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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를 떠나 돌아오던 날의 조식은 이랬다. 아침 8시에는 체크아웃하고 택시를 탈 예정이었는데 조식 뷔페는 7시 반에 열기 때문에 시간도 빠듯했고 또 정신도 없을 것 같아서(그리고 이 두번째 호텔은 다 좋은데 조식은 그닥 훌륭하지 않았다) 전날 저녁에 방으로 돌아오면서 바츨라프 광장의 프랑스풍 베이커리 폴에 가서 뺑 오 쇼콜라 한 개를 사왔다. 거기에 조식테이블에서 집어왔던 서양배 한 개와 꿀, 홍차 티백을 미리 준비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이렇게 챙겨 먹었다. 딱 하나 달라진 것은 홍차 티백이다. 원래 준비해놨던 건 내가 집에서 챙겨왔던 다즐링 티백이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보니 꿀을 타먹으려면 그냥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가 나을 것 같아서 방에 구비되어 있던 티백을 하나 뜯었다. 폴의 뺑 오 쇼콜라를 먹으면 언제나 9년 전 프라하의 릴리오바 거리 아파트에 두어달 머무르던 시기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지금 생각하니 꽤 날씬했고!(흑흑), 하지만 마음의 무거움과 고민들은 더 많았다. 당시 나는 이따금 폴에서 뺑 오 쇼콜라(이 가게에서는 쇼콜라도바 룰렛인가 롤까인가 뭐 이런 이름으로 불렀다)를 사와서 널찍하고 좀 썰렁한 아파트 거실의 커다란 이케아 식탁 앞에 앉아 홍차랑 같이 늦은 아점을 먹었다. 밤늦게까지, 보통은 새벽 한두시까지 글을 쓰다가 자고 늦게 일어났다.



프라하에는 폴 지점이 여럿 있다. 당시 자주 가던 곳은 나 프르지코페나 바츨라프 광장에 있는 번듯하고 큰 카페 지점이 아니라, 테스코 1층, 지하 수퍼에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에 있던 조그만 키오스크 지점이었다. 드물게는 팔라디움의 키오스크에도 갔지만 보통은 테스코 수퍼에서 장을 보고 나오면서 폴에서 이 뺑 오 쇼콜라를 한두 개 사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폴에서는 항상 종이 봉지에 빵을 담아주었고 나는 그 봉지를 가져와 부엌의 선선한 창가에 놓아두고 다음날 아점으로 먹었다. 그래서 폴은 나에게 항상 그 릴리오바 아파트의 부엌 창가, 거실과 널찍한 이케아 테이블, 거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헐벗은 나무와 맞은편 아파트 창문들, 이따금 눈 내리던 풍경, 그리고 싸늘한 공기와 열심히 글을 쓰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테스코 수퍼와 그 에스컬레이터도.









호텔 방에서도 창가에 이렇게 봉지째 빵을 놔뒀다가 다음날 아침에 먹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아니면 너무 이른 아침이었고 잠도 모자랐고 이제 여행이 끝나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예전의 맛은 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후 우리 나라에도 여기저기 뺑 오 쇼콜라 파는 곳이 많아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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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