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리시안셔스. 그런데 이 피치 프릴 리시안셔스는 좀 양배추 같은 화형이라는 것을 망각했었다.. 하얀색은 장미 같은 화형이라 이쁜데... 피치 고른 거 후회 중 ㅠㅠ 그래도 풍성해서 또 나름 나쁘진 않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야 했기에 새벽배송온 꽃을 급하게 다듬어 화병에 꽂아두고 나갔다. 그나마 리시안셔스는 다듬기 쉬운 꽃이라 다행. 다음주엔 라넌큘러스를 주문해야겠다.
새벽에 깬 후 다시 잠드는데 실패해서 6시간 남짓 불량수면을 취하고 출근했다. 소박하지만 또 중요한 행사를 진행해야 했다. 최고임원도 모셔야 했다. 어쨌든 오전에 행사를 그럭저럭 잘 마쳤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만 싶었지만 작금의 괴로운 과제 때문에 윗분이 같이 점심 먹자고 하셔서 할수없이 식사까지 하고서야 퇴근했다. 지하철에서 너무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았다.
귀가해 목욕을 하고 오후의 차를 우려 마셨다. 정말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이번주는 토요일까지 출근한데다 이틀이나 빡센 외근을 했던 터라 피로가 많이 쌓였다. 내일 하루로 이 피로가 풀릴지 미지수임. 그나마도 어제 저녁에 청소를 해놓은 게 다행이다. 비록 어젠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그리고 엄마가 어제 갖다주신 육개장과 갈치구이와 계란말이 덕분에 따로 음식을 만들지 않고도 저녁을 잘 챙겨먹을 수 있었다.
새벽 꿈에 블라지미르를 잠깐 본 것 같은데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나를 비롯한 무수한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었고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들어준 사람이니까, 지금은 더이상 아프지 않기를, 평안하고 자유롭기를 매일 밤 기도하며 잠자리에 든다.
이른 아침 나가서 일하고 돌아와 오후의 티타임. 딸기케익 앞의 쿠야. 그런데 이 케익은 너무 달고 맛이 없어서 절반도 못 먹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가게(집 근처의 개인이 하는 디저트샵임)는 이런 생크림 과일케익류는 다 너무 달았고 차라리 초콜릿케익이 맛있었는데.. 오늘은 선택지가 너무 없었음.
빡센 외근 후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중간에 20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근처 카페에서 엄청 당도높은 베리 라떼를 마셨다. 이걸 좋아하긴 하는데 혈관이 막히는 건 아닌가 좀 죄책감을 느끼며 마신다. 추워서 따뜻한 걸 마시고 싶었지만 이 카페는 이게 제일 맛있는데다 다른 건 마실만한 게 없었다.
오전에 시내에서 최고임원이 강권한 과제 때문에 피곤한 답사와 미팅. 진빠지고 힘들었다. 구구절절 쓰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 그냥 이 정도로만... 윗분과 실무자와 함께 경복궁역 근처의 유명한 식당에 가서 삼계탕을 먹었다. 관광객이 대다수였다. 맛있긴 했는데 내 입맛엔 너무 짜서 계속 목이 말랐다.
그리고는 진료를 받으러 갔고, 이후엔 근처에서 또다른 미팅. 이 미팅이 생각보다는 빨리 끝났다. 지하철을 타고 머나먼 횡단 끝에 간신히 귀가해 막 씻고서 앞머리를 자르고 있는데 부모님이 갑자기 오셨다. 김장을 하셨다면서 맛있는 알타리 김치와 갈치구이, 반찬, 육개장 한냄비를 갖다 주셨다. 내가 이번주에 늦게까지 일을 하는데다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고 하자 '먹을 것도 없고 저것이 또 반찬을 사먹고 있겠구만!' 하는 생각에 오셨다고 한다. 그러더니 후다닥 가심. 좀 있다가 가시라고 붙잡았으나 엄마가 수영 시간이 빠듯하다며 휘리릭 가버리셨다. (매일 동네 수영장에 가심) 그래서 저녁은 갈치구이로 잘 먹었다. 값비싼 갈치라고 하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부모님이 집이 왜이리 지저분하고 엉망이냐고 한숨을 쉬셨다. 본시 금요일의 집 상태가 제일 최악이다. 일주일 내내 정신없이 일하고 집에 와서는 뻗어버리니 당연히 현관에도 재활용 물품들이 쌓이고 정리는 안되고 청소도 안돼 있으니 먼지가 제일 많고... 토요일에 오셔야 청소를 해서 깨끗한 집을 볼 수 있는데 왜 꼭 금요일에 오시느냐고 했더니 엄마가 혀를 차셨음. 하여튼 부모님이 가신 후 거대한 박스들을 비롯한 온갖 분리수거를 하느라 두번이나 더 내려갔다. 이번주엔 캐리어와 패딩코트를 주문해 받아서 엄청 큰 박스가 두개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이마트에서 온 식료품들을 정리하고 쿠팡에서 온 제습제들을 꺼내 온 집안 여기저기 갈아두고 이미 수분이 꽉찬 예전 제습제들을 갈라서 물을 따라내고 용기를 버리는 등 정신이 없었다. 청소까지 하려다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들어가 30분가량 쉬다가 간신히 일어나 저녁을 먹고 청소를 했다. 내일 아침에 또 출근해야 하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일찍 온 오늘 해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토요일에 출근했다가 돌아와서 청소까지 하려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아서.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금요일이지만 금요일 아닌 느낌... 자꾸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흐르는 것이 혹시 감기 기운인가 싶어 조마조마함. 흐흑 빨리 자야겠어. 역시 저 차가운 베리라떼가 아니라 따뜻한 걸 마셨어야 했나.
아마 이 영상들이 내가 가서 이틀 연속으로 봤던 때인 것 같다. 2014년 7월. 마린스키 구관. 이때 메조에서 실황 녹화를 했는데 이틀 연속으로 발로쟈와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가 올라왔다. 녹화는 첫날이 아니라 둘째날 버전으로 나왔다. 나는 첫날 공연이 더 좋았기에 아쉬웠다. 막상 나온 녹화본은 구도를 제대로 잡지 못해서 이 사람의 도약이나 표정 연기를 100분의 1도 못 담아내서 아쉬움은 배가되었다. 아래 클립은 팬이 찍은 거라서 화질이 안 좋고 많이 흔들리는데 오히려 메조 녹화본보다는 이쪽이 낫다. (근데 메조가 맞나 긴가민가... 나는 이 라 바야데르와 청동기사상 둘다 실황 녹화할 때 공연을 봤었다)
흔히들 솔로르의 멋진 춤은 2막 결혼식 솔로라고들 하지만 그건 기예를 중점적으로 볼 때 그렇고, 이 사람의 솔로르는 3막에서 진가를 보여주곤 했다. 충만하고 사무치는 솔로르였다. 3막 솔로르는 단순한 점프나 테크닉만으로는 완벽해질 수 없다. 드라마 배우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신을 온전히 배역과 무대에 동화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블라지미르의 솔로르는 정말 최고의 솔로르였다.
먼저 망령의 왕국 도입부. 등장 솔로. 영상을 보면 둘째날인 것 같다. 첫날은 깃털이 아주 가지런하고 예뻤고 둘째날은 깃털이 흐트러지고 갈라져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둘째날 버전으로 녹화가 나온 걸 보고 또 아쉬워했었다.
그리고 파이널 2인무.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의 니키야에 이어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솔로르. 이 사람이 추는 솔로르를 여러번 무대에서 봤는데 볼때마다 이 부분에서는 숨이 막히곤 했다.
어제 외근 때문에 늦게 귀가한데다 워낙 많은 연타를 맞아 머리가 아팠기 때문에 잠도 늦게 자서 수면 부족 상태로 새벽 출근했다. 7시에 도착했는데 너무 피곤하고 춥고 눈도 오고 힘들어서 사무실 근처 별다방에 들어가 녹차와 소금빵 약간, 그리고 집에서 싸온 삶은 달걀 1개를 먹으며 멍하게 쉬다가 일하러 갔다.
이건 점심 때 동료와 후배랑 들른 회사 근처 작은 카페.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작고 아늑한 곳.
오늘도 매우 바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어제 최고임원이 우리에게 엄청난 연타를 먹인 문제의 신규과제 때문에 오늘도 전문가들을 모시고 자문을 했는데 역시나 우리 마음이 그들의 마음, 의견 일치 ㅠㅠ 문제는 최고임원께서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너무너무 피곤하고 머리가 아팠다. 회의장소에 난방이 되지 않아서 너무 추워서 덜덜 떨기까지 했다. 내일도 이 과제 때문에 아침부터 시내로 출장을 나가야 한다. 여러모로 피곤하고 걱정이다. 흑흑... 내일이 금요일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싶지만 이번주는 토요일에도 출근해 행사 진행을 해야 한다. 아 모르겠다, 빨리 자러 가야겠다.
아침부터 밤까지 무척 피곤하고 힘든 하루였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출근길이 정말 힘들었다.
아침부터 최고임원께 보고하러 갔는데 온통 비논리적이고 자기 주장만 펼치시며 억지를 부리셔서 일이 더 힘들어졌고 수수방관하던 다른 본부장들도 예산 마련 때문에 불똥이 자기네로 튀자 갑자기 정색하며 처음 듣는 일인양 오리발 내밀며 펄펄 뜀 ㅠㅠ 나보고 어쩌라고... 거기에 다른 문제들도 이어져서 오늘은 정말 계속 강펀치로 두들겨맞는 기분.
저녁엔 다른 골치아픈 업무 때문에 늦게까지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파티에 가야 했다. 처음의 프리젠테이션 시간엔 결국 졸았다ㅠㅠ 본시 파티를 싫어하는지라 정말 피곤했다.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간신히 택시를 잡아 귀가하니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간을 넘겼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멍멍하다. 잠시 후 자러 가야겠다. 내일은 제발 눈이 그쳤으면...
18년엔가 19년, 발로쟈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신데렐라의 왕자를 췄을 때 나는 그 표를 끊어두었지만 너무 일이 바빠서 가지 못하고 결국 표도 취소해야 했다. 못 간다고 슬퍼하자 이 사람은 '다음에 와서 봐주면 되지' 하고 위로를 해줬었다. 라트만스키 작품들은 워낙 편차가 심하고 특히 러시아를 떠난 후 다른 나라들에서 리메이크한 작품들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신데렐라는 좋아했다. 맨처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즈베레프와 바토예바 페어로 마린스키 신관에서 이 작품을 봤었다(아마 신관 오픈 후 내가 처음 가서 봤던 공연이었을 것이다) 중간중간은 좀 산만했지만 파이널의 로맨틱함과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무척 아름다워서 좋아했고, 비슈뇨바와 이 사람의 메조 영상을 보자 '아, 이건 정말 완벽하게 이 사람 맞춤 배역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맞춤 배역이 너무 많지만...) 그래서 정말 이 사람의 무대를 보고 싶었는데, 이 사람이 춘 무대를 많이 봤지만 이 작품은 결국 보지 못했다. '다음에 와서 봐주면 되지' 라고 다정하게 위로해줬는데, 이제 그 다음이 없다고 생각하니 무척 슬프다.
오늘은 재택근무를 했다. 이번주까지 업무와 관련해 이수해야 할 필수교육들이 밀려 있었는데 사무실에선 아무리 온라인 교육을 틀어놓아도 계속해서 일이 몰려오니 10분짜리 파트 1개가 시청시간 200분이 되어있곤 해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그렇다고 교육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모니터 한켠에 띄워놓고 클릭만 하면서 계속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식의 교육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참으로 의문이 든다만 뭐 할수없지 ㅜㅜ
유일하게 좋은 점은 재택근무였던 탓에 평소보다 두시간 정도 더 잘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계속 너무 잠이 모자라서 힘들었는데 그래도 오늘은 8시간 가량 잤다. 물론 새벽에 자다깨다 했지만...
내일이 이번주의 1차, 그리고 제일 큰 고비의 날이다. 내일은 오전에 최고임원께 가서 이분이 한달쯤 전 떨어뜨린 굉장히 피곤하고 골치아프고 아무리 봐도 명분이 없는(심지어 다른 부서에서 떠넘긴) 과제에 대해 지금까지의 리서치와 전문가 자문 결과를 보고드려야 한다. 부정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분명 이분은 또 화를 내실 것이고 자기 주장을 밀어붙여 억지로 이 일을 하게 만들겠지 ㅠㅠ 작년에 이분이 오신 이래 늘 이런 식이다. 그런데 제일 높은 분인데다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그리고 명분에 맞는 얘기를 너무 싫어하시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아랫사람들이 무슨 고생을 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철시키고 잠깐 반짝하는 순간의 성과에 희희낙락하시는 분이라 정말 답이 없다. 문제를 조율해줘야 할 차석임원은 나몰라라 하며 부화뇌동, 최고임원봇 노릇만 하고 있고... 하여튼 이 보고도 걱정이 되는데다 저녁 늦게는 또 다른 피곤한 업무(이것도 올초에 떠넘겨진 업무)와 관련해 시내로 나가서 늦게까지 후원 리셉션에 참여해야 한다. 몰라, 나는 운동화 신고 갈거야 엉엉... 내일 심지어 춥다는데 흐흑... 패딩도 못 입고 가... 운동화는 잘 안보일테지만 패딩은 너무 나간 거라서...
2차 고비는 목요일, 3차 고비는 토요일에 있다. 그래도 내일만 어떻게 넘기면 좀 나을텐데... 기운을 끌어모으며 오늘도 늦지 않게 자러 가야겠다...
아직도 슬픔과 애달픔, 가엾고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남아 있어 순간순간 참 가슴이 아프다.
유리 스메칼로프는 블라지미르를 위해 여러 작품을 안무했다. 이 작품은 3분 가량의 소품으로 2016년에 발로쟈가 뮌헨의 바이에른으로 떠나기 몇달 전 안무해줬던 작품이다. 나는 초연은 못봤지만 2016년 6월 마린스키 신관에서 젊은 안무가 갈라 공연을 할 때 이 무대를 처음으로 봤다. 이후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에서 열린 이 사람의 공연에서도 다시 봤다. 이 작품은 아주 짧지만 정서적인 호소력이 굉장하다. 가슴을 뒤흔들어놓는 무대였다. 이 사람 외에는 이 작품을 이렇게 출 수 없을 것이다. 애초부터 이 사람을 뮤즈로 안무한 작품이기도 하고... 두번째로 봤을 때가 훨씬 좋았던 기억이 난다. 노래 제목이 곧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Ne Me Quitte Pas (Не покидай меня), 우리 말로 하면 날 버리지 마. 바이에른으로 떠나기 직전인 6월에 봤던 터라 이 제목은 그대로 내 마음이자 페테르부르크 팬들의 마음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떠나버린 그에게 부질없이 다시금 애원하고 싶은 제목이기도 하다.
사진은 2017년 7월, 블라디보스톡에서 커튼콜 때 내가 찍은 것.
영상은 오래 전에 올린 적이 있지만 다시 올려본다. 팬이 찍은 거라서 많이 흔들린다만... 발레 무대가 모두 그렇듯, 특히 이 사람의 무대는 실제로 봐야만 하는 무대였다. 몸과 마음, 혼을 모두 다 바치는 무대들이었으니까. 과거형으로 쓰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빌니우스에서 돌아와 목욕을 한 후 쿠야는 내내 거실의 이 자리에 앉아 있다. 며칠 전엔가 발로쟈 때문에 너무 슬펐을 때 잠시 쿠야의 머리와 등을 쓸어보았다. 마치 강아지를 쓰다듬듯. 작은 인형으로부터 어떤 온기가 느껴지기라도 하듯. 인형에서조차 그런 온기를 느낄 수 있는데 영혼과 육체를 모두 쏟아놓은 춤이라면 당연히 더 그랬을 것이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내가 그를 그렇게도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 무대들을 보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시간이 갈수록 그 무대와 춤은 더욱 아름다워졌으니까. 그건 단순한 기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기예는 튼튼한 그릇일 뿐. 본질은 무용수와 무용, 움직임 자체의 합일에 있다. 그런 육체가 스러지고 이제 없다는 사실이 오늘은 갑자기 너무나도 생생하고 아프게 와닿았지만, 그 영혼은 이제 평온과 안식을 찾았으리라 믿고 싶다.
어제 열한시가 되기 전, 일요일치곤 그렇게 늦지 않게 잠들었지만 새벽 세시 반에 다시 깨버렸다. 한번 깨기 시작하자 매일 이렇다. 지난 열흘 동안 마음이 너무나 산란해서 더 그런 것 같다. 뒤척이고 또 뒤척이다 30분 정도 얕게 더 눈을 붙인 것 같다. 평소보다 약간 늦게 일어나서 나왔더니만 새벽 6시 20분 지하철은 이미 자리가 없어서 내내 서서 출근했다.
사무실엔 일곱시가 좀 넘어서 도착했고 월요일답게 아주 바쁘게 일했다. 자기가 아주 똑똑하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능력이 모자라고 서툰 직원과 업무 회의를 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함께 짚어나가야 했다. 이 친구는 나에게 엄청난 의지를 하기 시작했는데 좀 걱정이다. 내가 이 업무만 챙겨줄 수도 없고, 연차를 보면 이 사람이 자기 일을 좀 야무지게 해내야 하는데... 내가 실무자도 아니고 지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데... 이 녀석은 벌써부터 내년 초 조직개편과 인사이동 때 내가 다른 곳으로 갈까봐 엄청 걱정을 하고 있다. 내가 딱히 좋아서라기보단 이 업무들을 이 정도로 이해하고 차근차근 살펴서 의지할만한 사람이 나뿐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아니 근데 정말 라떼를 돌이켜보면 윗사람들은 진짜 이런거 안 도와줬어, 내가 다 했었는데 엉엉엉... 뭔가 불공평하다. 내가 처신을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싶지만 지금 나뿐만 아니라 다른 간부들도 다 이모양 이꼴로 업무쓰나미에 잠겨 있다. 사람은 때를 잘 타야 하나보다... 도대체 신삥 시절부터 중견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매일 바쁘고 매일매일매일 혹사...
네프스키 거리와 돔 끄니기 풍경. 사진은 @andrei_mikhailov 카잔 성당 쪽에서, 아마도 드론으로 찍은 것 같다. 높은 곳에서 찍었으니까.
주말이 지나갔고 내일부터 다시 새벽에 일어나 출근해야 한다. 오늘도 새벽에 깼다가 그래도 다시 잠들어서 일곱시간 가량은 잔 것 같다. 밤에 제대로 자야 하니 오늘은 디카페인 티를 마셨다.
마음을 많이 정돈해보며 주말을 보냈다. 오늘은 그가 떠난지 9일째 되는 날이다. 정교에서는 9일째 되는 날 영혼이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기도와 마음을 보내며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60점만 받아도 돼요. 그렇게까지 다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이 말을 듣고 굉장히 많이 울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 말이 언제나 내 마음속 위안이 되고 또 의지가 되어왔다. 우리가 그런 관계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나는 그저 아끼고 사랑하는 관객이자 마음을 다하는 팬에 지나지 않았지만, 만일 그의 곁에 있었다면 이 말을 해줬을텐데... 하긴 넌 80점조차도, 아니, 90점조차도 견뎌낼 수 없었겠지... 그 생각을 하면 평온해졌던 마음이 다시 많이 아파진다. 하지만 이제 다 괜찮을 거라고, 모든 게 다 평안하고 자유로울 거라고 믿으며 기도하고 자야겠다.
이번주는 아주 바쁘다. 일도 너무 많고... 수요일에는 심지어 늦은 밤까지 아주 불편하고 신경쓰이는 후원 리셉션 같은 곳에도 가야 한다. 토요일에도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출근해야 한다. 몸과 마음의 힘을 모아야겠다.
내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고 일주일 전 그 슬픈 소식을 듣고 나서도 차마 건드리지 못했던 블라디보스톡 리플렛 대신 19년 여름에 풀코보 공항 스타벅스에서 만나 이야기하다 사인을 받았던 라 바야데르 무대 리플렛을 꺼내 액자에 끼워두었다. 여기에는 그가 나를 위해 적어준 문구가 있어서... 그는 그때 내 이름의 철자를 물었는데 가르쳐줬지만 결국 마지막 철자는 틀렸다. (마샤는 내 이름을 아주 정확하게 발음했고 외웠는데) '나의 가장 소중한 한국 팬 ㅇㅇ에게, 따뜻한 추억을 위해' 라고 적어줬다.
그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고 그는 발레단과 함께 대만 투어를 가는 날이었는데 인천 경유라 나랑 같은 비행기였다. 나에게 공항에서 보자고 댓글을 달아줘서 우리는 공항에서 만났다.그때 우리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러다 그는 가을에 서울에 와서 유니버설 발레단과 공연을 할 거라고(춘향에 대한 얘기였다) 귀띔해주기도 했다. 정확한 날짜를 찾기 위해 자기 인스타인지 왓츠앱인지에 쌓여 있는 수십개의 디엠을 뒤져서 알려주었다. (두어달 후에 그의 출연에 대한 공지가 날 때까지 나는 입을 꼭 다물고 있었지만 어서 예매 창이 뜨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헤어질 때 난 심지어 내 명함까지 줬는데(내가 도와줄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줘 뭐 이런 말도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악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너무너무 부끄러워했었다.
아침 일곱시 사십분 즈음 꿈에 취해 퍼뜩 깨어났다. 꿈에서 발로쟈를 보았다. 금색과 파란색 벨벳으로 하단이 장식된 하얀 관 앞을 마치 무대를 가로지르듯, 이 모든 것이 무대이며 퍼포먼스라고 말해주듯 높이 뛰어올라 그랑 주테 동작으로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정면을 가로질러 날아가듯 뛰어갔다.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런 동작이 그렇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옆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인사를 하러 온 것 같았다. 꿈에서도 나는 '춤추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잠에서 반쯤 깨어났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인사하러 왔구나... 그는 하얀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 도약과 춤은 마치 로미오나 바질, 지그프리드, 차이코프스키 파 드 두의 솔로를 생각나게 했다. 아마 하얀 의상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좀더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건 로미오였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꿈속에서 처음에 나는 마샤와도 마주해 그녀를 꼭 안고 위로해주었다. 그곳은 욕실이었다. 울면서 머리를 쓸어주었고 아마도 '하느님이 함께 해주실거야' 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와'였는지 '그 사람과'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위로하며 포옹하고 있을 때 옆을 돌아보자 투명한 트로피가 놓여 있는 높은 연단이 있었고 그 아래에 금색과 파란색으로 장식된 하얀 관이 있었다. 실제로 그저께 장례식에서는 검은색 관이었는데. 그 하얀 관은 아주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그리고 나도- 이것이 그 전의 일이라는 것을, 이건 그가 예전에 발레 페스티벌에서 풍부한 표현력으로 상을 받았을 때의 바로 그 풍경이라는 것을, 그리고 발로쟈가 마치 돈키호테의 바질처럼,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곧 무대에 나타나 즐겁게 춤추는 퍼포먼스를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종의 수상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위 문단에서처럼 그가 나타나 높이, 아주 높고 가볍게 도약해 춤을 추며 지나갔다. 슬프지 않고 재미있었다. 유머러스했다. 그때 나는 '춤추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고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구나. 그런데 나중에는 정말로 떠나는데...' 라고도 생각했다.
꿈에서 깨어나 침대에 누운 채, 따뜻한 이불 속에서 한 손을 뺨과 베개 사이에 끼우고 천천히, 가만히 생각했다. 인사하러 왔어. 예전 꿈에서도 많이 봤는데, 그땐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현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물론 꿈속에선 현실보다도 더 노어가 잘 안돼서 괴로워했지만. 이제 이렇게 인사하러 와줬으니까 다음에는 꿈에서 얼굴을 마주보면서 이야기하고 인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맙다고도. 정말, 정말 고맙다고. 이렇게 와줘서. 이 사람은 분명 지금도 춤을 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슬프면서도 조금 따뜻해졌다.
간밤에 너무 피곤하게 잠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새벽 세시 반 즈음 깨어났고 계속 뒤척였다. 토요일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이번주 내내 이렇게 서너시에 깨어나고 못 잤다. 수면이 너무 부족한 상태라 내키지 않았지만 약을 반 알 더 쪼개먹고 잠을 청했다. 이렇게 약을 더 먹으면 깨어난 후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가능한 피하려고 하는데. 이번주는 심지어 이렇게 약을 더 먹고서도 못 잔 날이 이틀이나 더 있었다. 목도 부어서 오후에 은교산도 먹었다. 어쨌든 약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두어시간 반 정도 더 잘 수 있었다.
일곱시 사십분 즈음 꿈에 취해 퍼뜩 깨어났다. 꿈에서 발로쟈를 보았다. 하얀 의상을 입고 마치 무대에 올라왔다가 내려가듯 정면을 가로질러 도약하며 사라졌다. 깨어났을 때 나는 그가 인사하러 왔다고,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꿈에 대해 여기 적었다가 댄스 폴더로 따로 옮겨둔다. 고마워, 발로쟈. 인사하러 와줘서.
한동안 누워 있다가 일어나 새벽과 아침에 도착한 식료품과 생필품, 그리고 꽃을 정리했다. 생각보다 추웠다. 이번주 내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거의 못 이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잘 챙겨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것저것 주문하긴 했지만 막상 풀어놓고 보니 별로 없었다. 꽃을 다듬어 화병에 꽂아둔 후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조금 졸다가 깨다가 하며 늦게까지 누워 있었다. 너무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한시 넘어서야 일어나 목욕을 하고 청소를 하고 너무 입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밥도 먹었다.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분리수거도 하고 왔다. 테이블에 놓아두는 액자에 끼워두는 사진과 프로그램을 바꾸려고 상자를 열어봤다. 예전에 발로쟈에게서 받은 사인이 들어 있는 사진들과 리플렛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스케치 엽서 세트도 발견했다. 당시 마음이 힘들던 시기에 매일 크로키를 하곤 했는데 그때 발로쟈를 위해 그려서 만들어줬던 열장짜리 엽서 세트였다. 주로 그의 발레 배역들을 좀 우습게 그려놓은 것들이었다. 두 세트를 주문해서 하나는 이 사람에게 주고 하나는 내가 가졌던 모양이었다. 나한테 그게 남아 있다는 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었다. 서투르지만 즐겁게 그려진 엽서들을 보니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그때 사진 스티커도 같이 만들어줬는데... 스티커는 한 세트만 만들었던 모양이다.
사실 아직도 슬프고 마음이 무겁지만 어떻게든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한다.
저녁도 늦게 챙겨먹었다. 오후에 늦게 차를 마셔서 잠이 잘 올지는 모르겠지만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어보려고 한다.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미운 백조들'을 두세 페이지 정도 읽었다. 다른 책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따스하고 재미있는 책을 읽어볼까 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냥 차라리 노어로 된 책을 읽으면 나을 것 같았다.
오후에 분리수거하러 나갔을 때 보니 하늘이 연푸른빛이었고 해가 났다. 춥긴 했지만. 빨간 단풍잎들이 빛나고 있었다. 햇살과 단풍을 보면서 블로그 이웃님인 janua님이 위로해주시며 '토끼님이 사랑하는 그분은 따스한 바람으로, 하얀 눈으로, 비로 안부를 묻듯 다녀가실거에요'라고 해주신 말씀을 떠올렸다. 봄에 다샤님이 떠나갔을 때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기도했고 출근길 아침의 환하고 찬란한 햇살을 보면서 다샤님을 떠올렸고 그분의 어머님께도 그렇게 위로를 드렸었다. 분명 그럴 거야. 하늘과 햇살, 붉은 잎사귀들. 바람. 물.
내가 가장 좋아한 그의 배역 중 하나는 솔로르였다. 그가 춘 솔로르 무대를 마린스키에서 여러번 봤다. 그는 너무나도 훌륭한 솔로르였다. 유일하게 용서해주고 싶은 솔로르였다. 배우로서의 재능이 엄청났다. 2막의 결혼식 하얀 의상을 좋아했지만 3막이 되면 무게를 잊은 듯 날아오르고 회한에 차 격렬하게 춤추는 그 모습에 넋을 잃곤 했다. 뭐랄까, 그건 정말 온전한 솔로르였다. 알브레히트도 로미오도 그랬다. 하지만 그 3막의 솔로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마치 내 앞에 정말로 망령의 왕국을 헤매는 솔로르, 어딘가에 홀린 듯 날아오르는 다른 존재가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솔로르는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화질은 안 좋지만, 2015년 3월. 이건 2막의 결혼식 춤이다. 저 하얀 의상을 입은 발로쟈는 너무 멋져서 볼 때마다 '내가 감자티라도 쟤를 뺏지... 뱀 풀고도 남지' 라고 생각했었다.
발로쟈는 아마 우리가 자기의 춤들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에 행복해 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모습대로 관객들이 자기를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했으니까. 언젠가는 무대에서 내려와야겠지만 지금은 계속해서 춤추고 싶다고... 그리고 우리는 정말 그 모습으로 널 기억하겠지.
정교 신자도 카톨릭 신자도 아니고 사실 개신교 집안이지만 교회보다는 성당이나 정교 사원에 들어가 기도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콘은 대부분 페테르부르크의 네프스키 수도원과 다른 정교 사원들에서 왔다. 서재 방에 작은 구석을 만들어두고(러시아어로는 끄라스느이 우골이라고 한다) 밤에 자기 전 항상 여기 와서 기도를 드린다. 묵주도 있고 이콘도 있고 목각천사인형도 있다. 정체성 없는 우골이다. 하지만 기도에 정체성이 필요할까?
이콘들은 내가 너무나 마음이 힘들 때 왔다. 나는 용기를 위해 성 게오르기(카톨릭 식으로는 성 조지)를, 그리고 마음의 평화와 의지를 위해 수호천사 가브리엘 이콘을 달라고 했다. 언젠가 나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아주 작은 성 게오르기 이콘을 꼭 쥐고 있었다.
어제 발로쟈 슈클랴로프의 장례식이 있었다. 극장에 무수한 조문객들이 모였고 사원과 스몰렌스크 묘까지 따라간 분들도 많았다. 극장의 홀과 복도들을 돌고서 모두에게서 박수갈채를 받으며 떠났다. 막상 그 모습을 담은 작은 클립과 조각들을 보자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너무나 슬펐다. 즐거움도 위안도 같이 줬으니까 소중했던가보다고 친구가 위로해줬을 때 울음이 터져나왔다. 지난 토요일 소식을 들은 후 처음으로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이제 정말 보낸다고 생각하니까 울음이 북받쳤다. 이렇게 소리내어 운 건 정말 오랜만이다. 지금도 눈물이 고인다.
새벽 출근길에 기사를 보니 꽃들에 가득 싸여 스몰렌스크 묘지에 안장되는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고 게르기예프를 비롯해 그의 동료들의 추도사가 인용되어 있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그 묘지를 잘 안다. 옛날에 머물렀던 기숙사 근처에 있는 곳이다. 버스를 타고 그 옆을 지날 때마다 묘지가 있어서 좀 으스스하다고 생각했었다. 그곳은 영화 '브랏'에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거기, 그토록 자주 지나다니던 곳에 그가 잠들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소리내 울고 나니 조금은 나아지면서 정말 잘 가라고, 평안하고 자유롭게 춤추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 정말 무수한 팬들이 마음을 담아 절절하고 아름다운 인사들을 보내왔다. 그런데 나는, 말과 글 때문에 막히는 적은 별로 없지만, 아니, 말은 막혀도 글은 막히는 적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이럴 때는 모든 것이 막힌다. 어쩌면 이른 봄에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주 젊고 순수한 친구였다. 이토록 젊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먼저 떠나는 것이 가슴아팠다. 아직도 자기 전에 그 친구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곤 한다. 어제는 떠난 친구가 이제 발로쟈의 춤을 보며 함께 평안하고 자유롭기를 기도드렸다.
오늘도 새벽 4시에 깨어나 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주 내내 매일 몇시간 못 자서 잠도 모자라고 눈이 가물거린다. 아마 너무 슬프고 가슴이 아파서 그랬던 것 같다. 떠나버린 사람을 안식과 평안으로 보내주고 나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주말에 잘 쉬면 나아지리라 믿어본다. 오늘 매우 바쁘게 일했다. 아주 힘든 회의도 진행했다. 다음주도 많이 바쁘고 어려운 하루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잘 쉬면서 몸과 마음을 위안해야겠다.
Прощай, Володя... Ты навсегда в наших сердцах. Настоящий, самый лучший Артист. Мы в Корее тоже очень любили тебя, и помним, любим, скорбим... Каздый раз ты на сцене, ты напоминал мне о том, что Федор Михаилович сказал : "Красота спасет мир" Да, Володя. Ты наша Красота. Ты вечный мой артист🤍
이젠 한국말로 해도 다 알아들을 거라 믿으며... 그래도 너의 언어로 인사할게. 내가 네 앞이라 너무 떨려서 노어가 안 나온다고 하니까 ‘괜찮아, 그래도 네가 노어 하는 게 훨씬 나아! 난 한국말 한 마디도 모르잖아’ 라고 농담하며 환하게 웃어줬었지. 이젠 우리말도 다 알아들을거야. 그건 마음이니까. 마음은 영혼이고 그건 어디까지나 날아가니까.
오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가 마린스키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했다. 극장 홀에서 추모객들이 꽃을 바치고 인사를 했다. 사진을 얼핏 봤는데 관이 보여서 너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더 찾아보지는 않았다. 두시간 반 넘도록 추모객들이 이어졌고 조금 전에 교회로 떠난 것 같다. 극장 밖에 모두가 모여 박수갈채로 그를 보내주는 짧은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갈채를 받으며 떠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너지듯 슬프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극장에 있었고 또 박수와 함께 이별하는 거니까 발로쟈는 좋아했을 거라고 믿는다.
마음을 많이 다독이고 기도하고 그에게 대화하듯 말을 걸었다. 이제 정말 인사를 해야 하니까... 지금까지 도저히 입밖에 낼 수 없고 쓸 수도 없었던 작별인사를 해야 하니까.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너무나 충격으로 한동안 마비되어 있었고 며칠 동안 내내 아픔과 슬픔에 가득 차 있었다. 아마도 그가 너무나 소중한 무용수였기에, 나에게는 단순히 춤을 잘 추는 멋진 무용수가 아니라 불꽃과 아름다움을 가진 예술가,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을 가득 채우는 뮤즈 같은 존재였기에, 그리고 우리가 아주 짧은 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나눴고 그 다정함에 깊이 감동받았기에, 내가 많은 어려움을 겪어오는 동안 위안이 된 사람이었기에 이토록 슬프고 아플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는 극장과 무대,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 자체였다.
언제나 말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것이 더 쉬웠지만 정말로 고통스러울 때는 쓰는 것도 어렵다. 마음 속에 가득한 감정과 이야기들을 정리할 수가 없다. 그의 사진들과 영상들을 일일이 뒤적여보기 어려운 것처럼.
작별인사를 도저히 할 수가 없어 괴로워하고 또 눈물이 흐를 때 계속해서 떠오르는 구절들이 있었다. 둘다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나게 될 거야> 항상 전자를 믿었고 후자를 바랐다. 그리고 여기, 그 후자를 발췌한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 결말부에서 알료샤 카라마조프와 콜랴 크라소트킨과 어린 소년들이 그들의 친구였던 일류샤를 떠나보내는 장례를 마치고 나누는 이야기이다.
...
" 카라마조프씨! "
콜랴가 소리쳤다.
" 우린 모두 다시 살아나 서로 만날 수 있다고, 일류샤와도 만날 수 있다고 교회에서 그러던데, 그게 정말인가요? "
" 우린 틀림없이 다시 살아나 서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즐겁고 기쁘게 예전의 모든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게 될 거야. "
알료샤는 한편으로는 웃고 한편으로는 감격에 차서 그렇게 대답했다.
" 아,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
콜랴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 자, 이제 얘기는 그만하고 일류샤의 추도식에 가보자. 사양하지 말고 블린을 먹자. 그건 오래된 풍습이고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고 좋은 일이란다. "
알료샤가 웃었다.
" 자, 가자! 이제 이렇게 함께 손잡고 가는 거야. "
" 언제까지나 그렇게, 영원히 손에 손을 잡고 가요! 카라마조프 만세! "
콜랴가 다시 한번 감격해서 소리쳤다, 그리고 다른 모든 소년들도 소리를 모아 그의 환성에 호응했다.
Карамазов! — крикнул Коля, — неужели и взаправду религия говорит, что мы все встанем из мертвых, и оживем, и увидим опять друг друга, и всех, и Илюшечку? — Непременно восстанем, непременно увидим и весело, радостно расскажем друг другу всё, что было, — полусмеясь, полу в восторге ответил Алеша. — Ах, как это будет хорошо! — вырвалось у Коли. — Ну, а теперь кончим речи и пойдемте на его поминки. Не смущайтесь, что блины будем есть. Это ведь старинное, вечное, и тут есть хорошее, — засмеялся Алеша. — Ну пойдемте же! Вот мы теперь и идем рука в руку. — И вечно так, всю жизнь рука в руку! Ура Карамазову! — еще раз восторженно прокричал Коля, и еще раз все мальчики подхватили его восклицание.
..
무대에서 살았고 가장 정점일 때 떠나는 예술가.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이제 정말 떠나야 하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조용히, 다정하게 인사를 해본다. 안녕, 발로쟈. 고마웠어. 유일무이한 나의 무용수. 잘 가. 우리는 즐겁고 기쁘게 예전의 일을 서로 이야기하게 될 거야. 평안하고 자유롭기를. 계속해서 춤추기를.
이것이 나의 인사이며 지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어쩌면 앞으로도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가 보여줬던 것들, 그 아름다움, 고마움, 진정한 의미,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실제로 하나하나 적어보고 싶지만 지금은 여기서 끝낸다.
작년에 데뷔 20주년을 맞아 찍었던 짧은 필름. <나는 춤추며 살아가요> 그 화보집과 거의 비슷한 제목이다.
힘들 때 자주 봤던 옛날 클립. 20대 초 모스크바 발레 콩쿠르 수상하고서 춘 차이코프스키 파 드 두 솔로이다. 화질은 좋지 않지만 이 영상을 보며 항상 위안을 받았다. 이렇게 밝고 환한 그, 춤추는 발로쟈 슈클랴로프의 모습들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사진은 2016년 6월에 마린스키 구관에서 찍은 것이다. 이날 그는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와 함께 돈키호테를 췄다. 나는 이때 너무 힘들고 지치고 고통스러운 상태로 페테르부르크로 날아갔었다. 3주 정도 머물렀다. 그때 나는 발로쟈의 공연을 여럿 봤다. 그가 바이에른으로 떠나기 몇달 전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페테르부르크에 갈 때마다 그의 공연을 보았지만 이 시기에는 짧은 기간 동안 돈키호테, 청동기사상, 지젤, 나를 버리지 마 등 무대에 여러번 올라왔었다. 이 시기는 내가 가장 괴롭고 힘든 때였다. 나는 그의 무대들을 보며 어떤 식으로든 많은 위안을 받았다. 페테르부르크, 운하, 춤, 발로쟈. 이 시기는 마치 안개에 휩싸여 있는 듯한 느낌이고 특히 이 돈키호테는 도착한 바로 다음날 봤던 거라서(딱 한 장 나온 취소표를 간신히 구했다) 그런지 무대 하나하나가 전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생생하다. 그의 바질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화사했고 고통을 잊게 해줬다는 것.
'그는 우리에게 사랑받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어요. 좋은 사람이에요.' 오늘 역시 그를 사랑하고 아꼈던, 그래서 함께 슬퍼하고 있는 이웃님과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마음으로 내일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 그렇게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극장에서의 송별과 니콜스키 사원에서의 추도 예배, 그리고 스몰렌스크 안장이 내일이다. 그의 영혼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사랑받았던 사람, 행복하게 해준 사람. 좋은 사람.
어제 열한시 쯤 누웠지만 오늘도 새벽 네시 즈음 깨어나 더 잠을 이루지 못했고 여전히 수면 부족 상태로 새벽 출근했다. 평소보다도 더 일찍 나갔는데 지하철 한대가 고장나서 늦게 왔다.
오늘은 매우 바쁜 하루였다. 오후엔 내년에 치러야 하는 크고 중요한 행사 때문에 아주 피곤한 프리젠테이션과 자문이 이어지는 회의를 두시간 진행했고 그거 끝나고 나서는 또 중요한 행사의 오프닝을 진행했다. 무척 지쳤다. 일에 파묻히면 마음이 나아질거라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간밤 자기 전에 예전에 발로쟈와 찍었던 사진과 메모, 그때 즐거워서 그렸던 스케치 등을 뒤적여보았다. 아직도 마음이 무너지는 듯 슬프고 믿어지지 않고 가버린 사람이 너무너무 불쌍하지만 예전의 그 순간순간들을 생각하자 '아 그랬지, 정말 이 사람 때문에 행복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고 또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관객들 하나하나에게 행복감을 준 예술가였지. 그리고 좋은 사람이었어. 정말로' 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쩐지 약간 위안을 받는 느낌이었다. 춤 안 춰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준다면... 하고 수없이 되뇌고 마음아파했지만, 지금도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지만 무대 위에 있었을 때 분명 행복했고 온전했을 거라고, 그러니까 아픈 순간을 지나 지금 평안하고 행복할 거라고 믿고 바라고 기도하며 간밤과 오늘을 보냈다. 그를 좋아했던 다른 분들과 톡이나 디엠을 나누면서 서로 위로했고 '맞아, 그 사람 때문에 정말 행복했어. 좋은 사람이었어. 그렇게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었어' 라고 끄덕였다. 그래도 정말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다.
너무 잠이 모자란다. 점심 때는 고생하고 있는 선임직원 두명에게 밥을 사주었다. 나는 백짬뽕밥을 조금 먹었는데 역시 몸에 잘 받지 않았다. 밥이나 자극적인 것이 먹히지 않는다. 마음이 힘들 땐 그렇다. 아침엔 삶은 달걀 1개와 차, 저녁에는 단감과 포도를 좀 먹었다. 내일은 좀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가 마지막으로 본 발로쟈의 무대는 2019년 11월 15일, 마린스키 본관이었다. 백조의 호수였고 알리나 소모바와 함께 췄다. 이 사진들은 전에 공연을 보고 얼마 되지 않아 올린 적이 있다. 흔들린 사진이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이 사진이 좋다. 그날 밤 공연을 마친 후 나는 극장 옆문, 크류코프 운하 옆에서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농담에 웃기도 하고, 곧 다시 보자고 인사를 했다. 많이 지쳐서 늦게 나왔지만, 날씨가 싸늘했고 운하에서 11월의 습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그는 나와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농담, 웃음만이 생생하다... 그리고 포옹과 볼키스, 인사. 존대어가 사라지고 서로 너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대한 행복감.
나는 예술에 대해서, 무대에 대해서, 그리고 극장과 관객의 관계, 그 환각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주제와 인물로 오랫동안 글을 써오기도 했다. 자신의 삶 역시 비슷한 업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이 사람 앞에서는 순수하고 열렬하고 깊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
기사를 찾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블로그 유입경로에서 어제인지 그저께 우리 나라 뉴스에 나온 기사들이 떠 있었다. 그리고 서방 외신들 중 여럿도. 그의 죽음에 대해 온갖 추측이 이어지고 있고 그게 언론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속상하고 서글프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꼭 말해두고 싶다.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는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서로 죽이지 말고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나는 춤추고 싶다, 그 어떤 경계도 없이 도처에서’ 라는 유명한 일기의 문장도 인용했다. 분명 온전히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놓고 러시아나 푸틴 반대파가 된 적은 한번도 없었고 정부 비판이나 정치적인 얘기를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전쟁 후 푸틴에게 반대하다 의문사한 여러 유명인사나 재벌들과 비교하며 '반푸틴주의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했던 스타 무용수의 의문사'로 프레임을 짜는 기사가 제법 올라온다. 떠나버린 사람의 개인적 삶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끔찍하지만 전쟁과 이념과 살상의 끔찍한 비극 속에서 정치적으로 거짓 악용하는 것도 비열하다. 이것은 러시아 편이냐 우크라이나 편이냐, 푸틴 반대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편안하게 보내줬으면 좋겠다.
그날, 운하 옆에서 받았던 사인들. 마샤와 발로쟈. 왼편은 푸쉬 컴스 투 쇼브(기민씨와 마샤가 췄다), 젊은이와 죽음. 오른편이 백조의 호수.
이렇게 보고 있으니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여전히 모든 것이 꿈만 같고 믿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