멘과 함께 있으면 그런 역겨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그의 살갗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이 똑같아서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들이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그건 단지 그녀의 눈에 있는 불꽃 때문이었다. 그에겐 아주 낯익은 불꽃.


 

“ 하고 싶었으니까. ”


“ 흠, 나 같으면 영사실에 불을 지르느니 한 방 찌르고 뒹굴었겠다. ”


“ 넌 왜 헤로인을 찔러댔는데? ”



 
이번에는 카르멘이 홀린 듯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할 차례였다.



 
“ 마리화나 한번 손대보지 않은 너한테 이런 얘길 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 테지만.. 사실 헤로인은 사용하기 편한 약은 아냐. 백 명의 정키에게 그걸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백가지의 대답이 나올 거야. 헤로인은 모순덩어리야. 그건 모든 감각을 잊을 수 있게 해줘. 하지만 그건 사실 헤로인이 감각의 극점을 찾아내기 때문이야.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면 장님이 되는 이유는 그 빛이 너무 강렬해서 시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 멍한 마비 상태, 그 무거운 암흑에 사로잡힌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내부엔 안구를 불태우던 광채가 어른거릴 거야. 그런 거야, 헤로인이 주는 건. 암흑, 침묵, 빛, 색깔. 한 가지는 분명해. 헤로인이 혈관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찾아오는 침묵은 두렵지 않아. 그건 그냥 잠과 같은 거야. 심장 박동이나 다름없어. 내 친구 커트는 그것 때문에 낮이고 밤이고 미친 듯이 주사를 찔러댔다고 했어. 왜냐하면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침묵이었거든. 거기 이빨이 있다고, 뇌수를 찢어발기는 소음이 있다고 했어. 헤로인은 착한 마녀처럼 그 무서운 침묵을 데려가서 편안한 심장 소리로 바꿔준다고 했어. 내가 느낀 게 똑같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어. 결론은 똑같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거야. 우리가 홀로 죽어야만 한다는 것. 사람들은 그 끔찍한 사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헤로인을 주사하지만 결국은 자신들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지. 헤로인은 우릴 도망치게 해주는 게 아니라 그 외로움의 한가운데 데려다놓는 약이야. 하지만 이미 공포와 절망은 마비되고 말아. 남는 것은... 남는 것은 어쩌면 침묵이 전부일지도 몰라. ”

 
“ 그럼 끊은 이유는 뭐지? ”

 
“ 진짜 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다면 약 따윈 필요하지 않아. ”


 
카르멘은 맑은 하늘빛 눈으로 데본의 얼굴을 응시하며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쓸었다.


 
“ 결국 헤로인은 수많은 마약과 마찬가지로 대용품에 지나지 않아. 온기. 심장 박동. 너를 사랑한다는 말. 헤로인은 그것들에게 닿기 위한 끔찍한 몸부림일 뿐이야. 심지어 무대조차도 그런 거라고 커트가 말했어. 어떤 면에선 그게 옳을지도 몰라. 무대 위에서 그가 보는 건 암흑뿐이었다고, 그래서 자신을 모두 부어버려야 했다고, 바닥에 내던져진 술잔처럼 내용물을 깡그리 쏟아버리고 마침내는 깨진 유리처럼 산산조각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고 했어. 그에겐 아무 것도 충분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심장에 난 구멍은 어떤 대용품으로도, 헤로인으로도 무대로도 메울 수가 없는 거니까. ”


 
데본은 그녀가 누구에 대해 얘기하는지 알고 있었다. 커트 와일드. 70년대 유명 락 밴드의 리드 보컬. 그가 유일하게 들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밴드.
 



갑자기 궁금증을 느낀 대본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카르멘의 손을 붙잡아 아래로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는 친밀한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았다.


 
“ 그런데도 그놈하곤 안 잤단 말이지? 왜? ”

 
“ 그렇게 뻔한 질문이 어디 있어? 커트는 게이야. ”

 
“ 그래, 에메랄드 앨리의 던컨 가브리엘 그 자식처럼 말이지. 내가 궁금한 건, 그 자식이 게이여서 너와 섹스를 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선지 하는 거야. ”

 
“ 왜 그런 게 궁금한데? ”
 

“ 완벽한 게이란 건 없으니까. 완벽한 스트레이트가 없는 것처럼. 둘 다 원칙이란 틀에 매여 있는 것뿐이야. 후자가 사회가 정한 원칙에 사로잡혀 있다면 전자는 스스로가 자신에게 강요한 틀에 사로잡혀 있는 거라고. ‘난 게이니까 여자랑은 결코 할 수 없어’란 자기 최면에 지나지 않아. 그건 스스로를 제한하는 거야. 어쩐지 ‘너의 커트’란 놈은 그런 인간 같지는 않아. ”

 
“ 그래, 기억해뒀다가 커트한테 말해줘야겠네. 어쨌든, 그가 게이이기 때문은 아냐.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그런 식으로는 섹스를 할 수 없어. 우리 사이에 욕망이 없는데 어떻게 그걸 하겠어? 욕망이 존재하든지, 이미 습관이 되었든지, 아니면 상대가 너무 밉살스러워서 입을 다물게 하고 싶든지 셋 중 하나인 걸. ”

 
“ 세 번째 이유 때문인지도 몰라. 내가 그때 너한테 그거 하려고 했던 건. ”



 
데본의 입술이 가볍게 위로 치켜 올라갔다. 여전히 서툰 미소. 카르멘은 콘크리트 옥상과 눈부시게 푸르던 하늘을 떠올렸다.



 
“ 근데 왜 안 했어? ”


“ 그걸 알고 싶어서 너와 커트에 대해 물었던 거야. 난 아직도 그 욕망이란 걸 이해할 수가 없어. ”


“ 난 네가 던컨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그 사람은 너한테 그걸 알게 해줄지도 몰라. 갱 애인한테만 안 들키면 될 거야. ”


 
카르멘은 쿡쿡 웃기 시작했다.


 
“ 난 그 인간 싫어. ”


“ 왜? 피를 철철 흘리고 쓰러진 널 업고 8층 계단을 올라가서 치료도 해주고 저녁도 먹여주고 잠까지 재워줬다고. 요즘도 종종 만나면 네 안부를 묻는 걸. ”


“ 그래서야. 무슨 선행이라도 베푸는 것처럼 날 보살핀 게 맘에 안 들어. 난 그런 걸 부탁한 적이 없어. ”



 
그는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 카르멘보다도 몇 개월이나 어렸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데본의 표정은 돌처럼 단호하고 견고했다.



 
“ 넌 지금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거니? ”


“ 그래. ”



 
카르멘은 이해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다. 틈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틈을 발견하는 순간 그녀를 파괴해 버릴 것이다. 가장 무심하고 뜻 없는 방식으로. 하지만 때로는 그녀 스스로가 그것을 원했다. 틈을 파헤치고 그녀 자신을 깨뜨려 주기를 원했다. 커트가 그랬고 레스가 그랬다. 하지만 그건 파괴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그 둘 사이에는 수평선과 같은 간극이 있었다. 과연 그 둘을 구분할 수 있을까?



 
그녀는 데본의 단호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순순히 틈을 보이고 타인에게 의지하려들 수 있겠는가. 그러기엔 데본의 내부는 지나치게 깊었고 지나치게 오만했다.



 
“ 그 누구에게도? ”


“ 그 누구에게도. ”



*   *   *

 
 
 

마크는 얕고 힘든 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나직하고 조용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크는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앰프를 켜놓은 것처럼, 혹은 그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아마도 그가 삼킨 환각제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불공평한 일이었다. 그는 단지 노란 캡슐 세 개를 삼키고 양호실 침대에 누워 아무런 해도 없는 환각에 빠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약한 환각제.
 


마크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는 1인용 침대에 홀로 누워 있었다. 양호실의 침대들은 칸막이 대신 얇은 커튼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얇은 커튼 너머, 그의 침대 건너편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직하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눈가가 축축하게 젖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다.



*   *   *

 
 

 


“ 매일 지니고 다니기엔 너무 무겁지 않아? ”



“ 매일 심장을 가지고 다니는 걸 생각해봐. 그 무게엔 결코 익숙해질 수 없지만 이건 안 그래. ”



 
카르멘은 손을 내밀어 매끄럽고 차가운 금속 총구를 건드렸다. 데본은 마치 수화기를 들고 있는 것처럼 권총을 쥐고 있었다. 그는 무심하게 눈을 깜박이더니 카르멘에게 총을 건네주었다.



 
“ 갖고 싶으면 가져. 난 하나 더 있어. ”



“ 난 총이 싫어. ”



“ 그래, 넌 블레이드 타입이었지. ”




 
여전히 권총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광택이 나는 총신을 응시하면서 카르멘이 대꾸했다.



 
“ 네가 심장 얘길 한 건 옳을지도 몰라. 내가 블레이드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그래서야. 뭔가를 너무 오래 가지고 다니면 이미 몸의 일부가 돼. 목걸이나 반지와 다를 게 없어, 심지어 네 말대로 심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 내가 그걸로 남을 공격한 적은 손으로 꼽을 정도 밖에 안 돼. 그것도 먼저 공격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어쩌면 그게 아주 추하게 생긴 칼이었다면 난 이미 오래 전에 그걸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을지도 몰라. 문제는 내 블레이드가 너무 예쁘다는 거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에는 언제나 이상한 아름다움이 있어. 이 총도 그래. 만일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사랑의 신이라기보다는 파괴의 신일 거야. 언제나 파괴하는 쪽이 더 쉬우니까. 어쩌면 인간의 손에 가장 먼저 칼을 쥐어준 것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 인간을 공격하는 짐승들이 아니라 바로 신이었는지도 몰라. 심장과 칼은 어쩌면 같은 건지도 몰라.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 역겨운 일이지. ”



 
그러자 데본이 자신의 가방에서 문고본 책을 한권 꺼냈다. 그리고 책갈피가 끼워진 페이지를 펼치더니 또렷한 목소리로 읽었다.



 
“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기 위해 신을 만들어냈다. ”



 
카르멘은 힐끗 책 표지를 보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다.



 
“ 다시 한 번 읽어줘. ”
 



데본은 카르멘의 하늘빛 눈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읽었다.



 
“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기 위해 신을 만들어냈다. ”



 
카르멘은 권총을 침대 위에 내려놓고 데본의 손에서 책을 받아들었다.



 
“ 이 사람은 알고 있어. 내가 하고 싶었던 말도 어쩌면 그건지도 몰라. ”



 
그녀는 두 눈을 감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 신을 만들어냈다는 말은 그렇지가 않아. 살인을 금하기 위해서는 그렇게까지 묵중한 존재가 필요 없어. 자살하지 않기 위해 신을 만들어냈다는 말은 도덕성을 만들어냈다는 말이야. 도덕은 언제나 인간 위에 있어. 그건 상위의 질서야. 아무도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명령할 수 없을 거야, 오직 신적인 존재만이 가능해. 자살하지 않기 위해 신을 만들어냈다는 말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신을 만들어냈다는 말과 같은 건지도 몰라. ”



“ 신을 믿어? ”



 
카르멘은 눈을 뜨고 데본을 보았다. 그의 검은 눈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그의 표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 두 가지 뿐이었다. 무심하고 차가운 눈, 그리고 격렬하게 타오르는 눈. 그런데 지금 그의 눈에는 부드러운 광채가 돌고 있었다. 제 3자가 본다면 ‘신을 믿어?’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강아지 좋아해?’ 혹은 ‘날 사랑해?’ 하고 묻고 있다고 착각할지도 모르는 광채였다.



 
“ 모르겠어. 때로는 그랬으면 좋겠어. 뭔가를 조건 없이 믿을 수 있다는 게 부러워. 그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과 달라. 어쩌면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다는 건지도 몰라. 우습지만 우리 엄마는 카톨릭 신자야. 지금도 가끔은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곤 하지. 하지만 난 알고 있어. 엄만 정말로 뭔가를 믿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 게 아니야. 다만 그 의식이 필요할 뿐이야. 미사에 참석해본 적이 있다면 너도 알지도 모르지. 신부님과 성가곡과 촛불과 성찬식, 그리고 고해.. 그 모든 게 뜻하는 건 하나의 의식이야. 자신을 정화시키기 위한 의식. 혹은 ‘정화시키는 척’ 하기 위한 의식. 단지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좋으니 현실 세계에서 자신을 격리시키고 싶은 거야. 어쩌면 엄마도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몰라.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거든. 엄만 자신을 절대 포기할 수 없어. ”




 
카르멘은 희미한 오한을 느끼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녀는 단 한 번도 엄마에 대해 그렇게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엄마의 내부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그녀는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한을 느꼈다.



 
“ 그게 바로 너의 헤로인이야. 네 엄마는 마약보다 고상하고 세련된 걸 택한 거야. 비난받지 않는 무엇, 안전한 무엇. 하지만 본질은 똑같아. ”




 
데본은 카르멘의 부드러운 붉은 곱슬머리를 무심하게 만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카르멘은 기이한 보호 본능을 느꼈다. 그건 레스를 향해 느끼는 감정과도 달랐고 심지어 커트를 향해 느끼는 감정과도 달랐다. 데본은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들은 결코 커트와 주드 같은 사이의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해가 질 무렵 창가에 앉아 네온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서로의 존재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친구.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가 없는 사이. 왜냐하면 커트와 주드는 자신들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건 열정이나 사랑이 아니었다. 그런데 데본은 그녀에게 그런 우정을 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들 둘다 너무 불안정하고 너무 모가 나 있었다. 하지만 카르멘은 그것이 좋았다. 그리고 데본을 지켜주고 싶었다. 무엇으로부터인지는 그녀 자신도 몰랐다.
 



“ 그럼 너는, 데본? 네가 택한 건 뭔데? ”


 
“ 아무것도 택하지 않는 것. ”


 
“ 그건 대답이 안 돼. ”


 
“ 난 안전한 뭔가가 필요 없어. 너의 헤로인도, 커트의 무대도, 너희 엄마의 미사도, 사랑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감정도.. 그것 하나는 네가 옳아. 자살하지 않기 위해 신을 만들어냈다는 말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아니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 보호라는 말을 쓰는 편이 더 나아,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신을 만들어냈다는 말이야. 신이라는 존재로 하여금 자살을 죄악으로 규정하게 해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인 자기 파괴를 가로막게 한 거야. ‘타인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은 부차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아. 왜냐하면, 카르멘, 모든 파괴와 살인은 궁극적으로는 자기 파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야. 그건 너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야. ”



 
그의 단호함과 견고한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건 열여섯 살짜리 소년의 음성이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카르멘은 단 한번도 외적인 연령과 내부에 간직된 사상을 동일시해본 적이 없었다. 나이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은 80살에도 어린애였고 어떤 사람은 열두 살에 이미 노인이 되어 있었다. 커트가 한때 한 화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이 들고 현명한 화가, 심장이 화석으로 변해가는 화가. 



 
그녀는 책장을 넘겼고 눈에 띄는 구절을 소리 내어 읽었다.



 
“ 나는 평생 동안 신에 의해 고통을 당해왔다. ”



“ 그래, 그건 끼릴로프야. 인간이 자살하지 않기 위해 신을 만들어냈다고 한 것도 그 자식이지. ”



“ 철학을 하는 주인공이군. ”



“ 주인공은 아냐. 주변인물이지. 철학가라기보다는 행동주의자고. 신이 없기 때문에 정말로 자살하는 사람이야. ”



“ 그게 그에겐 그렇게 중요해? ”




 
그러자 데본은 책갈피로 끼워놓았던 작은 종이쪽지를 빼냈다. 그리고 여러 번 접혀 있는 종이를 펼치더니 카르멘에게 건네주었다. 노트에서 찢어낸 것이 분명한 그 종이에는 검은 잉크로 빽빽하게 글이 씌어져 있었다. 카르멘은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 끼릴로프는 신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끼릴로프 자신이 신이다. 신이 된다는 것, 그것은 독립과 자유의 속성을 나타낸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것은 신에게 달려 있고 인간들은 그 의지에 반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신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든 것은 이를 깨달은 자에게 달려 있다. 이것은 인신 사상, 저 신적 반역의 최정점에서 인식한 인간 자체가 신이라는 주장을 외치는 단호한 사상이다. 그리스도는 신인이지 인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조차도 신이 없는 이 세계의 허위 속에 사라져 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살해야 하는가? 곧 자신이 신임을 인식한 존재, 자유의 정복자가 왜 자살을 해야 하는가? '인간들은 자살하지 않기 위해 신을 만들어냈다.'고 끼릴로프는 말한다. 자신이 신임을 인식한 자는 행복과 영광, 자유의 절정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신이 없다는 것, 그러므로 그들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언제나 첫번째 인식자가 문제이다. 끼릴로프는 자신이야말로 그 첫번째 인식자이며 때문에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살을 한다. '나에게는 나의 뜻을 주장할 의무가 있다'고 그는 외친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절대 자유를 증명하기 위해 죽는다. 그것은 처절한 자기주장이자 인류에 대한 사랑이다. 기독교적 그리스도의 사랑 저편에서 끼릴로프는 무신론의 이름으로 인류에 대한 사랑을 역설한다. 까뮈가 지적한 대로 끼릴로프는 이 세계의 부조리함을 알고 받아들인다. 그가 '모든 것은 좋은 것입니다.' 라고 했을 때 그는 확실히 자기 사상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끼릴로프가 말하는 신의 경지, 그 자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의 '조화된 순간'이다. 인간은 5초 이상 그 순간을 견뎌낼 수 없다. 만일 십 초 이상을 견뎌내려면, 그 조화의 순간을 견뎌내려면 인간은 육체적으로 변화되거나 죽어야 한다. 신이 창조 후 '참 좋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환희, 그 순간은 극도로 선명하고 즐거운 조화의 시간이다. 그 오 초 동안에 그는 일생을 산다. 그 순간을 위해서라면 그는 일생을 내던질 수가 있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변화하여 번식과 진보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 결국 그가 자살하는 건 사랑 때문인 거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


 
“ 그가 자살한 건 인간이 절대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



 
“ 난 그걸 이해할 수 없어, 데본. 절대적인 자유가 뭔데? 자유란 건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해.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어. 자유를 증명하기 위해 자살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만약 자유란 게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건 증명할 필요가 없을 거야. 뭔가를 증명해야 한다면, 공식이 필요하다면, 남에게 그 타당성을 보여줘야만 한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야. 태어나서 지금까지,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책에서, 수업 시간에 귀가 닳도록 들은 얘기를 기억해? 우리나라는 자유 국가라는 말. 그건 거짓말이야. 보기 좋게 포장된 선전 문구에 불과해. 그런 건 자유가 아니야. 우린 과대망상 속에서 살고 있어. 아무도 자유가 뭔지 몰라. ”


 
“ 그래, 네가 옳아. 그는 절대적인 자유를 위해 자살한 게 아니야. 다만 그렇게 믿었을 뿐이지. 그는 망상 때문에 자살했어. 인류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망상,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과장된 믿음. 그는 환상 속에서 자살한 거야. ”
 


“ 결국 그 역시 환상을 자유로 오해한 거야. 오 초의 조화된 순간이라는 건 자유가 아니라 명멸해 사라지는 헤로인의 환각일 수도 있고 우리 엄마의 미사일 수도 있고 커트의 무대일 수도 있어. 어쩌면 그게 바로 자유일 수도 있는 걸까? 그토록 오랫동안 인류가 갈망해 온 것, 존재한다고 믿어온 것 말야. 난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어. ”
 


“ 이해할 필요 없어. 우린 한 가지 사실만 알면 돼. ”


 
“ 그게 뭔데? ”


 
“ 인간들은 모두 눈이 멀었다는 것. 가망 없이. ”




 
 
*   *   *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고 간헐적으로 네온 불빛들이 발광충처럼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두 눈을 비볐다. 아직 한낮이었다. 어쩌면 그의 눈을 아프게 한 것은 햇살이었는지도 몰랐다.
 




무해한 환각제라는 이름으로 상류층 학생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그 노란 캡슐 속에는 믿을 수 없는 어둠과 끝을 모르는 깊이, 그리고 폭죽처럼 터지는 불꽃들이 숨어 있었다. 감각을 마비시키고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정키들은 헤로인이 바로 그런 약이라고 우길 것이다. 그 외의 어떤 약도 그런 세계를 맛보게 해줄 수 없을 거라고. 하지만 마크는 알았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결국 모든 약은 똑같다는 것을. 정맥으로 밀려들어가는 액체든 목구멍을 넘어가는 작고 매끄러운 캡슐이든 상관없이,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물질은 같은 목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것을 흡수하는 존재를 파괴하는 것. 혹은 파괴한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



 
마크는 현기증을 느끼며 거리를 배회했다. 그는 카르멘과 데본의 뒤를 따라 학교를 나왔다. 그들이 그를 목격했는지 혹은 그냥 지나쳤는지 마크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카르멘과 데본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손을 잡지도 않았고 그리 가까이 서지도 않았다. 그들은 일정한 개인적 거리를 유지한 채 그저 함께 걷고 있었다.
 




갈림길이 나타났고 카르멘과 데본은 별 말도 없이 헤어졌다. 그들 중 누구도 고급 사립학교의 귀족 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데본은 언제나처럼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채 무심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카르멘은 넝마 같은 무지개 티셔츠와 허리를 졸라맨 너덜너덜한 남자 청바지를 입고 지저분한 운동화를 신은 채 사람들 사이를 뚫고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마크는 자신이 카르멘의 뒤를 쫓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이 희미하게 밝아졌을 때 그의 앞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데본 펠이었다. 



 
그는 데본의 말을 생각했다. 영사실에 불을 지른 장본인. 학교에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위험인물, 그는 당장이라도 상담 교사에게 가서 모든 것을 말해버릴 수 있었다. 그의 한 마디는 데본을 퇴학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혐오스런 쥐새끼 같은 데본 펠을. 하지만 마크는 그것이 데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방식으로는 결코 데본을 상처 입힐 수 없었다. 그의 눈앞을 걸어가고 있는 건 그의 상식이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마크는 발끝에 채여 나뒹구는 빈 병을 주워들었다. 그는 오직 한 가지 사실만을 이해했다. 그의 마음속에 뭔가 불꽃이 있고, 그것이 그의 눈을 멀게 한다는 것. 심지어 그것이 카르멘을 향한 갈망인지 데본을 향한 혐오인지조차 알 수 없지만, 그 불꽃은 그의 내부를 끔찍하게 태우고 그의 손을 경련하게 만들었다. 




 
그는 유리병을 꽉 쥐고 데본의 뒤로 다가갔다. 데본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골목은 텅 비어 있었다. 오로지 그와 데본, 그리고 바닥을 태워 없앨 듯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만이 존재했다. 



 
겨우 오 초도 지나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 마크는 소용돌이치는 빛살의 폭포 속에 서 있었다. 그 순간 전 우주가 그의 손 안으로 쇄도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바닥을 딛고 있는 발의 감각조차 사라졌다. 우주의 비밀이 유리병을 움켜쥔 그의 손 안에 있었다. 



 
 
마크는 유리병을 휘둘렀다. 
 




둔탁한 충격이 손끝을 타고 올라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병이 박살나며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파편들은 토네이도에 휩쓸린 듯 햇살 속으로 산산이 흩어졌고 암흑이 시야를 가렸다.


 
 

마침내 그는 깨달았다. 불꽃은 그 노란 캡슐 안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내부에 있었다. 애초부터 다른 어디로도 달아난 적이 없었다. 모든 인간이 내부에 그것을 갖고 있었다. 



 

마크는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

 


 

데본 펠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시멘트 바닥에 모로 누워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주위에 널려 있었고 끈끈하고 붉은 피가 잿빛 바닥에 엉겨 있었다. 


 
마크는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새어나온 것은 나직하고 숨찬 신음 소리뿐이었다.

 


그는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의 손은 아직도 충격으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환각제의 약효가 썰물처럼 순식간에 그의 몸에서 빠져나갔고 정신을 잃을 만큼 지독한 경련만 남았다.


 
“ ...데....본? ”

 


처음이었다. 마크가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은.

 


데본 펠은 한동안 아무런 반응도 없이 누워 있었다. 마크는 자신이 그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가책은 없었다. 공포조차도. 오직 감각을 마비시키는 현기증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되풀이했다.


 

“ 데본.... ” 


 

데본은 서서히 몸을 뒤척였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 아래에는 검은 그림자가 패여 있었다. 마크는 그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본 적이 없었다. 


 
“ 기분이 어때? ”

 


그의 음성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마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관자놀이 부근의 검은 머리칼 사이로는 산산조각난 유리 파편들이 빛을 내쏘고 있었다. 


 

마크는 눈을 깜박였다. 처음으로 공포가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일어나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데본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그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데본이 다시 물었다.


 

“ 기분이 어때? ”


 

마크는 마비된 혀를 가까스로 움직였다.



 

“ ....앰뷸런스를 부를게... ”


“ 필요없어. 제대로 맞지도 않았어. ”



 

데본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한 손을 뒤통수로 가져갔다. 그리고 피 묻은 유리 파편을 뽑아내 바닥에 내던진 후 뒤통수를 여러 차례 문질렀다. 마크는 구토기가 치미는 것을 느꼈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 ...병원에 가야 해. ”


“ 병원에 가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너 같은데, 귀족 도련님. ”



 

데본은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간 웃음, 눈과 코와 뺨은 전혀 무감각한 웃음이었다. 



 

" 빛이 있었어? “



 

이제 데본은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질문과 마찬가지로 마크는 두 번째 질문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다만 부들부들 떨며 피가 흘러나오는 데본의 머리에 손을 뻗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데본은 몸을 움츠렸고 차가운 검은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 건드리지 마. ”


“ ....미안해. ”


“ 미안할 건 없어. ”



 

데본은 서서히 일어섰고 한 손을 들어 햇살과 눈 사이를 가렸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그림자 속에 잠겼다. 



 
“ 이제 그만 꺼져. ”

 



그 말에도 불구하고 마크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마비된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렴풋하게 그는 뺨과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축축한 습기를 느꼈다. 하지만 그게 식은땀인지 눈물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데본은 바닥에 뒹굴고 있는 깨진 유리병을 주워들었다. 있는 힘껏 내리쳤기 때문에 반쯤은 깨져 달아나고 남은 것은 들쭉날쭉하고 흉측하게 날이 선 병목 부분뿐이었다. 처음으로 마크는 병의 색깔과 모양을 보았다. 그건 하이네켄 맥주병이었다. 데본은 깨진 병을 들어 올려 햇살에 비추어보고 있었다. 그건 버드와이저나 밀러 병처럼 갈색이 아니고 마음을 사로잡는 녹색이었다. 햇살이 일렁이는 가운데 깨진 병은 기이한 심해의 녹색을 발산하고 있었고 군데군데 튄 핏자국들이 어두운 얼룩을 이루고 있었다. 그 얼룩들은 마치 바다를 유영하는 해파리처럼 보였다. 마크는 거기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데본 역시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렇게 서 있었다. 


 
갑작스럽게 데본은 시멘트 바닥에 병을 내던지고 걷기 시작했다. 마크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머리에서 여전히 피를 흘리며 언제나처럼 느릿느릿하고 무심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부분의 피는 정수리로부터 내려와 오른쪽 관자놀이로 향하는 부분에서 흐르고 있었다. 파편을 뽑아낸 부위가 길게 찢어져 틈새처럼 벌어져 있었고 흘러내리는 핏방울 아래로 검붉은 피가 엉기고 있었다.

 



마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시멘트 바닥 위에 앉아 있었다.

 



 

*   *   *




 
 

카르멘은 그레이와 함께 햇살을 받으며 공원의 잔디밭에 누워 있었다. 그레이는 야구 모자를 눈 아래로 내려쓰고 편안하게 누워 있었고 카르멘은 그의 무릎을 베고 있었다. 


 

“ 눈 아프지 않아? ”


“ 괜찮아. 태양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옆의 구름을 보고 있어. ”



 

그레이는 모자를 벗어 카르멘의 머리에 씌웠다. 그리고 조금 전에 카르멘이 하던 대로 눈을 커다랗게 뜨고 하늘을 응시했다. 눈부신 태양과 주위를 맴도는 흐릿한 흰 구름떼를 보았다. 하지만 그는 카르멘의 말대로 구름에 시선을 고정시킬 수가 없었다. 하늘은 서서히 회전하고 있었고 구름들은 미소를 짓듯 그의 시선에서 도망쳐 달아났다. 결국 눈을 멀게 할 듯한 황금빛 태양만이 남았다. 그레이는 눈을 깜박였다. 


 

“ 그도 그래. ”


“ 누구? ”


 
하지만 카르멘은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

 



“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결국 주위의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아. 내 눈 앞에 남는 건 그의 존재 밖에 없어. 눈을 돌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아. 카르멘, 맨 처음에 그를 봤을 때 내 머리 속에 든 생각은 하나 밖에 없었어. 피할 수 없는 게 왔다는 것. ”


 

그레이는 여전히 태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피할 수가 없어.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매일매일 찾아오는 아침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가끔은 숨이 멎어버릴 것처럼 두려워. ”


“ 피할 수 없다는 그 느낌이? ”


“ 터무니없는 상상이 들 때마다. 눈을 떴을 때 내 곁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그가 내게서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언젠가는 그가 내 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순간을 떠올리게 돼. 피할 수 없는 뭔가가 내게 왔던 그 순간 말이야. ”


 

그레이는 마치 혼잣말을 하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 난 이해할 수가 없었어, 카르멘. 난 심지어 남자들을 좋아해본 적도 없어. 그런데 거기 그가 있었어. 난 사랑에 빠졌지. 하지만 그 순간은 그게 사랑인지 뭔지조차 알 수가 없었어. 그저 이건 피할 수 없는 거라는 깨달음뿐이었어. 그런데 그가 느낀 것도 그런 식이었을까? 때때로 그는 너무나 멀리 있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 내겐 열리지 않는 곳. 그에겐 그런 곳이 있어. 그리고 그가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 난 혼자야. 그건 한밤중에 잠이 깼을 때 그가 내 곁에 없는 것보다 더 무섭게 느껴져. 종종 그는 악몽을 꾸고 일어나 홀로 창가에 앉아 있곤 하지. 침대 곁을 쓸었을 때 차가운 시트가 만져지면 물론 난 두려움에 떨게 되지만, 그래도 그럴 땐 그의 이름을 부를 수는 있어. 그럼 그가 대답하지. 아니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누워. 하지만 일단 그가 그 이상한 곳으로 들어가 버리면 아무리 이름을 부르고 아무리 손을 잡아당겨도 난 그를 데리고 나올 수가 없어. 그럴 때면 그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난 혼자야. 그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어. ”



 

카르멘은 레슬러 지미를 바라보던 커트, 자신의 오래된 데모 테이프를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몸을 흔들던 커트를 생각했다. 그리고 가브리엘 던컨의 부드러운 속삭임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보통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그녀는 모자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고 활짝 열린 커다란 하늘빛 눈동자로 태양을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황금빛 광선에 눈이 멀 것 같았다. 그녀는 태양 옆에 무리지은 흰 구름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레이는 여전히 태양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속눈썹 언저리에는 쏟아지는 빛 때문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FIN
2003. 9. 17

 
 



..





카르멘이 책 사이에서 발견해 읽는 종이쪽지에 씌어 있는 데본의 메모는 사실 내가 대학 시절 도스토예프스키 수업 듣고서 작성해 냈던 리포트의 일부에서 따온 것이다. 주제는 도스토예프스키 장편들에 나오는 신에 대한 반역자들에 대한 비교분석이었는데, 이반 카라마조프, 키릴로프, 스타브로긴 등을 주력으로 썼었다. 지금은 표기법에 맞게 키릴로프라고 쓰고 있다만 당시에는 발음에 가깝게 '까라마조프', '끼릴로프' 등으로 표기했고 이 단편에도 끼릴로프라고 썼다. 안 고쳤다. 



여기서 쓴 자유와 신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회사 웹진에 연재했던 러시아 이야기들 중 한 편인 '빵과 자유'란 글에도 인용했다. 내용은 좀 다르지만 하여튼. 그 글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17



오초에 대한 이야기는 악령에서 끼릴로프가 하는 이야기와 백치에서 므이쉬킨 공작이 하는 이야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도, 끼릴로프도, 므이쉬킨도 모두 간질병 환자였다. 




..




아래는 이 글을 쓰고 몇달쯤 후 썼던 아주 짧은 메모이다. 이건 당시 아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동생에게 쓴 편지에 첨부했던 글이었다. 그 당시 우리에게는 고민이 많았다. 관념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note (2004. 2월)
 


 

아마 내가 스타차일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가장 나 자신과 가깝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카르멘이나 커트가 아니라 바로 데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데본과 다를지도 모른다. 데본은 지금의 내가 아니라 몇 년 전까지의 나, 무엇보다도 사춘기 학창시절과 러시아에 다녀오기 전까지의 내 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와 몇 년 전의 나 사이에 유사성과 연속성이 있고 둘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좁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결국 데본은 나 자신의 조금 일그러진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데본이 등장할 때면 너무나 쓸 말도 많고 플롯이나 논리가 금세 완벽하게 구성됨에도 불구하고 글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왜냐하면 데본에 대해 쓴다는 것, 데본의 언어에 대해 쓴다는 것은 나 자신을 거울에 놓고 들여다보는 행위와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난 언제나 자신에 대해 쓰거나 자신을 모델로 놓고 쓰는 경우에는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해왔다. 그것은 타인에게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자기 보호본능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똑바로 이해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 


 

스타차일드 25편을 쓰면서 난 데본을 사랑했다. 그리고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있어 아마 데본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카르멘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더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데본은 나 자신, 혹은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무척 가까웠다. 그리고 카르멘은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이라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카르멘이 틈새에 대해 말하는 것, 틈을 보이고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에 대해 말하는 것 역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한 개념일 것이다. 자신의 틈새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약하고 무섭고 혐오스런 부분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그럼으로써 자신을 깨뜨려줄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 사랑의 신비가 아닐까. 

 



..





전에 올렸던 스타차일드 다른 이야기들 링크는 아래.


open up and bleed : http://tveye.tistory.com/7072
staying in the darkhttp://tveye.tistory.com/5413 
크리스마스 파편(데본 펠) : http://tveye.tistory.com/4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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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2. 23:06

쪼끔 찐하려다 말았음 sketch : 지나와 말썽쟁이2018. 10. 2. 23:06




오늘은 평소보단 쪼끔 찐하게. 그래봤자 그다지 안 찐함. 



먼저 지나랑 미샤. 막 들이대며 백허그하고 있는 미샤~ 그리고 '어머 얘 별꼴이야' 하면서도 내심 좋아하며 받아주고 있는 지나.



... 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런 상황임.




미샤 : 지나야~ 너한테서 엄청 맛있는 아이스크림 냄새 나~ 킁킁~~~ 이거 무슨 향수야?



지나 : 향수 아니고 진짜 아이스크림 먹어서 그렇지롱~ 방금 에스키모 한개 플롬비르 한개 소르베 하드 한개 먹었지롱~~



미샤 : 넘해... 내거 하나도 안 남겨놨어 ㅠㅠ




두번째 스케치는 미샤 혼자 :) 샤워하고 나와서 조금 헐벗으심. 







미샤 : 근데 나 왜케 말랐어? 



토끼 : 아직 어른이 안 돼서 그래. 사춘기 때야. 



미샤 : 근데 왜 헐벗어? 



토끼 : 자꾸 꼬치꼬치 묻지 마 -_-


..



마지막 스케치는 약간 15금. 며칠 전 그린 키스 스케치(http://tveye.tistory.com/8434)에 이어. 








미샤 : 어 이번엔 둘이 헐벗었다~



트로이 : 우와 나 옆얼굴 다 나왔어!!! 나 여태 나온 거 중에 젤 많이 나왔어 크흑 감동... 



토끼 : 근데 지난번 스케치도 그렇고 이번 것도 그렇고 트로이 너는 원래보다 넘 미화됐음. 



트로이 : 다샤님이 나보구 벤 휘쇼 느낌이라 했는데 ㅠㅠ 



토끼 : 아니야! 너는 등짝만 보이는 무명의 피아니스트 아저씨 느낌이야!



그 피아니스트 아저씨(아스토리야 호텔) : 토끼야... 나... 앞모습 멀끔하고 잘생겼다며... 



토끼 : 그러니까 '등짝만 보이는' 이라고 했잖앗!




(등짝만 보이는 아스토리야 호텔의 피아니스트 아저씨 얘긴 여기 : http://tveye.tistory.com/8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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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2. 00:04

about writing2018. 10. 2. 00:04





월요일이라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잘 안 들어서 예전에 쓴 글 일부 발췌해 본다. 전에 이 부분 포함한 문단을 따로 올렸던 적이 있다.



사진은 이번에 페테르부르크 갔을때 길바닥에서 발견해 찍은 깃털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는 그저, 이상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새 같았고 유령 같았고 천사 같았다. 어쩌면 바로 그래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차이코프스키의 그 곡에 서려 있는 투명하고 슬픈 음률에는 어딘가 비인간적인 곳이 있었다. 마법에 걸린 백조 여왕 따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환상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안개처럼. 그리고 그는 그렇게 췄다. 안개처럼, 환상처럼 몸을 놀렸다. 자식이 회전했다. 하지만 내가 청했던 정신 나간 푸에테, 다리를 채찍처럼 휘젓는 곡예는 아니었다. 아주 느리고 비현실적으로, 깃털이 부유하듯 돌았다. 온몸이 날개와 깃털과 공기, 그리고 그 자욱하고 달콤한 냄새로 이루어진 것처럼 돌았다. 그리고 음악이 끝나는 순간 자식이 나갔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스며들고 증발하는 기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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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구름과자 포로로 피우고 있는 미샤 스케치(http://tveye.tistory.com/8371)에 다샤님이 달아주신 소브라니 담배에 대한 댓글 덕에 검색을 해보고는 연보라색 소브라니 칵테일 담배(..라고 쓰고 연보라색 수수깡이라고 읽는다 ㅠㅠ)를 피우고 있는 미샤를 그렸던 적이 있다(http://tveye.tistory.com/8413)



그때 '오잉 내 취향엔 이런 핑크 민트 연보라 파스텔톤 소브라니 칵테일 담배보단 올블랙에 금장필터를 두른 소브라니 블랙 러시안이 더 이쁘다!' 라고 생각했었다 :) 



그래서 소브라니 구름과자 2탄으로 오늘은 블랙 러시안 피우고 계신 미샤를 그려봄. 금실 자수 놓인 검정 벨벳 가운 입혀서 극장 풍의 벨벳 의자(빌로드 의자라고 해야 어감이 더 어울릴 듯 ㅋㅋ)에 하염없이 늘어져 계심. 



나름대로 담배 색깔에 맞춰서 옷을 입혔는데 쫌 너무 화려한가 ㅋㅋ 공작새 같은 넘이니까 나름대로 좋아하며 입었을 것 같다 :)



그런데 이넘은 담배 몇개비 피우지도 못하는 주제에 허세만 가득 :) 그리고 아무래도 담배 한 모금 피운 후 졸려서 꿈나라로 가신 듯 ㅋㅋ 근데 쟤 저러다 불이라도 나면 우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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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자아비판 중인 학창시절 말썽쟁이 미샤. 보통은 잘 안 걸리는데 한번 걸리면 대박으로 걸려서 이렇게 자아비판하고 벌점받고 징계 왕창...



불시점검맨 : 이넘아 뭘 잘했다고 울먹울먹! 어리둥절한 척 하지 마랏!


미샤 : 히잉... 나 억울한데 ㅠㅠ 내가 뭘 잘못했어 엉엉... 왜 혼내 엉엉... 이해가 안 가 엉엉... 


불시점검맨 : 이 날라리넘 확 머리 벌초해버릴라!


미샤 : 으앙 지나야 구해줘...


지나 : 불시점검맨은 나도 못 이긴단 말이야 ㅠㅠ (그래도 미제 쪼꼬 나한테 줬다고 실토 안해서 고마워)



... 손목 붕대는 기숙사 창문 넘다가 불시점검맨에게 걸리는 바람에 창틀에 긁혀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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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스케치는 추워서 꽁꽁 옴츠리고 있는 미샤 :) 그런데 이넘은 두툼한 목도리도 두르고 장갑도 껴서 나름대로 잘 껴입은 것 같지만 잘 보면 모자도 안썼고 패딩 재킷은 길이가 짧고 심지어 그 아래에는 청바지 입었음. 속빈 강정!!!



미샤가 끼고 있는 저 은회색 장갑은 옛날 생각하며 그렸다. 옛날에 첨 러시아 연수 가서 기숙사에 살 때였는데, 내가 도착한 건 8월말이었기 때문에 페테르부르크(미샤 저 시절은 레닌그라드) 겨울 추위가 어떤 건지 몰랐다. 장갑도 목도리도 안 챙겨갔다. 근데 10월초가 되자 눈이 막 오고... 무지 춥고... 길은 맨날 질퍽질퍽하고... 너무 추워서 결국 지하철역 앞에서 심지어 좌판도 없이 그냥 신문지 같은 거 깔아놓고 물건 파는 아주머니에게서 장갑 한켤레 사서 끼었다. 내가 산 건 저런 은회색이었고 쥬인이 샀던 건 갈색이었던 거 같은데 가물가물... 



그 당시에는 물자가 모자라고 또 비싸다 보니 이렇게 물건을 몇개씩 떼어다 일반인들이 길거리에 서서 팔았다. 제일 뜬금없었던 건 레이드(살충제)였는데 그거 파는 사람들 많았음. 근데 필요하긴 했다. 바퀴벌레 너무 많았음 흑흑... 



당시 장갑 사고는 얼마 후 목도리도 샀는데(빨간 체크) 그것도 길거리 아줌마에게서 샀는지 시장에서 샀는지 긴가민가.. 근데 목도리는 돈 아끼려고 좀 싼거 샀더니 길이가 짧아서 두번 동여매면 끝만 뾰족하게 튀어나왔음 ㅠㅠ 



하여튼 그래서 그 추억 생각하며 미샤에게 그 색깔 장갑 끼워줌. 나랑 쥬인이 살았던 기숙사는 '까라블레스뜨로이쩰레이' 거리에 있었는데 그래서 둘이 장갑끼고는 '우리는 까불파다!' 하고 으스댔다 ㅋㅋㅋ (까라블 거리에 사니까 까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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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스케치는 한겨울에 수업 마친 후 바람 씽씽 부는 버스 정류장에서 전차 기다리고 있는 알리사. 그려놓은지는 꽤 됐는데 그간 바빠서 스케치 별로 안 올렸었음. 후드 달린 케이프 코트에 두툼한 목도리까지 챙겨놓고 장갑은 잃어버렸음.



알리사 : 힝힝 너무 춥다... 손시려... 바람 막아줘야 되는 친구넘이 수학 낙제해서 나머지 공부하느라 같이 못나왔어...


트로이(라고 쓰고 수학 낙제한 넘이라 읽는다) : 야! 나는 그냥 바람막이일 뿐인 거야? 넘해 ㅠㅠ


미샤 : 마자, 너는 집채만하니까 등 뒤에 있으면 바람 안 맞아서 좋은데... 


트로이 : 다들 넘해 흑흑... 나도 누가 바람 좀 막아주면 좋겠어 엉엉...


토끼 : 근데 너보다 키큰 애가 아직 하나도 안 나왔어... 더 큰 애는 쓰기 싫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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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anks to 다샤님

 

 

얼마 전 올렸던 구름과자 포로로 피우고 있는 미샤 스케치(http://tveye.tistory.com/8371)에 다샤님이 달아주신 댓글(미샤는 알록달록 소브라니 담배 피워도 이쁠 거 같다는 말씀이었음~)을 보고 '오잉? 소브라니 담배가 모지?' 하고 이미지 검색해보고는 간밤에 그려보았음 :) 그런데 분명히 사진 속 소브라니 칵테일 담배는 되게 이쁘고 우아하고 여성스러웠는데 내가 똥손으로 그렸더니 그냥 금테 두른 연보라색 수수깡이 되었다 ㅋㅋㅋ 역시 성질급한 앞발 ㅠㅠ

 

 

그런데 이거 그린 후 자고 일어났더니 다샤님이 소브라니에 대한 이미지 링크도 걸어주셨음. 오오 우리의 텔레파시가 통한 것인가봅니당~~

 

 

미샤 : 잇힝~ 이쁜 담배 득템~ 나는 이쁘니까 이쁜 거 피워야지~

 

유라/시골 의사선생님/단추 : 피우지 말라고 했따아아아아아!!!!!!!

 

미샤 : 나 담배 좋아서 피우는 거 아니야 이쁘니까 그냥 입만 대 보는 거야~~ 인스타용이야~~

 

단추 : 이 시절에 인스타가 어딨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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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케치는 독서삼매경에 빠진 알리사. 문학소녀 :))

 

 

 





먼저 그린 알리사에 이어 역시 독서삼매경에 빠진 말썽쟁이 미샤도 한컷 :)) 눈이 땡글땡글~~



미샤 : 알리사 누나~ 나도 문학소년할래요~~


알리사 : 땡땡이나 치지 마!


트로이 : 너도 땡땡이 친 적 있자낫!


알리사 : 난 그래도 1등하자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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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기 전 스케치는 폭신폭신한 괭이 안고 좋아하고 있는 소년 미샤 :) 괭이는 지도 좋으면서 무심한 척 하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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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선 두군데 숙소에 머물렀다.


두번째 숙소는 내가 여기서 가장 좋아하는 아스토리야 호텔인데 여기는 로비 카페가 아름다운 푸른색과 녹색, 편안한 소파, 로모노소프 찻잔, 맛있는 디저트 등 여러가지로 내 마음에 쏙 들어서 페테르부르크 올때마다 이 카페에 자주 온다. 딴데 묵어도 들르고, 묵을땐 거의 격일에 한번은 가서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한번쯤 김릿을 마신다.




이 카페는 이렇게 피아노 연주를 해주는데 음악은 항상 같다. 올드팝, 이지 리스닝 팝 등등. 헤이 주드, 아이 저스트 콜드 투 세이 아이 러브 유, 플라이 미 투 더 문 등.. 몇년째 같다. 배경음악, 백색 소음에 충실하다.



이번에도 여기 카페에 자주 가서 차 마셨는데 내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는 피아노랑 가깝다. 피아니스트 뒷모습과 옆모습을 보곤 했다. 늘상 저렇게 연주복을 입은 채, 조금은 뻣뻣하고 조금은 심드렁한듯, 하지만 또 조금은 어색한듯, 그리고 ‘자 오늘도 똑같은 거 쳐야 하지만 그래도 해보자’ 하는 듯한 표정(이건 사실 내 상상임. 옆얼굴까지만 보여서 ㅋㅋ)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몇곡 치고. 잠깐 자리 비웠다 돌아와 다시 치고 등등..



이번에 이 연주자를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몇년 전 쓴 글의 주요 인물이었던 트로이가 떠오르곤 했다. 트로이가 훨씬 키가 크고 머리색도 더 연하고 이따금 쓰는 안경도 훨씬 촌스러울테지만. 저 남자의 어깻짓이나 표정(그러니까 반쯤은 내가 상상한 표정), 늘상 같은 곡들을 연주하며 화려한 호텔 카페 한가운데에서 투명인간이나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인물. 어딘가 뻣뻣하면서도 살짝 부끄럼타는 듯한 느낌 때문에.



뭐 사실 다 내 상상이고 이미지다. 저분이 실제로 어떤지는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여기 카페에 앉아 있을때마다 저 피아노 연주자를 보고 같은 곡들을 듣고 있자니 다시 글이 쓰고 싶고 트로이에 대해 쓰던 순간들과 그를 불러내던 과정들이 떠올라서 조금 행복했다.



...




아래는 그 글 초반부에서 트로이(본명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에 대해 서술한 부분 일부이다. 실제로는 이 인물에 대한 구상노트였는데 그것들을 거의 그대로 소설에 옮겼기 때문에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전에 about writing 폴더에 이 부분 포함 조금 더 길게 발췌하고 그 과정에 대한 메모 남긴 적이 있다. 링크는 맨 아래. 근데 폰으로 올리고 있어서 링크가 제대로 안걸릴수도 있음.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다. 보통 그 정도로 키가 큰 사람들은 시선을 끌기 마련이지만 트로이츠키는 그렇지 않다. 아마 그의 별 특징 없는 머리색과 흐릿한 얼굴 윤곽, 언제나 앞으로 굽어 있는 어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197센티미터의 키에 언제나 뻣뻣하게 뒤엉키는 긴 팔다리를 늘어뜨린 나무인형 같은 사람이다. 새치가 드문드문 섞인 우중충하고 어두운 금발을 전형적인 문과 대학원생 스타일로 멋대가리 없이 짧게 깎은 데다 아무리 다림질을 해도 결국은 어딘가가 구겨지고 마는 셔츠와 소매가 접히는 재킷을 입고 다닌다. 구두 뒤축은 언제나 찌그러져 있고 바짓단에는 자주 진창 얼룩이 진다. 그는 구부정한 자세로 왼쪽 발을 살짝 끌면서 걷는다.



   
 부드러운 잿빛 눈의 뼈대가 굵고 조금 야윈 남자, 두세 명만 옆에 있어도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사람이다. 아마 당신은 네프스키 거리나 국립대학 앞 강변을 걷다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와 수십 차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모임이나 파티에서 당신에게 그를 소개해준다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인사를 한 후 돌아서자마자 그의 얼굴을 잊어버릴 것이다.




http://tveye.tistory.com/m/7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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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인데 둘다 딴생각하며 멍 때리는 중. 미샤는 아이스크림, 지나는 케익 ㅋㅋ



레닌과 공산주의에 대한 수업이었씁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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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스케치 한장. 구름과자 드시며 연기 포로로 내뿜고 있는 미샤. 이때는 감옥 가기 전이라 아직 담배 한두개비는 피워도 괜찮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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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피곤해서 일상 스케치는 생략. 이건 어제 비행기 안에서 그렸던 스케치 중 하나. 빨간 러시아 숄 뒤집어쓰고 마트료슈카처럼 토실토실 볼 발그레한 꼬마 알리사 :) 하지만 언제나처럼 뿌루퉁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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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스케치는 아침에 일어나 머리 틀어올리고 있는 발레리나 지나 :) 복슬복슬 구름같은 곱슬머리에 머리숱도 많아서 헤어핀이 많이 필요함^^;



창가에 앉아 이거 색칠하면서 찍은 사진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8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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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스케치는 내가 좋아하는 배색으로 차려입은 미샤 :) 빨강과 검정은 언제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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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스케치는 기분 좋아지고 싶어서 그린 꼬맹이 지나. 서너 살 무렵. 러시아 숄 뒤집어쓰고 러시아 아가들 전통의상 입고~ 



외할머니 계신 시골 가서 꼬까옷 얻어입고, 들판에 나가 뛰놀다가 들꽃 한다발 꺾어서 해해 웃으며 세상 행복~~ 할머니가 블린도 잔뜩 구워주고 직접 만드신 잼 곁들여 차도 끓여주고 오냐오냐 이뻐해주니 그저 신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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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8. 16. 00:00

냥이랑 병아리들 sketch : 지나와 말썽쟁이2018. 8. 16. 00:00





오늘 스케치는 선생님네 냥이에게 흠뻑 빠져서 어쩔 줄 모르며 좋아하고 있는 꼬맹이 미샤랑 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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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과는 달리 나도 어릴 땐 여름 좋아했다. 방학이라 좋았고... 시골 외가에도 가고 계곡에서 놀고... 튜브 끼고 첨벙첨벙 놀고 다슬기 잡고... 물놀이 엄청 좋아했고... 흑... 맘껏 뛰놀던 시절 그립구나.



그래서 오늘은 해수욕장 놀러간 어린 미샤랑 지나 스케치 각각 한 컷씩. 



미샤랑 지나는 둘다 겨울이 길고 기후가 혹독한 레닌그라드(지금의 페테르부르크) 토박이들이라 그쪽 동네 사람들 특유의 '여름이 최고... 여름 언제 오니' 하는 여름 사랑이 장난 아니다 :) 



엄마랑 아빠가 입혀준 파랑하양 줄무늬 비치웨어랑 모자 차림으로 모래사장에 엎드려 불가사리랑 조개껍데기 갖고 노느라 신난 꼬맹이 미샤 :)







튜브 끼고 아이스크림 들고 완전 행복한 꼬맹이 지나 :))



이 당시는 둘이 서로 모르던 꼬꼬마 시절~ 둘다 눈땡글 토실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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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병아리 지나랑 말썽쟁이 스케치 :) 어린 미샤가 제일 좋아하는 초코 입힌 에스키모 아이스크림 바 + 단 거라면 뭐든지 좋아하는 지나 손에 쥐어진 뱅글뱅글 색동 캔디. 



그래서 둘은 세상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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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는 이렇게 보냈다. 차를 마시고 책을 조금 읽었다.





푸쉬킨 찻잔 꺼냄.





간만에 창가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 펼쳐놓고 약간의 글쓰기 작업. 엄밀히 말하면 글쓰기는 아니고 오래된 글을 조금 손질함. 다샤님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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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8. 4. 23:25

아이 서러워 엉엉 sketch : 지나와 말썽쟁이2018. 8. 4. 23:25





오늘의 스케치는 심통나서 앙앙 울고 있는 아가 미샤. 우는 이유는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안 줘서...




엄마 : 으깬 감자 한 접시 다 안 먹으면 아이스크림 안 줘!



미샤 : 으아아앙 우앵 감자 시러어어어 아이쭈꾸림 으아앙 으앵애앵 아빠아아 아이쭈꾸림 으아아아 ㅠㅠ



아빠 : 아빠가 몰래 감자 묵어줄게 ㅠㅠ



엄마 : 뭐야 수작부리지 마랏! 다 보고 있다!



..




원래 예전에 이거보다 먼저 그린 스케치가 있음. 그건 이거 다음에 일어난 일임. 앙앙 우는 게 결국 안 통해서 으깬 감자 퍼먹고 있는 꼬마 미샤 그림 ㅋ 여기 : http://tveye.tistory.com/7878 



그린 시기가 달라서 미샤가 입은 옷 스타일이랑 베개 색깔이 다릅니다만 뭐 어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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