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쟈 슈클랴로프로부터, 추억을 위해 dance2024. 11. 17. 20:34
나는 이 화보집을 2016년 6월, 뽀드삐스니예 이즈다니야 서점에서 샀다. 그때 나는 회사에서(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 때문에 심하게 몸과 마음을 다쳐서 아주 많이 아팠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여기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절박함으로 정신없이 페테르부르크로 떠났었다. 그 해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도착한 다음날, 나는 발로쟈가 자기 인스타 계정에 올려둔 서점 이름과 주소를 따라 아니치코프 다리를 건너 판탄카 운하변의 거리를 걸어갔고 서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화보집을 샀다. 그 여름에 나는 마린스키에서 그의 무대를 여럿 보았다.
여름이 지나고 그는 바이에른으로 떠났다. 나는 돌아왔고 다시 심하게 마음을 다치고 아팠고, 겨울에 다시 한번 페테르부르크에 갔고, 돌아와서 복직을 했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부딪치며 살아냈다. 그는 일년 후 마린스키로 돌아왔다. 나는 일년 후, 2017년 7월에 이 크고 무거운 화보집을 캐리어에 소중하게 챙겨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갔다. 오로지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우리는 거기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를 나눴고 나는 화보집에 사인을 받았다. 그 자리는 사실 기자들만 초청했던 토크 간담회였는데 나는 그것을 몰랐다. 토크를 마친 후 기자들이 모두 나갔을 때 나는 떨면서 스태프에게 부탁을 했고 발로쟈는 조그만 백스테이지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너무 심장이 뛰었으니까. 러시아어도 잘 안나와서 마구 뭉개졌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내가 넘버원 한국 팬이라고 말했고 또 이것저것 얘기를 했었다.
오후에 화보집을 꺼내보았다. 여전히, 뽀드삐스니예 이즈다니야에서 샀을 때처럼 비닐로 싸여 있었다. 책이 상할까봐 꼭꼭 싸두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나는 사실 이 사람의 죽음에 울지 않았다. 눈물도 아주 약간 맺힐 뿐이었다. 그냥 아주 많은 충격으로 멍멍해져 있었다. 그런데 표지를 넘기고 저 글귀를 보자 눈물이 흘러나왔고 몸이 떨렸다. 책장을 넘겨 사진을 볼 수가 없었다. <발로쟈 슈클랴로프로부터, 추억을 위해> 라고 적혀 있다. 돌아와서 책장을 넘겨보면서 '블라지미르가 아니라 발로쟈라고 써줬어' 하며 그 작은 것에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책의 제목은 <춤추며 살다> 이다. 그는 그렇게 살았고 끝까지 그렇게 떠났다. 너무 빨리, 너무 가혹하게.
오늘의 메모로 시작한 글인데 화보집 얘기가 길어져서 이건 그냥 dance 쪽으로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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