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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책은 무라카미 류의 쇼핑 에세이로 쏜살문고에서 나왔다. 이 문고에서 나온 책이 가벼워서 여행 다닐 때 들고 다니기 좋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무라카미 류도 소설가로는 취향에 맞지 않지만 전자의 에세이들은 좋아하고, 후자는 에세이조차 읽어보지 않았는데 지난 프라하 여행 때 들고 갈 책을 고르다가 목차와 책 소개를 보고 궁금해서 모험하는 셈 치고 사보았다. (제목 때문에 오글거린다고 생각하며) 

 

 

 

그런데 정말 예상외로 이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 그야말로 여행 가서 읽기 딱 알맞는 책이었고, 대책없는 맥시멀리스트에 쇼핑광인 이 사람의 글이 얄밉지 않고 귀여워서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계속 웃게 된다. 셔츠 수십벌, 넥타이 수십개, 젓가락 20벌 등등 일단 꽂히면 정신없이 사대고, 새로 산 멋진 셔츠를 입고 싶어서 방송 출연을 해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등등... 짧은 글들에 유머가 가득해서 읽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읽는 내내 '당시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는 정말 수입이 많았나 보구나, 저렇게 명품을 마구마구 질러대네' 라는 생각도 들었다 :)

 

 

 

원래 이 여행 때 읽으려고 주문했던 에세이가 이것과 사노 요코의 에세이집이었다. 그런데 가기 며칠 전 국내 어느 일본문학 번역가가 쓴 에세이집을 읽고 너무 실망한 나머지 '아 저 두권도 딱 이런 스타일이면 너무 싫을 것 같다' 하고 고민하다 후자는 빼놓고 '그래도 뭔가 쇼핑 얘기면 재밌지 않을까' 하며 무라카미 류의 책만 챙겼다. 이 책은 조그맣고 가볍고, 사노 요코 책은 상대적으로 두껍고 무겁다는 것도 크게 한몫 했다.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프라하 여행이 중반부에 접어들었던 날, 두 개의 카페를 오가며 이 책을 읽었다. 조그맣고 가벼운 책이니 가방에 집어넣고 다닐 수 있었다. 오전엔 헤드 샷 커피의 파란 테이블에 앉아 역시 파란 이 책을 펼쳐들었고, 생각보다 재미있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읽었다. 전날 저녁 새로 발굴해 너무 맘에 들어 오전에 다시 들른 헤드 샷 커피도, 통창 너머로 비가 조금씩 오는 가운데 사람들이 지나가는 풍경도, 테이블 두어 개 뿐인 카페의 한적함과 조용한 앰비언트 음악도, 그리고 재미있고 가벼운 책도 모두 좋았다. 그리고 오후에는 구시가지 골목들을 걷다가 예전에 종종 들렀던 아티잔 카페에 갔고 떠들썩하게 수다떠는 외국인 관광객 아주머니들 바로 곁 테이블에 앉아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맨 위 사진이 아티잔 카페에서 찍은 것. 그래서 카페 명함을 책갈피로 잠깐 사용했다. 저 명함은 집으로 가져와 다른 책 읽을 때 다시 책갈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 남은 부분은 숙소에 돌아와 밤에 자기 전에 마저 읽었다. 

 

 

이 책은 떠나기 이틀 전에 영원한 휴가님께 우편으로 보내드렸다. 그리고 나는 돌아와서 이 책을 다시 주문했다. 그러니 사진 속의 책은 한국에서 핀에어를 타고 인천에서 북극해를 지나 헬싱키로, 헬싱키에서 프라하로, 프라하 중앙우체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빌니우스로 나보다도 먼 여행을 한 셈이다. 영원한 휴가님께서도 재밌게 읽으시는 것 같아 뿌듯했다. 

 

 

 

 

 

 

 

헤드 샷 커피에서. 여기는 테이블 색깔, 커피잔의 색깔마저도 책 색깔이랑 절묘하게 같아서 이것도 또 좋았고 나의 하찮은 미감을 만족시켜 주었다. 

 

 

 

 

 

 

 

읽다가 재밌었던 문단이라서. 여기서 재밌었던 포인트는  '이런 셔츠는 외국인이 산다' 라고 해맑은 얼굴로 대답하는 주인에 대한 문장임 ㅎㅎ 그리고 역시 헤드 샷 커피의 푸른색이랑도 어우러져서 그 즐거움도. 

 

 

 

 

 

 

 

이 문단을 읽자 쥬인 생각이 났다. '고급 베이커리에서 파는 온갖 곡물과 씨앗이 들어있는 비싼 흘롑(흑빵) 말고, 수퍼에서 파는 그냥 슬라이스되어 있는 흘롑이 좋아' 라고 한결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어 러시아에 가면 반드시 수퍼에 가서 쥬인 주려고 흑빵을 사곤 했다. 이번 프라하에서도 러시아 식품점을 발견해서 그런 흑빵을 사왔다. 

 

 

 

 

 

 

헤드 샷 커피 사진으로 마무리. 커피 안 마시는 나로 하여금 커피 마시게 해준 드문 곳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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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