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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올린대로 또 스펙터클 스릴러 + 팬심 가득한 꿈을 꾸고 비몽사몽 괴로워하다 억지로 일어나 간신히 10시 다되어 내려가 조식을 먹었다. 거의 맨 마지막에 나온 사람이 되었음.


..



오늘 료샤가 오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오전에는 트램 타고 강 건너가서 카페 에벨에서 글을 쓰다 와서 오후에 이녀석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22번을 타고 나로드니 트르지다에서 내렸다. 현금을 좀 찾아야 할 것 같아서 atm 자체 수수료가 제일 싸다는 raiffeisen bank를 찾기로 했다. 신시가지 바츨라프 광장 쪽에 분명 은행들이 모여 있을 거 같아서 2GIS 앱 켜고 찾아갔다. 원래 트램 정거장 바로 옆에도 하나 있었는데 하필 그 atm이 고장나서 500미터 쯤 약간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엄청 더워서 돈 뽑고 나니 이미 지치고 말았다. 걸어가도 15~20분이면 에벨에 갈 수 있었지만 피곤해서 그냥 무스텍 a라인 역에서 전철을 타고 한정거장 가서 스타로메스트카 역에서 내린 후 에벨이 있는 골목으로 갔다. 그나마 예전에 살았던 곳이라 대충 교통수단이나 길이 눈에 그려져서 가능.. 안그랬다면 무작정 걸었겠지.


스타로메스트카 역에서 에벨까지도 좀 걷긴 해야 했다. 하도 계속 더워서 바람 통하는 옷을 입어야겠다 싶어 오늘은 긴 소매이긴 하지만 그래도 원피스를 입고 나왔는데 다리는 시원했지만 위는 더웠다 ㅠㅠ 다리 아프니 원피스를 입어도 신발은 운동화!!! (흑흑, 예쁘게 차려입는 거 다 포기임)



...



정오쯤 에벨에 도착하자 완전 녹초. 웬일로 손님이 별로 없었고 그 창가 자리가 비어 있었다!!! 원래 트램까지 타고 에벨에 온건 어제 본격적으로 구상을 시작한 글을 제대로 써보려고 그런 거였는데... 그러려면 테이블이 좀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하지만... 지금 글이 문제가 아니다. 저 창가 자리가 비어있는데 어떻게 다른데 앉아!!!






앗싸! 3년 반만에 다시 창가 자리 득템... 그리웠어 에벨의 창가... ㅠㅠ


여기서 차 마시려고 조식 먹을땐 무카페인의 애플시나몬 티를 마셨었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와 오늘 눈에 띈 레몬치즈케익 주문. (예전엔 애플파이나 메도브닉도 있었는데 지난주랑 오늘은 없다. 지난주에 먹었던 산딸기무스케익 맛있었는데 그것도 오늘 없었음)








차를 마시고 케익을 먹으며 그간 모아두었던 밑자료 파일을 읽고 또 추가로 생각난 내용들을 수첩에 메모했다. 확실히 창가 자리는 테이블이 너무 낮아서 제대로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여기는 집중이 잘 되는 곳이고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곳이라 몇가지 떠오른 내용들을 수첩과 컴에 함께 메모했다. 나머지는 좀 더 테이블이 편한 곳으로 옮겨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면서 에벨에서 파는 찻잔을 한 세트 샀다. 차를 시키면 노란 해바라기 그려진 찻잔 아니면 사자와 코끼리가 있는 정글 그림 찻잔에 주는데, 솔직히 둘다 내 취향은 아니어서 예전에도 살까말까 하고 안 샀었지만 돌아오고 나선 에벨이 너무 그리워서 그냥 찻잔 사올걸 했었다. 그래서 오늘 샀다. 돌아간 후에도 여기 생각하려고. 해바라기보단 사자! 그래도 닉네임이 있는데 사자 사야지 ㅋㅋ (위에 있는 저 찻잔이랑 같은 거다)



..




트램을 타고 헬리초바 거리에서 내려 그 julius meinl 브랜드의 u zlateho pstrosa 에 갔다. 출출해서 약간 늦은 점심도 먹어야 했고 편한 테이블이 필요했다. 여기는 와이파이가 안되는데 반면 그 덕분에 집중해 글을 쓸 수도 있다.



샌드위치는 거의가 햄이나 훈제연어가 들어있어서 포기하고 메뉴판을 보니 여기도 팔라친키(크레페)가 있었다. 근데 이 카페는 딴데보다 가격이 좀 비싼 편이다 -_- 와이파이도 안되는데... 외국 브랜드라 그런가... 좀 비싸지만 그래도 조용하고 집중이 잘되는 장소이니... 우리나라랑 비교하면 비싼 것도 아니고... 하여튼 버섯과 치즈 팔라친키를 주문했고 레모네이드나 주스는 없다고 해서 화이트 피치 티를 주문했다. 아이스티로도 가능하다고 해서 그렇게 해달랬는데 꽤 정성들여 만들어주어서 만족했다...








팔라친키는 맛있었다. 모짜렐라 치즈가 엄청 많이 들어 있었다. 난 원래 버섯과 양파 들어간 블린을 좋아하고 그게 더 좋긴 하지만 그래도 이 팔라친키도 나쁘지 않았다. 대신 위에 파프리카 가루를 너무 많이 뿌린 것 같았고 그것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간이 많이 짭짤했다...





점심 대용으로 팔라친키 해치운 후(팬케익 한장! 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의 칼로리는 과연... ㅋㅋ) 시원한 복숭아 아이스티를 마시면서 글을 좀 썼다. 순서와 상관없이 오늘 추가로 떠오른 내용이 포함되는 에피소드를 쓰기 시작했다. 반페이지 정도 쓰다가 료샤에게 연락이 와서 카페를 나섰다.



..



페테르부르크에서 프라하까지는 비행기로 약 두시간 정도 걸린다. 료샤는 가끔 놀러도 오지만(주로 술마시러 ㅠㅠ 맛있는 체코 맥주...) 일 때문에도 종종 드나드는 곳이다. 3년 전에 머물 때도 료샤가 출장 겸 한번 놀러온 적이 있었다. 내가 프라하에 잠시 머물 거라고 하자 '어휴 뻬쩨르에나 오지 왜 프라하야!' 하고 툴툴대더니만 뭔가 출장 일정을 맞추어서 겸사겸사 날아왔다. 착한 친구라니까.


비즈니스맨이자(ㅋㅋ) 부르주아답게 내 친구 료샤님은 차를 렌트하신 후 공항에서 일단 내가 머무는 호텔이 있는 우예즈드로 왔다. 나는 그에게 '야, 이 호텔 보면 너 기함하니까 그냥 딴데서 만나!' 라고 했지만 그는 자기 숙소도 말라 스트라나 쪽이라면서 일단 들렀다 가겠다고 했다. 오후에 무슨 미팅을 하나 잡아놔서 거기 갔다가 저녁에 볼수 있다고. 그전에 얼굴 잠깐 보고 가겠다고. '이노미.. 친구가 멀리서 왔는데 무슨 미팅이야!!! 평소엔 일 안하면서 왜 내가 오니까 일 열심히 해!' 라고 하려다 말음 ㅋㅋ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료샤가 나타났다. 차 댈데 찾기 힘들다고 엄청 툴툴댔다.


나 : 야, 너는 친구를 보면 반갑다고 인사를 해야지 주차 힘들다고 툴툴대니!

료샤 : 에잇, 주차 힘들어! 친구야, 반갑구나!

나 : 차가 친구보다 우선이야 -_-



료샤는 6월말과 비교해 변한 게 없었다.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라 좀 놀랐다.


나 : 오후 미팅 있다며 왜 그렇게 입었어?

료샤 : 방에 들러서 갈아입고 갈 거야. 양복 입고 비행기 타면 불편해!

나 : 너네 숙소 가까워?

료샤 : 너네 방에서 갈아입으려는데?

나 : 헉, 내 방? 안돼!

료샤 : 왜! 난 친군데! 친구가 방에서 옷 좀 갈아입으면 안되냐!!!!

나 : 아니, 그거야 당연히 되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내 방 너 못 들어가..

료샤 : 왜 못 들어가? 남자라도 숨겨놨냐!

나 : 그게 아니고 ㅠ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나는 그를 데리고 내 방으로 올라갔다. 료샤 기절초풍!!!


료샤 : 으악! 이게 방이야?

나 : 흑흑... 이제 왜 안되는지 알았겠지?

료샤 : 야! 왜 이런 방을 구했어! 멍충아!!!!!! 이게 뭐야 궁상맞게!!!

나 : 홈페이지엔 이렇게 안 나와있었어! 더블룸들은 괜찮았는데 싱글룸이 이모양이란 건 악착같이 숨겼단 말야!

료샤 : 사기당했구먼 -_- 이런 방에서 일주일이나 있었단 말이야? 방이 반쪽은 아예 내려앉았네!

나 : 다락방처럼 돼 있어서 그래... 옷 갈아입으려면 화장실 들어가서 갈아입어. 거긴 그래도 천정 높아.



료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방에서 옷갈아입다가 자기 머리 박살나겠다고 했다. 내 방에 머무른 15분 동안 그는 도합 다섯번 머리를 박았다 ㅋㅋㅋ 나는 이제 좀 익숙해지고 있긴 했지만... 확실히 방에 두명이 들어오니, 그것도 키크고 덩치큰 남자가 들어오니 이 방은 그야말로 미니어처였다!!! 183센티에(본인은 185라고 우기지만 내가 보기엔 아님) 80킬로는 너끈히 나가는 료샤는 이 방에서 걸리버가 되었다 ㅠㅠ 아니면 호빗네 집에 들어온 간달프인가 ㅠㅠ



료샤 : 야! 너 지금 빨랑 짐싸!

나 : 왜!!

료샤 : 방 옮겨! 나 방 두개야!

나 : 너 왜 방 두개야?

료샤 : 금요일에 레냐도 올거란 말이야!

나 : 그럼 그 방은 금요일에 하나 더 생기는 거잖아!

료샤 : 두개짜리 방이란 말이야!

나 : 웅와, 역시 부르주아... 그래도 싫어! 나는 내가 벌어서 내가 지불한 다락방에 있을 거야 -_-

료샤 : 너 내가 덮칠까봐 그러냐!!

나 : 뭐라고 대답해야 되니 ㅠㅠ '응' 그러면 '친구를 뭘로 보냐' 그럴거고 '아니!' 그러면 '네 눈에 난 남자도 아니냐!' 그럴 거면서!

료샤 : 독심술사!!!



(이쯤에서 다시 보고 가는 나의 후진 -의자도 없는- 삼각형 방... ㅠㅠ 그래도 료샤 왔을떈 이렇게 지저분하진 않고 치워놨었음)



(저 삼각형 경사진 창문 아래 벽에 나 있는 금 확대 사진... 분명 투숙객들마다 여기 머리를 박아서 생긴 금이다! 나도 여기 몇번 박았고.. 료샤도 15분 동안 딱 이 자리에 다섯번 박음... 결국 나는 너 때문에 내 방 무너진다고 그를 내쫓았음 ㅋㅋ)




하여튼 나는 후진 방에 남기로 했고 료샤는 계속 툴툴댔지만 미팅 시간이 다 돼서 나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이 호텔의 유일한 장점이자 비장의 무기인 젤라또 집으로 그를 인도.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그러자 역시나 조삼모사인 내 친구는 얼굴이 금세 펴지며 '우오, 맛있다! 레냐도 좋아하겠다!' 하고 신나 했다. 아빠와 아들 둘다 아이스크림이라면 맥을 못 춘다니까.


료샤는 미팅을 하러 갔고 돌아와서 함께 근처에서 저녁 먹기로 했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언제나처럼 호텔 야외 테라스에 나와서 오늘의 사진과 메모를 정리하는 중이다. 조금 있으면 올 것 같다. 얘는 벌써부터 맥주 마실 생각에 들떠 있음.



친구야 와줘서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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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