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1

« 2024/11 »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어제 예술의 전당에서 국립발레단의 '교향곡 7번'과 '봄의 제전' 공연을 보고 왔다. 리뷰라기보다는 간단한 메모와 사진 몇 장만.

 

한동안 꽤 바빠서 여유가 없었고 두 작품 다 내 취향에 딱 맞는 안무가들은 아니어서 이 공연은 보러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막판에 알렉산드르 자이체프가 제물을 춘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끊었다.

 

강수진 감독이 취임한 후 국립발레단 레퍼토리는 좀더 풍성해진 것 같다. 무대 위에 올라오는 무용수들도 좀더 생기넘치는 느낌이고.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비롯한 독일, 서구 레퍼토리들이 수혈되고 있고.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은 전에 영상만 몇 번 봤는데, 사실 내 취향과는 잘 맞지 않았다. 이게 숄츠의 안무 자체가 그렇다기보다는 내가 춤을 보는 취향 자체가 좀 그렇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보는 건 좋지만 추상적인 움직임만으로 이루어지는 발레보다는 어떤 플롯이나 긴장감이 존재하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마 그래서 내가 발란신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운문보다는 산문적인 인간이므로 ㅠ

 

무대에서 본 교향곡 7번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이나 음악과의 조화를 보는 맛은 있었지만 역시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그렇게 비슷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지난 7월에 마린스키에서 봤던 라트만스키의 콘체르토 DSCH가 좀 생각났다. (그 작품도 보다가 지루했었다 ㅠㅠ)

 

그래도 김지영씨와 김현웅씨를 보는 건 좋았다. 정영재씨도.

 

그리고 봄의 제전.

 

예전에 '러시아 일기'에서 '나의 첫 발레'에 대해(http://tveye.tistory.com/19) 쓴 적이 있다. 오래 전, 내가 마린스키에서 처음으로 보았던 발레가 바로 봄의 제전이었다. 그때의 안무가는 예브게니 판필로프. 희생양 제물을 춘 것은 예브게니 이반첸코. 그래서 봄의 제전은 내게 좀 특별한 작품이다. 그리고 니진스키.

 

봄의 제전은 워낙 여러 안무가들에 의해 재해석되었기 때문에 '이거다~'라고 딱 짚기는 어렵다. 몇년 전 마린스키에서도 오리지널을 재생해 올리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격렬하고 그로테스크하고 좀 광적인 '제전'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뒤틀리고 파괴되고 살아나는 육체의 느낌이 강렬한 제전.

 

글렌 테틀리 버전은 반쯤은 그렇고 반쯤은 아니다. 영상으로 보았을 때는 '조금만 더 치닫는다면 좋을텐데'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대도 좀 비슷했다. 물론 영상보다 더 좋았다. 오케스트라가 스트라빈스키를 연주하기 시작하면 어쩐지 주술에 걸린 듯한 기분이 살짝 든다. 페트루슈카도 그렇고 불새도 그렇다. 봄의 제전은 더 그런데... 좀 아쉬웠던 건 어제 오케스트라의 봄의 제전 연주는 너무나 부드러웠다. 나로서는 좀더 꽝꽝거리고 좀더 사람을 몰아가고 좀더 기분나쁘게 만드는 연주가 더 좋은가보다. (물론 이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들에 대해서만 그렇다!)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혼신을 다해 춤췄다. 연습도 많이 하고 공도 많이 들인 것 같았다. 군무에서 가끔 리프팅이나 스텝을 삐걱거리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원체 고전과는 다른 움직임이고 그런쪽 레퍼토리도 별로 없으므로 그 정도는 이해가 간다. 전반적으로 무대가 영상보다 좋아서 만족했다. 다만, 연주를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대를 보면서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격하고 조금만 더 섬뜩하고 조금만 더 치명적으로 춰주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건 무용수들에 대한 게 아니고 테틀리 안무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이라서..

 

그리고 테틀리 버전의 대지와 대지의 여신 페어는 야심찬 의미를 담고는 있지만 나는 항상 그 페어를 볼 때마다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무대 위의 그 페어는 상징성을 따져보자면 좀 더 강력하고 존재감이 커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카리스마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난 이영철씨도 아주 좋아한다. 무용수들은 좋았다. 하지만 무용수들과 그들의 실력이 좋은 것과 춤사위와 작품이 좋은 것 사이에는 꽤 다른 뭔가가 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자이체프. 사실 이 사람 보러 갔었다. 이제 나이도 꽤 많고 댄서로서는 거의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다만 그래도 좋은 무용수였고 제물 역으로는 베테랑이다. 사실 내가 봄의 제전에서 정말 보고 싶은 건 희생양 제물의 춤이고 그 춤이 근사하다면 더 이상 불평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자이체프의 춤은 좋았다. 그의 움직임과 풍부한 표현력, 그리고 시종일관 뒤틀어지고 꺾였다가 늘어지고 길게 내뻗고 매달리는 춤사위, 그 변형되고 뻗어나가고 늘어지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공연 잘 보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내가 이런 데 좀 약한 구석이 있긴 하다. 그러니까, 드라마틱한 희생이라든지, 무대 위에서의 격렬한 죽음과 재생이라든지... 그건 문학도 마찬가지라서(ㅠㅠ)

 

커튼 콜도 오래 지속되었다. 좀 아쉬웠던 건 아무래도 우리 관객들에게는 자이체프가 좀 생소한 무용수여서 그랬는지 명색이 제물인데다 주인공인데 갈채와 환호가 대지 페어보다 적었다는 것인데.. 아쉽긴 했다.

 

볼쇼이 무용학교와 그쪽 출신이지만 슈투르가르트 발레단을 비롯해 유럽 쪽에서 활동해온 무용수라 국내에도 이름은 영어식인 알렉산더 자이체프로 소개되었다. 사실 지금 쓰는 글에 나오는 무용수 하나에게 이 사람 이름을 따서 '자이체프'란 성을 붙였었다. 꼭 이 사람 하나만은 아니고, 미하일로프스키 발레단에도 이반 자이체프라는 수석무용수가 있는데 둘 다 괜찮은 무용수라.. 그래서 이름 따왔다 :) 슬프게도 그 이름 얻은 등장인물은 진짜 모델 두명처럼 잘 나가고 인정받는 무용수가 아니라는 게 함정이지만^^;

 

하여튼 오랜만에 무수한 육체들이 뒤엉키는 무대를 보고 나자 스트레스도 좀 풀리고 한동안 답보 상태에 빠져 있던 글쓰기도 이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당에서 찍은 사진 몇 장과 커튼 콜 사진 몇 장들.

 

 

 

 

 

 

교향곡 7번, 커튼 콜. 김지영씨와 김현웅씨.

 

근데 내가 뒤늦게 표를 끊느라 2층에서 봤기 때문에 줌을 최대로 당겨도 이 정도밖에 ㅠㅠ

 

 

 

 

 

봄의 제전 커튼 콜. 이건 무용수들이 대부분 헐벗고 있는데다 조명도 어두워서 더 안 나왔다 ㅠㅠ 사진만 보니 좀 목욕탕 같네 흐흑..

 

앞줄 왼편에서 네번째 남자가 알렉산드르 자이체프.

 

 

 

 

 

화질 나쁜 커튼 콜 사진이 슬퍼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페이지에서 가져온 봄의 제전 화보들 몇 장. 제물 역은 대부분 알렉산드르 자이체프.

 

 

 

 

 

 

 

 

 

 

 

 

 

마지막 장면. 이 화보의 제물은 자이체프 말고 다른 무용수.

 

 

 

좀 아쉬우니 알렉산드르 자이체프 화보 몇 장.

 

 

이건 산티아고 발레단의 루이스 오르티고자와 함께, 라 바야데르 리허설 중. 뒤쪽에 있는 사람이 자이체프. 연습실 사진들을 좋아해서 이 사진도 좋다 :)

 

 

 

 

 

카지미르 칼라를 추는 중.

 

 

:
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