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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vilnius'에 해당되는 글 64

  1. 2022.06.10 6.9 목요일 밤 : 새로운 시르니키, 기적의 포석, 기념품, 애프터눈 티타임, 비타우타스의 수난, 긴스버그마저 탈락, 소나기와 우박, 설탕의 힘 2
  2. 2022.06.09 6.8 수요일 밤 : 새 숙소, 우주피스, 힘든 날씨, 하챠푸리와 쥬인, 티샵, 미니멀리스트 되려나 했지만 역시 아닌 걸로, 슈가무어, 비, 아아 시간 빨리 간다
  3. 2022.06.08 6.7 화요일 밤 : 시장, 고양이네 책방, 백스테이지 카페, 여기저기 산책, 꽃, 민트 비네투, 플롬비르, 가방 꾸리며, 절반 넘게 가버림 2
  4. 2022.06.08 빌니우스 토끼 - 먹거리 모음
  5. 2022.06.08 바르샤바 토끼
  6. 2022.06.07 6.7 화요일 낮 : 시장 구경, 체펠리니, 체리와 자두, 꽃
  7. 2022.06.07 6.6 월요일 밤 : 피나비야, 카페인, 아가들 덕에 외운 단어 몇 개, 작가의 유머감각, 첫 득템이.. 2
  8. 2022.06.06 6.6 월요일 아점 : 키비나이 4
  9. 2022.06.06 6.5 일요일 밤 : 역시 방향치, 영원한 휴가님과 다시 만남 4
  10. 2022.06.05 6.5 일요일 아점 : 우아하게 먹을 수 없는 크루아상 2
  11. 2022.06.05 6.4 토요일 밤 : 드디어 빌니우스 도착, 거리 이름도 모르고 여기저기 걷다 들어옴 6
  12. 2022.06.04 6.4 토요일 아침 : 바르샤바 아침 산책 + 토끼의 촉이었을까
  13. 2022.06.04 6.3 금요일 밤 : 바르샤바,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14. 2022.06.03 6.3 금요일 아침 : 2년 반만에 인천공항에서 2





매우 곤하게 중간에 안 깨고 일곱시간 가량 잤다. 더 잘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잘 안돼서 일어나 씻고 조식을 먹으러 갔다. 조식 레스토랑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좋다기보단 좀 민망했다. 보통 조식 레스토랑은 좀 널찍하고 테이블이 많고 북적거리는데 여기는 로비도 좀 작고 레스토랑도 시내에서 유명한 곳이라는데 자리는 별로 많지 않았음. 아마 야외에도 테이블들이 여럿 있기 때문인가 싶다. (그럼 겨울엔?) 아직 본격 관광 휴가철보단 좀 이르기도 하고 이 호텔(뿐만 아니라 빌니우스 통틀어)에 동양인 관광객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서 아무래도 혼자 내려가니 뭔가 어딘가 편하진 않음. 둘만 돼도 좀 나은데 ㅜㅜ


하여튼 메뉴를 갖다주는데 리투아니아어와 영어로 되어 있었다. 팬케익 종류 중 프라이드 커드 어쩌고 되어 있는 것이 아무래도 시르니키 같아서 점원에게 이거 시르니키냐고 물어보니 ‘노어 할 줄 아느냐?’고 하며 그때부터 노어로 응대를 해줌. 시르니키가 맞다고 해서 시켰는데 나중에 갖다준 것을 보니 우와 이것은 내가 아는 시르니키와 좀 다름. 러시아에서 자주 먹던 시르니키는 뜨보록(코티지 치즈)과 달걀, 밀가루 따위를 반죽해 동글동글 조그맣고 폭신폭신하게 구워서 슈가파우더를 좀 뿌려주는데 여기서 가져다준 시르니키는 아마 재료와 구조는 비슷했겠으나 일단 크기가 컸고! 기름을 잔뜩 둘러 바삭하게 지져낸 부침개 같았다. 납작하고 바삭바삭한 튀김(옛날 도나스 같음)에 더 가까웠고 속에 뜨보록이 좀 들어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에 엄청 많은 스메타나(사워크림)과 체리잼을 곁들여 주었다. 맛있긴 했는데 너무 거해서 다 먹지는 못했다 ㅠㅠ 이렇게 많이 주는 줄 알았으면 오믈렛이라도 시키지 말걸. 내일은 그냥 아메리칸 팬케익으로 선회해야지.

 

 






조식을 잔뜩 먹은 후 방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갔다. 오늘은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오전에 기념품샵에 가보는 것과 오후에 제대로 된 애프터눈 티(삼단 트레이)를 마시는 것뿐이었다. 호텔이 대성당 광장 바로 맞은편에 있었으므로 오늘은 광장을 다시 한번 빙 돌아보았고 대성당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성당 내부는 넓고 좀 썰렁했다. 하긴 나는 큰 성당을 별로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광장에 발틱의 문이라는 붉은 포석이 있어(예전에 발트 3국 사람들이 인간 띠를 만들었는데 그 시작점이 이쪽이라고 했던 듯) 이것을 세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행운이 오는지 하여튼 좋다는 얘기를 여행서에서 읽은지라 빨간 포석 찾으려고 광장을 두 바퀴나 돌았지만 못 찾았다. 이건가 해서 가보면 배수구나 상수도 뚜껑이었다. 찾다가 지쳐서 영원한 휴가님께 톡을 드렸더니 원어를 알려주셔서(stebuklas – 기적이라는 뜻이라 함) 그것으로 구글 맵에 쳐보니 심지어 맵에도 magic brick이라고 나왔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데도 잘 안 보여서 좀 헤매다가 간신히 발견.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빌어보았다.







그런데 나는 세 바퀴 돌라고 해서 포석 주위를 돌았는데 내 뒤에 있던 아이들과 선생님은 포석을 꽉꽉 밟으며 그 위에서 빙글 도는 거였다! 앗 밟아야 하는 것인가? 주변을 돌면 효과가 없는 것인가? 하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돌도 뭔가 꽉 밟히면 기분 나빠서 들어줄 것도 안 들어주지 않을까? 받들어 모시며 주변을 경건하게 돌아야 하는 거 아닐까 싶지만, 또 반대로 꽉꽉 밟아야 포석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함. 그러나 이렇게 의문하는 것도 또 우스운 것이 기껏 몇십 년도 안 된 포석인데 고대와 중세의 기운이 결집된 오랜 행운의 상징도 아닐 텐데 주변을 돌든 밟든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기적의 포석 찾으려고 헤매다 웬 발바닥 음각을 발견. 비 와서 물이 고여 있고 비둘기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저 발바닥 안에 내 발을 넣어야 하는 거 아닐까 했지만 물이 많이 고여 있어서 가죽 운동화 신은 발을 넣을 수가 없었다. 영원한 휴가님께서 그것은 ‘발틱의 발’이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이것도 그 인간 띠와 관계된 자리였음. 사진 끄트머리에 나온 게 내 발.


어쨌든 방향 감각이 없어서 호텔 맞은편으로 곧장 걸어오면 즉시 발견할 수 있는 기적의 포석을 광장 두 바퀴 넘게 돌고서야 찾아낸 후, 필리에스 거리에 있는 로컬 하우스라는 기념품 샵에 갔다. 그저께도 들렀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안 사고 나왔었지만 이제 돌아갈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아무것도 산 게 없어서 내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엄마랑 쥬인 거는 사야 하지 않을까 하며. 이번엔 꼼꼼히 보고서 발틱 전통 문양이 칼라풀하게 그려진(누가 봐도 ‘이 동네 와서 샀음!’ 하는 느낌의) 에코백 두 장과 스카프 한 장, 빌니우스가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엽서 한 장을 샀다. 그리곤 주변에 있는 발틱 수공예점에도 갔는데 향을 피워놔서 좋긴 했지만 발틱 민속신앙 등을 모티프로 하고 있어 어딘가 좀 어둑어둑했다. 종이로 만든 부활절 달걀을 살까 했는데 검정색으로 칠해져 있고 발틱 무속 문양도 그려져 있어서 ‘아니 부활절 달걀인데 이렇게 어둠의 달걀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하는 마음에 안 샀음. 어쩐지 부활절 달걀이 아니라 이교도 신을 소환하는 아티팩트 같은 느낌이...

그리고는 주변을 좀 걸었는데 오늘도 무지 더웠고 습했다. 그래서 필리에스 거리로 돌아와 리미 수퍼를 찾아내 거기 가서 물과 초콜릿, 홍차 두 팩 등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물 때문에 무거워서 헥헥대면서... 호텔에서 물을 두 병 주긴 하는데 0.3짜리라 모자라서. (나는 물을 자주 많이 마시는 편이라 항상 1.5리터짜리를 예비로 한 병 사 들고 온다) 그런데 호텔에서 주는 이 생수가 좀 맛있음. 미네랄 성분이 많은가 봄. 갑자기 아스토리야에서 주던 바이칼 생수가 그리워짐. 그 생수는 특이하게 네모진 병에 들어 있고 0.4리터라 용량도 아주 적절했는데. 한때 잠시 국내 편의점에서 이 바이칼 생수를 팔았던 적이 있는데-좀 비싸긴 했지만 1+1 행사를 했었음- 안 팔렸는지 금세 사라져서 아쉬웠다. 이제 러시아가 이 모양이니 더더욱 다시는 안 들어오겠지 흐흑. 어째서 빌니우스에 놀러 와서 바이칼 생수 타령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더위와 습기 때문에 그 사이에 또 지쳐서 한동안 방에서 다리를 뻗고 좀 쉬었다. 영원한 휴가님과 호텔 라운지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기로 하여 두 시 좀 넘어 내려갔다.

사람들마다 여행을 가면 꼭 해보는 게 있을 텐데, 나 같은 경우는 애프터눈 티 세트를 맛보기와 숙소의 바에서 김릿을 마셔보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거의 하지 않고 여행을 왔을 때, 그리고 좀 괜찮은 호텔에 묵을 때만. 우리 나라에서는 카페에 갈 때도 많긴 하지만 보통 티타임은 우리 집(카페 자이칙)에서 세팅해놓고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고(심지어 내가 우린 차가 보통은 더 나음) 집-회사-집의 노동노예 생활을 하다 보니 바에 갈 일도 거의 없어서 어쩌다보니 나에게 3단 트레이 본격 애프터눈 티와 밤에 편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편하지도 않은 옷을 입고 내려와 김릿 한잔 마시는 것이 여행에 있어 일종의 상징 같은 것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애프터눈 티세트를 발견하고 좋아하며 라운지에서 여유있고 아름다운 티타임~을 꿈꾸며 내려갔음.

 








영원한 휴가님과 애프터눈 티타임은 매우 즐거웠다. 중간에 시간을 내주신 것도 정말 감사했다. 아마 돌아가서도 생각날 것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다즐링 서머를 마셨고 영원한 휴가님은 ‘가학적인’ 랍상소총(아마 차이나 어쩌고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었던 듯)과 밀키 우롱티를 드셨다.


그런데 미리 예약을 안 했더니 세트 준비하는데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좀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샌드위치, 디저트는 3단 트레이에 나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스콘이 나오지 않았다! 보통 스콘을 먼저 먹은 후 더 달달한 디저트를 먹는데. 우리는 ‘여기는 정말 느리고 여유롭군요. 근데 그래도 왜 아직도 스콘이 안 나오는 걸까요’ 하다가 ‘앗 혹시 코스처럼 나오는 것인가? 트레이에 담긴 모든 것을 다 먹어야 스콘을 갖다주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내가 황급히 내 앞접시에다 남아 있던 미니 유자 타르트와 샌드위치를 옮겨 담았다. 그랬더니 정말로 트레이를 치워가고 그제야 스콘이 나왔다. 아니 이럴 수가!

하도 디저트도 안 나오고 스콘은 더더욱 나오지 않아서 그동안 우리는 ‘여기 이거 시키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카페 주방에서 당황했나 봐요. 스콘 이제 반죽해서 굽나 봐요. 샌드위치도 틀에 넣어 찍어내고 속 만드느라 한참 걸리나 봐요’ 운운, ‘비타우타스가 정말 고생하겠어요. 왜 갑자기 어렵고 손 많이 가는 애프터눈 삼단 트레이를 시켜가지고 하며 슬퍼하고 있나 봐요’ 운운 농담을 하고 있었다(비타우타스는 이 동네의 흔한 남자 이름)

그런데 아무래도 이 농담이 정말인 것만 같다 ㅋㅋ 왜냐하면 이 호텔 라운지는 한산했고 어쩌다 뭔가를 시키는 손님도 이렇게 거한 티세트가 아니라 차 한 잔, 에스프레소 한 잔, 물 한 병 정도만 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전에 갔었던 곳 같은 본격 티타임 라운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여튼 그래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기다렸다가 스콘까지 먹었다. 미안합니다 비타우타스 씨. 그냥 탄산수 한 병, 차나 한 잔 시킬 것을 거창한 3단 접시를 시켜서 생각지 않은 중노동을 시켜드렸습니다. 그리고 스퍼드 닮은 다른 점원분도 미안합니다... (나는 그 생각을 안 했는데 안경 끼고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 점원을 보고 영원한 휴가님이 스퍼드 닮았다 해서 이제 계속 웃길 것 같음 ㅠㅠ 그건 그렇고 스퍼드가 누군지 다들 모를 것 같음. 이미 오래된 영화인 트레인스포팅에 나왔던 등장인물임)

 

 









차를 마시고 스콘까지 클리어한 후에 당분과 탄수화물과 지방과 카페인으로 꽉 찬 상태로 일어났다. 영원한 휴가님이 가시는 것을 조금 바래다 드린 후 우니베르시테토 거리를 따라 걸어내려왔고 유레카라는 이름의 작은 서점(여기도 알려주신 곳)에 들렀다. 작가들과 유명한 구절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팔고 있었는데 잘 보니 앨런 긴스버그 셔츠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긴스버그는 결코 잘생기지도, 카리스마 있지도 않은 시인이었다 보니 티셔츠가 별로 예쁘지 않아서 미모지수 부족이란 이유로 안 샀음. 미안합니다 긴스버그씨... 혹시 셔츠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인 Howl의 인용구라도 적혀 있었으면 미모 불충분에도 불구하고 샀을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아니었기에... 그 시는 엄청 길기도 하지만 이 사람 시 중 제일 유명하니 이왕이면 거기서 몇 줄 따왔어도 됐을 텐데... 오늘은 어찌 된 것이 비타우타스에게도 미안하고 스퍼드에게도 미안하고 심지어 긴스버그에게도 미안한 날임 ㅋㅋ

 

 
 





티타임 찍으려고 dslr을 가지고 나왔던 터라 가방이 무거워서 일단 방에 들어왔다. 6시 전이라 아직 이른 시간이었고 다시 나갈 수도 있었는데 방에 들어오자 급피곤해졌다. 이제 놀 수 있는 날은 금토 딱 이틀뿐이라 아깝긴 했지만 새 호텔이니까 방에서 좀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쉬기로 했다. 그런데 목욕을 하고 나왔더니 창밖으로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것이 아닌가. 어제보다 더 심하게 쏟아져서 대성당 광장 종탑 옆으로 물보라가 쏴 일고 있었다. 창가로 기어올라가 창문을 열고 비 구경을 잠깐 하는데 심지어 우박까지 요란하게 쏟아져서 그 짧은 시간 동안 창가와 내 다리가 다 젖음! 그냥 일찍 들어와 쉬기로 한 것이 참으로 다행! 지금은 비는 그친 것 같은데 순간적으로 많이 왔는지 길이 많이 젖어 있는 것이 보인다.


내일은 트라카이에 갈까 망설였는데 결국 안 가고 아마 빌니우스 대학 교정에 들어가보고 김릿도 한 잔 마실 것 같다. 사실은 오늘 저녁 방에 들어왔을 때 잠깐 김릿 마시러 바에 내려갈까 했지만... 이미 거창한 애프터눈 티세트로 비타우타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으므로 김릿은 내일 마시기로 함 ㅋㅋ (이 호텔이 생각보다 규모가 작고 바도 작아서 일하는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일 것만 같고 하여튼 투숙객이 좀 많고 나 같은 손님도 여럿 있어야 더 편한데 ㅎㅎ) 아니면 돌아다니다 찍어놓은 바가 몇 개 있어서 거기 들러 마실 수도 있을 듯. (하지만 ‘묵고 있는 호텔’ 바에 내려가 편안하게 한 잔...에 방점이 있긴 한데~ 비타우타스 혹은 그 동료들이여 내일은 김릿이오 ㅋㅋ)

 



어제 네링가 호텔에서 택시 타고 오면서 기내 캐리어에 체리 팩과 함께 비닐포장해 넣어왔던 수레국화. 체크인까지 몇 시간 동안 짐을 리셉션에 맡겨 놓았던 동안 꽃이 캐리어 안에서 팍 시들었고 갖은 정성으로 찬물에 설탕을 타주면서도 내내 시들해서 슬펐는데, 오늘 아침에 대를 좀 자르고 다시 설탕물에 담가놨더니 돌아와서 보니까 좀 살아났음! 덜 시들시들함 :) 그래서 저녁에도 설탕 반 봉지 넣어줌. 남은 설탕은 내일 아침 주려고 접어놓았다.


** 오늘은 4.7킬로, 6,782보 걸었다. 대폭 줄었음. 피곤해서 + 비타우타스의 수난을 야기한 티타임 덕에 ㅋㅋ

:
Posted by liontamer



 

오늘 숙소를 옮겼다. 옮긴 방 사진 :) 이곳이 역시 비싼 만큼 위치, 시설 등 모두 좋긴 하다. 아래 사진 보면 창밖으로 대성당 광장의 종탑이 보인다. 그리고 빨간색 인테리어라 마음에 든다. 그래도 오늘 아침까지 묵었던 네링가 호텔도 가격이나 위치, 리노베이션 등을 고려하면 의외로 괜찮은 곳이었다. 침대도 편하고. 만일 다음에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묵어볼 의향이 있는 곳임)

 

 

 

 

 

 

간밤에 자려다가 귀국 직전 받아야 하는 신속항원검사 해주는 장소를 알아보고 온라인 예약을 거느라 갑자기 좀 정신이 없어져서 그거 해놓고는 좀 늦게 잤다. 일요일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하니 토요일에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주말이라.. 밤중에 영원한 휴가님께서도 톡으로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또 미안했다. 결국 공항에 있는 검사소에 가기로 했다. 빌니우스는 도심에서 공항이 가깝기 때문에 그리 큰 부담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가기 전날 검사를 받아야 하니 결과에 대한 걱정이 많이 되는데 부디부디부디 괜찮기를 바랄 수밖에. 불안하니 내일부턴 자가 키트를 해봐야 하나 싶다. 여기 오니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나도 처음엔 쓰고 다녔는데 쓰는 게 너무 이상해 보이는 상황이었음.

 

하여튼 그래서 늦게 잠이 들었는데 그만 새벽 6시에 또 깨버렸음. 이건 집에서도 그렇고 수면 패턴이 5~6시간 자고 중간에 한 번 깨는데(이렇게 중간에 깨는 건 노화의 증거랬어 흑흑), 오늘은 이러고서 도로 잠들지 못해 끙끙대다 간신히 한시간 가량 얕게 눈을 붙였다. 그래서 오늘은 좀 수면 부족...

 

 

어제 사온 서양배와 코티지 치즈가 든 키비나이와 내가 집에서 챙겨왔던 다즐링 티백을 우려 아침을 먹었다. 빌니우스 카페에서는 홍차딱 하나만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이런 경우는 보통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실론, 얼그레이는 메뉴판에 거의 항상 있는데 다즐링은 없다. 그래서 오늘은 설마 이걸 우려 마시겠어?’ 하며 두어개 챙겨왔던 내 티백을 우렸음. 역시 다즐링이 좋긴 하다.

 

이후 나머지 짐을 꾸려서 11시 반 즈음 체크아웃을 했다. 네링가 호텔 카운터에서 어 그런데 손님은 하룻밤 더 묵을 수 있는데요라고 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아마 내가 이 호텔에 5박 예약을 했으나 첫날 폴란드 항공 어택으로 바르샤바에서 자는 바람에 금요일 밤을 날린 건 계산하지 않고, 체크인한 날짜 기준으로 5박을 세는 모양이었다. , 뭔가 아깝다. 하루 더 잘 수 있는 건데 버리고 가는 거잖아. 하지만 새 숙소도 오늘부터 예약이 되어 있었고 여기가 더 좋은 곳이므로(선불도 했으므로-중요) 그냥 체크아웃하고 나와 볼트 앱으로 택시를 잡았다. 어제 시장 갈 때 잡았던 볼트 택시가 도착했다 해놓고는 알고 보니 한창 오는 중이라 날 깜짝 놀라게 했던지라(택시가 나보다 먼저 도착하면 분당 추가 요금이 올라감. 공항에서 올 때 짐 끌고 달려가다 늦어서 1.2유로 더 냈음) 좀 조마조마했으나 다행히 요번에는 제대로 택시가 시간 맞춰 왔다. 네링가 호텔에서 이번 호텔까지 너무 가까운 거리인데다(택시비 2.5유로임) 짐도 있어 좀 미안했으나 기사가 트렁크도 다 실어주고 내려주고 참으로 다행이었다.

 

호텔에 정오 무렵 도착했는데 여름이라 만실 +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라 내 방 청소가 덜 끝났다고 리셉션에서 미안해했다. 빨리 도착한 쪽은 나이므로 그냥 가방을 맡겨두고 두어 시간 놀다 오기로 했다. 그래서 호텔이 있는 대성당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주피스에 다시 가기로 했다. 며칠 전 영원한 휴가님의 안내로 한 바퀴 돌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티타임도 가졌던 곳이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탐험을 해보기로 함.

 

 

 

(티스토리가 버벅대서 우주피스 사진 몇 장 그냥 모아놓음)

 

 

 

그런데 오늘 정말 너무너무 날씨가 덥고 습해서 우주피스 언덕길 올라가는데 땀이 줄줄 났다. 아니 왜 이 동네 날씨가 우리 나라 같은 거야 비가 올랑말랑 계속 안 와서 그런가 보다 하고 슬퍼하다 그래도 비 안 오는 게 어디냐면서 바람막이 재킷을 벗어 가방에 쑤셔넣고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언덕길을 올라가기도 하고 주변도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천사상 맞은편의 coffee 1이라는 카페(여기도 유명하다고 함) 야외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 백차를 마셨다. 화이트 티를 갖춘 카페라니 좀 놀라웠다(블랙 티, 그린 티, 화이트 티 다 있는데 다즐링 없음 ㅋㅋ) 너무 더워서 시원한 걸 마셔야 했다.

 

 

천사상 앞은 매우 혼잡했다. 그리고 우주피스는 언덕길 옆으로 버스가 다녔고 들러보고 싶었던 성당(문 닫아서 못 들어감) 맞은편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예 언덕 위로 올라가니 평화롭고 좋았는데 천사상 근방과 공방 있는 쪽은 좀 북적거리고 아늑한 느낌이 없어 아쉬웠다. 예술가 동네로 시작해 점차 힙해지고 카페와 음식점이 생기고 자본이 돌면서 점차 변해가는 과정에 들어선 걸까 싶기도 했는데 그러지 말고 잘 유지되면 좋겠다. 첨 왔을 땐 홍대나 문래 쪽 생각을 했는데 오늘은 어쩐지 약간 황금소로 느낌도 들었다. 아마 나는 너무 유명한 곳하고는 딱 맞지 않는 것인지도(...라고 생각했지만 저녁에 빌니우스에서 힙한 디저트 가게에 갔을 때 아니 사실은 딱 맞나?’ 하고 다시 생각을 고쳐먹...)

 

coffee 1에서 디저트 없이 그냥 백차만 마시고 나온 터라 배도 고프고 더워서 정신이 없어 맞은편 rimi 수퍼(이 동네에서 수퍼는 rimiiki 크게 두 브랜드가 잘 보임)에 가서 땅콩초코를 씌운 우유맛 하드를 사먹었다. 그러나 이것을 먹으며 공방들 쪽으로 구경가다 그만 초코 코팅이 툭 떨어지는 비극을 맛봤다 흑흑.

 

우주피스에서 나왔는데 두시까진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었고 가는 길을 통과하는 작은 공원에 하챠푸리 파는 키오스크 가게가 있었다. 그루지야 음식을 파는 곳으로, 빌니우스 오기 전에 내가 하챠푸리 타령을 했었는데 영원한 휴가님께서 이곳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야외테이블 파라솔 아래 앉아 하차푸리 제일 기본 작은 것 1개와, 그래도 하챠푸리니까, 그루지야니까 레드 와인 한 잔을 시켰다. 그루지야 와인이라고 적혀 있긴 한데 진짠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챠푸리는 피자랑 비슷한 것으로 기본은 도우 안에 그루지야 치즈만 들어간다. 여기에 다른 속을 추가하기도 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맨 위에 계란 노른자 얹어서 먹는 버전이 알려져 있다.

 

 

 

 




하챠푸리를 먹으면 항상 쥬인 생각이 난다. 쥬인이 이것을 좋아했다. 오랜 옛날 뻬쩨르에서 같이 연수하던 시절 쉬는 시간이면 쥬인은 뻬쩨르 국립대 매점 카페에서 뜨끈뜨끈한 하챠푸리 한 조각과 타르처럼 진한 새까만 커피 한잔을, 나는 바트루슈카 빵(안에 사과잼이 든 동그란 빵)과 홍차를 먹곤 했다. 그때는 내가 비위가 약해 치즈를 잘 못 먹던 시절이라 쥬인이 먹는 하챠푸리를 전혀 탐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음 ㅎㅎ 하여튼 그래서 하챠푸리는 나에게 오랜 옛날 첫 러시아 경험과 추운 겨울, 뻬쩨르 국립대학교의 작은 교실과 조그만 매점 카페, 쥬인과 당시 친구들, 선생님들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다. 쥬인에게 톡을 했는데 쥬인이 매우 바쁘고 힘들어했다. 여기 쥬인과 같이 와서 하챠푸리 같이 먹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웠다 ㅠㅠ 심지어 하챠푸리는 젤 작은 거였지만 너무 커서 나는 절반도 먹기 전에 배가 찼지만 억지로 조금 더 먹고 남겼다. 2인용이어서 더더욱 쥬인 생각이 났다. 전자렌지 있는 숙소면 싸왔을 텐데 호텔 방이라 가져와봤자 데워먹을 수가 없어서 그냥 남기고 나왔다.

 

이 하챠푸리 식당 테이블들은 새들의 명당인지 온갖 참새와 비둘기들이 주변에 어정거리며 아주 노골적으로 부스러기를 노렸다. 하도 새들이 엉겨대서 그런지 키오스크에 새에게 먹이 주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리투아니아어로 적혀 있었지만 대충 그런 뜻으로 때려 맞춤) 사진에도 보면 내가 앉은 테이블 의자 위에 아예 올라앉은 참새, 바로 옆을 왔다갔다 하던 하얀 비둘기가 있음. 다른 참새 한넘은 아예 접시 옆으로 종종거리며 다가와서 할 수 없이 쫓았다. 나야 어차피 한참 남는 음식이고 그넘도 많이 먹고 싶을 테니 부스러기 주고 싶었지만 며칠 전에도 영원한 휴가님이랑 야외 테이블에 앉아 타르트 먹다가 내가 비둘기 한 마리에게 부스러기를 줬더니 여럿이 우르르 몰려와서 당황했던 적이 있었으므로 ㅠㅠ

 

하챠푸리에 곁들여 마신 레드 와인 한 잔 때문에 급격히 졸렸고 피곤했다. 쭉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니 두 시 반 즈음이었고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방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웰컴 드링크로 뭐줄까 하고 물어보는데 이때 나는 와인의 여파로 좀 머리가 안 돌아가서 나도 모르게 젤 처음 선택지인 스파클링 와인을 택해버림. ... 그래서 맨 위 사진에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이 있음. 저거 들고 방에 들어오니 내 가방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대충 풀고 나서 취기와 피로 때문에 한동안 늘어져 있었다. 아마 습기와 더위에 지쳤던 것 같다. 내가 습기에 쥐약이라서 ㅠㅠ

 

방에서 늘어져 쉬다가 아아 이제 진짜 며칠 안 남았는데 시간이 아까워하며 꾸역꾸역 기어나갔다. 어제 문 앞까지 갔다가 짐 꾸리기 어렵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쳐간 티샵(스코니스 이르 크바파스 라고 하는데 도저히 못외우겠음. 그냥 스콘 이 뭐뭐뭐로 각인됨 ㅋㅋ)에 가기로 했다. 이 티샵은 빌니아우스 거리에 있다. 티샵에 갔는데 아쉽게도 찻잔은 딱 내 맘에 드는 것들이 없어서 못 사고, 다즐링 두 종류를 각 100그램, 50그램 샀다.

 

이번 여행에서는 정말 산 것이 없다. 내 건 안 사더라도 선물용으론 좀 사야 하는데. (시장에 다시 가서 과자랑 꿀을 사야 하나 고민 중. 어제 좀 괜찮은 기념품샵을 발견해 들어갔었는데 여기서도 딱히 딱 맘에 드는 게 없어서 결국은 하나도 안 샀음. 아니면 점점 물욕이 적어지며 미니멀리스트의 길로 가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다 내 트렁크를 또 생각하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다)

 
 

 

 

 

 

차를 산 후에 너무 피곤해서 당분에 대한 갈망이 스멀거렸다. 하챠푸리가 뜨거운 치즈가 잔뜩 든 기름지고 짠 음식이라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며칠 전에 갔다가 사람 많아서 포기했던 빌니우스 인싸들의 디저트 카페인 슈가무어에 갔다. 6시 즈음이라 야외테이블과 안쪽 모두 자리가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디저트들(딱 인스타용 예쁘고 조그맣고 비싼 무스케익들)과 마카롱이 주종인 카페라 그때 자리 없어 못 들어갔을 때도 , 완전 sns용일 거야. 이런 데보다 아늑하고 조그만 데가 더 좋지~’ 했는데 막상 오늘은 힘들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평소 잘 먹지도 않는 망고무스 케익을 시켜서 한 입 먹고 눈이 번쩍 뜨임. 당분 폭격! 의외로 맛있었다. 카페인 때문에 잠 못 잘까 봐 홍차 대신 레몬생강 아이스티를 시켜서 순식간에 해치우고 정신이 좀 든 채 나왔다. 아아 나는 역시 자본주의의 노예였던 것이다.

 

이후 길을 따라 쭉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앞에 왔을 때 근처 rimi 수퍼에 가서 물이라도 살까 했는데 막 길을 건너려는 순간 빗방울이 후득후득 떨어지기 시작해서 아 모른다 지금 있는 물이면 낼 아침까진 괜찮을 거야하며 그냥 호텔로 들어왔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들어온 직후부터 콰과광 하며 천둥도 치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오려고 그렇게 습하고 더웠나 보다.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을 하고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그리고서 오늘의 이 기나긴 메모를 적고 나니 으아 벌써 밤 열 시네. (빌니우스에 와서는 하루의 메모 적는데 거의 한시간 가까이 걸리는 듯함)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종일 뭔가 돌아다녔고 많이 쉬지는 못했고, 그런데 하루는 다 갔고... 아아 왜 이렇게 휴가는 빨리 가는 걸까. 일 안 하고 쏘다니고 노니까 이렇게도 좋은 것을, 언제 그렇게 죽어라 일했는가 싶거늘 흑흑.

 

이 호텔은 조식이 포함되어 있으니 내일은 너무 늦잠 자서 놓치지 않아야겠다. 내일 트라카이라도 가볼까 했는데 이런 날씨라면 아무래도 안 갈 것만 같은 느낌이... (게으름 대폭발) 사실 하루쯤 호텔에 처박혀 푹 쉬고 싶기도 한데 으앙 목금토 지나면 일욜 이른 아침 비행기 타야 하니 호텔에서 뒹굴거리는 것도 아까워 흐흐흑! (이렇게 쓰고 있지만 사실 매우 게으르게, 유적지와 박물관과 전망대는 모른 척하고 카페 같은 곳만 다니고 있는 자)

 

 

오늘은 6.6킬로, 9,286보 걸었다. 요 며칠 중 제일 적게 걸었는데 그래도 다리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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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오전에 들렀던 시장 근처의 헌책방. 러시아어로 된 책들이 많았다. 그리고 고양이가 네 마리나 있었다. 더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발견한 건 네 마리였다. 그중 계속 서점 안을 돌아다니기며 손님에게 제일 많이 엉기던 냥이. 그런데 이 사진에선 엄청 고고한 척 하고 있다. 오렌지 고양이도 한 컷.
 
 
 
 



 
 

앞선 포스팅과 같이 오전엔 영원한 휴가님께서 시장 구경을 시켜주시고 리투아니아 전통음식인 체펠리니도 맛보여 주셨다. 체리 한 팩과 서양자두도 한 개 샀다. 그러고는 저 고양이네 헌책방에 들러 구경을 했다. 나를 위해 책방 구경을 시켜주신 영원한 휴가님께 너무 감사했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흐흑... (오래된 책, 먼지, 고양이털 때문에 콧물/기침을 계속 하시게 되었다... 토끼 한 마리 구경 좀 시켜주시려고 고생을 흑흑)

 

 

그리고는 동네의 힙한 카페인 백스테이지 카페라는 곳에 가서 한동안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카페와 티타임 사진은 아래.

 
 
 








이 카페에서는 커피 원두도 팔고 있었다. 나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홍차와 티라미수를 먹었고 영원한 휴가님은 아이스 에스프레소와 쿠키를 드셨다. 체리는 시장에서 사온 거, 마치 카페에서 파는 과일인양 접시에 함께 :) 영원한 휴가님께서 바쁘신 와중에 내내 시간을 내주시고 좋은 곳 데려가 주시고 먹여주시고 구경시켜 주셔서 정말 감사하기 이를 바 없었다.

카페에서 나와 영원한 휴가님과 헤어진 후 나는 근처 거리를 좀 산책했다. 카페는 시청 근처에 있었다. 지난번 지나쳐 갔었던 성 니콜라스 정교 사원에 잠깐 들어가 기도를 했고, 며칠 전 발견해 초를 켰지만 푸쉬킨의 조부가 세례받은 곳이란 건 몰랐던 정교 사원에도 잠깐 다시 들렀다. 그리고 시청에서 연결되는 번화한 디조이 거리와 거기서 여기저기로 갈라지는 작은 골목들을 좀 돌아다녔고 주변 구경을 하다가 체리와 자두 탓인지 가방도 무겁고 비가 올 듯 날씨가 너무 습하고 더워서 잠깐 호텔로 돌아왔다.

 
 






어느 건물 뒤뜰에 들어가 찍은 사진.

 



돌아오는 길에 게디미나스 대로 한켠에서 꽃들을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서 조그만 수레국화 한 다발을 샀다. 디조이 거리와 그 근방 기념품 가게들 몇 군데 들어갔지만 딱 맘에 드는 게 없어 암것도 안 사서 아쉬웠는데 생각지 않게 수레국화를 사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내일 호텔을 옮겨야 하므로 과연 이 꽃을 잘 가져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흐흑...

다행히 오늘은 돌아오니 청소를 해두었다. 호텔 방에 돌아와 아픈 다리를 좀 주무르며 자두를 먹고 한 시간쯤 쉬다가 4시 좀 넘어서 다시 나갔다. (이제 휴가가 절반 넘게 지나가버려서 수목금토 밖에 없다는 생각에 부쩍 아쉽기 시작함. 그래서 더욱 바르샤바에서 하루 날린 게 아깝지만 그래도 여기 와서 내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날씨마저 아직 비가 올랑말랑 하면서도 계속 안 와서 너무 다행임!)

 
 
 






그저께 영원한 휴가님과 잠깐 구경했던 헌책방 카페가 너무 가보고 싶어서 그곳을 목적지로 잡고 갔다. 구글 맵 덕에 길 못 찾기로 소문난 자인 나도 어찌어찌 대충 여기저기 찾아갈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이 카페는 성 이그노토 거리에 있는데 게디미나스 대로에서 꺾어 토토리우 거리를 따라 쭉 올라가다가 커브를 틀면 나온다. 민트색이라 이름이 민트 비네투인가 추측했다. 그저께 구경했을 때 카페 안쪽 창가에 숨어 있는 테이블이 너무 맘에 들어서 아 저기서는 글도 잘 써지고 비올 때 창가에 앉아 차 마셔도 너무 좋겠다 하고 생각했던 곳이다. 오늘 가보니 야외 테이블 한 개와 문가의 테이블 여럿은 이미 다 차 있었고 안쪽 방의 창가 테이블 3개는 텅 비어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여름엔 햇볕을 쬐어야 하니 웬만하면 바깥으로 가고 안쪽 창가를 찾는 건 나 같은 자뿐인 것 같음.


그래서 고대하던 그 창가 자리를 득템. 점심 때 차를 마셨으므로 여기서는 녹차를 주문했는데 티팟에 내주어서 더욱 좋았다. 창가에 앉아 진짜 오랜만에 아이패드로 스케치도 함. 먼저 올린 두 장의 스케치가 이곳에서 그린 것임. 여기는 조금은 프라하의 카페 에벨 같고 서점 카페라 약간은 뻬쩨르의 뽀드삐스니예 이즈다니야를 생각나게 했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카페가 있다면 자주 갈 텐데. 글도 쓰고. 지금까지는 여기가 빌니우스에서 갔던 곳들 중 가장 맘에 드는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한 시간 반 가량 앉아 차도 마시고 그림도 그리다 나왔다. 성 이그노토 거리를 쭉 거슬러 올라가서 주변을 또 조금 구경하다가 빌니아우스 거리로 가서 어제 키비나이를 맛있게 먹었던 피나비야에 들렀다. 어제 위 용량 부족으로 못 먹어 아쉬웠던 서양배/코티지 치즈 키비나이를 테이크아웃했다. 내일 아침으로 먹으려고. 이 거리가 끝나는 무렵에 티샵이 하나 있는데(이것도 영원한 휴가님이 알려주심. 모든 보물상자를 알려주심 ㅎㅎ) 원래 여기서 홍차랑 이것저것 사려고 이쪽 길로 온 거였다. 그런데 내일 가방을 끌고 숙소를 옮겨야 하니 짐이 늘어나면 귀찮을 것 같아서 일단 방 옮긴 후 다시 오기로 했다. (옮기는 숙소에서도 별로 멀지 않음)

 
 
 




그리고는 호텔 건너편 수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근처 공원에 앉아 먹었다. 이번에 고른 건 플롬비르 아이스크림이었다. 플롬비르는 이름도 러시아어랑 똑같았음. 동그란 공 모양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은 네모진 콘이다. 맛있었다. 여기도 아이스크림이 맛있어 뿌듯하다. 역시 아이스크림은 추운 나라가 맛있다... 라고 쓰다가 갑자기 헬싱키에서 먹었던 맛없는 아이스크림이 생각나서 ‘핀란드 빼고’ 라는 말을 덧붙여본다.


아이스크림 먹으며 까마귀를 구경했다. 공원 한켠에 프리다 칼로 벽화가 있어 까마귀와 어딘가 어울렸다. 왜 프리다 칼로 벽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는 방에 돌아와 목욕 후 간단히 요기를 하고... 너무너무 하기 싫은 짐 꾸리기... 중간에 숙소를 한번 옮기니 이런 귀찮은 일이 생긴다. 묵어보니 지금 호텔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서 그냥 쭉 있었어도 됐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침대도 편하고 널찍함) 여행 결정했던 당시엔 사실 좋은 곳에 며칠이라도 있고 싶어서 다른 곳도 추가로 예약을 했던 것이다(후자에 내내 머무르기에는 숙박료가 날짜 단위로 상당히 차이가 있어 좀 어려웠음) 내일 옮기는 호텔이 구시가지 구경할 만한 곳들엔 더 가까워서 우주피스에 다시 가기도 좀 쉬워질 듯하고.

하여튼 가방을 대충대충 꾸렸다. 가방 끌고 1킬로 가까이 대로변을 걸어가려면 트렁크 하나만 끌고 가는 게 편하니 당초 커다란 트렁크 안에 기내 캐리어를 집어넣어서 하나로 만들어볼까 싶었는데, 짐만 놓고 따지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기내 캐리어 자체의 부피 때문에 그닥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아 몰라, 가깝지만 택시 불러~’ 하고 마음이 바뀜. 볼트 앱으로 검색해보니 엄청 가까운 거리이지만 택시가 잡힐 것 같긴 했다. 그래서 도로 가방 두 개로 꾸리는 것으로 결정하니 매우 쉽게 더욱 대충대충 쑤셔 넣었다. 이건 비행기 타는 게 아니니 굳이 뽁뽁이로 섬세하게 싸야 하는 것도 별로 없고(노트북과 색조 파우치 정도), 방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기념품도 아직 하나도 안 사서(어제의 머리핀 빼고 ㅋㅋ) 이제 내일 오전에 씻고 화장을 하고 나면 나머지 파우치들과 이 노트북 따위를 가방 남은 자리에 대충 쑤셔 넣으면 된다. 아오 쓰다 보니 또다시 ‘으앙 휴가가 절반 넘게 가버렸어’ 하는 슬픔이 몰려온다 흑흑. 다시 졸려오니 곧 침대로 가야겠다.

 

오늘도 도합 8.3킬로, 11,788보 걸었음. 다리가 쑤시긴 하지만 뿌듯한 하루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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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8. 00:51

빌니우스 토끼 - 먹거리 모음 2022 vilnius2022. 6. 8. 00:51






영원한 휴가님 뒷모습 찬조 출연.



이것도 민트 비네투 카페에서 그림. 자리가 모자라서 두어개 못 그렸음.



그런데 크루아상은 정말 그리기 힘들다 ㅠㅠ 역시 토끼 앞발… 그나마 닮은 건 제일 쉬운 저 게으름뱅이 케익인듯 ㅋㅋ 와인이랑 저녁 먹은 곳에선 얘기하느라 수프 빼곤 사진 안찍어서 그림이 매우 대충대충 ㅋ 콘치킨은 저렇게 안생겼던 거 같은데 당근퓨레만 묘사 가능(심지어 퓨레처럼 안보임 ㅋㅋ - 밑에 있는 게 퓨레, 위에 있는게 닭다리입니다 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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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8. 00:48

바르샤바 토끼 2022 vilnius2022. 6. 8. 00:48






진짜 오랜만에 그린 여행 크로키. 오늘 민트 비네투라는 근사한 카페에서 그림. 한 장 더 있는데 그건 따로.




바르샤뱌 호텔 방에서 멍해졌던 순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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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영원한 휴가님이 안내해주셔서 할레스 투루구스/Halle Market 이라는 시장 구경. 과일이랑 이것저것 구경하고 시장 안의 맛집에서 리투아니아 전통음식 체펠리니를 아점으로 사주심. 쫀득한 감자반죽 안에 고기소가 들어간 걸 쪄서 사워크림(스메타나)과 튀긴 고기 토핑을 얹어 먹는다. 느끼할 줄 알았으나 여기가 맛집이라 그런가 의외로 맛있었다! 배도 부름 ㅎㅎ



그리고 체리랑 서양자두 1알도 삼 ㅎㅎ








체리와 서양자두 슬리바는 나에게 여행의 맛, 여름과 백야의 맛이다 :) 잠깐 방에 돌아와 자두 먹는 중. 꽃은 들어오다 길거리에서 어느 할머니에게서 샀음. 노어로 호객 + 수레국화라 이뻐서. 근데 꽃 사고 보니 내일 방을 옮겨야 한다는 걸 까먹었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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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엔 자정 쯤 누웠으나 잠은 한시 즈음에나 들었던 것 같다. 피곤하게 자다가 역시 새벽에 깼다가 도로 자기를 반복. 꿈도 정신없이 꿨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지금 묵고 있는 첫 숙소는 조식 추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늦잠을 자고서 어슬렁어슬렁 아점을 먹으러 갔다. 오늘은 앞서 올렸던 카페 피나비야(빌니아우스 거리에 있음. 위 사진이 카페 전경)에서 버섯과 치즈가 든 키비나이와 홍차로 아점을 먹었다. 집 근처에 이런 맛있는 빵집이 있으면 참 좋겠다 흐흑. 이런 키비나이/엠파나다/피로죡 등 속을 넣어 구운 파이 종류를 좋아하는데. 돌아가면 생각날 것 같다. 내가 영원한 휴가님이 추천하셨거나 데려가주신 곳(=검증된 곳)에서만 빵을 먹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리투아니아의 빵이 맛있다. 심지어 어제 저녁 먹은 양식 레스토랑에서 내준 큐민 넣은 흑빵도 맛있었다. 이 동네 빵은 러시아에서 먹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고 프라하보다는 분명히 확실히 훨씬 맛있다!



키비나이로 아점을 먹은 후, 영원한 휴가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나오셨다 하여 어제 갔던 크루스툼 카페 앞 분수대까지 쭉 걸어올라갔다. 아가들이 정말 너무너무 천사처럼 귀여웠다 :) 아이들이 분수에서 동전과 돌멩이와 녹슨 열쇠 등속의 각종 보물을 사냥하고 길거리의 모래 더미를 등산하고 어제 갔던 곳과는 또 다른 정교 사원의 뒤뜰에서 민들레와 무당벌레랑 노는 것이 정말 이뻤다.



수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고(큰 아가가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하고 계속 먹고 싶어했다 ㅎㅎ 그래서 곁에서 내가 주워먹기로 아이스크림 단어를 외우게 됨), 어제 우주피스에서 영원한 휴가님이랑 야외 테이블에서 파이랑 레모네이드 먹었던 그 빵집 분점이 근방에도 있어 거기서 아이들에게 카눌레와 브라우니, 오렌지 주스를 먹이며 놀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주스라는 뜻의 술티스, 작은 유리컵이란 뜻의 스티클렐레 단어 두 개를 더 외울 수 있었다 :) 아가들이 낯을 가렸으나 아이스크림과 카눌레와 레모네이드에 담겨 있던 각얼음 제공에 힘입어 젤 처음 특히 낯가리던 아가가 헤어지면서는 포옹도 해주고 뽀뽀도 해주어 심장이 다 녹았다 :)))









이것이 그 빵집. 1953년에 연 브랜드인가보다. 빵이 다 맛있어 보였음!





영원한 휴가님과 천사 아가들이랑 헤어진 후에 나는 필리모(이런 이름이었던 거 같음) 거리를 따라 쭈욱 올라가서 호텔이 있는 게디미나스 대로 쪽으로 갔다. 은근히 걸어야 했는데 아마도 금요일부터 계속 강행군에 어제 많이 걸었기 때문인지 다리가 너무 아파져서 일단 호텔 건너편 올리브영 같은 곳인 드로가스에 가서 핸드크림을 사고, 수퍼에 가서 물을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방 청소가 아직도 안 되어 있고 ‘청소해 주세요’ 표찰도 그대로 걸려 있었다 ㅠㅠ 3시도 넘어서 돌아왔건만. 이게 뭔가 싶다가 다 귀찮아서 ‘청소해 주세요’도 빼서 방에 넣어뒀는데 30분쯤 후에 노크와 함께 ‘지금 청소해드릴까요?’ 하고 묻는 직원... 그러면 방을 잠깐 나가 있어야 하는데 이때 다리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아니 오늘은 괘안아요’ 라고 답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나는 근처 카페에 당분과 카페인 섭취하러 나갔으므로 그냥 청소해달라 그럴 걸 그랬나 싶음. 나는 딱히 방을 어질러놓는 편이 아니어서 하루쯤 청소 안해 줘도 아무 문제는 없다만 욕실의 다 쓴 타월 치워주는 건 좀 필요했는데. (좀전에 호텔 안내문을 잘 읽어보니 청소는 8시~저녁 6시 사이에 한다고 적혀 있음. 아니, 아무리 그래도 보통 호텔은 손님이 방에서 나가고 나면 체크를 해서 두어 시간 사이에는 해주는 편인데... 흐흑)









다리가 너무 아프고 피곤하니 오늘은 호텔 근처에 있는 이 동네 카페 체인점에 잠깐 가서 애프터눈 티와 단것을 좀 먹고 들어오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오늘도 7.2킬로, 1만보 넘게 걸었음) 그래서 5분 거리에 있는 카페인이라는 곳에 갔다. 여기는 리투아니아에 거의 제일 처음 생긴 커피숍 체인으로 당시 다른 곳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치즈케익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치즈케익 먹을까 했는데 쟁반에 라즈베리, 피스타치오, 초콜릿 에클레어가 왕창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나의 에클레어 사랑이 용솟음쳐 차 한잔과 초코 에클레어를 주문해 창가 테이블에 앉아 그것을 먹었다. 에클레어가 은근히 맛있었는데 냉장을 하지 않았는지 초콜릿이 줄줄 녹아 손에 묻었다(포크를 안 줌 ㅠㅠ) 그거 빼곤 좋았다. 차도 티백이었지만 마실만 했다. 사실 아가들과 있을 때 중간에 레몬 맛 화이트초코 코팅된 하드도 먹었는데 어째서 왜 초코 에클레어가 이렇게 맛이 있으며 키비나이 먹을 때도 차를 마셨는데 오후의 차는 또 왜 이리 쫙쫙 흡수가 되는지 ㅋㅋ





카페인에 앉아 바르샤바에서 빌니우스 올 때 비행기 안에서 반쯤 읽었던 키다리 아저씨를 가져가 마저 읽었다. 이 책은 순정만화 틀의 원조라고들 하지만(그래서 폄하될 때가 많지만) 사실 나는 진 웹스터의 이 소설을 상당히 좋아한다. (작은 아씨들은 내겐 어딘가 설교조로 느껴져서 딱히 안 좋아함) 굉장히 잘 쓴 소설이고 인물을 정말 잘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다시 읽으면 주인공 주디가 하는 말들 중 구구절절 인생의 지혜가 서린 얘기들이 있어 그것이 좋다. 옛날에 속편인 dear enemy도 사서 읽었는데(여기서는 주디의 대학 절친인 샐리가 주인공임) 이사를 거듭하면서 그 책을 헌책방에 처분했음. 근데 다시 읽고 싶음. 내가 샀던 책은 이미 절판됐는데 다른 출판사에서 딱 한권 나와 있는 것 같다. 돌아가면 주문해볼까 싶음. 속편은 오리지널만큼의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역시 재치와 유머가 있다. 나는 유머감각 있는 작가가 좋다. 내 개인적 기준에서는 웃기는 게 울리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차와 에클레어를 해치운 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다리가 뿐질러질 것 같고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너무 당겨와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을 좀 하고는 만사에 게으른 집토끼 모드가 되어 가방에 챙겨왔던 유부우동 컵라면과 누룽지를 먹었다. 그리고 수퍼에 물 사러 갔을 때 ‘앗 에스트렐라 감자칩 신상이다!’ 하고 눈이 멀어 사왔던 감자칩을 조금 먹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것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아 몇 개만 집어먹고 얼른 밀봉해 두었다. 생각해보니 dill이라고 적혀 있어 신상이라 생각했지만 이미 러시아에서 ‘우끄롭’ 이란 이름으로 사먹어본 적이 있었고 그때도 ‘으윽 뒷맛 안 좋아’ 하며 싫어했던 그것이었다. 러시아어로 적힌 것만 먹다가 영어가 적혀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잊어버렸던 듯.










벌써부터 무지 졸려와서 꾹 참고 있다. 책을 좀 읽고 정신 집중이 만일 되면 글이라도 좀 쓰다가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이 호텔은 오래됐지만 리노베이션을 한 곳이라 화려하진 않아도 방이 널찍/깨끗하고(사실 수피리어 더블룸으로 조금 더 넓은 쪽으로 잡긴 했음) 침대가 상당히 편해서 잘 고른 것 같다.




여기 해는 10시 무렵 져서 그때 컴컴해진다. 페테르부르크보다 위도가 낮아서 본격 백야는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이 동네 여름답게 늦게까지 밝은 편임.









이것은 드로가스에서 산 핸드크림과 머리핀! 아무 생각 없이 머리핀 코너를 보고 있다가 ‘for extra thick hair’라고 적혀 있고 곡선으로 휘어서 고정 각도가 큰 이 핀을 발견! 내 머리가 extra thick hair는 당연히 아니다만 나는 너무 생머리라 그냥은 잘 틀어올려지지 않아서 머리를 땋아서 올려 고정시키기 때문에 핀이 커야 한다. 반신반의하며 샀는데 방에 돌아와서 써보니 여유있게 고정되어 뿌듯해짐. 핸드크림도 있는 것들 중 가장 어딘지 오가닉처럼 생겨서 골랐는데 끈적이지 않고 괜찮아서 기분이 좋아짐.









그리하여 내가 리투아니아에서 처음 득템한 것은 뜬금없이 머리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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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6. 18:20

6.6 월요일 아점 : 키비나이 2022 vilnius2022. 6. 6. 18:20





역시 늦게 나와 피나비야라는 카페에서 리투아니아 전통 파이인 키비나이랑 티로 아점 먹는 중. 엠파나다, 러시아 피로죡과 비슷한 타입의, 각종 속이 든 파이인데 나는 치즈/버섯 속을 고름. 서양배 들어간 게 좀 탐났으나 두개 먹을 위 용량은 안되어...



맛있다 :) 껍질도 바삭하고. 살짝 네프스키 수도원 버섯빵이 생각남. 밖에 앉고 싶었지만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두 앉아서 햇볕이 쨍한 자리 하나만 남아 있어 안에 들어옴. 근데 나는 원래 창가 안쪽에 앉는 걸 더 좋아해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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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오후, 빌니우스의 유명한 우주피스 공화국(빌니우스 예술가들이 공화국이라고 칭하며 만든 동네)의 어느 베이커리 카페 야외테이블에서. 아포가토, 레모네이드, 비스코티 닮은 건 게으름뱅이 케익(양귀비씨 버전), 그리고 견과 타르트. 아포가토와 레모네이드 함께 있다는 것은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뜻! 드디어 3년 반만에 세 번째로 조우한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인스타 스타일로 찍어봅시다~’ 하고 내가 찍었음 ㅎㅎ ‘대충 찍고 귀퉁이를 좀 자르면 됩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



어제 피곤하게 곯아떨어졌다가 5시 즈음 시차 때문에 다시 깼다. 두세시간 뒤척이다 도로 잠들어서 온갖 꿈을 꾸다 10시 다되어 일어났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아직도 붉은 군대의 고통이 몰려와 약을 먹기 위해서는 뭔가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충 씻고 정오 즈음 밖으로 나갔다. 당초 빌니아우스 거리의 티샵에 들르고 그쪽을 따라 쭉 걸어가 보키에츄 거리에 가면 먹을 곳이 많겠지 했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식당이나 카페가 나오지 않고 길이 널찍하고 뭔가 황량했다. 알고보니 한 블록 더 앞에서 내가 꺾어서 길을 잘못 들었음. 헤매다 어찌어찌 보키에츄 거리에 찍어두었던 유명한 디저트 카페에 도달했는데 사람이 많아서 그 맞은편에 있는 크루스툼이라는 다른 베이커리 카페에서 크루아상과 차로 아점을 먹었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하늘이 파랬고 해가 쨍해서 심지어 선글라스를 꺼내서 썼다. 가방 꾸릴 때 선글라스 챙기면서도 비 올 것 같은데 두 개나 챙기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이렇게 꺼내 쓰게 되니 뿌듯했다. 피곤해선지 오늘따라 얼굴과 눈이 팅팅 붓고 다크 서클이 퀭해짐(연착부터 온갖 일을 겪어서 그럴 만도 함) 크루아상 먹은 후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또 길을 잃음. 그러다 아주 작고 예쁜 정교 사원을 발견했다. 다른 카톨릭 교회들이 너무 크거나 소란스러워서 안에 들어가다 말곤 했는데(그래서 초를 켜지도 못함) 이 사원은 정말 작았고 또 아주 조용했다. 그래서 안에 들어가 초를 사서 가족과 나, 그리고 지금 많이 아픈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나왔다. 나중에 영원한 휴가님 말씀으론 여기가! 푸쉬킨의 선조가 세례를 받은 곳이라고 함. 몰랐는데... 또 가야겠다.

 




사원에서 나와서 옷이 불편하니 호텔에 잠깐 돌아가 갈아입어야겠다 하던 차에 영원한 휴가님 메시지를 받고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호텔로 돌아가는데 이때도 여지없이 구글맵을 켰는데도 길을 잃고 헤매며 온갖 골목을 잘못 들어갔다가 간신히 종탑과 대성당을 보고 길을 찾아서 게디미나스 대로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와 잠시 쉬고 있는데 영원한 휴가님이 호텔 앞으로 오셨다.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데 가슴이 두근두근! 우리는 맨 처음 5년 전에 드레스덴의 dm 앞에서 조우하고(나는 프라하, 영원한 휴가님은 베를린 여행 중이어서 중간지대인 드레스덴에서 급번개로 만났음), 두 번째로는 서울의 이문동에서, 그리고 3년 반 만에 그것도 빌니우스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아마도 프라하나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ㅎㅎ



신기하게도 동양인이라고는 아무리 봐도 눈에 띄지 않는 빌니우스의 도심 가장 큰 대로변에서 영원한 휴가님을 다시 만나니 뭔가 반가움과 함께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너무 반갑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영원한 휴가님의 인도를 따라 골목들을 거닐고 우주피스에도 갔다. 우주피스는 아껴두고 있었는데 어쩐지 영원한 휴가님이 알려주실 것 같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우주피스 언덕길을 올라가 저 작은 빵집 앞의 역시 작은 야외테이블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타르코프스키 영화와 노변의 피크닉, 솔라리스 얘기도 잔뜩!), 유명한 우주피스 헌법이 각국어로 씌어 있는 것도 보고, 무슨 거리 또 무슨 거리도 돌아다니고, 내가 궁금해했던 빌니우스 대학 안마당에도 잠깐 들어가고, 너무 아늑하고 이쁜 헌책방에도 들어가 보고... 그리고는 스티클루(? 이름 정확하지 않음) 골목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앉아 거한 저녁을 먹었다. 레드 와인 1잔, 생선수프, 까망베르 치즈 샐러드, 블루치즈가 들어간 버거, 콘 치킨 요리(껍데기를 바삭하게 구운 닭고기였음)를 시켜서 ‘이걸 다 먹으려면 몇시간은 먹어야 할텐데요’ 라고 했지만 다 먹음 ㅋㅋ



그리고 게디미나스 대로의 이키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1개씩 사서 먹고(나는 리투아니아산 에스키모 비슷한 초코 입힌 우유맛 하드를 고름), 내가 가져온 책 몇권과 먹거리 약간을 챙겨드리는 것을 핑계로 호텔 방에 올라와 함께 도라지 차를 한잔씩 마시고 얘기를 조금 더 나눈후 이미 밤이 너무 늦어 영원한 휴가님께서는 택시를 타고 귀가하셨다. 사실 시간 내기가 정말 쉽지 않으셨을 텐데 오후부터 밤까지 통째로 함께 있어 주시고 봇물 터지듯 즐겁게 이야기를 나눠주신 영원한 휴가님께 너무 감사했고 정말 너무 기뻤다. 이곳을 알게 해주시고 결국 와볼 수 있게까지 해주신 것도 :)



원래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나 정신없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사진 같은 건 찍을 겨를이 없다. 그래서 오후 사진들은 거의 없다. 그저 행복감과 충만함만 가득 남는다. 밥 먹고 돌아 나오는 길에 파란 하늘에 동동 뜬 벌룬들을 봤다. 사진으로 봤을 땐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하늘 위에 무게 없이 구름처럼 떠 있는 벌룬들을 보니(사람들이 실제로 탄다고 함! 꺅!)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너무 높아서 폰으로 찍었더니 깨알만하게 나와서 사진은 안 올림. 오늘은 그 벌룬 같은 하루, 그런 기분이었다.


** 추가


오늘의 앱을 보니 정말 많이 걸었다. 총 12킬로, 18,907걸음이라고 나온다. 기록임. 아점 먹으러 가서 헤매면서 6킬로, 나중에 영원한 휴가님 만났을 때 또 그 정도 걸은 듯 :) 그런데 반가움 때문인지 와인 한 잔의 술기운 때문인지 오늘은 어제보다 다리도 덜 아픈 느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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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은 우아하고 예쁘고 깨끗하게 먹기 힘든 빵이다. 중간중간 손가락을 닦아가며 가능한 조심스럽게 먹고자 노력하지만 접시엔 결국 각종 잔해가...


늦게 일어나 정오 지나서야 뭐 먹으려고 기어나왔는데 길을 헤매다 유명한 디저트 카페 앞에 도착. 그러나 그곳에 사람이 많아서 건너편의 한적한 베이커리 카페에 들어와 초코 크루아상과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로 오늘의 아점을 먹음. 메뉴에 영어가 없어서(커피 종류만 영어로 적혀 있음) 눈이 동글동글 ㅋㅋ



홍차는 리투아니아어로 뭘까. 결국 영어로 물어봤음. 그런데 2유로 이내였던 것 같은데 잎차를 줘서 매우 좋음 :) 빵은 그냥 무난했지만 빈속에 당분 탄수화물 카페인이 들어가니 정신이 들었다.



이 카페의 이름은 Crustum이다. 밝고 안에 테이블이 몇개 없어 유리문 너머로 사람 구경 + 그 유명한 디저트 카페(슈가무어란 이름이다) 가는 사람들 구경하기 좋음. 앗 근데 그 사이 갑자기 바깥 하늘이 좀 어두워지는 듯 ㅠㅠ 이제 곧 나가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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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에 무사히 도착했다. 참으로 길고 험난한 여정이었다. 오랫동안 여행, 출장 다 통틀어 처음으로 연착 때문에 연결 비행기를 놓쳤다. 그것도 그 다음 비행기는 만석이라 못 타서 폴란드항공에서 준 바우처로 바르샤바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루 자고 오늘 오전 11:55 비행기를 탔다. 그나마도 연착되어 12시 25분에 이륙했는데 바르샤바에서 빌니우스까지의 거리는 거의 페테르부르크-헬싱키 거리 정도인 모양이다. 50분도 안되어 도착함. 시차 때문에 새벽에 깬 것과 바르샤바에서 아침 산책한 얘기는 앞 포스팅에 썼으니 생략. 

 

 

어제 트랜스퍼 데스크에서 보딩패스를 받긴 했지만 밤에 모바일체크인하면서 자리를 바꾸었고(너무 뒷자리를 줘서 비행공포+멀미 보유자로서 앞좌석으로 바꿈) 거기 더해 과연 내 짐이 제대로 도착할지 너무나 걱정이 되어 카운터에 가서 바뀐 좌석으로 새 보딩 패스를 받고, 내 짐은 어떻게 되느냐고 두번세번 계속 물어서 확인을 받았다. '내 짐은 빌니우스에서 받나요? 어제 서울에서 보낸 내 짐이요. 나랑 그 짐이랑 지금 이 같은 비행기 타고 가는 거죠? 빌니우스 공항 도착하면 내 짐이 나오는 거죠?' 하고 계속 물었다. 다행히 직원이 친절하게 그렇다고 확언해주었다. (나도 이렇게 바보같이 두번세번 묻고 싶지 않았지만 어제 연결편 놓치고 트랜스퍼 데스크에서 빡쳤던 기억이 너무 생생하고, 그것 말고도 사실 폴란드항공 때문에 빡친 게 많아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계속 물었던 것임) 어제부터의 이 험난한 과정에서 정말 영원한 휴가님께서 이것저것 알려주시고 이야기를 나눠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더욱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비행기가 중간에 좀 여러번 흔들려서 살짝 무서웠지만 마음을 달래고자 챙겨왔던 추억의 삼중당 문고(1500원/'읍니다' 표기) '키다리 아저씨'를 읽으며 잘 견딤. 이 책은 옛날 문고본이라 진짜 작아서 이렇게 여행 갈때(보다 정확하게는 비행기 탈 때) 챙기는 적이 종종 있음. 

 

 

빌니우스 공항에 내려서도 '와 빌니우스 왔다!' 보다는 과연 내 짐이 같이 왔느냐 걱정이 앞섰다. 바르샤바 공항에서 밤새고 온 짐 ㅠㅠ 벨트에 다른 짐들은 나오는데 다 시커먼 색들 뿐이라 슬슬 걱정되던 차에 눈에 띄는 버건디 레드 트렁크가 보이는 순간 정말 눈물이 날만큼 기뻤음(오랜 친구 상봉한 수준 ㅋㅋ)

 

 

그런데 카트에 트렁크와 기내캐리어를 실어보려 했으나 1유로를 넣어야 쓸 수가 있어서 순간 '앗 리투아니아도 너무해' 라는 생각이 들어버렸음 ㅠㅠ 동전이 없어서 결국 양손으로 낑낑대며 캐리어를 끌고 택시 정류장 쪽으로 나왔다. 영원한 휴가님이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볼트 앱을 깔고 택시를 불렀는데 이 차는 오른편 끝 주차장으로 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몰라서 우왕좌왕하다가 볼트가 적힌 차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양손으로 짐을 끌며 간신히 그리로 갔다. 손목 힘이 진짜 없는데 극한 상황에서 뭔가 괴력을 발휘한 것 같음 ㅠㅠ 

 

 

호텔까지는 10분 좀 넘게 걸렸다. 그런데 내 호텔이 있는 게디미나스 대로 진입로가 주말이라 그런지 원래 그런지 차없는 거리가 되어버려서 근처 골목에서 내려서 또다시 짐을 끌고 걸어가야 하는 마지막 미션이 출몰했다. 아아아 게다가 돌바닥이야... 어깨랑 손목이 다 나간 것 같음. 

 

 

하여튼 이렇게 해서 온갖 고난 끝에 본시 오려던 호텔에 거의 20시간 늦게 도착을 했다. 길지 않은 휴가 중 하루를 그냥 날린 셈이 되었지만 어차피 어제 저녁에 도착했어도 구경 못하고 그냥 나가떨어졌을테니 그냥 바르샤바-라고 쓰고 공항 근처 호텔과 뒷골목이라 읽는다- 잠시 머물렀다 온 데서 의미를 찾아보기로 했다. 못 찾으면 나만 손해니까 ㅠㅠ 방에 들어와 짐 푸는 데 한시간 걸림. 평소보다 짐이 좀 많기도 했고 너무 지쳐서 머리가 좀 멍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샤워도 잠깐 하고 옷도 갈아입었다. 배고파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호텔 리셉션 직원이 방문을 두들겨서 첨엔 '누군가 이상한 남자인가' 하고 안 열어줬는데(밖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알아듣기 어려웠고 키홀이 너무 높이 있어 내 눈에 안 닿음 흑흑), 계속 문을 두드려서 결국 열어줬더니 영원한 휴가님께서 지도와 이것저것 정보를 맡겨두고 가신 것을 전달해주어 나는 크나큰 감동에 휩싸임. 엉엉... 고생해서 온 보람이 잔뜩 있음. 

 

 

너무 배가 고파서(조식이랑 비행기에서 준 애플 번 반쪽 외엔 안 먹어서) 어디든 가서 뭘 먹어야겠다 하고 기어나왔다. 게디미나스 대로는 빌니우스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데(네프스키 대로, 파리슈카 대로 같은 곳이었다) 토욜이라 사람이 너무 많고 여기저기 킥보드가 휙휙 지나가서 넘 정신이 없었다(역시 수면부족과 허기 때문이었는지도) 어리바리 사람에 밀려 걷다 보니 여행서에서 본 대성당 광장과 종탑이 나타나서 '어 여기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거였어?' 하고 놀라고 덕분에 며칠 후 옮겨가야 할 두번째 숙소 위치도 확인했다. 이 정도면 가방 끌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 인파만 없으면. 평일 낮엔 좀 나으려나.... 

 

 

피로와 수면부족 때문인지 판단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주변 정보도 눈에 안 들어와서 영원한 휴가님께서 추천해주신 곳들 중 한곳을 구글맵으로 찍어서 목적지 설정을 해놓고 걸어갔다. 그리하여 나는 뭔가 레스토랑이 밀집된 예쁜 관광 골목으로 추정되는 필리에스 거리로 들어가서 맛있는 블린 카페에 갔다. 이름은 필리에스 케피클렐레(자꾸 나 혼자 공연히 헬렐레, 우쿨렐레 생각나서 웃었다 ㅋ)였는데 아늑한 곳이었다. 메뉴 있냐고 물어봤는데 점원 여인이 '아 그건 러시아어 메뉴에요 영어 메뉴 줄게요'라고 하기에 엉겁결에 '러시아어 메뉴 주세요 괜차나요' 하고 노어로 말하자 이 여인은 원래 러시아 사람인지 아니면 리투아니아인이지만 러시아어를 너무 잘하는지 내가 듣기에는 거의 그냥 네이티브처럼 얘기를 하셔서 나는 '아 그냥 영어로 볼걸' 하며 아주 약간 위축됨. (수면부족 상태라 노어도 영어도 안되고 있었음 ㅋㅋ) 버섯 블린과 딸기잼/바닐라 아이스크림 얹은 디저트 블린을 시켰는데 전자는 좀 시큼한 맛이었지만 그래도 맛있었고 후자도 비주얼은 상당히 촌스러웠으나 무시했던 딸기잼이 진짜 딸기 갈아놓은 맛이라 맛있었다. 정신없이 블린 두 장과 얼그레이를 한잔 해치운 후에야 정신이 좀 돌아왔음. 그래서 리투아니아에서 내가 젤 처음 먹은 음식은 블린이 되었다. 뭔가 체펠리나이나 키비나이 같은 걸 먹었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일말의 자가의문이 들었지만 ㅎㅎㅎ 지금 내 상태에서 그것들은 조금 느끼할 것만 같았다. 

 

 

다량의 탄수화물과 약간의 단백질(...이 있었나? 버섯엔 단백질이 좀 있었겠지?), 지방과 당분, 카페인 섭취 후 좀 머리가 깨었다. 밥 먹은 곳 바로 옆에 작은 골목이 있었는데 한적하고 이뻐서 거기로 들어갔다가 여행서에서 봤던 교회가 두엇 나타나고, 이곳들을 지나가자 게디미나스 타워도 보이고(하늘 파랄 때 올라가서 전망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경사가 높아서 올라가는 거 포기. 가까우니까 머무는 동안 가야지, 유료 승강기를 타고 ㅋㅋ) 하여튼 여기저기 보였다. 구시가지 골목들이 예쁘고 평화로웠다. 여기저기 작은 꽃들도 보고 녹색 잎사귀도 많이 보았다. 첨에 나왔을 땐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점점 하늘이 쨍해져서 햇살이 뜨거웠다. 

 

 

그래서 군데군데 좀 돌아다니며 산책하다가 점점 다리가 너무 아파와서 다시 게디미나스 대로를 따라 호텔로 돌아왔다. 중간에 생수 작은 것 두 병을 사왔다. 폰의 앱을 보니 오늘 바르샤바와 빌니우스 합쳐서 6.3킬로, 9,286걸음 걸었다고 나온다. (그게 별거냐 하겠지만 내 체력으로는 많이 걸었음!) 근데 얼마전부터 왼쪽 발바닥이 좀 아팠는데 오늘도 돌아오니 아파서 '혹시 족저근막염의 전조인가' 하는 걱정이 좀 됨 ㅠㅠ 원체 발에 살도 없고 쿠션도 별로 없는 편이라서. 안돼 휴가를 왔는데 흑흑... 

 

 

방에 돌아와 다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오늘의 메모를 적고 있다. dslr 가지고 나갔지만 인파에 밀리며 포기, 그리고 나중엔 무거워서 포기하고 그냥 편하게 폰으로만 찍었다. 괜히 무거운 카메라 가지고 나왔다고 슬퍼했다 ㅠㅠ 그래도 폰이 확실히 편하긴 한데 나중에는 ' 아 그래도 카메라로 찍을걸 ㅠㅠ' 하고 후회가 좀 되는데 ㅠㅠ 

 

 

너무너무 졸려서 이 메모를 대충 짧게 적으려 했으나 적다보니 그래도 오늘의 주요한 일들은 다 적은 것 같다. 부디 오늘은 새벽에 깨지 않기를... 붉은군대가 오늘이 가장 아프고 힘든 날이라 정말 좀 괴로웠다. 좀전에 약을 다시 먹었다.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내일도 오늘처럼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이제 곧 자러 가야겠다. 이제 오늘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들 여럿과 함께 마무리.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게디미나스 대로. 이때는 사람이 없네. 빛이 너무 좋아서 찍었다. 녹색 잎사귀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 보는 거 너무 좋음. 

 

 

아기자기한 구시가지 골목 스냅 세 장. 빌니우스 구시가지 골목들에는 여기저기 드보르(중정)가 많았다. 페테르부르크보다 는 프라하랑 더 닮은 드보르들이었는데 이쁜 곳들이 많았고 훨씬 개방되어 있어 살짝 들어갔다 나오면서도 '들어가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명소 사진 몇 장. 대성당 앞 종탑을 비롯해서...

 

 

 

 

 

 

 

 

 

 

 

 

 

 

 

 

 

 

 

여기가 블린 먹고 회생한 필리에스 케피클렐레

 

 

 

 

 

 

대성당 광장 쪽을 돌고 있던 꼬마 열차. 사진만 봤을 땐 몰랐는데 여기 정말 사람들이 타는 거였다, 코끼리 열차처럼. 세번이나 마주침. 기관사 아저씨가 종을 울리며 손을 흔들어줘서 나도 손을 흔들어줌. (그런데 혹시 비키라는 거였을지도 ㅋㅋ)

 

 

 

 

 

 

날씨가 점점 좋아진 것이 너무 뿌듯하여 하늘 사진 한 방 찍은 걸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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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여덟시 반쯤 곯아떨어졌지만 시차 때문에 새벽 두시 안되어 깨버렸다ㅠㅠ 간신히 한시간 가량 얕게 눈을 더 붙이긴 했지만 너무 졸리고 피곤하다.



배도 고프고 몸도 아파서 약을 먹으려면 조식부터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6시에 일어나 샤워하고 거품 안나는 호텔 샴푸로 머리도 감고 말렸다. 그래도 방에 바디로션이라도 있어 다행임 ㅠㅠ



조식 먹으러 갔더니 한국분들이 드문드문 있었는데 들려오는 대화로 판단컨대 나처럼 어제 연착으로 뱅기 놓쳐서 자야 했던 분들인 듯했다. 혼자가 아니어서 어쩐지 마음의 위안이...



밥먹고 잠깐 호텔 뒷길 산책하고 옴. 공항 근처라 주변에 진짜 구경할게 없지만 그래도 그냥 가긴 서운해서. 길이 텅 비어 있었는데 사진 왼편 큰 나무가 있는 공원에서 새소리가 많이 나서 그것이 아마 바르샤바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해가 엄청 뜨거웠다! 빌니우스도 이 날씨여야 할텐데.



빌니우스는 여기보다 한시간 빠르므로 도착하면 오후 두세시... 귀중한 휴가 중 하루를 꼬박 손해보는 기분이라 다시금 폴란드항공이 원망스럽지만 일단 잘 도착하는게 제일 중요하니 툴툴대지 말아야지.



방에 돌아와 가방을 다시 꾸림. 숄더백에서 몇가지를 꺼내 기내캐리어로 옮김. 원래 세면도구조차도 검색대에서 지퍼백 꺼내는게 싫어 항상 큰 트렁크에 넣어 부쳐버리는데 요번엔 클렌징 패드, 초미니 폼클렌저와 크림, 스킨 마스크팩 두장을 캐리어에 따로 챙겨와서 간신히 간밤 클렌징 후와 오늘 아침 내 피부를 구했다. 딱히 좋지도 않은 피부이지만 ㅋㅋ








심지어 안대랑 슬리퍼까지 ㅋㅋㅋ 트렁크에 자리가 모자라기도 했고 하여튼 요번엔 느낌이 이상했었다! 평소엔 기내캐리어에 이런거 안 넣는데!



점점 너무 졸려온다 으윽.. 10시 반에 택시 예약을 해 두었으니 좀 쉬다가 나가야겠다. 오늘의 미션은 무사히 빌니우스 도착 + 어제 부쳤던 내 트렁크를 무사히 빌니우스 공항에서 되찾는 것이다. 모두 잘 이루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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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디일까요?


생각지 않게 바르샤바에서 1박하게 됨 ㅠㅠ 폴란드항공 연착으로 바르샤바에 도착하니 이미 빌니우스행 뱅기를 놓쳤고 한밤중 있는 다음 비행기는 만석이라 자리가 없다... 내일 11:55가 제일 빠른 비행기라 한다. 카운터에서 언쟁하다 너무 지치고 또 넘 빡치니 영어도 피곤하고 별 도리가 없어 걍 택시, 호텔 바우처 받아서 공항 근처 호텔에 옴.



쓸 얘긴 너무 많지만 너무 피곤하니 일단 자야겠다. 좋게 생각하자 ㅠ 바르샤바 공항만 찍고 가는거였는데 하루 자고 가게도 됐으니 다 경험! (이런 경험 원치 않았지만 ㅠㅠ)


내일 부디 무사 도착하길. 짐은 낼 도착해서 찾는걸로 수차례 확인했는데 이 망할 폴란드항공 믿을수가 없... 아니야 좋은 생각만 해야 해. 요번에 이상한 상상을 한게 다 들어맞아서ㅠㅠ 심지어 연착되어 짐을 못 받을까봐 기내캐리어에 최소한의 세면도구 티셔츠 언더웨어를 챙겨왔는데 그것이 신의 한수였는지 말이 씨가 된건지 몰것다. 일단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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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계속 못 나가다 2년 반만에 인천공항 옴. 라운지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간밤 11시에 청천벽력처럼 도착한 무려 3시간 비행 지연 문자 ㅠㅠ 숙소 등 연락하느라 정신없다 보니 결국 머리를 너무 써서(ㅠㅠ) 잠은 서너시간 밖에 못 자고, 6시에 일어나려던 걸 4시 15분에 퍼뜩 놀라 깨서 '아 왜 알람 안 울렸지!' 하다 '아 연착, 6시까진 잘수 있다' 했지만 잠이 깨버려서 결국 뒤척이다 5시 좀 넘어 포기하고 일어나 따뜻한 물에 목욕을 잠깐 하고, 심지어 생각지 않은 시간여유(ㅠㅠ)에 청소까지 하고! 6시 20분쯤 나와서 택시를 타고 공항에 왔다. (근데 어떻게 딱 저렇게 원래 일어나려 했던-연착 전 알람- 4:15에 깼는지... 나도 내가 무섭다)








공항은 한적했다. 일찍 오기도 했고(7시 도착), 코로나 때문에 항공편이 줄어서..




폴란드항공 첨 타는데 좌석 승급해보려던 게 꼬인 것도 있고(이 항공사에서 제대로 연락을 안해줘서 꼬임) 이 연착 때문에 바르샤바-빌니우스 비행기 당초 편을 못타게 되어 그 다음 편(한밤중 ㅠㅠ) 조정도 해야 해서 그냥 빨리 온 것이다. 일찍 왔는데 그나마 카운터 오픈이 돼 있어 급하게 갔다. 좌석 꼬인 건 금방 해결됐으나 다음 비행기 표는 여기선 못 바꿔주고 바르샤바 공항에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ㅠㅠ (자기들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함. 비행기 적게 타본 건 아닌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 나도 모름 ㅠㅠ) 뱅기에서 내리면 현지 직원이 안내해줄거라는데 과연... 나 말고도 환승 승객이 엄청 많아서(주로 프라하나 파리 등 가는 승객들인듯) 아마 내리면 직원이 안내해줄거라고 하는데 믿어봅시다 흑흑. 하지만 영어로 얘기해야 하잖아 엉엉 ㅠㅠ 빡치면 영어보다 이상한 노어가 나올거 같다... 그러나 요즘 폴란드에서 노어 쓰면 분위기 싸할듯.



내가 투덜대자 담당직원이 빌니우스행 당초 뱅기가 연착하면 탈수도 있을 거라고 감언이설로 달래는데 바르샤바 오후 5시 도착, 쉥겐국가라 입국심사 따위를 거쳐야 하는데 당초 뱅기는 4시반 출발이라 택도 없다 ㅠㅠ 걍 맘을 내려놓고 쇼팽공항을 마음껏 7시간 반동안! 거닐며 밤 비행기를 탈수밖에 없을듯 흑흑... 그저 그 밤 비행기나 자리가 마련되어 무사히 탈수 있기만 바란다.



요번엔 면세쇼핑을 하나도 안했다. 그냥 라운지에 와서 넘 힘이 들어 스크램블드 에그와 게살수프, 녹차와 내가 챙겨온 체리 몇알을 먹었다(연착 때매 새벽에 시간 남아서 청소에 이어 저 남은 체리 몇알을 씻어서 챙겨옴) 10시 40분 보딩이라 하니 좀더 쉬다가 게이트로 가봐야겠다. 아직 붉은군대의 본격 마각이 드러나지 않았다ㅠㅠ 일단 방금 약을 먹음 흑흑. 몸이 너무 힘드니 돈은 들었지만 좌석 승급이라도 해서 다행이다(이번 편도만. 내가 여태 이렇게 승급시킨 적이 없는데 이번엔 너무너무 힘들어서 돈을 좀 쓰고 대신 면세쇼핑을 포기.. 라고 눈가리고 아웅 ㅋ)








원래 가방 무게 재보고 가려 했는데 공항 들어오자마자 폴란드항공 카운터 오픈된게 정면으로 보여서 어? 하고 그냥 직진하는 바람에..



트렁크가 여태까지 꾸렸던 적보다 더 무거운 느낌이라 좀 오버됐겠다 싶어서 공항 저울로 재보고 책을 좀 빼서 기내캐리어에 넣을까 했는데 다 놓침. 그래도 딱 0.5킬로 오버돼서 그냥 통과했다. 그나마 짐을 최종 목적지에서 찾으니 다행.



너무 졸리고 삭신이 쑤신다. 방금 또 업무전화를 받음 ㅠㅠ 나 휴가라고 제발 놔두라고 이것들아ㅠㅠ



하여튼 이래저래 한시간 좀 지나면 출발한다. 뱅기 안 흔들리길. 그리고 머나먼 여정을 잘 버틸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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