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russia2015. 12. 15. 21:03
겨울이었다. 밤이었다. 우리는 그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극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 날 우리는 둘이었다. 레냐는 없었다. 여섯살 아이가 보기에는 어려운 공연이었다. 나는 네프스키 대로에 인접한 곳에 있는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료샤는 나를 방까지 데려다 주었다. 추운 밤이었고 호텔의 복도와 홀은 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긴 복도를 지나 방으로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틀 후인가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때도 회사 일은 힘들었고 나는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었다. 짧은 휴가를 얻어 페테르부르크로 날아와서 행복했지만 곧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슬프고 우울했다.
방 앞에 도착해서 열쇠를 찾고 있는데 료샤가 말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 돌아가지 말라고. 나는 농담이라고 생각했고 역시 농담으로 대답했다.
그럴까, 가지 말까. 여기 남아 있다가 회사에서 잘리고 90일 지나면 불법체류자가 되어 너희 경찰 닭장차에 실려갈까?
우리는 웃었고, 나는 이틀 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
" 그건 농담이 아니었어. " 라고 료샤가 며칠 전에 말했다. 전화로. " 인생이란 게 꼭 자기가 속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만 된다는 법은 없어. 다시 와. 그리고 돌아가지 마. 그러면 너는 지금보다 행복할지도 몰라. "
그냥 성격대로 농담이나 계속 할 것이지..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또 다른 돌아갈 곳이 있을 때 가능한 거라고 대답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실 지금 그런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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