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지 며칠이나 되었고 모레부터는 복귀, 노동이라 어느새 엘스카의 환한 내부와 한적한 여유가 꿈결처럼 가물거리게 되었다. 이 사진은 아마도 10.17에 가서 처음으로 홍차를 시켜봤던 날이었던 것 같다. 빛이 아름다웠고 저쪽 창가 테이블에 예쁜 남녀 커플이 들어와 앉았다. 여자가 주문을 하러 갔는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자는 등받이 없는 의자 두개에 앞으로 걸터앉아 폰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스며들어오는 빛도, 엘스카도, 저 사람의 실루엣도 잘 어울리고 아름다워서 한 컷 담아두었다. 정면 사진은 아니니까 올려봄. 내가 엘스카에서 찍은 무수한 사진들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사진 중 하나이다.
사진은 쥬인이 일본의 소도시 마쓰야마에 여행가서 그곳의 리락쿠마 샵에서 나를 위해 사다준 선물들과 로이스 초콜릿. 큰 애가 리락쿠마, 하얀 애가 코리락쿠마, 갈색 작은 애가 카이로코쿠마(아마 이런 이름이었던 듯), 울집에 있는 애들에겐 순서대로 쿠마, 쿠냐, 쿠야라고 부르는데 얘들의 뒷모습이 나란히 자수되어 있는 연하늘색 파우치. 쿠마와 친구들과 피자 스티커(이거 전에 그림들 보고 내가 피자 먹고 싶다고 했던 그 귀여운 시리즈이다), 그리고 온천 쿠마 배지. 이 도시가 온천도시라 리락쿠마샵 컨셉이 온천이라 한다. 그리고 로이스 초콜릿은 원래 알던 생초코가 아니라 안에 사과조림이 들어 있는 판초콜릿이었다. 초콜릿 포장지 색깔을 보니 딱 내 생각이 나서 골랐다고 한다. 쥬인 이번에 자기 기념품도 거의 못사고 바쁘게 다녔는데 내거 이렇게 챙겨다줘서 고마워 엉엉... 너무 귀엽다~
나도 쥬인에게 빌니우스 기념품을 주었다. 이번엔 치즈와 흑빵을 안 사서 좀 적어보이는 느낌이었는데 ㅎㅎ 매우 실용적 선물들이었다. 리넨 샵에서 내거랑 같이 산 리넨 테이블 타월(쥬인 것은 녹색과 연두색 잎사귀들이 커다랗게 그려진 버전. 내 것은 붉은색과 주황색 염료가 번진듯한 스타일), 자작나무 티코스터, 드로가스에서 내가 쓰고 좋아서 하나 더 사면서 쥬인 것까지 추가로 산 아르간오일 핸드크림, 어쩐지 파제르를 닮았지만 파제르 아닌 판초콜릿(특이하게 블루베리와 라이스크리스피가 들어있는 화이트 초콜릿이라 국내에선 구하기 힘든 맛일 것 같아서), 그리고 폴란드항공 라운지에서 가져온 초콜릿 웨하스는 덤으로. 서로 선물 주고받고 그것들과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들 나누며 즐거웠다.
귀엽다 :) 돌아와보니 씨유에서 갑자기 리락쿠마 호빵, 리락쿠마 도시락, 리락쿠마 가방 등을 팔고 있어서 오늘 쥬인네 동네 씨유에 구경갔는데 호빵이랑 도시락은 이미 없었고 가방은 실용적이지 못해 안 삼. 호빵엔 스티커도 들어 있다는데... '난 호빵 별로 안좋아하고 또 많이 들어있으니 못 살거 같아'라고 하자 쥬인이 '호빵 세 개밖에 안들어있어'라고 해서 아니 그럼 사봐야겠네 하고 마음이 바뀜. 근데 울동네 씨유는 초중고딩 집합소라 분명 없을거고... 월욜 새벽출근해서 사무실 뒤에 있는 씨유에 가봐야 하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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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엔 자정 무렵 잠들었는데 한시 즈음 깨버렸다. 역시 시차의 저주... 그래도 다시 잠들어서 6시쯤 깨어났다. 안돼, 좀만 더 자야해. 이제 월요일부턴 다섯시 반에 일어나야 해... 하며 괴로워하다 두어시간 후 어찌어찌 다시 잠들었다. 근데 새잠을 자면 본시 꿈에 시달리는고로... 또 집을 못찾고, 엘리베이터가 이상하고 등등 피곤한 꿈을 꾸다 깨서 머리가 아팠다. 10시 좀 넘어서 일어났는데 쥬인과 정오에 보기로 했으므로 서둘러 샤워를 하고 빈속에 멀미할 것 같아 쌍화차와 빵 한조각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쥬인 줄 기념품을 꾸려서 카카오로 택시를 불러서 쥬인네 동네로 갔다.
근데 카카오T 앱 이상해졌다. 왜 소요시간이 안나오지? 원래 '여기서 거기까지 30분 걸림', '지금 너는 어디 있으며 도착까지 15분 남음' 뭐 이런게 나왔었는데 갑자기 시간이 안나온다. 뭐지, 내가 업뎃을 안해서인가? 아니면 이것 때문에 무슨 트러블이라도 있었나? 경로는 나오지만 몇분 남았는지 안나오니 성질급한 한국사람 짜증나 미침.
하여튼 쥬인과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우리의 클래식한 코스는 원래 단골 남도식 밥집 - 중간에 있는 커다란 gs편의점(이 편의점이 엄청 크고 별의별게 다 있어서 구경하면 재밌다. 우리 동네 작은 편의점에 없는 게 많음), 그리고 아지트 별다방이다. 그런데 오늘은 쥬인이 커피를 못마셔서 카페인 금단증상에 시달려서 편의점을 마지막으로 바꿈. 밥집에 가서 고대하고 그리워했던 맛있는 김치찌개와 닭볶음탕, 밥을 먹음. 여기 김치찌개가 굉장히 맛있다! 빌니우스에서도 '돌아가서 쥬인 만나면 그 집 가야지' 했었음. 오늘 엄청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별다방 가서 선물도 주고받고 여행 이야기 쥬인의 직장 이야기도 하고... 편의점도 구경하고...
이후 나는 다시 카카오로 택시를 불러 귀가. 돌아오는 길은 좀 밀렸다. 날씨가 워낙 좋아서 너도나도 나들이 나왔었는지... 행주대교랑 고양 쪽 들어오는 길이 밀려서 멀미가 좀 났지만 그 길을 지나자 한결 나아졌다. 볼트를 타고 웬만한 거리는 20분 이내로 주파하던 때가 그립다. 볼트도 도착시간이 나왔는데 카카오 왜 이렇게 된 거야, 또다시 피어오르는 분노!
집앞 세탁소에 들러 드라이를 마친 코트와 스웨터, 치마를 찾아 귀가. 때깔이 다시 고와짐. 집에 있는 다른 코트들도 드라이 맡겨야겠다. 집에 와서 씻고 밥을 먹고 이제 분명 다음주 토요일까지는 또 청소 못한다는 생각에 낑낑대며 청소를 했다. 분명히 수요일에 짐 풀고 나서 청소를 했는데 왜 오늘 또 이렇게 먼지랑 머리카락이 나오고 걸레가 까매지지 엉엉... (당연한 건가?)
이제 내일 하루만 지나면 업무복귀, 출근, 노동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밤 푹 잘 자고 내일 남은 하루 잘 쉬어야겠다. 초콜릿과 쿠마 배지로 마무리.
'빨간 포장지를 보니 너 생각이 나는거야' 라고 말해준 쥬인. 버건디 다크레드의 로이스 사과조림 초콜릿 :)
궁금해서 별다방에서 맨 끝토막 잘라서 먹음. 맛있었다. 이게 그 산타 베어리스타 케익보다 낫네 흐흑...
오랜만에 쥬인과 우리의 아지트 별다방에서. 한달 동안 리가와 빌니우스에서 여러 카페들을 다녔는데 귀국하니 역시나 아지트는 별다방 :) 쥬인은 아메리카노. 나는 고민 끝에 플랫 화이트에 도전해보았다. 차를 마실까 했는데 별다방은 차가 맛이 없고 과연 자본주의의 플랫 화이트 맛은 어떨지 궁금했다. 라떼 쿠폰이 있어서 '라떼는 연하니까' 하고 약한 마음에 그걸 시키려는데 쥬인이 '스벅 라떼 되게 싱거워'라고 해서 이것을 주문했다(쥬인도 안 마셔봄) 숏사이즈 237밀리로 시킴.
으악 근데 너무너무너무 쓴 거였다. 허헉... 테이스트 맵 플랫 화이트 사약이라 했는데 그보다 더 쓴 느낌. 쓴맛밖에 안남.... 결국 나는 시럽을 마구 펌핑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나는 여태 여기서 커피 주문해본적도 시럽 먹어본 적도 없어서 아무런 감이 없어 너무 많이 펌핑함. 설탕은 한 봉지 딱 뜯어서 넣으면 되니 편한데. 내가 시럽을 너무 많이 넣어서 쥬인이 '토끼야 단맛밖에 안나겠다' 라고 혀를 차고... 나의 별다방 플랫 화이트는 달디단 맥심 맛이 되어버림 ㅜㅜ 흐흑 나 여기서 절대 플랫 화이트 안 마셔, 커피도 안 시킬거야. 그리하여 나의 귀국 커피 도전은 쓰디쓴 실패로 돌아가고... 회사 근처 맛있는 카페에서 다시 도전해볼까 싶지만 한동안은 커피 휴식을.... 역시 내 마음의 고향은 다즐링이었어 ㅎㅎㅎ 커피를 모르는 자의 비극 흑흑...
그리고 저 산타 베어리스타 케이크는 신상이라 먹어보았으나 정말 맛없고 너무 달아서 한두 입 먹고 포기했다 흐흑... 특히 아래의 케익 시트가 진짜 달았다.
영원한 휴가님이 보키에치우 후라칸에서 선물해주셨던 후라칸 머그 한국에서 첫 개시. 개시는 모닝 쌍화차로 ㅎㅎㅎ
빈속에 택시타면 멀미할 것 같아서 쌀빵 한조각과 쌍화차 반 포로 간단히 아침 먹고 나갔었다. 저 쌍화차는 리가와 빌니우스에 가져갔던 것 중 마지막 남은 거였는데 네링가에서 반 포 타마신 후 남은 걸 아까워서 챙겨옴. 은근히 가격대도 있고 또 맛있어서.
그리하여 후라칸 머그는 쌍화차를 담게 되었다. 생긴 건 딱 코코아 + 마시맬로 맞춤형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