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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2013년에 카페 에벨에서 찍은 것이다. 당시 나는 프라하에서 2월과 3월을 보냈다. 잠시 휴직을 한 상태였다. 내가 빌렸던 아파트에서 나와 아주 좁은 골목 하나만 통과하면 카페 에벨이 있었다. 평균 이틀에 한번은 에벨에 갔다. 딱 하나뿐인 창가 자리에 앉으면 행복했지만 글을 쓰기에는 이 테이블이 가장 좋았다. 견고하고 넓은 사각형의 테이블, 편한 의자, 그리고 가장 안쪽이라 등을 기대고 앉으면 카페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체코어와 영어, 이따금 러시아어, 그리고 드물게 중국어나 다른 나라 말들이 들려왔다.

 

 

프라하의 2월과 3월은 머무르기에 별로 좋은 시기가 아니다. 날씨는 춥고 을씨년스럽다. 한겨울의 매력도 없다. 모든 것이 어중간하고 음습하다. 하지만 이 당시의 기억은 지금 나에게 매우 소중하게 남아 있다. 이때 나는 수용소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주로 여기, 카페 에벨에서. 오후에. 그리고 방으로 돌아가서는 밤중부터 새벽 늦게까지, 내 생애에서 가장 널찍한 아파트를 혼자 쓰면서, 싸늘하고 추운 거실에 놓여 있는 아주 큰 이케아 테이블 앞에 앉아 어둑어둑한 램프 불빛 아래에서 썼다. 거실은 커다란 창문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덕분에 낮에는 바깥 풍경을 보기 좋았지만 밤과 새벽엔 어두웠고 바람이 들어와서 추웠다. 늦은 오후 에벨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좀 쉬다가 밤이 되면 새벽까지 다시 썼다. 이것이 내가 프라하에 대해 품고 있는 가장 소중하고 내밀한 기억이다.

 

 

이제 레테조바 거리의 이 카페 에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두어 달 전 코로나 때문에 경영난이 심각해져서 이 지점은 문을 닫았고 카프로바와 바르톨로메이스카 거리의 두 군데만 남았다. 나에게 카페 에벨의 진수는 언제나 이곳, 이 자리와 이 색채, 그리고 타이핑을 하던 저 자리들이기 때문에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변하고 또 사라진다.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저때 어떤 내용을 쓰고 있었나 궁금해서 사진을 크게 확대해 노트북 모니터를 살펴보았다. 글씨가 흐릿해서 잘 안 보이지만 내가 쓴 글이니 알아볼 수 있었다. 1부 앞부분이었고 슈스코프에 대해 쓰고 있었다. 수용소의 2인자이자 실질적 권력자, 심리교화를 담당하는 역겨운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평범한 간수 청년에 대해서도.

 

 

오랜 기억이고 여전히 생생하다. 저 자리와 저 순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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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