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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꾸준히 조금씩 쓰고 있다. 주중에는 일하느라 바쁘고 피곤해서 도저히 쓰기가 어렵다. 옛날에는 일하고 와서도 밤에 꾸준히 쓰는 편이었는데 역시 나이가 들면서 집중력과 에너지의 지속성이 떨어지고 있기도 하고, 또 맡은 일의 범위와 책임이 더 심화되어서 그만큼 정신적 소모가 커지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쓰고 있다. 

 

 

발췌한 두 개의 문단은 역시 옛 여자친구인 리다에 대한 게냐의 회상이다. 다만 지난번 발췌 파트들이 주로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2층 카페와 연관된 기억들이라면 아래 내용들은 이미 둘이 헤어진 후의 이야기들이다. 소설의 배경에서 주인공인 게냐는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3년 정도 춤추다 미샤의 발레단으로 이적했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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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리다가 결혼한 후에도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그건 모두 극장에서였다. 그만둔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으니 아마도 우연이었겠지만 그녀는 나의 마린스키 마지막 무대를 보러 왔었고 심지어 안내원을 통해 꽃도 전해주었다. 정작 사귈 때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리고 미샤의 발레단으로 이적한 후의 첫 공연과 갈라 무대에도 왔다. 그때는 남편과 함께 왔으므로 별다른 이야기를 나눌 일은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노브이 루스키 중에서도 언론 쪽에 발을 걸치고 있어 문화적 자기 포장을 할 줄 아는 세련된 부류에 속했고 미샤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심지어 공연 후원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에 우리 리셉션과 기자간담회에도 참석했다. 그를 내게 소개해 준 것도 리다가 아니라 미샤였다. 미샤는 나와 리다의 옛 관계를 몰랐다. 하지만 안다 해도 별로 신경 썼을 것 같지 않다. 미샤는 상대방의 사생활이나 과거에 대해 캐묻는 타입이 아니었다. 사실 질투나 집착이 뭔지 제대로 알기나 할까 싶다. 그런 사람이 그토록 격렬하고 폭발적인 작품들을 안무하고 정서적으로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인물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리다의 남편은 나와 그녀가 몇 년 동안 사귄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리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철저한 사업가였고 매사를 계산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했다. 아내의 ‘철없던 여학생 시절 연애질’에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나 정도의 풋내기는 자기 같은 거물 비즈니스맨에게는 경쟁 상대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봤던 건 작년 이맘때 무소르그스키 극장에서였다. 미샤의 푸쉬킨 연작 중 마지막 작품인 ‘스페이드의 여왕’ 초연이었고 나는 게르만을 췄다. 그는 시장과 국회의원 두엇, 방송사 부사장과 함께 로열석에서 공연을 관람했고 커튼콜이 끝났을 때는 리다와 함께 백스테이지에 들러 미샤와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다. 리다는 남편이 나를 비롯한 주역 무용수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 뒤로 물러서 있었고 내겐 의례적인 인사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한밤중에 불쑥 전화해서 잔뜩 취한 목소리로 ‘너 그 역 잘 어울리더라. 여태 봤던 무대 중에 제일 좋았어. 마린스키 버린 보람이 있네, 좋겠어’ 라고 말하고는 툭 끊어버렸을 뿐이었다. 뜬금없는 전화는 그렇다 치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전에 그녀는 내 공연을 종종 보러 오곤 했지만 제대로 된 평을 해준 적이 없었고 내가 물어보면 자기는 전문가가 아니니 그런 걸 기대하지 말라고 했었다. 심지어 마음에 들었다거나 좋았다거나 별로였다는 얘기조차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 나는 리다와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여전히 공연을 보러 왔지만 리다는 따라오지 않았다.

 

 

 

 

 

 

 

 

 

 

 

 

 

... 무소르그스키 극장은 지금의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이다.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내가 처음 갔던 무렵, 그리고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90년대 후반에는 무소르그스키 극장으로 불렸다. 애칭은 말르이 극장이었는데 요즘은 이 애칭은 거의 안 쓰는 것 같다. (말르이 드라마 극장이 있어서 사실 좀 헷갈리긴 함) 미샤의 발레단은 별도의 극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연을 올릴 때 무소르그스키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 등의 무대를 활용한다. 미샤와 그의 발레단의 초기 모델 중 하나였던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이 그런 케이스였고 지금도 알렉산드린스키에서 주로 공연을 올린다. (에이프만을 위한 극장 건축 중이라 몇년 내 개관 예정이긴 하지만)

 

 

그래서 맨 위에 무소르그스키 극장(현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내부 전경 사진을 올려보았다. 물론 가즈프롬 등 빵빵한 후원기업과 전문경영자가 붙은 후 환골탈태한 현재 모습이다만,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90년대 후반에도 대충 색상이나 무대 형태 등등은 거의 유사했다. 바로 위 사진은 최근 이 극장의 '신데렐라' 공연 백스테이지 풍경. 

 

 

위 글에서 언급되는 게르만은 종종 나왔던 그 사악한 크레믈린 아저씨 게르만 스비제르스키가 아니고 푸쉬킨의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 남자 주인공인 게르만이다.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전경 한 장 더. 나도 가끔 가는 극장이다. 이 극장 발레단의 수준은 확실히 마린스키보다는 훨씬 떨어지지만 주역 무용수 몇몇은 볼만하고 또 네프스키 대로 중심가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하러 가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이미 몇년 째 못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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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